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집_일기2015/05/04 17:31

봄이 기다려진다는 소망을 적은 것이 얼마 전이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시간을 속절없이 흘러 벌써 여름으로 향하는 느낌이다. 언제부터인가 봄을 무척이나 기다렸는데 매년 봄이면 약간의 우울과 서러움으로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기대한 것 이상의 포만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올해도 비슷한 모양이다. 물론 매번 짬이 날 적마다 이제는 봄이 아닌가?’하며 스스로에서 위안의 말을 던지기는 하였지만 번번이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매번 아쉬움만 남는다.

 

올해는 윗집 친구와 약속한 것처럼 집 전체에 걸쳐 이곳저곳 손을 보기로 한 해다. 겨울부터 그동안 적어두거나 혹은 보아두었던 것들을 일일이 메모를 해 손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지만 무슨 일이 그리도 걸리적거리는지 도통 생각대로 움직이지 못하다가 윗집 친구의 권유로 집을 손보기로 한 것이다. 집을 지어 입주한 후 매 4년마다, 그러니까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리는 해마다 큰 공사는 아니더라도 소소한 곳을 보수하기로 한 약속을 입주 후 새집 입주 후 4년 반 만에 실행에 옮기게 된 셈이다.

 

 

그동안 집 안팎을 오가며 살펴 둔 것들이란 그저 소소한 것들이거나 정기적으로 보수를 해야 하는 것들이어서 크게는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 두었었다. 하나는 벽돌로 치장한 외벽에 발수제(撥水劑)를 바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콘크리트로 마감된 계단이며 포장면에 강화제를 발라 내구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마지막 하나는 각종 철제 난간 등에 녹이 슨 곳이 있다면 이를 긁어낸 뒤 방청제를 바르고 다시 페인트로 마감공사를 마치는 것이다. 윗집도 아랫집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집을 지은 건설회사에 이 일을 맡겨 한꺼번에 보수공사를 하자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었고, 바쁜 시기에도 ()에스화이브에서 선뜻 나서 주었다.

 

위아래집 모두 보수를 마치는 데는 모두 보름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으며, 아랫집은 300만 원 정도가 든다는 것이 시공사의 의견이었고,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보수공사는 비가 뜸한 시간을 골라 하는 것으로 했고, 420일부터 시작해 54일에 두 집 모두를 마칠 수 있었다. 마침 절기가 좋은 탓에 그동안 비가 며칠 내리기는 했지만 공사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어서 계획한 그대로 일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혹시라도 시간이 지나면 잊을 것이 염려되어 보수공사를 한 내용들을 여기 적어놓기로 한다. 대문 밖 벽체에 노출되어 있는 도시가스 배관의 페인트 박리 부분과 함께 마당의 철제 난간과 부엌 밖의 장독을 놓을 수 있는 데크의 철제 난간에 녹이 슨 부분을 모두 벗겨내고 방청제를 바른 뒤 회색의 페인트로 다시 마감하여 새 집처럼 보이도록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빗물받이와 주차장 자동문의 앵커 등에도 페인팅을 새로 했으며, 마당쪽과 부엌 바깥의 데크 목재 위에도 새롭게 오일스테인을 다시 도포하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현관으로 오르는 계단과 지하 주차장 바닥, 그리고 서재 앞마당과 뒷집으로 연결되는 뒷마당의 콘크리트 노출 부분은 아직은 특별히 손 볼 것이 없어 보이지만 이왕에 보수를 한다는 차원에서 모두 콘크리트 강화제를 두 차례 정도 발라 콘크리트가 공기 중에 오래 노출되면서 날이 무뎌지거나 가루가 생기는 부분을 보수하였다.

 

그리고 제법 손이 많이 가고 비용도 드는 외부 마감재인 벽돌면 위에 새롭게 발수제를 모두 도포하여 벽돌이 습기를 머금거나 습기로 인한 외벽의 강도 약화를 미연에 방지하였다.

 

나머지는 매우 소소한 것들이어서 일부 줄눈이 이탈된 곳의 몰탈을 들어내고 다시 충진하거나 일부 파손된 벽돌은 들어내고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벽돌로 이를 채우는 방식으로 외벽을 가지런하게 정리하였고, 실내에 있는 욕실의 이음매 부분은 곰팡이가 피었거나 일부 접착력이 약화된 것이 발견되어 모두 떼내고 모두 다시 코킹하는 방식으로 보수공사를 진행하였다.

