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나이2015/01/14 13:34

패션과 문학의 콜라보레이션이라 불리는 프로젝트 소설집인 [The Closet Novel_7인의 옷장]이라는 모음집에 실린 은희경의 짧은 소설 <대용품>들다, 쓰다. 신다, 입다라는 4개의 꼭지에 일곱 명의 작가가 글을 삽입한 모양새다. 패션과 소설이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킨 것인지를 가늠할 깜냥은 못 되니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고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은희경의 소설 <대용품>은 이 가운데 신다라는 모음에 들어간 소설이다. 시인 서정주의 신발이란 시에서 착안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좋아하는 물건이 있는데 잃어버려서 똑같은 것을 사도 같은 게 아닌, 그래서 대용품인 까닭에 친구의 죽음과 바뀐 신발이라는 마음과 물건의 상실을 시간의 상실로 구부려 그 이미지를 글자로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친구의 상실과 열세 살 시절에 품었던 두근거리던 마음의 상실이 안타까움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해 봄 두 소년은 열세 살이었다. 어른들의 당부와 독려와 충고가 부쩍 늘어났다. (중략)소년들은 나날이 몸이 달라졌다. 관심사와 거기에서 생겨나는 잡념도 많아졌다. 싫은 것과 불만과 두려움에 대한 견해는 강해졌지만 놀이와 장난에는 시들해졌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은 아주 적은 수가 되었다.”

 

from 은희경, <대용품>, [The Closet Novel_7인의 옷장],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410,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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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4/12/29 16:51

창작과비평2012년 가을호부터 2013년 여름호까지 <소라나나나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던 작품을 오랜 시간을 들여 다시 고쳐 펴낸 작가 황정은의 장편소설이 바로 [계속해보겠습니다]이다. 소설 속 자매 가운데 언니인 '소라'와 그녀의 여동생 '나나', 그리고 이들이 새로 이사하게 된 이웃집 또래 소년 '나기'의 이름을 모두 이어 만들어진 소설 제목이 <소라나나나기>였다. '소라''나나'는 그들의 어머니인 '애자'로부터 삶이란 원래 허망한 것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학습하는 상황에서 성장한다. 물론 애자가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소녀들의 아버지이자 애자의 남편인 금주가 허망하게 세상을 등진 뒤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 이유에서 '소라''나나'는 사랑,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함께 특히 모성에 대한 깊은 절망과 회의를 품고 성장하는데, '소라'는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스스로 먼지처럼 소멸하기를 꿈꾸고 '나나'는 전심전력을 다하는 사랑을 경계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날 소라의 동생 나나가 아이를 가졌다는 눈치를 챈 언니 소라는 동생 나나에 대해 마음이 약해졌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세계의 끔찍함에 갇혀버린 인간에게 바깥이, 다른 세계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작업 가운데 하나로 [계속해보겠습니다]를 꼽은 바 있고, 소설의 제목과 더불어 나나가 아이를 낳을 것을 결심하듯 독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세계가 가능한 것인지를 쉼 없이 가보겠다는 뜻으로 읽고 싶은 소설이기도 하다. 물론 작가 스스로는 굳이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어도 좋다고 언급한 바 있지만(연합뉴스 관련기사) 다른 세계가 가능하지 않다면 굳이 문학이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2014년 끄트머리에 세상에 나온 이 소설은 그보다 10년 이상이나 앞서 김윤영 작가가 그린 영구임대아파트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폭력이 가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압의 힘이 가중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니 다른 세계는 불가능한지도 모를 일이다.

 

그보다 들어봐. 나는 오늘 회사에서 언니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어. 결혼한 언니들이 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 아파트에 당첨되었대. 그런데 바로 옆 단지가 SH공사라, 저기 SH공사라는 건 영구임대주택이라는 거야. 그런데 바로 옆이 그거라서, 꺼려진다는 거야. 걱정이 된대. 그런 데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사니까 험악한 일도 자주 벌어질 테고 새터민도 많이 살고 무엇보다도 편부모 가정이 많아서, 거기서 자란 애들하고 자기 아이하고 섞여 자라는 게 싫다는 거야.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의 돌봄이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발달에 격차가 생긴다는 거야. 걔네들은 정서적으로도 불안하고 말도 어눌하고 학습도 별로, 여러모로 부족한 경우가 많대. 그렇게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하고 이웃하고 살면서 자기 애들이 영향을 받을 게 걱정된다는 이야기였어. 그건 진짜일까? 정말 그럴까? 왜냐하면 이제 내가 편부모잖아? 내가 편부모가 될 예정이잖아? 그러면 내 아기는 부족해질까? 사랑받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채로 자라게 되는 걸까 편부모라서. 그런 게 걱정이 되는 거야.“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파주, ()창비, 201411(초판 4), 1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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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공간산책2014/12/29 16:45

2014년 제14회 황순원문학상 최종후보작에 <맥도날드 멜랑콜리아>의 작가 전경린은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통해 공허하고 고독한 현대인의 삶, 슬픔조차 느낄 수 없는 무감각한 모습을 그냥 한번 그려보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이유로 미루어보건대 멜랑콜리아는 우울과 불안의 다른 어휘인 셈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나정은 5년 동안이나 등산복 가게를 운영하며 삶을 이어가지만 늘 채울 수 없는 허기가 자신을 옥죌 때마다 마치 습관처럼 맥도날드를 찾는다. 도시인일라면 누구나 쉽게 찾아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도 오래 머물지 못하는 장소, 맥도날드는 그런 허기와 위무를 찾는 이들이 들렀다 사라지곤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 맥도날드에서 나정은 특별한 직업도 없이 하루 종일 카페를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는 남자 기주를 만난다.

