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_을 펴내며2013.06.20 14:39

헤아려보니 제 이름 석자를 달고 혼자 끄적여 세상에 내놓았거나 지인들과 더불어 함께 꾸려 빛을 보게 한 책이 벌써 마흔 권이나 됩니다. 스스로 참 많이도 썼다, 하며 자책 하기도 하고, 혼자 괜한 마음으로 우쭐대기도 합니다. 2013년 여름의 복판에 새로 선보인 책은 [아파트]입니다. 부제로는 강준만 선생께서 [한국인 코드]라는 책에서 쓰셨던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한국의 아파트, 아파트단지를 설명하기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이제 사나흘이 지나면 또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실 이 책은 친구인 명지대학교 박인석 교수와 약간은 장난 삼아 같은 이름의 책으로 각각 쓰기로 한 것입니다. 장난이 지나쳐 같은 날짜에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내기도 하였답니다. 물론 이 약속은 거의 지켜진 것이나 진배 없습니다. 6월 말에 제 책이 나오고 한 주일 정도 뒤에 현암사에서 [아파트로 읽은 한국사회]라는 제목의 책이 친구인 박인석 교수의 이름으로 출간되기 때문입니다.

 

새로 세상에 선보일 책의 '책을 펴내며'는 약간의 수정이 가해진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손길이 더해진 글이지요. 여기서는 전문가들이 손길이 닿기 전 혼자 끄적였던 '책을 펴내며'의 원고를 그대로 옮깁니다. 도서출판 마티와 편집자, 디자이너, 그리고 홍보 담당자 뿐만 아니라 인쇄기를 돌리신 분들께도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아파트>라는 제목으로 책을 한 권 펴내고자 마음먹은 것은 꽤 여러 해 전이었다. 대학원생들과 주거론혹은 주거문화론따위의 제목으로 내심 마음먹었던 소소한 주제들을 정해 세미나 형식으로 논의를 이어가기도 했고, 때론 크게 결심해 박정희 정권의 발명품으로 알려진 아파트를 반공이데올로기나 수도건설(首都建設)이라는 안경으로 들여다보기도 했다. 또 그 방법이 너무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일제강점기의 여성잡지로부터 소설이나 광고 혹은 모델하우스를 통해 아파트(단지)를 들여다보거나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의 구술기록과 전작(全作) 혹은 다른 작가들의 수려한 문장을 돌려 읽으며 서울이라는 도시공간과 아파트라는 건축유형을 소설로 따라 읽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문득 갖게 된 생각들을 추슬러 논문이라는 형식을 빌려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는데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일련의 작업에 힘입은 바 크다.

 

사실 아파트가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나 연구자들의 구체적 탐구 주제나 연구의 대상으로 자리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적어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는 건축학의 관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건축학적 관심도 대부분의 경우는 인상비평이나 현상을 좇는 일에 머물렀고 비판적 시선이나 성찰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만큼 문화론자들의 반론은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건축 내적인 논리와 시선이 대중성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점도 무력감을 가중시켰다. 아파트에 관해 여전히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었지만 사회적 파장이나 공감을 얻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아파트로 대표되는 공동주택의 확산에 대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생각하자는 논조나 주장은 대부분 문화론자들의 자기 위안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1990년대 말을 거치고 2000년대에 들어서며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건축학과 주거학 분야를 중심으로 과거와는 다른 태도와 방법으로 파편적이었던 기초 자료들을 모으고 이를 사회공간이나 일상공간의 문제로 엮어내는 크고 작은 연구 작업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지성의 힘과 형식을 빌려 성과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법 논쟁도 있었고, 방대한 성과들이 대중성을 갖추며 서점가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작업 역시 연구의 태도와 학자들의 언어로 갈무리된 까닭에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에는 여전히 충분하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가능했던 것도, 연구 성과가 책으로 꾸며져 서점가에 등장한 것도 따지고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파트에 대한 경험의 총량이 커졌고 그만큼 권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건축학이나 주거학 이외 분야에서의 관심 때문이다. 사회학이나 정책학 혹은 경제학이나 신문방송학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자들의 관심과 연구 작업을 대중적 언어로 번역해낸 작업들은 건축학 분야에서 오랜 기간 몸을 부리고 있는 필자를 당혹스럽게 했고, 자괴감에 빠지게 하기도 했다. 물론 변명에 가까운 이유를 들어 건축학이나 주거학의 연구 성과에 관심을 두지 않은 언론이나 독자들을 탓하기도 했고, 다른 이들의 아파트에 관한 연구 성과와 생각들을 애써 가벼운 것이라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내 탓이요 스스로의 책임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정리할 도리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생각날 때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들을 짧은 글로 정리해두었고 오랜 기간 동안 아파트로 대표되는 공동주택의 여러 국면들에 대해 생각을 나누고 글쓰기를 함께 했던 공동주택연구회의 친구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생각을 나누는 일을 계속하였다. 그러는 동안 컴퓨터의 폴더와 파일이 제법 쌓였고 몇 가지에 주목한 생각의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이런 생각의 일단을 정리한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필자는 대학을 졸업하던 35년 전에 서울시민아파트를 졸업논문의 주제로 삼은 바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인지는 모르지만 그 후 줄곧 주택 혹은 주거학이나 주거문화론이라는 영역에 몸을 의지한 삶을 계속하였다. 지금은 조금 성격이 달라졌지만 한 동안 우리나라의 주택문제를 연구의 주제와 대상으로 삼았던 대한주택공사 주택연구소에서 12년 이상을 연구에만 매달릴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주거론과 주거문화론을 중심으로 하는 강의와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고, 그 덕택인지 몰라도 여러 곳에 불려갈 때면 늘 아파트 전문가라는 호칭을 빌어 필자를 소개하는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