 

햇수로 만 4년이 넘었으니 1층과 2층의 창문에 설치된 방충망 일부가 뜯어지거나 울퉁불퉁한 상태가 되었는데 ()필로브 창호에 연락을 하니 하룻만에 기술자가 집으로 와 모두 교체하였고, 모든 창호의 여닫이 기능을 재점검하면서 나사를 조이거나 바꾸는 등의 훌륭한 서비스를 해 주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능소화가 줄기를 늘이며 마당의 철제 난간에 강하게 부착되어 있었는데 난간 보수공사를 위해 할 수 없이 3년이나 자란 능소화의 줄기 일부를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아쉽지만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작업자들에게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이제 4~5년 뒤에나 다시 벌어질 일인데 보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행여 일상이 불편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고도 세심하게 일을 마무리한 실무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공사가 마무리된 5월 초에는 마침 연휴가 있어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당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4년 반이나 지난 시간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제는 봄맞이를 위해 농원이나 화원에 다닐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화초와 수목이 자리를 잡고 잘 자라주어서 늘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특히 작년에 긴 가지를 뭉텅 잘라낸 배롱나무에서 잔가지와 이파리들이 꼬물꼬물 생기는 것을 볼 때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가쁨의 탄성이 터져 나왔고, 어김없이 꽃을 틔운 수선화며 튤립도 봄 풍경을 완성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

 

 

봄날은 그 안타까움만큼이나 하루하루가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마당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 바로 그 징표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짧은 봄날의 아쉬움 때문인지 봄날의 하루는 우리가 경험하는 하루의 시간과는 사뭇 다르다. 어제 발견할 수 없었던 새순이 별안간 눈에 띄기도 하고 분명 이틀 전에는 그저 흙이었던 부분에 붉은 새순이 벌써 자라서 눈인사를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서럽고 안타까운 절기다 곧 봄이다.

 

     

 

올봄에 새롭게 알아차린 발견은 모란의 향기가 무척이나 그윽하고 정갈하다는 것이다. 3년 전에 심은 백모란이 외로운 듯해 작년에 아주 작은 가지 하나를 천 원에 구입해 홀로 외롭던 모란 옆에 심었더니 올해는 두 개의 가지에서 모두 세 송이의 하얀 모란이 꽃을 피웠는데 근처에 이르면 딱히 어디라고 밝히지는 않으면서 향기를 자아내는 모습이 꽃빛깔만큼이나 우아하고 그윽하다. 붉음 모란의 타는 듯한 빛깔에 비해 너무 정온한 느낌이어서 흥취를 돋구지는 않는다고 다소 서운해 하던 아내도 어스름 저녁 마당에 깔리는 그윽한 흰 모란의 향기를 맡으면서는 그 자태와 냄새에 반한 표정이고, 아이들도 마당에 나서면 모란에 코를 들이대고 봄내음을 맡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봄은 과연 색채가 마술을 부리는 시간이다. 마당 귀퉁이에 서 있는 한식 담장에 붙어 두 달 동안이나 봄을 느끼도록 한 붉은 잔꽃들이며 이제 막 개화를 시작한 미스김 라이락의 빛깔은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으며, 강한 표정과 색깔로 이제 곧 여름이 온다는 것을 알리는 대문 안 경사마당의 푸르름 경쟁은 집 안에 들어서는 이들로 하여금 하루의 피로를 온전하게 풀어낼 뿐만 아니라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자양제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5월에 접어드니 서서히 봄이 떠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낮에는 20도를 넘나드는 기온이 그렇고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 으스스한 기분이 없어졌으니 절기가 봄은 아닌 듯하다. 다시 또 1년을 기다려야 이 계절이 돌아올 것이니 서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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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5/03/24 14:02

1946년에 발표된 계용묵의 단편 별을 헨다는 해방 직후 남과 북 모두에서 생활터전을 상실한 소위 뿌리 뽑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난민의식으로 불리는 장소의 상실과 삶의 부박함은 해방 공간의 보편적인 현상이었고, 많은 작품을 발표하지 않은 계용묵의 시선에 옹골차게 포착되었다. 북이나 남이나 상황은 다르지 않아 남에서는 북으로, 북에서는 남으로 살 길을 찾아 움직이는 상황에서 남쪽은 해방이 되어 서로가 먼저 집을 차지하고 재산을 모으려는 모리배들이 활개를 치고, 법과 정의가 아니라 혼란 속의 폭력에 세상을 지배하던 풍경이기도 하다. 소설 속 화자는 만주에서 살다가 해방이 되어 만주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제 땅에 묻으리라는 희망으로 귀국하지만 간신히 얻어 든 집에서 수속을 마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아홉 달이나 넘게 살아가고 있는데 귀국선에서 만난 친구를 통해 적산가옥의 한 모퉁이를 점거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제 뜻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삼십 년의 세월이라는 소시민적 지식인으로서의 의지로 인해 그 짓을 차마 하지 못한다. 그가 그린 1946년의 서울 풍경이 별을 헨다에 온전하게 묘사된다.

 

같은 소설에는 당시 '문화주택'의 표정도 잘 묘사되어 있다. 온갖 폭력으로 모리배 역할을 하던 친구가 적산가옥을 무단 점유하는 방법을 일러주기 위해 소설 속 화자와 만나 점심을 먹고 손목을 잡아 끌어 살피게 된 풍경이며 자리다. "점심이람보다 술이었다. 실로 얼마 만에 소고기찜을 실컷 먹고 확확 다는 얼굴을 느끼며 남산 밑을 돌아 후암동(厚岩洞)으로 따라간다. 어느 커다란 회사의 중역이 살던 숙사인 듯 반 양식의 빨간 기와집이다."라는 묘사가 그것이다.

