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공간산책2015/06/11 20:29

최윤의 소설 <아버지 감시>가 발표된 때는 1990년이었고, 당시는 세계사적 변화의 물꼬가 유럽을 중심으로 드센 물결을 이룰 때였다. 전쟁 때 월북한 아버지가 별안간 중공으로부터 날아들어 시골의 큰아버지집으로 배달되었고 발신자의 아내인 어머니는 편지 왕래가 시작된 지 얼마 못가 세상을 떠난다. 형제들은 아버지를 초청하기로 하고 마침 프랑스에서 식물학자로 자리 잡은 삼형제의 막내인 소설 속 가 그 일을 따맡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 아버지는 파리에 도착했고 비행기에서 내린 아버자를 본 막내 창연은 아버지가 월북하던 당시 뱃속에 있었던 까닭에 생면부지의 아버지와 조우하고 주말을 함께 보내게 된다.

 

 

텔레비전에서는 마침 동구의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과정을 연일 텔레비전을 통해 보여주고 루마니아의 시민혁명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그저 나약한 노인의 모습을 한 아버지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무표정의 모습으로 이를 시청한다. 월북 후 북에서 재혼을 하였고, 그곳에도 여동생 둘과 남동생 둘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창연은 그런 아버지가 근엄한 사회주의 혁명가로서의 모습이 아닌 것에 자못 실망하지만 그런 아들을 향해 아버지는 남쪽애 남긴 아내와 아이들이 받았음직한 수모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지 말라는 말과 함께 젊은 날 가졌던 아비의 꿈이 좌절되었으나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말로 평온함의 속내를 전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청하기를 파리의 코뮌 병사들의 벽으로 동행할 것을 청한다. 아들이 스스로 원했던 화해가 아닌 이해를 구하는 아버지와 함께 아들은 파리 코뮌병사들의 벽으로 향한다. 파리에는 그런 곳이 있다. 바로 페르 라셰즈 공원묘원이 그곳이다.

 

아버지는 보시던 법국 안내서의 한 귀퉁이를 펼치셨다. 중국어로 씌어진 안내서의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한 옆에 그려진 지도와 묘지라는 한자로 보아 페르 라셰즈 묘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하고많은 명소 중에 왜 하필 공동묘지부터……그러나 나는 곧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버지가 그곳을 보고자 하는 의도가 막연히 잡혔기 때문이었다. 페르 라셰즈라면 묘지이기 이전에 거기에 묻힌 유명 인사들의 무덤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품과 공원의 경치로 유명해, 유학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한 번 가본 적은 있었지만, 사십 헥타르가 넘는 곳을 걷느라 발바닥이 부르튼 기억도 있고 해서 되도록 파리에 들른 친지들을 안내할 때마다 슬쩍 피해간 장소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보고자 하는 것은 물론 쇼팽이나 아폴리네르나 들라크루아와 같은 예술인의 무덤은 아닐 것이다. ‘아들 보러 여기까지 왔으니 최소한 그것은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나왔다.(이상 186) (중략)

 

나는 말없이 정문에서부터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는 코뮌 병사들의 벽을 향해서 걸었다. 공산주의권의 여행자들이 파리에서 빠뜨리지 않고 방문하는 상징적인 성소처럼 되어버린 곳이었다.(187) (중략)

 

조금 남았습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십여 년 전의 어느 여름, 친구들과 어울려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한 장면이 기이한 선명함으로 다가왔다. 그때도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유학생은 파리 관광안내서에 따라 이곳에 왔고 역시 안내서에 씌어 있는 대로 파리코뮌의 막바지에 이곳에 스며든 국민병을 정부군이 생포 사살해 그 자리에 묻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장소가 된 그 장식 없는 벽 근처로 다가갔었다. 다른 친구들은 꽃다발 하나로 조촐하게 남아 있는 흔적 없는 벽을 기억하고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되살아오는 우울하고도 적막한 기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우리가 그 벽 바로 앞에 있는 잔디밭에 앉아 막 사진을 찍고 났는데 검정 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상고머리를 깎은, 비슷한 외양의 세 명의 동양인이 그 벽 앞으로 다가갔다. 그들 중의 약간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이곳이 불란서코뮌 당시 147명의 위대한 인민혁명 전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다가 무참히 사살된 역사적인 장소니 동무들 잘 봐두라우.(188)’”

 

출처 : 최윤, <아버지 감시>,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_07 변혁과 위안의 출발, 파주, ()문학동네, 2015.1(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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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꽃과 나무2015/05/26 17:49

"창백하리만큼 흰 꽃의 꽃술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갓 활짝 열린 순간, 미풍도 낙화가 애석해 잠깐 쉬고 있는 듯 주위는 화장하고도 고즈넉했다. 풍염한 도화의 말로가 육감적인 복숭아이듯 이화의 결실이 청아한 배인 건 아주 당연했다."