 

주택연구소에서의 연구실 경험은 밥벌이 수단이라는 현실적 이유 이외에도 본격적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이제는 보편적 도시주택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을 한국의 아파트단지를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연구소의 동료들이자 지금은 공동주택연구회의 회원으로서 여전히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동학들의 조언과 생각의 나눔은 이 책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 것은 확실하다. 이들과 함께 한 연구 성과나 생각의 공유점을 이 책에 담은 것도 그들과 생각을 나누고 합의하거나 공유하는 과정을 오랜 기간 거쳤기 때문이다.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부제로 쓰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말은 강준만 선생의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국인 코드>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선생의 책을 읽다가 문득 이 말이 한국의 아파트단지를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원고를 쓰는 도중에 선생께 책의 부제로 선생이 책에서 쓴 글을 사용할 것을 조심스럽게 청해 허락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께서는 멋진 글을 쓰라는 격려 말씀과 함께 글의 부제에 당신의 글을 사용할 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파트>는 건축학을 전공으로 하는 학생이나 연구자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일반 대중을 독자로 상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충분하지 않을 수 있고 때론 너무 전문적이랄 수 있는 건축학적 용어가 난무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원고지를 채워가는 동네 이웃들에게 마치 강의라도 하는듯한 태도를 유지하자는 생각을 잃지 않고 원고지를 채워 나갔다. 편집자와 원고를 주고받으면서 내내 책망 아닌 책망을 들은 것도 글이 너무 전문적이어서 좀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주위의 여러 조언들을 경청하면서 내심 쉬운 글로 풀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편집자의 태도에 대해 충분한 만족을 드리지 못한 점은 전적으로 내 글쓰기의 재주 없음에 그 탓이 있다.

 

글을 이어가며 아파트에 살았던 지난 25년의 거주 경험은 큰 힘이 되었다. 지금은 도시 언저리 야트막한 언덕에 조그만 땅을 마련해 소위 땅집 생활을 하는 입장이어서 아파트에서의 삶과 마당이 딸린 집에서의 실제 경험을 비교해가며 글을 쓰고자 했다. 물론 아파트(단지)는 나쁜 집이고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이야말로 좋은 집이라는 이분법적인 편견은 되도록 가지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글을 지었다. 아파트에서 살구나무집으로 불리는 지금의 집으로 옮기는 과정을 그린 <아파트와 바꾼 집>에서도 누차 힘주어 말했듯 좋고 나쁨의 순진한 이분법을 의도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책의 부제가 이미 아파트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드러낸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굳이 아파트의 좋은 점은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전제한 것이 이 책에 담긴 진심이다.

 

<아파트>는 두 가지 차원에 주목하여 꾸린 책이다. 하나는 단지(團地)’로 불리는 공간 조직의 단위이고, 다른 하나는 전용공간(專用空間)’으로 대표되는 아파트의 가족 단위 생활공간이다. 어차피 아파트를 대상으로 쓰인 글은 발에 치일 정도여서 책을 통해 다룰 주제나 논제를 가급적 좁히려고 노력했고,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담은 모든 글의 꼭지는 이 두 가지 논제에 수렴되도록 의도하였다. 그러니 아파트라는 거대한 대상을 너무 좁혀 들여다본, 마치 눈이 어두운 사람이 코끼리 만지듯 한 꼴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아파트 문제를 나열하는 것 또한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할 수 있다는 노파심과 함께 차고도 넘치는 아파트를 다룬 책에 한 권을 더 얹는 경우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해 상황을 간결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 선택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가급적이면 많은 각주를 달아 속내에 호기심을 느낄 독자들에게 스스로 길을 찾을 것을 권하였다.

