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나이2015/08/16 22:12

편혜영의 장편 [선의 법칙]에 등장하는 주된 인물은 윤세오와 신기정이다.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는 곳에서 공구상을 하다가 불법 다단계에 빠져 모든 것을 잃은 아버지가 가스 폭발사고로 그나마 가졌던 불안정한 삶도 종국을 맞는다. 윤세오는 조건 없이 딸을 품에 품었다가 그렇게 죽은 남자 윤수창의 딸이고, 세오는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괴롭혔던 이수호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반면에 교사 신기정은 이복동생 하정이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동생의 휴대전화 발신 기록을 좇아 하정의 발자취를 더듬기 시작한다. 소설은 이들 두 사람의 두 사람의 삶의 항적을 꼼꼼하게 기록하며 번갈아 구성된다.

 

따라서 소설은 인물에 주목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다단계와 사채업이라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이고 문제적인 현실에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은 인물의 내면과 과거의 사연들이 켜를 이루며 진부하게 살아가는 일상의 풍경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현실적 고뇌를 그린다. 가족의 예기치 못한 죽음은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부채감과 죄책감을 야기한다. 그리고 그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신기정과 윤세오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맞이하는 세상을 글을 통해 마주한다.

 

마치 김애란의 [비행운]을 이중적 의미로 읽어낼 수 있듯이 편혜영의 소설 [선의 법칙] 역시 중의적으로 읽어낼 수 있겠다. 이렇듯 조여진 사회에서 독립된 인간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즉 어딘가에 선으로 묶인 채 마치 마리오네뜨처럼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의미와 함께 선의를 가진 인간들의 생활세계를 찾아볼 수도 있다는 의미로 말이다. 이 소설의 처음 부분에 교사 신기정이 집단 절취에 가담한 것으로 여겨지는 열다섯 살의 학생을 보며 마음 속에 품었던 열다섯 나이에 대한 얘기다.

 

"열다섯 살이면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게 쉬운 일인 것 같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는 걸 조금씩 알아갈 나이였다."

 

출처 : 편혜영, [선의 법칙], 파주, (주)문학동네, 2015.6(1판2쇄),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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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생각2015/08/16 21:22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1508/e2015081620463648120.htm

 

지난 8 3일 월요일 새벽. 지구 반대편에서 전해진 박인비 선수의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 소식은 열대야의 끈적거림과 불쾌함을 한방에 날려버린 쾌거였다. 골프선수로서 해보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바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했던 선수 개인의 소망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역사상 일곱 번째로 박인비선수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룬 인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매체들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앞다퉈 박인비 선수의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소식을 전하면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태극낭자를 연호했다.

 

‘낭자’는 예전부터 처녀를 높여 부르던 말이다. 여자 선수들이 나라 밖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쟁을 할라치면태극을 그 앞에 놓아태극낭자라 부르곤 한다. 양궁·축구·펜싱 등 국가대항전 경기가 열릴 때마다 그리 불러왔고, 우리는 그러려니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 왔다. 브리티시 여자오픈은 국가대항전이 아니니 태극낭자라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몽니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남자 선수들의 경우와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총각을 대접하여 일컫는 말은도령이다. 국가대표 남자선수들을 태극낭자와 같은 방식으로 부른다면태극도령이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가 익숙한 단어는태극전사. 물론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로도 전사라는 단어가 쓰인다고는 하나 이는 공업입국과 함께 한국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근대화를 외쳤던 1970년대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전사는 싸움터에서 상대를 궁지로 몰아 잡아 가두거나 생명을 거두어야 하는 전투병사로 들리기 십상이다. 물론 그리 부르는 이들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겠지만 행여 전체주의나 잘못된 국가주의 혹은 남성 우월주의를 부추기지나 않을지 염려된다.

 

이야기를 조금 바꿔 보자. 소위 힘깨나 쓰고 돈깨나 가진 사람들이 범죄 혐의를 받아 검찰에 불려가 밤늦도록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지면 거의 모은 매체들은 예외 없이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고 전한다. 검찰의 심문이나 조사가 언론에 공개되는 일은 없으니 그저 미루어 짐작하는 내용을 글이나 말로 전하는 것일 게다. 그들의 혐의가 장삼이사의 그것보다 무겁거나 사회지도층이어서 특별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짐작하건대 그들의 권력과 재물을 경배하는 내 안의 속물주의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화되었거나 원래 그런 것이라는 관행을 그대로 전달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하는특권을 내려놓는다는 관용구도 그래서 곱씹어볼 말이다. 그들은 왜 버리지 못하고 내려놓을까. 다시 주워 올리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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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공간산책2015/06/11 20:29

