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나이2014/12/15 11:18

은희경의 단편소설 <금성녀>2014년에 작가가 펴낸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라는 소설집에 실렸던 작품이고, 2014년의 제14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 전 J읍의 상징이자 마스코트로 세인의 눈길 속에 자란 백합과 샛별 소녀유리와 마리 자매가 칠십 년이 지난 어느 날 고향을 찾게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엇 하나 부족할 것이 없었던 언니 유리는 일흔여섯의 나이로 갑자기 목을 매 주검으로 고향을 찾는 것이고, 동생 마리는 그런 언니의 죽음의 방식에 대해 담담히 받아들이며 그 언니의 주검과 함께 장지인 고향을 찾는 것이었다.

 

언니의 죽음에 드리워진 이유는 비밀로 남겨지지만 동생 마리는 그런 언니의 죽음을 묵묵히 그리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함께 지내온 삶을 기억하는 몇 가지 장면으로 반추한다. 그리고 자신은 언제나 낯선 곳을 향했고,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는 인생의 이방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샛별처럼 반짝이던 소녀가 평점하게 늙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라는 점에서 쓸쓸함으로 말하기에는 도무지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처연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는 이가 없는 백합과 샛별의 소녀 시절은 누구나의 가슴에 돌올하게 남아 있다. 그것이 인생인 것이다.

 

체형의 변화를 느낀 것은 오십 무렵이었다. 군살이 붙기 시작했고 신체 기능이 퇴화되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그때 마리는 자신이 포기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신중히 나누었다. 주름이 깊어지고 머리카락이 세는 것은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잇몸이 물러지고 이가 변색하고 머리숱이 적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서 좋은 생활습관으로 진행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추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체중이 늘어나는 것만은 예외였다. 마리는 예민했고 둔한 것을 몹시 싫어했다. 또한 체중 유지는 음식의 종류를 가리고 양과 간을 조절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from [14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서울, 중앙북스(), 201410(초판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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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책_을 펴내며2014/11/11 15:32

우연한 일로 책을 꾸리는 일에 간섭하게 되었다. 물론 오지랖 때문이었고, 도움을 줄만한 깜냥조차 되지 않았지만 도서출판 [집]의 요청이 컸다. 발을 내닫았으니 책을 꾸리는 과정마다 이런저런 참견을 했고, 급기야는 책 머리에 글을 하나 써 주십사 하는 부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름하여 [건축가가 지은 집 108]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의 머리글을 쓰게 된 이유다. 글은 기획위원이라는 거창한 감투를 쓰게 된 두 사람이 이메일을 통해 번갈아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마무리하였다. 이름하여 "책머리에 부쳐"라는 글이다.

 

 

책머리에 부쳐

 

이런 책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궁리를 시작한 것은 2년 여 전의 일이다. 당시 우리 두 사람은 위아래로 붙은 땅에 각자의 집을 함께 지은 뒤 집짓기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깨알 같은 사실까지 챙겨 담은 아파트와 바꾼 집(동녘, 2011)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언젠가는 내 집을 짓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는 제법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한동안 부러움이 담긴 인사와 집짓기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들에 답하며 지내게 만들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설계를 어떻게 했느냐예산은 얼마나 들었느냐였다. 이미 책에서 세세히 밝혀 놓은 내용인데 다시 묻는다는 건 설계와 예산에 대한 더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어서다. 어떤 방법으로 설계자를 찾아야 하는지, 예산은 꼭 그만큼 들여야 하는지를 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인을 통해 왜 이런 질문들이 끊이지 않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분은 트위터를 통해 아파트와 바꾼 집을 읽었음을 알리면서 보통 사람들이 당신들 건축과 교수처럼 사려 깊은 건축가를 만나 설계를 의뢰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럴 확률은 길을 가다가 유명한 발레리나를 만날 가능성만큼 낮을 것이라고 퉁을 놓았다. 얼마 후 그 분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그 말의 진의를 여쭈었더니 집짓기의 실천 사례들은 많지만 집을 지으려고 작정한 사람에게 정작 필요한 올바른 정보나 유익한 지식을 얻기는 너무도 어려운 우리의 현실을 에둘러 말한 것뿐이라는 말씀을 주셨다.

