책_을 펴내며2017.06.23 19:45

출판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원고지를 채워나가던 2016년 봄 서울역사편찬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울이천년사] 35권과 40권에 원고를 보태 감사를 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서울역사편찬원에서 별도로 기획, 발간중인 서울문화마당 시리즈 단행본 가운데 하나인 [근현대 서울의 집] 원고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서울이천년사] 원고만 하더라도 시간에 쫓겨 꾸역꾸역 원고를 썼던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새로운 원고, 그것도 단행본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니 일단 어렵다고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판단하고, 사정이 딱하지만 힘들다고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그런데 다시 청을 해 와 하는 수 없이 덜컥 그러마고 했고, 결국 원고마감을 가까스로 지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채운 원고지가 600여 장 정도. 물론 그림도 꽤 많아 내심 원고량을 걱정하였지만 서울역사편찬원에서 잘 마무리 해 주신 덕택에 자그마하고 단정한 책으로 만들어졌다. 2017년 6월 23일이 출간일이니 책이 나온 날 바로 받은 셈이 되었다. 이 책은 비교적 잘 읽히도록 만든다는 것이 의도였지만 그렇다고 쉽게 써야 할 것은 아니었으니 결국 글솜씨가 문제인 셈이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다시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미 책은 나왔으니. 이제 모든 잘못은 필자에게 있음이다.

 

여는 글 /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인 천만 서울시민의 삶의 기억

 

<서울연구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2015년 말을 기준으로 서울에는 모두 천만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데 한 세대는 평균 2.39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대략 420만 정도의 세대로 구성되어 대도시 서울에서의 삶을 꾸리고 있다. 역사도시이자 첨단도시, 국제도시로서 한 나라의 수도라는 특별한 지위를 갖는 서울을 움직이는 천만이 넘는 시민은 280만 채에 이르는 에서 하루를 열고 닫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천만의 시민들이 이어가는 일상은 매우 독립적일뿐만 아니라 서울이라는 지리적 공간의 범주를 넘나들며 서로 다른 장소와 공간에서 다채로운 삶의 양태를 드러냄으로써 현대도시 서울의 거주풍경을 만들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천만 서울시민의 다양한 삶이 지속되도록 지지하고 지탱하는 최소의 거주단위인 의 유형은 생각과는 달리 몇 가지로 수렴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변화 정도가 가장 적고 비록 그 모습이나 내용이 일부 바뀌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 변화주기가 가장 길었던 건축 유형의 하나가 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건축사와 문화사, 생활사를 통해 확인한 바 있을 정도로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서울시민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는 오늘의 주택유형을 꼽아본다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일반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그것으로 280만 채에 달하는 집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2015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서울에 존재하는 280만 채에 달하는 [住宅]’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아파트로서 전체 주택유형 중 58.6%를 차지한다. 15년 전인 1990년에 비해 110만 채 이상이 늘어, 전체 서울의 재고주택에서 차지하는 점유비도 35%에서 가장 많이 늘었다. 그러니 서울을 아파트 도시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비약적인 증가라 아니 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높은 점유비율을 보이는 주택유형은 다세대주택이다. 다세대주택이 654천 채를 넘는 수치를 보임으로써 서울의 재고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아파트에 이어 23.4%를 차지한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한 다른 주택유형을 내림차순으로 살펴보면 누구나 쉬 짐작하듯 일반 단독주택연립주택이 뒤를 있는다. 그 가운데 단독주택은 12.7%를 점하고 있으며, 연립주택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4.2%를 기록하고 있다. 단독주택은 대략 355천 호, 연립주택이 117천 호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서울시민이라면 짐작할 수 있듯 서울의 주택유형 가운데 끊임없이 늘고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점점 줄어드는 유형도 당연히 존재한다. 이미 서울의 비약적 인구 증가는 거의 그쳤고, 해마다 다르지만 일부 줄어드는 경우도 나타난다.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은 예외 없이 늘어나는 주택유형에 속하지만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유형에 속한다. 근래 서울의 행정구역 확장이나 축소 등의 변화가 없었고, 인구 역시 급격하게 늘거나 줄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이는 곧 오래된 것의 소멸과 새로운 유형의 등장의 반복되며 그 모습을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줄어들며 그 자리를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가 빠르게 채워나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주거유형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거주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달리 말하면 소위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통해 도시의 공간구조나 풍경이 바뀌었다는 사실로도 설명할 수도 있다. 결국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라는 주택유형으로 서울의 집이 수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공유주택이니 타운하우스니 하는 새로운 호칭을 가진 집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법률적, 제도적으로 이들의 대부분이 다세대주택이거나 연립주택인 것처럼 오늘날 서울의 집은 유형학적으로 본다면 결코 다양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서울의 집가운데 아주 미미한 숫자에 불과한 비주거용 건물 내 주택을 제외하고 유형학적으로 살피자면 아파트, 다세대주택, 단독주택, 연립주택의 네 가지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근현대 서울의 집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지난 100년 동안 이들이 서울의 집을 대표하게 된 연원을 계통적으로 살피고 그 궤적을 따라 걷는다. 일례로 도시한옥처럼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커다란 반향을 보이며 대중적 유행을 누렸으나 그 명맥을 잇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그 가치와 의미가 새롭게 평가되어 70여 년 만에 다시 서울의 집을 대표하는 유형으로 새롭게 자리매김을 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승만 정권 때 도시미화의 방편으로 별안간 궁리된 상가주택이나 허허벌판이던 도시 주변부를 새로운 교외주택지로 만들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고안한 점포주택이 서울의 고밀화 과정을 통해 단지형 아파트주상복합아파트로 변태를 거듭했던 사실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흐름을 산책하듯 따라 걷자는 취지로 쓰였다.