 

 

from 박완서,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_01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파주, (주)문학동네, 2012.1,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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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5/05/26 16:34

20155월은 살구나무집으로 삶을 처음으로 의탁한 뒤 집 전체에 걸쳐 자잘한 것들에 대해 손을 본 달이다. 오래 전 새집으로 들어온 윗집 친구와 약속하기를 월드컵이 열리는 해마다 집을 손보자고 농담 반 진담 반의 약속을 했었는데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다가 2015년 봄날 기후 예보를 보다가 별안간 행동에 옮기게 된 것이다. 별도로 정한 기간을 지키지 못했으니 다시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올봄에 집 안팎을 세심하게 살펴 손을 본 셈이니 이제는 5의 배수가 들어가는 해에 집안을 한 번씩 둘러보고 수선을 하자는 것이 그것이다.

 

 

 

5월 초부터 벽돌에 발수제를 바르고, 서재마당이며 계단이며 콘크리트로 마감된 곳에는 시멘트나 모래가루가 들고 일어나지 않도록 콘크리트 강화제를 도포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물론 마당 데크와 부엌 밖 데크에는 오일스테인을 두어 번 더 발라 방부목이라 하더라도 걱정을 하지 않도록 조치하였다. 나무에 비해 훨씬 더 부식 가능성이 높은 철제 난간에는 방청제를 바르고 다시 회색의 페인트칠을 하는 것으로 커다란 일들은 마무리 되었다. 여기까지는 농담 삼아 평생 애프터서비스를 해주겠다고 한 시공사의 깔끔한 보수계획으로 일이 잘 진행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식구들과 합심하여 시공사에서 미처 손을 보지 않은 구석구석을 돌보는 일이다. 애프터서비스라고는 하지만 약정한 하자보수 기간이 지났으니 비용을 들인 것이고, 집을 손보는 과정에서 비용이란 것이 대부분 인건비에 해당하는 것이니 요모조모 소소한 것들은 날을 잡아 식구들과 함께 울력을 보태는 것이 재미라면 재미라고 할 수 있으므로 5월의 끄트머리 연휴(--석가탄신일 연휴)를 잡아 자잘한 준비를 마쳤다. 시공사에서 남기고 간 페인트와 시멘트 등을 가늠하고 추가로 필요한 방청 폴리머와 호두빛깔이 나는 칼라 스테인 그리고 붓을 몇 개 준비하고 5월의 사흘 연휴를 맞았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안마당과 서재마당에 각각 자리하고 있는 벤치에 오일스테인을 바르는 일이다. 서재마당의 의자는 살구나무 그늘 아래서 쉬도록 건축가가 제작해 준 것으로 외기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색이 바랜 것이어서 호두빛깔 스테인을 두어 번 바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마당 한 켠에 자리한 벤치는 건축가나 시공자의 솜씨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지만 식구들이 힘을 합쳐 만들고 페인트를 칠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어서 원래의 색깔로 다시 페인트를 칠하는 정도인데, 이 두 가지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쉬울 뿐만 아니라 시간 소모도 거의 없는 것이었다.

 

사실 본격적인 노동이라 부를만한 것은 대문과 주차장의 방부목과 방부목을 감싸고 있는 철제 프레임의 녹을 제거하고 회색의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다. 겨울철 폭설이 내리면 용인시청에서 염화칼슘을 살포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로 인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주차장의 철제난간이며 대문의 철제 프레임이 상대적으로 녹이 조금 슬었고, 집을 들고 날 때마다 언제 손을 봐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그치지 않았었다. 몇 일 걸릴 일로 판단하여 연휴 시작과 동시에 도구를 이용해 손을 털어내고 방청 폴리머를 바른 뒤 하루를 보내고 본격적으로 오일스테인과 페인트를 칠하고자 마음먹었다.