 

 

흔히 그려볼 수 있듯이 이들은 삶에 대한 특별한 집중력이 없다. 골몰하지 않으며 무엇을 하려고 하는 의지조차 희미한 상태로 그저 무기력하게 삶을 이어갈 뿐이다. 사랑과 희망은 말할 것도 없고 분노나 슬픔, 심지어는 좌절감마자 느끼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학 졸업장도 있고, 도시인 누구나처럼 휴대폰을 들고 다니기도 한다. , 이들은 거대 자본이 움직이는 도시에서 그저 도시인으로 호명 받은 상황에서 생을 잃은 삶을 이어갈 뿐이다. 띔박질에서 낙오한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응원하지 않고 스스로도 달린 의지를 가지지 못한 그림자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이들을 품어내는 공간이 있다. 바로 맥도날드 매장이다. 작가의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의 바깥 벽 허공에 떠있는 옥외계단 같은 곳이 바로 맥도날드 매장이라는 말이다. 이들이 간신히 우울의 밑바닥에서 희망이라는 싹을 키운다고 믿기 시작할 무렵 그 희망의 여린 이파리마저 짓뭉개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러니 작가의 진단으로만 보자면 우울이나 좌절도 느끼지 못하는 불임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셈이다. 어쩌지도 못하지만 어쩔 생각도 품지 않은 채로 말이다.

 

이곳 맥도날드는 드라이브 스루와 넓은 주차장을 갖추었고 주차장 쪽 사이드 출입문과 도로 쪽 정면 출입문을 가진 이층 건물이다. 빨간색 바탕에 프렌치프라이 두 개를 구부린 모양을 형상화한 노랑 로고는 선명하고 간결하며 미소 표식처럼 명랑하다. 건물 외장은 채도 높은 빨강과 탁한 검정과 갈색이 어우러진 박스형 구조물이다. 직선은 효율적이고 간결하고 중립적이다. 감정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부여하지도 않고 생산하지도 않고 전달하지도 않는다. 바닥의 타일은 차갑고 청결하고 내부 공간은 손님들의 동선을 유도하면서 타인들끼리 시선을 비킬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분리했다. 일층 75, 이층 50석이며 의자는 모두 검은색 인조가죽 커버로 통일했고 손님이 오래 머물지는 않도록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단체복을 입은 특성 없는 직원들은 친절하지도 않고 불친절하지도 않고 기계적이고 반복적이다. 전 세계에 통일되어 있는 기본메뉴와 지역의 특성을 가미한 메뉴, 시즌마다 출시되는 신메뉴 역시 로고와 제복만큼이나 숙고된 동시에 심플하다. 머핀과 커피는 중국산을 쓴다. 박스형의 외장과 얄팍한 벽과 통유리들은 안팎의 차이를 줄이고 출입의 부담을 최소화한다. 무엇보다 맥도날드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이 없다는 점이다. 주인은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 고용된 점원들이 일을 하고 손님들끼리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관공서와 휴게소와 대형 마트 사이에서도 맥도날드는 가장 부력이 강한 장소이다. 효율성과 외로움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땅 위에서 이십 센티미터쯤 떠 있는 외로운 섬처럼 차갑고 편안하고 몽환적이다. 하나의 맥도날드 내부는 세상 모든 맥도날드의 공기를 공유하고 있어서 하나의 맥도날드에 앉아 있는 겻은 세상 모든 맥도날드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

 

이를테면 당신은 캘리포니아의 맥도날드와 암스테르담의 맥도날드와 베를린의 맥도날드와 상하이의 맥도날드와 루체른의 맥도날드에 동시에 앉아 있을 수 있다. 세상의 동쪽 끝 해안도시의 맥도날드에 앉아서, 세상의 북쪽 끝 산타마을 로바니에미의 맥도날드에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떠돌며 겹치는 하공의 섬 위에서 같은 옷을 입은 점원에게 주문을 하고 같은 햄버거와 감자튀김과 커피와 콜라를 먹는 것이다. 세상 어느 곳이든 허공의 섬에는 매일 아침 홀로 앉아 세 종류의 신문을 보며 맥모닝으로 식사하는 남자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어 번쯤 폭격에 팬 구덩이같이 메울 수 없는 허기에 쫓겨 난민처럼 달려오는 혼자 사는 여자도 있을 것이다.”

 

출처 : 전경린, <맥도날드 멜랑콜리아>, [14회 황순원문학상수상작품집], 서울, 중앙북스(), 201410(초판1), 26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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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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