 

책 제목 끄트머리에 주택이 아니라 을 택한 이유는 단순히 주택의 형태와 형식에만 주목하는 건축역사와 양식사의 시선에서 벗어나 서울시민들의 보편적, 규범적 생활문화사를 폭넓게 다루어보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울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집의 변화 혹은 변이의 과정과 경로를 일정한 궤적에 따라 살핀 뒤 다시 오늘의 모습에 이르게 된 과정을 담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 책은 서울이라는 지리적, 공간적 영역에 주목하되 행정구역의 확장이나 그에 따른 도시계획의 변화 등과 같은 입장에서 조금 비켜선 채 서울 주거문화 흐름과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기원을 찾아보고, 변화의 동인이 무엇인가를 살핀 것이다. 책에 담긴 내용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공감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근현대 100년 동안 서울 사람들이 살아온 풍경이며 기거문화를 소설과 신문 등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대중매체와 각종 문헌자료에 의지해 담아보았다. 물론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이는 모두 필자의 책임으로, 나태함이 빚은 과오다.

 

책을 이루는 글의 덩어리는 모두 네 가지로 구성되었다. 1장은 일제강점기의 단독주택을 대표하는 관사와 사택, 도시한옥과 문화주택으로부터 영단주택을 거쳐 한국전쟁 복구과정에 등장한 다양한 유형의 주택을 살핀 뒤 개발경제기에 등장하게 된 민영주택과 이후 오늘의 보편적 서울의 집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게 된 다세대주택에 이르기까지의 경로와 과정을 살펴보았다. 특히 1960년대 중반 민영주택의 등장과 확산과정을 생활문화사 차원에서 살핌으로써 단독주택의 갈래를 살폈고, 단독주택이 1980년대를 거치며 여러 가지 색다른 유형으로 바뀌게 된 과정을 훑었다.

 

2장은 아파트의 등장과 변화의 흐름을 주로 기술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 최초의 아파트와 초기 사례부터 1960년대를 관통하는 정부와 서울시의 아파트 공급 전략을 통해 국민주택의 대표적 유형이었던 아파트를 새삼 확인한 뒤 대한주택공사와 서울시의 아파트 건설 내용을 경향적으로 살폈다. 이를 통해 단지형 아파트와 좌절된 서울시민아파트 등이 도시중간층의 급신장으로 인해 중산층용 맨션아파트로 변모하는 과정을 기술했다. 그리고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아파트가 서울의 다수를 차지하는 대단위 단지형 아파트로 변모하는 과정을 바라보았다.