 

        

 

우선 준비작업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칠을 위해 필요한 도구며 장비가 여간 많은 것이 아니었다. 붓의 종류와 크기도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했고, 붓을 청소하기 위해, 그리고 공기중에서 쉽게 굳는 페인트를 칠하지 좋은 점도로 유지하기 위해서 신나도 준비해야 했고, 여러 색깔의 페인트나 서로 다른 재료가 섞이지 않도록 용기도 여럿 분비해야 하니 준비물만 보자면 비록 아마추어일지라도 남들이 보기에는 거의 전문가급에 해당한다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직장에서 퇴근한 아이가 작업복을 사다 주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아내가 적극적으로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연휴 안에 작업을 마치는 일은 고사하고 또 내년으로 미루게 되었을 일이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일은 벌였으니 마무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고, 때 아닌 여름 날씨에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대문과 주차장의 칠을 마칠 수 있었다. 처음 오일스테인을 칠하고, 마르기를 기다려 다시 칠하기를 3회 반복하니 제법 육중한 느낌으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방부목을 감싸고 있는 철제 프레임에 페인트를 입히는 일이었다. 제법 정밀을 요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자칫 잘못하다가는 애써 바른 오일스테인 위로 회색의 페인트가 묻게 되니 그때마다 다시 헝겊에 신나를 적셔 잘못된 부분을 지우면 방부목에 발랐던 오일스테인까지 묻어나기 때문에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휴일의 이틀 동안은 뒷목이 뻣뻣해질 정도였고, 이동식 계단을 들고 다니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바람에 허리며 다리가 제법 욱신거릴 정도였다. 밤이면 잠자리에 들기가 무섭게 코를 골며 숙면을 취할 수 있었고, 자칫 지루할 수도 있을 연휴를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웠다고도 할 수 있다. 아내는 이번 작업을 두고 가장 성취감을 많이 느낀 일이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기왕에 일을 벌였으니 그동안 마음에 두었던 모든 일을 한꺼번에 마무리지을 생각이 들어 내친 김에 다른 일이 뭐가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한 끝에 아니와 아내가 대문으로 들고 날 때마다 조금은 불편하다고 했던 것도 손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대문 안쪽은 제법 넓은 돌판을 깔아 현관으로 오르도록 만들어 둔 곳이 있는데 바닥면의 일부를 비워내고 검은 색 자갈을 채워두었는데 자전거를 타거나 급히 나갈 때 채워둔 자갈이 걸리적거린다는 것이 식구들의 불만이었고, 아내는 이곳에 시멘트를 채우고 자갈을 꽂아 아예 고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연후 마지막 날 자갈이 채워진 부분을 모두 도려내고 시공사가 남기고 간 시멘트를 개어 부은 다음 다시 자갈을 박는 작업에 돌입하였다. 이 일의 관건은 시멘트의 반죽 농도인데 집수리를 했던 작업자가 주었던 힌트를 잊지 않고 조금 되다 할 정도의 느낌으로 반죽을 하였더니 제법 쉽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 마무리 작업은 대문의 철제 프레임을 회색의 페인트로 칠하는 일이다. 페인트를 파는 곳에서 사전에 구입한 비닐이 부착된 매스킹 테이프를 꼼꼼하게 두르고 준비 작업만 해도 꽤나 손이 가는 일이었는데 역시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실력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공정이었다. 일단 테이프를 세심하게 붙이는 작업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인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페인트를 칠하는 과정에서는 그 차이가 너무가 크다는 사실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신나와 페인트를 적정 용도로 섞는 일이 관건인데 자칫 신나를 적게 넣으면 붓질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덧칠을 할 때마다 붓자국이 심하게 남기 때문에 어려운 작업인데, 일을 편하게 하자고 신나를 보금 많이 배합하면 페인트칠을 할 때마다 도포된 페인트가 흘러내려 낭패를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연휴의 마지막 날은 살구나무 가지를 치기로 마음먹었다. 사다리를 옮기고 4미터가 넘은 톱 부착용 전지가위를 준비하고 서재 마당으로 뻗친 살구나무 가지 몇 개를 잘라냈다. 작업은 생간만큼 쉽지 않아 4단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올라 4미터 길이의 톱을 뻗치고도 자를 수 있는 가지는 몇 개 되지 않아 괜히 아내의 걱정만 샀고, 용을 쓰며 잘라낸 몇 개의 가지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보냈던 어떤 연휴보다고 성취감을 느꼈던 작업이었고, 집을 지니고 살며 느낄 수 있는 자그마한 노동의 대가였기에 뿌듯함 또한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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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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