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공간산책2014/09/04 21:46

2014년에 여덟 번째를 맞이한 김유정문학상의 수상후보작에 올랐던 전성태의 단편 <성묘>는 짧은 글 안에 중압감을 주기에 충분한 우리 사회의 몇 가지 현실적 굴레를 응축하여 담아낸 수작이다. 적군묘지 주변 군부대 근처에서 자그마한 점방을 운영하며 고추농사를 짓는, 과거 주임상사까지 지낸 군인출신 영감 내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자그마한 반복적 일상이 한반도의 굴곡진 현대사를 뭉뚱그려 체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겪은 한반도 어느 곳에도 오갈 수 없는 적군의 주검들이 모인 곳. 남파간첩을 내려 보낸 적이 없다고 우기는 북측으로 인해 북으로 보내질 수도, 남에 자리를 잡을 수도 없는 간첩들의 묘지이거나 혹은 남의 나라의 비극적인 전쟁에 몰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젊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국 청년들의 묘소가 이름하여 적군 묘지로 뭉뚱그려 이념적으로 여전히 대치하고 긴장의 땅에 누워 있는 곳이 바로 적군 묘지이다. 이 장소는 그렇게 한국의 현대사를 모두 껴안고 있고, 그곳에 삶을 부린 영감 내외는 아픈 허리를 버티며 오늘의 상황을 견디고 있다. 징병제도에 따라 군부대에 막 들어온 신임병사는 심부름을 위해 제공된 아주 짧은 틈을 이용해 사제 선크림이나 위장크림을 사는 동안 점방의 전화를 이용해 자신이 떠난 고향의 부모나 애인에게 자신의 처지를 안심시키는 안부 전화를 걸고, 장기 하사들은 원혼들의 넋을 달래는 영감의 제수 마련에 마음과 돈을 보탠다. 한 때 적국이었던 중국 사람들은 어느 새 바뀐 세상에 쉽게 타협하면서 이국에서 죽어간 젊은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이곳 적군 묘지를 관광지 삼아 방문하고, 영감의 점방에서는 그들을 위해 지전을 판다.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짧은 소설에는 이데올로기가 빚은 한반도의 전쟁과 위장된 평화 그리고 그 폭력에 내몰린 청춘들의 까닭 모를 원혼들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각박하고 피로해진 우리 사회의 노인문제와 더불어 직업군인들의 문제에서부터 징병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에 이르기까지 제법 여러 켜로 이루어진 이 땅의 문제와 상황들이 담겨 있다.

 

 