 

3장은 연립주택의 기원과 전망을 다루었다. 일제강점기에도 노동자주택이나 합숙소의 형태로 일부 등장한 바 있는 연립주택이 한국전쟁 이후 부흥주택 등으로 대표되는 복구와 재건의 시기에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주거유형으로 주목받았던 내용을 먼저 다루었다. 그 뒤를 이어 연립형 주택이 개발경제기를 거치며 여러 가지 실험과 시도를 통해 새로운 보편적 도시주택 유형인 오늘날의 연립주택으로 자리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또한 급격하게 신장된 새로운 도시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아파트와의 시장주택 경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아파트의 하위 주택상품으로 전락하는 과정과 함께 저밀도라는 환경의 질적 조건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강남 개발과 함께 고급 연립주택을 일컫는 빌라와 맨션으로 분화하는 과정도 더불어 다루었다.

 

4장은 전후 복구와 수도 서울의 위신 세우기 수단으로 궁리되었던 상가주택과 교외주거지 개발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만들어졌던 점포병용주택이 1960년대를 관통하며 도시미화와 정비의 효과적인 방편으로 활용된 상가아파트로 변신하는 과정을 살폈다. 특히, 1970년대에 본격화된 강남 개발에 따른 노선상가 아파트 확대와 일부 중산층 아파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아케이드형 맨션아파트를 거쳐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 이르게 된 과정을 눈여겨보았다. 이 과정에서 단독주택이 주를 이루었던 상당수의 교외 점포주택지는 이미 서울의 보편적 주거유형이자 지배적 유형인 대단위 단지형 아파트에 편입되거나 여전히 오래 전의 풍경을 간직한 채 서울의 주거지로 남았음을 확인하고 그 내용을 간추렸다.

 

일정한 시기 혹은 사회변화의 기제이자 가치라고도 할 수 있는 의미어로서의 근대 혹은 현대는 대도시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구한말의 개화에서부터 일제강점기의 수탈적 식민지 근대화, 건국과 분단, 산업화과정과 주택시장의 급신장 과정에서 빚어진 인간 소외와 불구적 이미지화를 거쳐 때론 천박한 자본주의의 극한적 양태라고도 불리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지난 백여 년 동안 기거양식의 일정한 질서라 할 수 있는 주거문화는 혼돈과 충돌 그리고 갈등과 수용의 연속이었다. 근현대 서울의 집은 주마간산 격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담아내려고 애쓴 결과물이다.

 

이 책을 통해 서울시민들이 근현대의 시간을 함께 산책하며 어렴풋한 기억을 길어 올려 복원하거나 반추한다면 어떤 이에게는 편리와 풍요, 성장과 발전이라는 양지로 회상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뿌리 뽑힘과 난민 정서로 대표되는 응달의 상흔을 남기기도 할 것이다.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그리고 연립주택과 단독주택은 오늘날 서울의 대표적 주거유형이자 시민들의 삶을 의탁하는 보편적인 장소이자 사회적 공간이다. 이들이 어떻게 서울의 대표적 주거유형으로 정착하게 되었는가를 따라 천천히 걷는 근현대 서울의 집을 통해 서울 시민 모두가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인 삶의 기억을 반추하는 한편 역사도시 서울이 맞닥뜨릴 새로운 시대의 문화풍경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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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7.04.24 15:52

봄의 시작을 3월이라 한다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울의 한 해를 보내고 조금은 다른 우울로 맞는 것이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봄인데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아무래도 집 이야기를 펼치는 곳이니 그동안 SNS에 끄적거린 내용들을 다시 훑어보게 된다.