 

집을 지으려는 사람에게 정작 필요한 정보나 지식이란 무엇일까. 집짓기에 대한 욕망은 매한가지이더라도 그 욕망을 실천해야 하는 각자의 상황과 처지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책에서 아무리 이것이 좋은 집이라 목울대를 높여 외친다한들 그 집을 지은 이나 그 책을 꾸린 이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기성품인 아파트라면 입주 시점에 맞춰 집값을 조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일 테지만 기성품이 아닌 내 집을 짓는 문제라면 살피고 따져야 할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집터를 어느 곳에 어느 정도 규모로 마련해야 하는지, 구조 형식이나 재료는 무엇으로 해야 하며, 내장재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 설비 수준이나 마당의 크기 또는 층수는 어떠해야 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지만 그런 질문에 맞춤한 정보나 유용한 실례는 찾아보기 힘드니 제 집을 지으면 십년을 늙는다는 얘기가 결코 헛말은 아니라는 깨달음에 이르기도 한다.

 

일본만 하더라도 매년 착공 주택의 50% 이상을 단독주택이 점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개인의 집짓기 욕망과 의지를 사회 시스템과 건설 산업이 지탱하는 구조로 짜여 있음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전체 신축주택 총량에서 단독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이 기껏해야 4% 정도에 머무는 우리의 경우는 내 집을 짓겠다는 개인의 의지나 가족의 욕망은 자칫 섶을 들고 불속에 뛰어드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서로 견줄 만한 집짓기에 관한 정보나 지식이 한곳에 뭉뚱그려 담긴 경우가 희박하거니와 있다손 치더라도 개인의 주관적 경험담에 그치거나 지식으로 위장한 상행위를 위한 광고성 정보에 그칠 뿐이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은 우리가 만들고 키운 것이니 이러한 지적은 결국은 우울한 자기비판이 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라고 했던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평소 아파트에 매몰된 우리 주거 상황의 개선은 가격과 품질에서 아파트와 경쟁할 만한 내 집 짓기가 가능해질 때에나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보통 수준의 공사비로 지을 수 있는 좋은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이 늘어나야 하고 이들이 지은 집에 대한 정보를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떠들고 다니던 차에 도서출판 집에서 힘을 보탰다. 출판사의 지지에 힘입어 야심찬 기획이 진행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좋은 집짓기에 노력하는 건축가들이 설계해 지은 집의 사례들을 가능한 한 많이 모아서 구조와 재료, 층수와 규모 등 설계에 대한 정보는 물론 집을 짓는데 들어간 설계비와 공사비 정보를 제대로 담아서 내 집 짓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만들어 보자는 기획이었다.

 

대략 10년 전을 경계로 그 이후에 지어진 단독주택과 다가구다세대주택 혹은 복합주택(점포나 사무실 병용주택)과 같은 보통 사람들의 내 집 짓기 대상이 되는 집들을 망라하기로 하고 평소 알고 지내던 건축가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당초에 기대했던 건축가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최근에는 집을 설계한 적이 없어서, “있긴 한데 아직 공사중이어서 사례 수집에서 제외되기도 했지만 그들이 알려 준 다른 건축가들의 집짓기 사례들이 추가되면서 우리의 사례 목록은 차곡차곡 쌓여 갔다.

 

이렇게 모인 집짓기 사례들 각각에 대해 건축가들에게 정보 제공 요청을 했다. 집짓기에 관한 각종 자세한 정보와 도면, 사진뿐 아니라 건축가의 의도나 집짓기 과정에 관한 짧은 글도 써 주십사하는 다소 무리할 성 싶은 청을 했는데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스스럼없이 들어 주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모두 108채의 집짓기 사례가 정리되었다. 이 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108채의 사례들은 하나하나 대지 위치, 지역지구, 층수, 건축면적 및 연면적, 구조 형식, 외부마감 재료, 주차 대수 등 집에 대한 기본 정보와 설계도면, 외관 및 내부 사진 등 집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들로 정리했다. 이와 함께 설계기간 및 공사기간, 설계비 및 감리비, 공사비 등 집짓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궁금해 할 정보들을 꼼꼼히 챙겨서 담았다. 특히 설계비 및 감리비, 공사비는 집짓기의 향방을 좌우하는 가장 중차대한 항목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만큼 되도록 상세하게 밝혀 충실한 정보로 제공되기를 의도했다. 다만, 설계비는 항상성(恒常性)이 전제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대지의 조건과 건축주의 요구, 나아가 설계의 수정 정도와 설계 행위의 반복도, 현장 감리의 빈도와 정도 등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림 가격이 작가에 따라 달리 매겨져 거래되는 것처럼 주택의 경우도 설계자에 따라 설계비를 달리 부르고 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적 조건으로 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설계비를 밝히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다.

