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꽃과 나무2015/02/27 19:43

"축대 밑으로 울타리를 이루며 내려드리운 노란 개나리꽃. 그것은 꼭 노란 폭포수 같다. 그 폭포수는 한옥 마루 유리문에 거울처럼 그대로 반사되어 양쪽에서 이중으로 노란 폭포수가 쏟아져내리는 듯하다. 그 집에 처음 들어서는 손님은 그 정경을 눈부셔하며 어지럽다고 말한다. 실제로 어지러워 이마를 짚고 발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가을에 떨어진 낙엽을 들추고 연한 눈을 쏘옥쏘옥 올려밀며 돋아나와 어느 결에 희고 순결한 꽃을 피우는 장독대 옆 옥잠화 꽃무더기. 옥잠화 순을 낙엽 더미 속에서 발견할 때면, 그러니까 매 봄마다 봄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낙엽 속에서 손을 올려밀고 있는 옥잠화를 발견하는 첫 순간이면 무엇이 이리도 귀한 것이 이 세상에 있는가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from 김채원, <쪽배의 노래>, [쪽배의 노래], 파주, (주)문학동네, 2015.1(초판), 258쪽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소설_꽃과 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나리꽃과 옥잠화 새순  (0) 2015/02/27
산딸나무꽃  (0) 2015/02/16
자미화나무  (0) 2014/10/22
참나무  (0) 2014/02/16
살구나무  (0) 2013/07/25
배롱나무  (0) 2013/04/23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공간산책2015/02/19 21:36

정아은의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은 한때 서민들의 주거지였던 잠실 주공아파트단지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재건축된 초고층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등장인물 개개인을 따라가며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잠실 아파트단지가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들어가 살 무렵인 1978년 가을에 문학평론가 김현은 여의도아파트를 거쳐 반포아파트에 살게 된 까닭을 글로 풀어쓰면서(두꺼운 삶과 얇은 삶이라는 글, 19789뿌리 깊은 나무) ‘아파트가 하나의 주거공간이 아니라 삶의 양식이라 일갈한 바 있는데 이 소설은 김현의 예지력을 2015년판으로 풀어낸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강남이지만 여전히 강남이 아닌 곳에 사는 아파트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라즘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5층으로 만들어진 잠실 주공 1, 2단지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 서울의 수평적 도시 공간 확장과 재건축을 통한 수직적 확대의 과정에서 어떻게 괴물적 양상으로 변했는가를 읽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물론 작가 스스로 밝혔듯 이 소설 전체는 허구이며, 가끔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이나 기관, 단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서사의 흐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을 전제하더라도 문장이 담고 있는 우리들 민낯의 풍경과 느낌은 아파트시대를 살고 있는 대중들이 공유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소설을 읽어가면서 한때나마 아파트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낯부끄러움을 지울 수 없었다. 이름을 외우기에도 쉽지 않은 초고층아파트단지와 다세대, 다가구주택이 빼곡한 동네의 면대(面對)가 불러일으키는 무관심과 야릇한 공존, 초고층아파트단지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 인지하듯 강남이지만 강남이 아닌 까닭에 끊임없이 진짜 강남을 향해 돈과 욕망을 좇는 천태만상의 풍경을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를 되뇌이게 한다.

 

그는 신천역 사거리에서 푸른 등이 켜진 횡단보도를 건넜다. 횡단보도가 끝나자 높이 솟은 아파트 건물이 즐비하게 펼쳐졌다. 눈앞의 건물들이 5층짜리 주공아파트 1단지를 헐고 재건축한 엘스, 거기에서 다시 오른편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2단지를 헐고 재건축한 리센츠가 나온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이다. 그는 멈춰 서서 높이 뻗은 리센츠의 시원시원한 직선을 올려다보았다. 상가 바로 옆에 있는 분수대와 벤치도 찬찬히 둘러보았다. 매일 보던 풍경인데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서희의 집이 있는 주택가에서 걸어 나와 횡단보도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동넨 이 정도는 아니지. 여긴 고층 아파트단지 네 개가 한꺼번에 들어서 있잖아? 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레이크팰리스. 거기에 갤러리아팰리스까지 하면 다섯 개인 셈이지.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모두 30층짜리 거대한 콘크리트뿐이라고, 하늘이 안 보여. 하늘이. 선율이가 이런 데 와서 산다 생각하니까 난 벌써 가슴이 답답해지는데? 낮에도 건물에 가려 햇빛이 안 드는 데서 자란 아이가 과연 어떤 포부를 품을 수 있을까?“

 

출처_정아은, [잠실동 사람들], 서울, 한겨레출판, 2015.2(초판1), 20, 140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꽃과 나무2015/02/16 17:39

"마당에는 산딸나무가 있었는데 온통 하얀 꽃으로 뒤덮여 있었어. 방수 코팅을 한 종이를 오려 붙여서 만든 꽃처럼 온종일 비가 내려도 결코 젖지도, 짓무르지도, 시들지도 않을 것 같은 하얀 꽃으로."

 

 

from 김숨, <뿌리이야기>, [2015 제3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서울, (주)문학사상, 2015.1, 53쪽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소설_꽃과 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나리꽃과 옥잠화 새순  (0) 2015/02/27
산딸나무꽃  (0) 2015/02/16
자미화나무  (0) 2014/10/22
참나무  (0) 2014/02/16
살구나무  (0) 2013/07/25
배롱나무  (0) 2013/04/23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