"오늘 공병대가 적군 묘지 벌초 작업에 들어갔다. 덩달아 노인도 마음이 바빠졌다. 노인은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적군 묘지 옆댕이에 붙은 고추밭 주인이었다. 이십 년 넘게 그 밭에서 고추농사만 줄곧 지었다. 그 밭가로 적군 묘지가 들어선 게 15년 전이었다. 노인도 밭 한 귀퉁이를 묘지로 내놓았다. 적군 묘지에는 전쟁 때 죽은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는 물론 남파 공작원들 유해도 묻혔다. 북한군 묘역은 150여 기가 조성된 이래 늘지 않고 그대로였지만, 중국군 묘역은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진척되면서 해마다 수십 기씩 늘고 있었다. 이전에 조성한 묘역이 꽉 차서 노인은 올여름 밭을 완전히 내놓아야 했다. 고추를 다 거두고 나면 공병대에서 묘지 닦이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 묘지를 끼고 농사를 짓다보니 성가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두더지가 많아졌다. 밭갈이해서 골라둔 땅이 하룻밤 새에도 들썽들썽했다. 묘지 구경오는 사람들이 예사로 밭고랑을 타고 건너다녔다. 외지인 발길 타는 밭둑이 성할 리 없고 더러는 작물에도 손길이 탔다. 근래에는 중국인 성묘객들이 부쩍 늘었다. 중국인들은 꼭 지전(紙錢)을 태우는 풍습이 있는데 군부대에서 화재예방 차원에서 못 태우게 해 뿌리고 간 지전이 밭으로 날아와 고춧대에서 종이꽃을 피웠다. 공병대 선임하사들은 돈 따는 고추밭이라고 입방정 놀리지만 가을걷이 끝내고 갈퀴로 긁어 태우자면 밭가 한구석이 무슨 낙엽 소각장 같았다. 지전을 두고는 욕만 할 수 없었다. 노인도 가게에서 지전을 팔았다.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무덤들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이 굉장했다. 보통 원혼들인가. 젊어서 총과 포탄에 쓰러진 원혼들이었다. 고향 어름에도 못 가고 적지 북향에 묻혀 이름 없이, 찾는 발길 없이 세월에 깎이고 있었다. 그런 유해들 옆에 끼고 날마다 농사를 지어야 하는 사람 심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몰랐다. 꺼림칙하고 무서웠다. 악몽에 시달렸다. 특히나 북한군 묘역에 서면 마음이 더없이 복잡하고 심란했다. 한때 세상을 뒤흔든 간첩사건의 주인공들이 제 이름을 한줄기 목비(木碑)에 새기고 낮은 땅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목비 하나하나를 새겨볼 때마다 텔레지전으로 본 그 무섭고 끔찍한 사건들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그렇다고 군인들에게 매장만 하지 말고 천도재라도 지내서 원혼을 달래보라고 주문할 수도 없었다. 인도주의에 입각해 묘지를 조성했다지만 엄연히 적군인데 군인들에게 고개 조아려 추모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출처 : 전성태, <성묘>, [2014 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서울, 은행나무, 2014.7(11), 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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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나이2014/09/03 15:05

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으로 출간된 정지향의 장편소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는 서울 소재 대학들의 지방캠퍼스 주변의 자취촌과 고시원을 세 남녀의 사랑과 이별, 가족해체라는 현실과 고독한 성장, 소위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의 진입을 위한 그들의 강요된 노력과 새로운 재능의 발견 등을 통해 스스로 성장해가는 젊은이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에서 이미 암시하듯 이들은 표류라는 과정과 절차를 거쳐 어느 모양이 되건 사회로 편입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거대한 괴물과의 만남을 애써 유보하면서 스스로 자라난다.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와 한 대학의 사진과에 입학했다가 불현듯 재수를 한 뒤 다시 명문대학의 경영대학을 졸업하고는 다시 색소폰을 배워 서울 소재 대학의 지방캠퍼스 예술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요조(인간실격의 화자)’와 스스로 가족으로부터 격리한 채 제대로 사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묻는 문창과 학생인 소설 속 화자, 그리고 그녀가 엄마의 죽음 이후 인도를 여행하다가 만나 친구가 된 한국인 입양아 민영은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 시대 대학생 혹은 젊은이의 표상이다.

 

민영의 귀국으로부터 시작되는 소설은 보증금 오백만 원에 월세 삼십오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지방캠퍼스의 자취방과 고시원에서 피로사회의 만성적 무기력에 대응한다. 과연 제대로 살고 있나? 제대로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나아가면서 그들은 제각기 사회에 편입한다. 그런 이유에서 성장소설이고, 결국은 각자에게 던져진 무거운 짐을 스스로 이고 진 상태에서 이미 만들어진 사회에 스며들 것이다.

 

스무 살이었으니까. 그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나 자신이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어. 해면처럼 그 모든 것을 흡수하고 한참 후에야 혼자 깜깜한 자취방 안에 남겨져서 제한 것들을 쿨럭쿨럭 뱉어내는 나이였지.”