 

공사비의 경우는 설계비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인테리어 공사나 조경공사를 건축공사와 일괄로 시행하는 경우도 있고 건축주가 나중에 별도로 시행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들 비용을 모두 합하여 총공사비를 계산한 경우도 있고 건축공사비만을 총공사비로 계산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총공사비를 단순히 건축바닥면적으로 나누어 평당 공사비를 산출한다는 것이 정확한 정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에서 몇몇 사례에서는 총공사비와 평당 공사비가 산술적으로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 평당 공사비가 비싸다고 해서 반드시 보다 고급 수준의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땅의 위치와 지형조건에 따라 자재 반입의 용이성 정도와 공사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며 이에 따라 공사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집짓기에 참여하는 현장 작업자의 숙련정도에 따라 인건비 역시 다를 수밖에 없으며, 이 책에 담긴 집이 지어졌을 당시의 재료비와 자재비, 인건비 등이 몇 년이 지난 지금과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물론 이 책에 담긴 개별 사례별 공사비 정보 하나하나는 정확한 정보이지만 모든 집짓기는 저마다 고유한 조건과 변수 속에서 공사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들 공사비 자료를 다른 집짓기에 그대로 적용할 표준적 기준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집짓기를 다루는 대부분의 책들은 설계자 정보에 인색할 뿐만 아니라 시공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않는다. 이런 현실도 건강한 집짓기 확산의 큰 장애 요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각 사례 말미에 설계자와 시공자 정보를 따로 담았다. 설계자 정보는 장황한 약력 소개 대신에 설계사무소 주소와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와 홈페이지 등 실용적인 정보를 비교적 자세하게 담았다. 집을 지으려는 이들의 적극적인 정보 탐색을 권장하고자 하는 의도이며 좋은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정보 탐색이 바른 집짓기의 시작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기 위함에서였다. 물론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공연히 작가주의의 무거움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108채 사례마다 건축가의 의도와 집짓기 과정을 담은 건축가가 직접 쓴 글을 담았다. 이 짧은 글에서 독자들은 집짓기에 대한 여러 건축가들의 생각과 사례별로 자못 다채로운 집짓기 과정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집짓기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키울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나의 집짓기를 함께 하며 이끌어 줄 건축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러기를 희망한다.

 

이 책은 독자의 관심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선택해서 읽을 수 있도록 몇 가지 켜로 구분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우선 주택 유형을 단독주택(79), 다가구다세대주택(12), 복합주택(17)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그러니 관심이 있는 부분부터 주의 깊게 살펴 읽으면 된다. 각 주택 유형별 사례들은 집의 규모(건축연면적)를 기준으로 오름차순으로 정리했다. 예를 들어 단독주택의 경우 총 79채를 건축연면적이 가장 작은 36.4(11.03)부터 시작해 가장 큰 350.9(106.1)를 마지막 순서로 배열했다. 다가구다세대주택과 복합주택 역시 같은 방법으로 배열했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규모로 집을 지을 것인가가 집짓기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며, 이는 곧 예산에 직접적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같은 설계자가 지은 집이라도 규모에 따라 다른 곳에 배치했다.

 

책의 뒷부분에 붙인 부록에는 108채를 특성별로 집계, 분석한 집계 표와 그래프를 담아 집짓기에 관련된 요소들의 큰 줄거리와 경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즉 대지가 위치한 지역, 주택 종류, 층수, 지하층 유, 구조 형식 등에 따라 대지면적, 집의 규모(건축연면적), 공사비의 평균값을 산출한 집계 표와 이것이 사례별로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보이는 그래프를 제시하고 그 속에서 읽히는 의미 있는 사실과 경향들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 분석을 통해 책에 담긴 단독주택 사례들의 평당 평균 공사비는 600만 원이지만 사례에 따라 낮게는 260여 만 원에서 높게는 900만 원 이상까지 매우 넓은 범위에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서울과 수도권 지방도시 등 지역별 대지면적과 건축면적 분포는 물론 층수별로 혹은 지하층의 있고 없음에 따라 건축면적이 어떻게 다르고 공사비가 어떻게 분포하는지, 어떤 구조 형식을 택했는가에 따라 공사비가 어떻게 다른지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집짓기에 대한 고민과 구상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어느 지역에 어느 정도 규모의 집을 얼마에 지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고도 민감한 관심 사항일 것이다. 이 분석 내용이 그러한 고민과 구상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 이 책에 담긴 사례를 하나씩 살펴보기 전에 먼저 둘러보아도 유익할 것이다.