최윤의 소설 <아버지 감시>가 발표된 때는 1990년이었고, 당시는 세계사적 변화의 물꼬가 유럽을 중심으로 드센 물결을 이룰 때였다. 전쟁 때 월북한 아버지가 별안간 중공으로부터 날아들어 시골의 큰아버지집으로 배달되었고 발신자의 아내인 어머니는 편지 왕래가 시작된 지 얼마 못가 세상을 떠난다. 형제들은 아버지를 초청하기로 하고 마침 프랑스에서 식물학자로 자리 잡은 삼형제의 막내인 소설 속 가 그 일을 따맡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 아버지는 파리에 도착했고 비행기에서 내린 아버자를 본 막내 창연은 아버지가 월북하던 당시 뱃속에 있었던 까닭에 생면부지의 아버지와 조우하고 주말을 함께 보내게 된다.

 

 

텔레비전에서는 마침 동구의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과정을 연일 텔레비전을 통해 보여주고 루마니아의 시민혁명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그저 나약한 노인의 모습을 한 아버지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무표정의 모습으로 이를 시청한다. 월북 후 북에서 재혼을 하였고, 그곳에도 여동생 둘과 남동생 둘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창연은 그런 아버지가 근엄한 사회주의 혁명가로서의 모습이 아닌 것에 자못 실망하지만 그런 아들을 향해 아버지는 남쪽애 남긴 아내와 아이들이 받았음직한 수모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지 말라는 말과 함께 젊은 날 가졌던 아비의 꿈이 좌절되었으나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말로 평온함의 속내를 전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청하기를 파리의 코뮌 병사들의 벽으로 동행할 것을 청한다. 아들이 스스로 원했던 화해가 아닌 이해를 구하는 아버지와 함께 아들은 파리 코뮌병사들의 벽으로 향한다. 파리에는 그런 곳이 있다. 바로 페르 라셰즈 공원묘원이 그곳이다.

 

아버지는 보시던 법국 안내서의 한 귀퉁이를 펼치셨다. 중국어로 씌어진 안내서의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한 옆에 그려진 지도와 묘지라는 한자로 보아 페르 라셰즈 묘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하고많은 명소 중에 왜 하필 공동묘지부터……그러나 나는 곧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버지가 그곳을 보고자 하는 의도가 막연히 잡혔기 때문이었다. 페르 라셰즈라면 묘지이기 이전에 거기에 묻힌 유명 인사들의 무덤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품과 공원의 경치로 유명해, 유학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한 번 가본 적은 있었지만, 사십 헥타르가 넘는 곳을 걷느라 발바닥이 부르튼 기억도 있고 해서 되도록 파리에 들른 친지들을 안내할 때마다 슬쩍 피해간 장소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보고자 하는 것은 물론 쇼팽이나 아폴리네르나 들라크루아와 같은 예술인의 무덤은 아닐 것이다. ‘아들 보러 여기까지 왔으니 최소한 그것은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나왔다.(이상 186) (중략)

 

나는 말없이 정문에서부터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는 코뮌 병사들의 벽을 향해서 걸었다. 공산주의권의 여행자들이 파리에서 빠뜨리지 않고 방문하는 상징적인 성소처럼 되어버린 곳이었다.(187) (중략)

 

조금 남았습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십여 년 전의 어느 여름, 친구들과 어울려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한 장면이 기이한 선명함으로 다가왔다. 그때도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유학생은 파리 관광안내서에 따라 이곳에 왔고 역시 안내서에 씌어 있는 대로 파리코뮌의 막바지에 이곳에 스며든 국민병을 정부군이 생포 사살해 그 자리에 묻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장소가 된 그 장식 없는 벽 근처로 다가갔었다. 다른 친구들은 꽃다발 하나로 조촐하게 남아 있는 흔적 없는 벽을 기억하고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되살아오는 우울하고도 적막한 기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우리가 그 벽 바로 앞에 있는 잔디밭에 앉아 막 사진을 찍고 났는데 검정 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상고머리를 깎은, 비슷한 외양의 세 명의 동양인이 그 벽 앞으로 다가갔다. 그들 중의 약간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이곳이 불란서코뮌 당시 147명의 위대한 인민혁명 전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다가 무참히 사살된 역사적인 장소니 동무들 잘 봐두라우.(188)’”

 

출처 : 최윤, <아버지 감시>,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_07 변혁과 위안의 출발, 파주, ()문학동네, 2015.1(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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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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