 

from 정지향,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파주, ()문학동네, 20147(초판),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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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TAG 20살
소설_한국주거사2014/09/03 14:57

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으로 출간된 정지향의 장편소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는 서울 소재 대학들의 지방캠퍼스 주변의 자취촌과 고시원을 세 남녀의 사랑과 이별, 가족해체라는 현실과 고독한 성장, 소위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의 진입을 위한 그들의 강요된 노력과 새로운 재능의 발견 등을 통해 스스로 성장해가는 젊은이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에서 이미 암시하듯 이들은 표류라는 과정과 절차를 거쳐 어느 모양이 되건 사회로 편입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거대한 괴물과의 만남을 애써 유보하면서 스스로 자라난다.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와 한 대학의 사진과에 입학했다가 불현듯 재수를 한 뒤 다시 명문대학의 경영대학을 졸업하고는 다시 색소폰을 배워 서울 소재 대학의 지방캠퍼스 예술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요조(인간실격의 화자)’와 스스로 가족으로부터 격리한 채 제대로 사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묻는 문창과 학생인 소설 속 화자, 그리고 그녀가 엄마의 죽음 이후 인도를 여행하다가 만나 친구가 된 한국인 입양아 민영은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 시대 대학생 혹은 젊은이의 표상이다.

 

민영의 귀국으로부터 시작되는 소설은 보증금 오백만 원에 월세 삼십오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지방캠퍼스의 자취방과 고시원에서 피로사회의 만성적 무기력에 대응한다. 과연 제대로 살고 있나? 제대로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나아가면서 그들은 제각기 사회에 편입한다. 그런 이유에서 성장소설이고, 결국은 각자에게 던져진 무거운 짐을 스스로 이고 진 상태에서 이미 만들어진 사회에 스며들 것이다.

 

1970년대 말 수도권 인구분산과 지방 주민들에 대한 양질의 대학교육 제공, 그리고 지역의 균형발전이라는 취지에서 실행된 서울소재 대학의 지방캠퍼스는 오히려 부작용과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수도권 인구분산만 하더라도 대체로 전체 학생 중 4080%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출신이고 이중 과반수가 통학을 하고 있어 오히려 교통체증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다. 현지에서 기숙사에 들거나 하숙 또는 자취를 하는 학생도 방학이나 강의가 없는 날은 서울에서 지내므로 소설에서 말하듯 그들이 기거하는 곳은 고아들의 도시이고 방학이면 상점들이 철시하는 등 인구분산 효과 역시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의 도시 풍경을 들여다보자.

 

“C시에 사는 몇몇 아이들을 빼고는 대부분 자취를 하거나 기숙사에서 학기를 보냈어. 대학가인 걸 감안하더라도 유난히 자취촌이 넓게 들어서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였어. 학교를 중심으로 뿌리처럼 뻗은 골목골목마다 원룸과 고시원이 맞붙어 들어차 있었지. 늘 자취촌의 한 건물쯤은 증축이나 재건 공사중이었어. 산책을 다니다가 문득 낯선 느낌에 올려다보면 풀 옵션 신축따위의 플래카드를 건 말끔한 원룸 건물이 서 있곤 했지. 자취촌은 등을 맞댄 주택가와는 대조적으로 늘 떠들썩했어.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이면 아이들은 캐리어나 박스에 짐을 넣어 하나둘 거리로 나왔어. 그리고선 학교 운동장과 플라타너스 길목에 늘어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부모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어. 방학 동안 학교를 둘러싼 학사주점과 당구장, 노래방들까지 문을 닫았지. 자연재해를 입어 폐허가 된 것처럼 텅빈 자취촌 곳곳에 편의점들만 방공호처럼 덩그러니 남아 이십사 시간 내내 불을 밝히고 있었어. 새벽이면 골목을 돌며 아이들이 내놓은 술병을 주워모으던 할아버지들도 사라져버렸어.

 

요조와 나는 방학 한가운데서도 그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애들을 고아라 불렀고, 거기엔 우리도 포함됐지.“

 

출처 : 정지향,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파주, 문학동네, 2014.7(초판),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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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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