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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나이2014/04/07 11:11

어딘가에 분명 있을법한 미치광이 가족들의 이야기인 장편소설 [사랑이 달리다]를 잇는 연작 장편 [사랑이 채우다]는 서른아홉 살의 혜나를 중심으로 운행하는 가족의 세계를 그린 소설이다. 혜나의 사랑이 위태로운 것이라면 그런 느낌을 갖는 사람들의 사랑은 진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역설을 흥미롭고도 발 빠르게 그려나간 심윤경의 장편소설 두 편은 결국 이 시대에 사라진 막무가내 사랑 이야기인 셈이다. 황혼 이혼에서부터 탈북자 문제, 맛집 기행, 기러기 아빠와 산부인과의 백태 등등을 오가는 자본주의 도시 탐사 기록이기도 한 이 소설은 우리가 모두 미치광이 가족인 것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혜나의 막무가내 사랑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셈이다.

 

맞아요, 아가씨. 아가씨가 순진해서 사랑한다는 소리에 쩔쩔매는 거예요. 우리 나이 이제 사십이에요. 지금 우리가 사랑 때문에 살아요, 어디? 우리는 지금 사랑 타령할 나이가 지났어요. 알고 보면 결국, 돈이에요. 그 여자도 분명 그럴 거예요.”

 

from 심윤경, [사랑이 채우다], 파주, 문학동네, 20137(12),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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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풍경2014/04/03 21:50

겨울과 봄을 잇는 절기가 되면 살구나무집 식구들은 늘 결심과 후회를 반복한다. 올해는 더 이상 새로운 화초를 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추위가 멀어지고 따뜻한 온기가 집안을 감싸면 누구랄 것도 없이 휴일이면 농원에 가지 않느냐고 먼저 얘기를 꺼내기 때문이다. 아직도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 첫 휴일을 맞아 양재동 꽃시장을 찾았다. 화사한 꽃과 나무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으리라 마음 먹고 아내와 함께 각각 좋아하는 야생화를 구입하기로 했다.

 

아내는 마치 돌단풍과 같은 잎 모양을 갖췄지만 긴 꽃가지에 비단주머니 모양의 진분홍꽃을 종종 매다는 '금낭화'에 마음을 두었고, 나는 이름이며 꽃이 모두 앙증맞은 봄의 전령 '노루귀' 두 포트를 구입했다. 어디에 심을 것인가를 논의하다가 아내가 없는 틈을 타 서재 바깥의 앵두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며칠 지나자 양재동에서 구입할 때 새싹이 보일 듯 말 듯 하던 금낭화가 보란 듯 키를 키웠고, 노루귀는 아쉽게도 벌써 꽃이 진 까닭에 잎을 벌리고 뿌리를 내리는 모습 밖에 볼 수 없었다. 

 

 

새 식구가 집에 든 셈이다. 아내의 소망대로 금낭화는 제 철을 맞으면 아름답고 우아한 꽃을 피우겠지만 노루귀는 다시 1년 여를 기다려야 꽃을 볼 수 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았으니 올해는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내년 봄에는 꽃을 피워 긴 겨울을 난 식구들과 더불어 기쁨을 만끽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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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4/04/02 19:58

봄날의 하루는 다른 절기의 하루와는 사뭇 다름을 느끼게 된다. 예년에는 4월 중순이 지나서야 만개하는 살구며 앵두가 올해는 3월 말에 꽃잎을 펼치더니 벌써 꽃잎을 떨구기 시작한다. 안방 동측의 좁은 마당에서 겨울을 난 매실나무는 언제 꽃이 피었었는지 모를 정도로 예쁜 꽃망울을 터뜨리며 미색과 더불어 은은한 향기를 뽐내고 있다.

 

살구꽃과 함께 살구나무집이 온통 꽃밭으로 바뀌었다. 수선화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노란 꽃을 피웠고 감나무 밑둥의 꽃잔디는 작년과 같은 모습으로 둥그렇게 화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돌단풍은 긴 꽃대가 하얗게 바뀌더니 진한 초록빛의 잎사귀가 보는 사이에도 자라듯 맹렬하게 손을 뻗친다. 꽃말을 좋아하는 나와 비단주머니 모양의 꽃을 좋아하는 아내가 각각 골라 처음으로 서재마당에 심은 노루귀와 금낭화도 하루가 다르게 몸을 불리고 키를 늘인다.

 

 

 

튤립은 모진 겨울을 잘 이겨낸 흔적을 상처 투성이의 잎에 간직한 채 꽃대를 올리며 봄을 즐기기 시작했고, 앵초와 솔채, 장구채도 각자 봄맞이에 여념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푸른 색을 띄기 시작하는 마당의 잔디는 늦은 밤이 되면 다음날을 설레게 하는 자극제가 되고 있으며 작약도 여린 새순이 굳은 땅을 헤치며 나도 보아달라고 소리치는 듯하다. 바야흐로 봄인 것이다.

 

 

봄날의 마당은 늘 신기함과 오묘함으로 가득하다. 겨우내 눈보라와 추위로 굳어진 땅 속 곳곳에서는 이미 봄을 준비하는 만물이 있어 매일 아침마다 오늘은 또 무엇이 새로 생겨났을까 물으면 여지없이 이런 것들이요, 하며 대답을 해 준다. 잊었던 은방울꽃이 벌써 9개나 촉을 내놓았고 둥글레며 매발톱이며 노루오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솟아올라 식구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할미꽃도 우우한 자줏빛 꽃을 살포시 열어 마음을 들뜨게 하고, 무스카리와 분홍주름잎은 어느 새 보라색 꽃대를 만들거나 분홍빛 꽃살을 살짝 드러낸다. 아내의 정성으로 제법 모양을 갖춘 앵두나무 줄기마다에는 5장의 꽃잎이 달린 흰꽃들이 오종종 달라붙어 하늘을 가리는 살구꽃과 좋은 대조를 이루며 현관 마당을 봄빛으로 물들게 한다.

 

 

 

봄날이다. 더 없이 화사한 봄날이다. 살구나무집의 지금 봄에 흠뻑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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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