 

3월을 맞으며 처음 한 일 가운데 하나는 포천에서 그동안 맘에 품었던 벚나무 한 주를 들여온 일일 게다. 언젠가 경기도 백암 일대를 지나다가 마주했던 능수벚나무 한 그루가 너무 좋아 보여 그동안 마음에 담았던 일인데 우연히 경기도 포천에서 죽전의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소위 45일로 정해진 식목일이 나무를 옮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시절이고, 그보다 한 달은 앞서서 몸을 움직여야 제철에 꽃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조금은 서둘렀다.

 

 

집으로 옮기기 위해 정한 날짜는 아무래도 토요일이 나을 듯해 정한 것이 2017311. 마침 하루 전인 310일에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 선고가 헌법재판소에서 이루어진 까닭에 이름하여 탄핵기념식수가 되었고, 관리번호는 ‘20170310’으로 정했다. 옮기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5톤인지 8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크레인이 부착된 대형 트럭이 집 앞에 도착하였고, 잔가지 몇 개를 잘라낸 뒤 마당 한켠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른 아침부터 집으로 온 두 분이 벌써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 나무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요리조리 자리를 잡는 아내의 의견에 따라 나무를 옮기고 물을 댄 뒤 혹시라도 바람에 흔들려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을 염려해 세 곳에 앵커를 묻고 줄을 늘여 단단하게 고정하는 것으로 작업을 마치고, 잠시 동안이지만 바람결에 휘날리는 벚꽃을 그려보기도 했다.

 

마침 살구나무집에서 처음 봄을 알리는 노루귀도 만개한 날이었고, 수선화도 거친 땅을 뚫고 올라와 꽃대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살구나무집의 봄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창밖 나른한 햇살을 받는 곳에 자리한 빈카미아너는 이미 꽃을 우기 시작했고, 어느 것보다도 생명력과 복원력이 강한 앵초며 물망초 등도 이파리를 키우고 그 안에 작은 꽃대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봄에 무엇보다도 기다려지는 것이 있으니, 이름하여 인디언 앵초이다. 작년 봄 조금은 늦은 봄에 양재동 꽃시장에서 세 촉을 사다가 심어두었던 것인데 올해는 이 가운데 하나가 촉을 퍼뜨려 얼핏 눈으로 보기에는 네 촉이 푸른 이파리를 만들며 설렘을 배가시킨다. 326일에 본 모습인데 416일에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꽃잎을 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지만 자연의 신비와 그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을 감탄하기에 절대 부족함이 없다.

 

49. 마당으로 옮긴 능수벚이 서서히 꽃잎을 열고, 서재 마당 바깥에 늘 늠름한 모습으로 살구나무집을 지키는 오래 묵은 살구도 엄청난 꽃을 피웠다. 살구나무집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바야흐로 봄의 절정에 진입하는 모습이다. 앵초며 할미꽃도 특유의 빛깔을 가진 꽃을 피웠고, 능수단풍 아래 작은 꽃밭은 이제 형형색색의 봄꽃들이 저마다 제 자랑이 한창인 풍경을 연출했다.

 

 

