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꽃과 나무2014/10/22 16:46

"마당 한 가운데의 구덩이에 자미화나무를 세우고 흙을 덮기 전, 강상기는 등을 수그리고 앉아서 아 나무 아래로 돌아와야 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강상기는 구덩이 안의 땅속으로 손을 뻗어서 나무의 뿌리와 뿌리가 매달고 있는 흙들을 조심스레 쓸어 보았다. 여름이 되어 집이 올라가고 나면 이 나무에 꽃이 필 것이다. 그 꽃은 한여름이 지나는 백 일 동안 피고 지는 꽃이었다. 나무를 붉게 뒤덮으며 피는 그 꽃을 자미화라고도 했고 목백일홍이라고도 했다. 그가 자란 고장에선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꽃이 움직인다고 해서 간지럼나무라 부르기도 했다."

 

 

from 최은미, <백 일 동안>, [2014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서울, 문학의숲, 2014.9(1판 1쇄), 255~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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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나이2014/10/22 16:34

60년 전에 한 여인의 아이로 태어나 100일 뒤 그 여인을 여읜 이제 정년퇴임을 한 60세의 강상기라는 인물을 소재로 제이골이라는 곳에 집 한 채를 짓는 과정에서 돌아보는 인생의 회한과 몸부림을 그린 최은미의 소설 <백 일 동안>은 업 혹은 업보로 불리는 운명의 다른 양태를 극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스물 여섯이 되던 해에 군청 공무원이 되어 지방 서기관으로 정념 퇴임을 한 강상기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아내와 딸과 함께 20년을 살았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제이봉 골짜기 마을 제이골에 한옥을 짓는다. 퇴임식 뒤풀이 자리에서 술이 심하게 취한 과장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자신의 동기 허주임을 두고 어떻게 퇴임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렸는데, 허주임은 강상기가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허주임이 15년 전에 갑자기 실종되었고, 그 실종 사건의 현장에는 강상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렵고 고단한 과정을 거치면서 육십 인생의 모든 회한을 담아 새롭게 지으려던 자신의 집 자미재가 불에 타 우지끈 넘어가는 장면은 가히 폭발적이고 종이에 박힌 글자들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소설을 덮을 때 들었던 헛헛한 마음과 장면이 소설을 읽던 가을과 꼭 닮았다.

 

철쭉이라도 뜯어 먹지 않으면 밀려오는 봄을 어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50은 그런 나이였다.”

 

from 최은미, <백 일 동안>,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4], 서울, 문학의숲, 20149(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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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공간산책2014/10/13 16:23

2011년 제5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강영숙의 <문래에서>는 노동자들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공존하는 서울 문래동을 통해 때론 계급의 문제를 길어올릴 수도 있고,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소설 속 화자의 입과 가슴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문래동의 복제 현실을 타지에서도 동일하게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서울 문래동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소설 속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인정과 더불어 살아 있음을 그대로 웅변하는 문래동을 떠나 농장지역으로 일컬어지는 Y지역으로 이사를 한다. 남편의 직장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도회인들이 생각하는 그대로 매일 아침 신선한 우유를 마실 수 있는곳으로 알고 있던 그곳이 사실상 세상 사람들의 편견이 만들어낸 장소임을 깨닫고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의 광고에 불과함을 곧 알아차린다. 구제역으로 인해 매일매일 살아 있는 동물들을 살처분하는 직업을 가진 남편 뿐만 아니라 동네 곳곳에서는 언제나 정체 불명의, 그러나 죽음임을 누구나 떠올리는 냄새를 맡게 되고 새떼의 죽음과 피가 흐르는 침출수을 일상의 환경으로 경험한다.

 

늦은 밤에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무력감과 끔찍한 현실 때문에 술로 날을 지새우는 남편, 동물보호운동을 펼치는 여자의 공허한 외침 등은 결국 첨단과학으로 인한 풍요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의 시공간이 사실은 원시성을 벗어나지 못한 그대로의 공간이라는 사실에 이르면서 치장되거나 은폐된 허위의 진면목을 마주 한다. 풍요와 첨단이라고 믿는 현실의 한 켜만 벗겨보면 온갖 허구의 진면목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을 통해 끔찍하고도 괴이한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가를 이 소설이 웅변하고 있다. 지금은 문래 예술창작촌이라 불리는 곳도 혹시 그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문래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사실 남편의 일자리 때문에 이사 가기로 한 Y지역에 대해 나는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우리는 문래에서만큼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옛날부터 실 뽑고 천 만드는 방직공장이 많았다는 문래는 그 유래와 다르게 늘 칙칙하고 어두웠다. 방직공장은 주식회사라는 이름을 달고 커다란 빌딩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문래는 곳곳이 기름 냄새 나는 철공소들의 거리였다. 골목에 쌓인 눈은 한 번도 흰색인 적이 없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 녹았다. 또 도시의 먼지란 먼지는 다 문래로 모여들어 쌓이는 것 같았다.

문래역과 영등포역 사이, 이주를 못하고 남아 있는 중소 철공소들이 드문드문 영업중인 곳에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게 됐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프레스 작업을 하거나 금형을 뜨는 공장들, 특수제작물을 만드는 용접 전문 철공소들은 그대로 있고 그 사이사이 버려진 작은 가게들이 울긋불긋 색을 입고 그림이 그려진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변했다. 공장 문짝에 그려진 화려한 꽃무늬, 담벼락에 그려진 캐릭터는 이상하게도 칙칙한 문래와 잘 어울렸다. 이른 아침 시간에는 주로 근처 소규모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그러나 밤이 된다고 해서 예술가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혼자 작업실에 있거나 늦은 밤 작업을 끝내고 퇴근길에 한잔 마시러 나온 공장 사람들과 가끔 섞여 있을 뿐이었다.”

 

출처 : 강영숙, <문래에서>, [2007-2013 김유정문학상수상작작품집], 서울, 은행나무, 20145(11), 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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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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