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공간산책2010.12.23 21:43

2004년 말에 주목해 보아야 할 중요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론가 박민호에 의해 언급된 작가 이청해의 소설집 [악보 넘기는 남자]는 작품해설이 달린 책이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문학상의 후보에 오른다. 물론 무슨 무슨 상의 후보에 올랐다 해서 그 작품이 진정으로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일까, 에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작품을 가려내는 일 또한 사람의 일이고, 그렇게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들은 늘 복잡한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집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까닭은 문학의 고유한 사회적 기능 가운데 하나인 ‘삶의 문제’를 눅눅한 눈길로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으로 나서 상당 부분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삶의 과정을 진솔하게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독자에게 준다는 점이다.

이청해의 네 번째 소설집인 [악보 넘기는 남자]에 흥미로운 제목으로 실린 <신용보증기금에서 온 사내〉는 이런 점에서 특히 오늘의 세태를 잘 묘사하고 있으며, 서로가 싸안아야 할 인간에 대한 따사로운 사랑의 눈길을 포근하게 전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가구관련 사업을 하다가 소위 1997년의 외환위기를 맞아 연쇄부도의 과정에서 파산하게 된 ‘최광일’이라는 인물은 파산 후 아내마저 집을 나가고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빚어진 온갖 유형의 빚에 쪼들리면서 나 이외의 모든 인물을 곧 나를 뜯어먹으려는 적으로 판단하는 독특한 인생관을 체득하게 된다. 빚에 몰려 도망을 다니다가 아무도 살지 않는 재개발지역의 누이 집에 몸을 기탁하지만 신용보증기금에 근무하는 사내가 찾아온다.

그 사내가 떠난 뒤 끼니를 해결할 요량으로 라면과 소주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우연히 신용보증기금의 사내를 만난 최광일은 보은에 위치한 사찰에서 한다는 부처님 점안식에 함께 가게 되는데 그와 한나절을 보낸 끝에 그 사내가 집을 나서며 뱉었던 ‘그런데..... 왜 이러고 계십니까?’라는 물음이 결국 최광일에게 물었던 질문인 동시에 그 사내 스스로에게 자문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삶을 동정하기에 이른다. 즉, 경제적 궁핍 과정에서 피해자로 등장하는 최광일이나 그에게 무언의 폭력을 행사하는 신용보증기금의 사내 모두 무언지 모를 폭력 앞에 위태하게 서 있는 인생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운명의 동반자인 셈이며, 이렇게 본다면 세상 사람 모두는 결국 같은 처지인 것이기도 하다.

작가 이청해는 이렇듯 이 세상에 나온 사람들이 모두 서로 다른 처지와 환경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은 껍데기만이 대비되고 있을 뿐 그 내용과 실체에 있어서는 모두 하나같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청해의 소설집 [악보 넘기는 남자]는 그런 입장에서 보자면 모두 연작소설인 셈이다.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나 혼자인 몸으로 고등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구지레한 원효로의 연립주택에 살면서 여전히 연극판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여성이나 그 본연은 동일한 것이며, 강남의 요지에서 부러울 것 없이 사는 ‘하나’나 그 대비적 인물로 그려지는 ‘성자’ 역시 같은 인간상인 것이다. 과연 ‘악보 넘기는 남자’처럼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는 모르지만 마치 만화처럼 그려진 소설집의 표지와는 달리 그 안에 담긴 여러 작품들은 고즈넉한 인간에의 관조를 그려내고 있으며, 결국 사람의 문제를 넉넉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러고 계십니까?」
사내가 최를 정색으로 바라보았다. 왜 이러고 있느냐니? 최는 눈을 치뜨고 멍하니 사내를 마주 보았다. 왜 돈을 벌러 나가지 않고 이렇게 웅크리고 있느냐고? 폐인처럼? 아니면 빚을 갚기 위해 왜 버둥대지 않느냐고? 뭐 하러 살고 있느냐고? 차라리 죽지 않고? 그 말인가?
사내가 시선을 비끼더니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까딱 목례를 보낸 뒤 현관문을 열고 사라졌다.
글쎄‧‧‧‧‧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사내가 사라진 현관문을 노려보며 최는 생각에 잠겼다. 정지된 자신의 인생에 사내가 돌멩이를 던지고 간 것 같았다.
인력시장‧‧‧‧‧ 거기엘 안 가본 줄 아는가. 소주 값, 라면 값마저 궁색해지면 누구나 그런 데라도 가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새벽 4시의 잠실 지하도, 어둑어둑한 마장동 골목에 왜 안 가봤겠는가. 산다는 것은 시시각각, 일거수일투족 돈의 소모를 필요로 한다. 새벽 인력시장엔 당장 한 품이라도 필요한 사람들이 우글부글 모여들었다. 그들에게서는 푹 뜸이 든 여물 솥 냄새가 났다.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새벽 불빛 아래 때깔 좋은 물건들이 순서대로 팔려 나갔다. 마흔이 넘었고 체격이 왜소하고 노동 경험이 없고 특별한 기술을 갖지 못한 최는 단순 노무나 현장 잡부로 분리되었고, 그 안에서도 최고로 물 간 생선이었다. 인터넷 인력 시장으로도 두루 다녀 보았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기대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주야간 신정․구정 안 가리고 일할 수 있습니다, 쉬지 않고 일합니다, 경험 풍부합니다 따위의 간판을 내건 녀석들이 수십만 명씩 대기하고 있었다. 스물셋, 스물하나, 스물여섯, 갓 제대한 녀석들부터 고등학생, ‘중딩’까지 허다했다. 카드 빚에 몰려, 용돈이 궁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음 학기 등록금을 위해 그들 모두 절실했다. 그들은 펄펄 살아 있었다. 육체적 힘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었다. 고렇다고 해서 다른 병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최는 어떤 고용주에게도, 단 한 번도 선택되지 않았다."

from 이청해, <신용보증기금에서 온 사내>, 
[악보 넘기는 남자], 문이당, 2004년 11월, 209~210쪽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