또 무슨 일을 꼽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고양이 얘기를 빼먹을 뻔 했다. 고양이 얘기는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10월인가, 윗집에서 살던 순이가 얼룩고양이 세 마리를 데리고 살구나무 아랫집을 찾았다. 아직은 젖을 물려야 해서 홀쭉해진 어미가 가엾다 여긴 아내가 새끼들을 돌보게 되었고, 추위를 피하도록 여러 궁리를 했고, 봅을 맞아 세 녀석 모두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다시 집으로 데려온 녀석들인데 이제는 아주 편안하게 서재마당이며 거실마당을 차지하고는 게으름과 어리광으로 자연스럽게 마당 식구가 된 것이다. 등에 검은 털이 거의 없는 녀석은 도도’, 그리고 검은 털이 두 덩어리 정도 올려진 녀석이 레레’, 마지막으로 등에 길게 검정 털을 얹은 녀석의 이름이 미미. 아침저녁으로 사료를 준 덕에 이제는 식구들만 보면 쫓아와 다리에 등을 부비는 등 재롱을 부리고, 주로 서재 마당에서 생활하지만 휴일이면 마당에서 두런거리는 식구들 소리가 궁금한 지 마당으로 와 잡초를 뽑는 식구들의 모습을 호기심 담긴 눈으로 쳐다보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달라는 듯 고양이 울음소리를 여러 번 내다가 다시 서재마당으로 돌아가곤 한다. 덕분에 집안에서 생활하는 강아지 마루가 호흡이 거칠어지고, 샘을 내는 풍경을 연출한다. 사람들의 눈으로는 평화로운 풍경이라 하겠지만 녀석들의 눈에는 아마도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눈치 전쟁이 심각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올해도 예외 없이 살구나무가 만개한 집 풍경을 촬영했다. 마치 꼭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살구꽃이 만개하면 서재 밖의 높은 곳에 올라 뷰파인더에 그득 풍경을 담는 일을 잊지 않은 것이다. 작년에는 너무 많은 살구가 달려 잼도 만들고, 집을 드나들면서 자주 주워 먹었던 살구가 올해는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사람들의 말처럼 해걸이를 한다면 올해는 작년과 달리 열매가 거의 달리지 않거나 달려도 아주 조금 열릴 것인데 매년 문밖에 퍽퍽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살구 낙과 소리를 못 들을까 아쉬운 마음도 적지 않다. 물론 기다려보아야 할 일이기는 하다.

 

 

415일 경에는 튤립이 만개하였고, 그 오묘한 빛깔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를 사랑초도 고운 자태를 드러내며 꽃을 피웠다. 붉은 색과 흰 색의 앵초와 신비스러움으로 제 몫을 다 하는 물망초도 드디어 만개하기 시작하며 마당의 우울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금요일 늦은 저녁이면 퇴근한 아이들과 더불어 마당으로 나서 밤 벚꽃놀이를 흉내 내기도 했다. 밤에 흐릿한 조명을 받아 보는 벚꽃이 왜 좋은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란 곳에서 뿌리가 뽑힌 채 전혀 생소한 곳으로 옮겨 심은 능수벚이 꽃을 피우는 일이 정말 대견스러운 시간이었다.

 

 

봄날은 평화로운 시간이지만 겨울을 이겨낸 우울이 함께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봄날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과 무력감이 자리하지만 고양이들의 느긋함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봄이 조급하고 우울하다지만 그것 역시 세상의 흐름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갈 순간이라는 것을 믿어본다. 라일락 향기에 그 우울을 떨쳐보자. 봄날이 지나는 시간이다. 며칠 전 동트기 전 잠이 깨 마당에 나섰더니 라일락 향기가 가득한 마당 한가운데로 벚꽃 잎사귀 하나가 이리저리 날리며 떨어지는데 휘파람 새소리가 고요를 뚫고 들렸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반달이 몸피를 부풀리는 시간이었는데, 이게 바로 봄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이끼용담과 공조팝이 필 시간이다. 더불어 모란이며 작약도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으니 또 그 녀석들도 기다려진다. 무언가에 쫓긴다는 것은 달리 말해 기다림이라고 해야 옳다. 마당 귀퉁이의 흰꽃 배롱도 매끈한 수피를 뚫고 붉은 색 줄기를 내보내기 시작했고, 공조팝 가지 끄트머리는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봉오리가 맺혔다. 흰 꽃 모란은 큼지막한 다섯 송이가 벌써 무게를 더하고 있고, 자줏빛과 연분홍을 자랑하는 작약은 쭉쭉 키를 키우는 시간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니 시간도 그만큼 지나리라. 세상 어느 곳이라고 우울이며 걱정이 없겠는가. 주어진 시간을 만끽하고 그 안에서 조금 더 느긋해진다면 봄날의 화사한 꽃들처럼 인생을 반추할 시간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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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생각2017.04.19 17:23

2017년 4월 13일 '시론'

http://news.joins.com/article/21469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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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