 

이 책은 기획을 시작하고부터 세상에 나오기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이 걸렸다. 우선 76명에 이르는 건축가가 설계한 집 108채의 정보를 취합하고 글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종 자료와 정보를 다 모은 후에는 과연 책을 어떻게 구성하고 순서를 정할 것인가부터 설계비와 공사비의 공개 여부에 대해 논의하고 설계자와 건축주의 동의를 구하는 일, 사진작가들의 사진사용 허락을 얻는 일 등에 많은 시간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고를 끼치는 무리한 청을 기꺼이 받아들인 여러 건축가들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이 책은 아직도 머릿속 생각에 머물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시대 집짓기에 대한 이들의 열린 생각이 이 책을 마무리하도록 한 셈이다. 또한 건축 전문 사진작가들의 사진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습으로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기획자로서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한다.

 

이 책을 출간한 도서출판 집은 독립출판사다. 종이책의 종말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기획자들의 어렴풋한 생각을 한 권의 책으로 꾸리겠다고 마음먹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난처한 처지와 환경을 감수하며 일하는 이들이 있어 오늘도 종이책이 그나마 읽히고 나뉜다는 점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늘 고마운 마음이다. 이들의 노고는 책을 골라 읽는 이들로 위로받을 터이다.

 

책이 늘 만들어지고 읽히기를 소망한다.

 

2014년 겨울 문턱에서 기획위원 박인석/박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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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4/11/04 15:22

1982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일상의 자잘한 삶에 녹아 깃든 미세한 균열을 주로 그린 작가 이혜경의 두 번째 장편소설인 [저녁이 깊다]20098월부터 20108월까지 계간 문학과사회<사금파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작품인데 연재를 마친 후 4년 만에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소설은 1960년대 말 지방 소읍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동급생으로 만난 기주와 지표가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 특히 소설이 나올 때 50 중반을 맞이한 베이비부머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1970~1990년대를 그리면서 우리 사회에 그 모습을 드러낸 세속과 현실사회의 단면을 조명하고 있다. 믿고 기댈 곳이라곤 아무 것도 없이 오직 공부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잘하는 것이 없는 전학생 지표가 체험한 가난과 그로 인한 결핍, 좌절과 세속적인 도전이 펼쳐지면서 그와의 연대를 통해 우정을 쌓아가는 병묵, 넉넉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갖춰진 삶이 못내 불편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기주, 돈이라면 가질 만큼 가지고 누리지만 돈밖에 없는 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형태 그리고 훈육적인 학교 반장으로서 매사 규범과 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정구 등이 복원한 당시의 풍경은 이 땅에 발 딛고 있는 중년 누구에게나 대입이 가능한 상황적 문법이기도 하다.

 

소살은 이들이 감당한 지난 40여 년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새운상가 아파트(1968)를 보고 놀라는 장면으로부터 서울올림픽(1988), 아직도 누구에게나 머릿속에 화인처럼 간직된 성수대교 붕괴(1994)와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참사(1995), 삼풍백화점 붕괴(1995)IMF 외환위기(1997까지, 시간의 누적이 만든 일상과 환상은 이들에게 서로 다른 가치관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때론 상황을 견디거나 모면하거나 혹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 우리들의 자화상을 고스란히 복원한 작품이 바로 이혜경의 [저녁이 깊다]이다.

 

"콘크리트 기둥이 위압적인 세운상가 고층에 빨래가 나부끼는 장면도 기주를 사로잡았다. 안내양의 눈총을 받아가며 뒤늦게 내린 기주는 무작정 그 건물로 향했다. 찻소리 끊이지 않고 매연 투성이인 중심가의 상가 위쪽에서 누군가가 밤을 해 먹고 몸을 뉘고 빨래를 하며 살아간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거기엔 D시에서 보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기름에 볶은 듯 윤기 흐르는 불개미 더미엔 양기회복이라고 쓰인 팻말이 꽂혀 있었다. 이 나라와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외국 여배우의, 몸매에 비해 너무 커서 그 자체로 다른 생명임을 주방하는 듯한 유방이 드러난 사진 패널들도 있었고, 염료로 그린 눈에 안질을 앓는 듯 희부연 눈으로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고무인형이 섬뜩했으며, 태엽을 감으면 감긴 만큼 도르르 굴러가다 멎는 장난감 행상도 있었다."

 

이혜경, [저녁이 깊다],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4.9, 초판 1, 15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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