 

진고개 너머 어떤 일본집에 수속 없이 제집처럼 들어 있는 사람이 있는데, 정식 수속을 밟아 내어쫓고 들어가게 해준다고 부티 오늘 오정 안으로 만나자는 친구가 있다. 집이 없어 한지에서 겨울을 날 생각을 하면 마음이 으슬하다가도 그러니 있는 사람은 내어쫓고 들다니 생각을 하면 내어쫓긴 사람이 역시 자기와 같은 운명에 놓여질 것이 아니 근심일 수 없다. 자기도 처음 서울에 짐을 푼 것은 한지가 아니었다. 푸진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일본집 다다미방 한 칸이 베풀어지는 호의를 힘입어 겨울을 나게 되었음은 다행이었다 할까. 해춘(解春)도 채 못 미쳐 수속이 없다 나가라 하여 쫓겨난 이후로 이래 아홉 달을 한지에서 산다. 남을 한지로 몰아내고 그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눈을 감을 염치가 없다. 이런 기회는 몇 번이고 있었다. 비로소 듣는 이야기가 아니요 받아보는 호의가 아니다.”

 

계용묵, 별을 헨다,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_02 해방과 전쟁, 파주, ()문학동네, 2015.1(초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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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5/03/13 21:38

문득 이 기록을 너무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파일을 열어 보았더니 살구나무집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쓴 것이 20147. 게으름을 피워도 너무 피웠다는 자책과 함께 매년 새해가 시작될 무렵이면 정리해보곤 하던 월별공과금 추이분석도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침 강의를 준비하던 차에 한껏 벌려놓은 일들이 책상이 쌓였지만 서둘러 숫자 정리에 나섰다.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월별공과금 추이를 분석하기 위한 의도였던 만큼 2010년의 중계동 아파트 관리비는 아주 좋은 참조점이 되었고, 20111월에 살구나무집으로 이사를 해 1월부터 살았으니 한해 살림을 비교하기에는 더 없이 좋았기에 매년 공과금(혹은 유지관리비) 비교에 나서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분

01

02

03

04

05

06

07

08

09

10

11

12

average

2010

555,290

565,290

449,200

447,590

293,340

260,150

244,700

258,740

218,840

323,010

389,830

473,230

373,268

2011

280,560

706,540

430,650

402,550

238,090

175,990

132,510

128,970

139,130

115,270

201,660

270,890

268,568

2012

552,020

583,490

557,880

378,660

242,990

121,330

117,400

134,270

121,410

134,140

182,460

361,620

269,020

2013

645,750

558,060

445,000

299,140

120,560

58,720

50,860

68,500

45,260

65,860

73,260

315,360

228,861

2014

545,650

579,330

337,370

232,630

124,330

70,190

65,640

32,300

30,170

58,410

82,800

278,380

203,100

 

 

 

한 해 전체의 유지관리비를 모두 합한 뒤 12개월로 나누어 얻을 수 있는 월 평균 유지관리비는 아파트에 살던 2010년에 비해 2014년에는 17만 원 이상이 줄어들었다. 물론 2011~2012년에는 아파트에 비해 월 평균 11만 원 정도가 줄었다가 다시 6만 원 이상 줄어든 셈이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태양광 발전설비가 작동된 까닭이고, 이는 월별 유지관리비의 추이변화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통해서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그 효과는 특히 햇볕이 좋은 4월부터 11월까지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그러니 유지관리비의 대폭적인 절약은 사실 생활의 절제가 아니라 태양광 발전설비의 효과를 본 셈이다.

 

결국 두 해를 보낸 결과를 전제로 앞으로 어떻게 에너지를 줄이며 살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비록 거칠지만 월 평균 25만 원 이내에서 1년의 살림을 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물론 앞으로 있을 것이 예상되는 공과금 인상분도 당연히 흡수하면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 다짐한다. 사계절 구분이 모호해졌다고는 하지만 역시 한반도의 겨울 추위가 대단하다는 점에서 11월부터 3월까지는 비교적 높은 유지관리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인 모양이다.

 

모처럼 아침이 춥지 않은 날이면 마당을 서성거리게 되는데 계절의 주기성과 순환성을 여전한 까닭에 수선화와 튤립이 강렬하게 봄을 반기는 모습을 매번 만나고, 작년에 마당에 들인 노루귀가 연분홍 색깔의 꽃망울을 달고 꽃대를 늘리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마치 농한기를 지내고 봄을 맞는 농부들의 심정처럼 어서 봄을 재촉하는 마음뿐이다. 지난 겨울이 그렇게 춥지 않았다고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올 봄은 더욱 기다려진다. 봄 소식은 마음에서 온다지만 역시 마당에서 발견하는 즐거움만큼 크지 않다. 상큼하고 싱그러운 마음으로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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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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