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공간산책2014/10/13 16:23

2011년 제5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강영숙의 <문래에서>는 노동자들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공존하는 서울 문래동을 통해 때론 계급의 문제를 길어올릴 수도 있고,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소설 속 화자의 입과 가슴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문래동의 복제 현실을 타지에서도 동일하게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서울 문래동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소설 속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인정과 더불어 살아 있음을 그대로 웅변하는 문래동을 떠나 농장지역으로 일컬어지는 Y지역으로 이사를 한다. 남편의 직장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도회인들이 생각하는 그대로 매일 아침 신선한 우유를 마실 수 있는곳으로 알고 있던 그곳이 사실상 세상 사람들의 편견이 만들어낸 장소임을 깨닫고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의 광고에 불과함을 곧 알아차린다. 구제역으로 인해 매일매일 살아 있는 동물들을 살처분하는 직업을 가진 남편 뿐만 아니라 동네 곳곳에서는 언제나 정체 불명의, 그러나 죽음임을 누구나 떠올리는 냄새를 맡게 되고 새떼의 죽음과 피가 흐르는 침출수을 일상의 환경으로 경험한다.

 

늦은 밤에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무력감과 끔찍한 현실 때문에 술로 날을 지새우는 남편, 동물보호운동을 펼치는 여자의 공허한 외침 등은 결국 첨단과학으로 인한 풍요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의 시공간이 사실은 원시성을 벗어나지 못한 그대로의 공간이라는 사실에 이르면서 치장되거나 은폐된 허위의 진면목을 마주 한다. 풍요와 첨단이라고 믿는 현실의 한 켜만 벗겨보면 온갖 허구의 진면목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을 통해 끔찍하고도 괴이한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가를 이 소설이 웅변하고 있다. 지금은 문래 예술창작촌이라 불리는 곳도 혹시 그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문래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사실 남편의 일자리 때문에 이사 가기로 한 Y지역에 대해 나는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우리는 문래에서만큼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옛날부터 실 뽑고 천 만드는 방직공장이 많았다는 문래는 그 유래와 다르게 늘 칙칙하고 어두웠다. 방직공장은 주식회사라는 이름을 달고 커다란 빌딩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문래는 곳곳이 기름 냄새 나는 철공소들의 거리였다. 골목에 쌓인 눈은 한 번도 흰색인 적이 없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 녹았다. 또 도시의 먼지란 먼지는 다 문래로 모여들어 쌓이는 것 같았다.

문래역과 영등포역 사이, 이주를 못하고 남아 있는 중소 철공소들이 드문드문 영업중인 곳에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게 됐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프레스 작업을 하거나 금형을 뜨는 공장들, 특수제작물을 만드는 용접 전문 철공소들은 그대로 있고 그 사이사이 버려진 작은 가게들이 울긋불긋 색을 입고 그림이 그려진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변했다. 공장 문짝에 그려진 화려한 꽃무늬, 담벼락에 그려진 캐릭터는 이상하게도 칙칙한 문래와 잘 어울렸다. 이른 아침 시간에는 주로 근처 소규모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그러나 밤이 된다고 해서 예술가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혼자 작업실에 있거나 늦은 밤 작업을 끝내고 퇴근길에 한잔 마시러 나온 공장 사람들과 가끔 섞여 있을 뿐이었다.”

 

출처 : 강영숙, <문래에서>, [2007-2013 김유정문학상수상작작품집], 서울, 은행나무, 20145(11), 182183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4/10/13 13:38

비록 세속적 삶을 반복하는 일상적인 공간환경에서 벌어질법한 일을 그대로 묘사한 것에 불과하지만 구병모의 <이창>은 자못 불편하게 읽힌다. 주상복합아파트의 거실 유리창을 통해 우연히 다른 집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아동학대라고 판단한 소설 속 화자의 시선과 태도에 대해 소설은 무엇이 진실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소위 진실이라고 여겨질법한 실체란 과연 무엇인가를 묻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당황스러움과 더불어 곤경에 빠지게 된다. 유리창 건너편의 아이가 실제로 뇌진탕으로 죽게 되는 결말을 보면서도 그 사고가 아동 학대 때문인지 아니면 남의 집 일에 참견한 이웃 사람의 불길한 전조 때문이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적의의 시선이 팽배하고 있다는 것이고, 결국은 불신사회라고 불릴만한 오늘의 현실세계를 읽어낼 뿐이다. 과연 누가 선의의 시민인가? 과연 모여사는 집합주택에서의 정의로움과 선함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일상을 영위하는 이 세상은 온전하다 할 수 있는가?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생활세계는 과연 대상을 정밀하고 정확하게 반영하는 실체인가? 그 모든 것이 의문으로 가득 찬 세계가 진정 오늘인가?