 

책은 모두 10개의 꼭지로 구성하였다. 맨 앞자리에는 대중소설에 묘사된 아파트단지의 여러 층위와 국면들에 대한 우리들의 자화상을 거칠게 옮겨 아파트단지 생활의 일단을 까칠하게 생각해보자고 권했고, 맨 끄트머리에는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필자가 가진 생각의 갈피를 정리하였다. 이를테면, 논문이라 한다면 서론과 결론에 해당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들 사이에 들어간 8개의 꼭지는 다시 둘로 나뉘도록 의도하였다.

 

8개의 꼭지 가운데 앞자리를 차지한 4개 주제는 아파트라는 용어와 용례의 역사적 변천 과정으로부터 아파트와 중산층의 등식이 성립되는 과정을 훑어보면서 단지전용공간이라는 쟁점으로 독자들이 집중하도록 의도하였다. 이어지는 4개의 주제는 단지, 모델하우스, 발코니, 아파트 평면의 구성 원리에 주목하면서 이들의 내부에 존재하는 논리와 그 논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복합적인 구조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니 이 책은 앞에서부터 차례를 따라 읽어도 좋을 것이고, 아무 곳이나 펼쳐지는 곳만 따로 떼어 읽어도 되도록 만들어진 셈이다. 물론 책을 지은이로서는 앞에서부터 차례를 밟아 마지막 쪽까지 이어가기를 바라지만 꼭 그렇게 할 수고를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원고를 쓰는 과정에 많은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책으로 꾸리는 과정에서도 역시 다른 전문가들의 손길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20년 이상 만남을 재촉하고 때론 진지하게 또 때론 낄낄거리면서 아파트의 일상과 단지공간에 대한 의견을 나눈 공동주택연구회의 회원들에게 진 빚이 적지 않다. 궁금하거나 미처 생각이 따라가지 못한 주제들에 대해 동학들의 진지한 해석과 조언은 필자의 생각을 고치고 다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과 더불어 썼던 논문 몇 편이 이 책의 커다란 줄거리를 구성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이들에게 받았던 만큼 이상의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다.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 대학원생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난 수년 동안 서울의 주거문화연구’, ‘한국공동주택계획사’, ‘하우징 디자인론등의 세미나 과정을 통해 필자가 궁금하게 생각한 사실과 상황에 대해 믿을만한 자료를 찾아주었고, 책에 담긴 도면과 통계자료들도 만들고 확인해주었다. 전문가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다독였던 사탕발림이 그들에게 엄연한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적지 않다.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된 @urban_lab은 편집자와 더불어 이 책의 최초 독자가 되었다. 아니 최초 독자라기보다는 초고의 검열자라 불러야 마땅할 정도로 글쓰기 과정의 조언자로서 제 몫을 다 해 주었다. 꼭지마다 채 원고를 마무리하기 전에 글에 담아야 할 몇 가지 구체적 사실 확인이 필요할 때면 도움을 청했고, 언제나 웃는 낯으로(사실은 트위터의 DM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용기를 북돋는 이모티콘으로) 어려운 청을 선뜻 들어주었다. 이와 함께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원고를 읽은 독자로서의 느낌을 매우 조심스러운 투의 글로 되돌려주었다. 이로 인해 다양한 법률조항과 사실 확인이 제법 재미를 갖는 글로 읽히게 되었다. 따뜻한 감사의 말을 이 자리를 빌려 전해야 마땅하고 당연하다.

 

출판계약을 한 후 거의 3년이 되도록 초고조차 받지 못했던 도서출판 마티에는 마음의 빚을 크게 졌다. A4 용지 한 장에 끄적거린 책의 대강을 읽은 다음 날 출판계약서를 들고 연구실을 찾은 정희경 대표의 열성과 오랜 기다림 그리고 원고를 책으로 번역하는 재능은 감히 필자가 따라 할 수 없는 부러운 능력이다. 거칠고 딱딱한 글이 제법 읽을 만한 꾸러미로 거듭난 것은 전적으로 도서출판 마티의 여러 사람들 덕이다. 교정과 교열, 편집과 디자인, 제작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성심으로 함께 한 마티의 모든 실무자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살구나무 아랫집에서

박철수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