 

나는 초 단위까지는 못 되더라도 적어도 분 단위로 치열하게 움직이며 실천하는 삶을 산다고 자신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2주에 1, 적어도 4주에 1회꼴로 정의사회를 구현하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지향하는 시민단체의 모임에서 봉사하며,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이 침돌하는 등 안팎으로 각종 불상사가 생기면 어디든지 달려가 무보수 노동을 자처하기 때문에 그 횟수와 빈도는 대중없이 늘어날 때가 많다. 이 외에 신도들의 헌금으로 거대 호화 성전을 구축한 부자 교회가 아니라 정상적인 교회에서 운영하는 밥차 봉사를 적어도 월 1회 나가고 있으며, 지역사회 아동복지센터에서 빈곤층 자녀를 위해 운영하는 방과후돌봄교실에서 주 1회 수학 보충 교육을 재능 기부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위한 서명 참여 독려나 성금 모금 운동에 빠지지 않으며 어딘가에서 충돌이나 파업이 일어났다면 가장 빈번하게 눈에 띄는 얼굴 중 하나가 나일 테고, 한편으로는 내 아이의 육체적 건강에 감사하는 뜻으로 희귀 질환에 손 못 쓰고 빚더미만 쌓여가는 어린이 환자들을 지원하는 재단에서도 봉사하고 있다. 이 주상복합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주부들처럼, 남편의 수입은 안정적이나 본인은 반복되는 돌봄 노동에 삶의 한구석이 공허하여 재즈댄스나 서양 요리 강좌를 찾아다니고 할 일 없는 친구들과 무리를 형성해서 식도락 여행을 다니며 끝에 가서는 언제나 서로의 자식 자랑으로 기선을 은근히 제압하는 식의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본 적 없는 것이다. 완벽하다고는 말 못하지만 그 모든 일을 다 해내면서 가족을 돌보는 노동을 게을리해본 적도 없는데, 내가 세탁과 다림질을 잊는 바람에 남편이 어제 입었던 드레스셔츠를 다시 입고 출근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며, 아이가 머리를 빚지 못하거나 아침을 거른 채 학교에 가는 일도 없을뿐더러 학교에서 학원으로 이동하는 애매한 텀에 엄마표 수제 간식을 건너뛴 적도 없다. 가족의 주말 저녁 식탁에 배달 음식이나 대형 마트에서 대량 조리된 포장 음식이 올라와 있는 장면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미 단체마다 여러 일을 맡은 여건상 적극 가담하지는 못하나 환경운동과 동물 보호에도 관심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유기농 채식 식단을 구성하려 애쓴다. 된장찌개를 한 번 끓이려 해도 고기나 멸치 대신 버섯과 양파, 감자로 국물을 내기 때문에 여간 번거롭고 까다로운 일이 아닌 데다, 연간 회비 3만 원을 지불하고 생협 조합원이 되어야 좋은 식재료를 산지에서 배달받을 자격도 있다. 내가 하는 모든 사소한 일들과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들이 사회 정의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족 모두가 이민을 갈 능력도 없는 이상 이곳은 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병모, <이창(裏窓)>, [4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4.5(초판 1), 94~95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공간산책2014/09/04 21:46

2014년에 여덟 번째를 맞이한 김유정문학상의 수상후보작에 올랐던 전성태의 단편 <성묘>는 짧은 글 안에 중압감을 주기에 충분한 우리 사회의 몇 가지 현실적 굴레를 응축하여 담아낸 수작이다. 적군묘지 주변 군부대 근처에서 자그마한 점방을 운영하며 고추농사를 짓는, 과거 주임상사까지 지낸 군인출신 영감 내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자그마한 반복적 일상이 한반도의 굴곡진 현대사를 뭉뚱그려 체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겪은 한반도 어느 곳에도 오갈 수 없는 적군의 주검들이 모인 곳. 남파간첩을 내려 보낸 적이 없다고 우기는 북측으로 인해 북으로 보내질 수도, 남에 자리를 잡을 수도 없는 간첩들의 묘지이거나 혹은 남의 나라의 비극적인 전쟁에 몰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젊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국 청년들의 묘소가 이름하여 적군 묘지로 뭉뚱그려 이념적으로 여전히 대치하고 긴장의 땅에 누워 있는 곳이 바로 적군 묘지이다. 이 장소는 그렇게 한국의 현대사를 모두 껴안고 있고, 그곳에 삶을 부린 영감 내외는 아픈 허리를 버티며 오늘의 상황을 견디고 있다. 징병제도에 따라 군부대에 막 들어온 신임병사는 심부름을 위해 제공된 아주 짧은 틈을 이용해 사제 선크림이나 위장크림을 사는 동안 점방의 전화를 이용해 자신이 떠난 고향의 부모나 애인에게 자신의 처지를 안심시키는 안부 전화를 걸고, 장기 하사들은 원혼들의 넋을 달래는 영감의 제수 마련에 마음과 돈을 보탠다. 한 때 적국이었던 중국 사람들은 어느 새 바뀐 세상에 쉽게 타협하면서 이국에서 죽어간 젊은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이곳 적군 묘지를 관광지 삼아 방문하고, 영감의 점방에서는 그들을 위해 지전을 판다.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짧은 소설에는 이데올로기가 빚은 한반도의 전쟁과 위장된 평화 그리고 그 폭력에 내몰린 청춘들의 까닭 모를 원혼들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각박하고 피로해진 우리 사회의 노인문제와 더불어 직업군인들의 문제에서부터 징병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에 이르기까지 제법 여러 켜로 이루어진 이 땅의 문제와 상황들이 담겨 있다.

 

 

"오늘 공병대가 적군 묘지 벌초 작업에 들어갔다. 덩달아 노인도 마음이 바빠졌다. 노인은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적군 묘지 옆댕이에 붙은 고추밭 주인이었다. 이십 년 넘게 그 밭에서 고추농사만 줄곧 지었다. 그 밭가로 적군 묘지가 들어선 게 15년 전이었다. 노인도 밭 한 귀퉁이를 묘지로 내놓았다. 적군 묘지에는 전쟁 때 죽은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는 물론 남파 공작원들 유해도 묻혔다. 북한군 묘역은 150여 기가 조성된 이래 늘지 않고 그대로였지만, 중국군 묘역은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진척되면서 해마다 수십 기씩 늘고 있었다. 이전에 조성한 묘역이 꽉 차서 노인은 올여름 밭을 완전히 내놓아야 했다. 고추를 다 거두고 나면 공병대에서 묘지 닦이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 묘지를 끼고 농사를 짓다보니 성가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두더지가 많아졌다. 밭갈이해서 골라둔 땅이 하룻밤 새에도 들썽들썽했다. 묘지 구경오는 사람들이 예사로 밭고랑을 타고 건너다녔다. 외지인 발길 타는 밭둑이 성할 리 없고 더러는 작물에도 손길이 탔다. 근래에는 중국인 성묘객들이 부쩍 늘었다. 중국인들은 꼭 지전(紙錢)을 태우는 풍습이 있는데 군부대에서 화재예방 차원에서 못 태우게 해 뿌리고 간 지전이 밭으로 날아와 고춧대에서 종이꽃을 피웠다. 공병대 선임하사들은 돈 따는 고추밭이라고 입방정 놀리지만 가을걷이 끝내고 갈퀴로 긁어 태우자면 밭가 한구석이 무슨 낙엽 소각장 같았다. 지전을 두고는 욕만 할 수 없었다. 노인도 가게에서 지전을 팔았다.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무덤들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이 굉장했다. 보통 원혼들인가. 젊어서 총과 포탄에 쓰러진 원혼들이었다. 고향 어름에도 못 가고 적지 북향에 묻혀 이름 없이, 찾는 발길 없이 세월에 깎이고 있었다. 그런 유해들 옆에 끼고 날마다 농사를 지어야 하는 사람 심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몰랐다. 꺼림칙하고 무서웠다. 악몽에 시달렸다. 특히나 북한군 묘역에 서면 마음이 더없이 복잡하고 심란했다. 한때 세상을 뒤흔든 간첩사건의 주인공들이 제 이름을 한줄기 목비(木碑)에 새기고 낮은 땅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목비 하나하나를 새겨볼 때마다 텔레지전으로 본 그 무섭고 끔찍한 사건들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그렇다고 군인들에게 매장만 하지 말고 천도재라도 지내서 원혼을 달래보라고 주문할 수도 없었다. 인도주의에 입각해 묘지를 조성했다지만 엄연히 적군인데 군인들에게 고개 조아려 추모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출처 : 전성태, <성묘>, [2014 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서울, 은행나무, 2014.7(11), 200~201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