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집_일기2017.04.24 15:52

봄의 시작을 3월이라 한다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울의 한 해를 보내고 조금은 다른 우울로 맞는 것이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봄인데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아무래도 집 이야기를 펼치는 곳이니 그동안 SNS에 끄적거린 내용들을 다시 훑어보게 된다.

 

3월을 맞으며 처음 한 일 가운데 하나는 포천에서 그동안 맘에 품었던 벚나무 한 주를 들여온 일일 게다. 언젠가 경기도 백암 일대를 지나다가 마주했던 능수벚나무 한 그루가 너무 좋아 보여 그동안 마음에 담았던 일인데 우연히 경기도 포천에서 죽전의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소위 45일로 정해진 식목일이 나무를 옮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시절이고, 그보다 한 달은 앞서서 몸을 움직여야 제철에 꽃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조금은 서둘렀다.

 

 

집으로 옮기기 위해 정한 날짜는 아무래도 토요일이 나을 듯해 정한 것이 2017311. 마침 하루 전인 310일에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 선고가 헌법재판소에서 이루어진 까닭에 이름하여 탄핵기념식수가 되었고, 관리번호는 ‘20170310’으로 정했다. 옮기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5톤인지 8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크레인이 부착된 대형 트럭이 집 앞에 도착하였고, 잔가지 몇 개를 잘라낸 뒤 마당 한켠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른 아침부터 집으로 온 두 분이 벌써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 나무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요리조리 자리를 잡는 아내의 의견에 따라 나무를 옮기고 물을 댄 뒤 혹시라도 바람에 흔들려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을 염려해 세 곳에 앵커를 묻고 줄을 늘여 단단하게 고정하는 것으로 작업을 마치고, 잠시 동안이지만 바람결에 휘날리는 벚꽃을 그려보기도 했다.

 

마침 살구나무집에서 처음 봄을 알리는 노루귀도 만개한 날이었고, 수선화도 거친 땅을 뚫고 올라와 꽃대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살구나무집의 봄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창밖 나른한 햇살을 받는 곳에 자리한 빈카미아너는 이미 꽃을 우기 시작했고, 어느 것보다도 생명력과 복원력이 강한 앵초며 물망초 등도 이파리를 키우고 그 안에 작은 꽃대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봄에 무엇보다도 기다려지는 것이 있으니, 이름하여 인디언 앵초이다. 작년 봄 조금은 늦은 봄에 양재동 꽃시장에서 세 촉을 사다가 심어두었던 것인데 올해는 이 가운데 하나가 촉을 퍼뜨려 얼핏 눈으로 보기에는 네 촉이 푸른 이파리를 만들며 설렘을 배가시킨다. 326일에 본 모습인데 416일에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꽃잎을 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지만 자연의 신비와 그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을 감탄하기에 절대 부족함이 없다.

 

49. 마당으로 옮긴 능수벚이 서서히 꽃잎을 열고, 서재 마당 바깥에 늘 늠름한 모습으로 살구나무집을 지키는 오래 묵은 살구도 엄청난 꽃을 피웠다. 살구나무집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바야흐로 봄의 절정에 진입하는 모습이다. 앵초며 할미꽃도 특유의 빛깔을 가진 꽃을 피웠고, 능수단풍 아래 작은 꽃밭은 이제 형형색색의 봄꽃들이 저마다 제 자랑이 한창인 풍경을 연출했다.

 

 

또 무슨 일을 꼽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고양이 얘기를 빼먹을 뻔 했다. 고양이 얘기는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10월인가, 윗집에서 살던 순이가 얼룩고양이 세 마리를 데리고 살구나무 아랫집을 찾았다. 아직은 젖을 물려야 해서 홀쭉해진 어미가 가엾다 여긴 아내가 새끼들을 돌보게 되었고, 추위를 피하도록 여러 궁리를 했고, 봅을 맞아 세 녀석 모두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다시 집으로 데려온 녀석들인데 이제는 아주 편안하게 서재마당이며 거실마당을 차지하고는 게으름과 어리광으로 자연스럽게 마당 식구가 된 것이다. 등에 검은 털이 거의 없는 녀석은 도도’, 그리고 검은 털이 두 덩어리 정도 올려진 녀석이 레레’, 마지막으로 등에 길게 검정 털을 얹은 녀석의 이름이 미미. 아침저녁으로 사료를 준 덕에 이제는 식구들만 보면 쫓아와 다리에 등을 부비는 등 재롱을 부리고, 주로 서재 마당에서 생활하지만 휴일이면 마당에서 두런거리는 식구들 소리가 궁금한 지 마당으로 와 잡초를 뽑는 식구들의 모습을 호기심 담긴 눈으로 쳐다보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달라는 듯 고양이 울음소리를 여러 번 내다가 다시 서재마당으로 돌아가곤 한다. 덕분에 집안에서 생활하는 강아지 마루가 호흡이 거칠어지고, 샘을 내는 풍경을 연출한다. 사람들의 눈으로는 평화로운 풍경이라 하겠지만 녀석들의 눈에는 아마도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눈치 전쟁이 심각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올해도 예외 없이 살구나무가 만개한 집 풍경을 촬영했다. 마치 꼭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살구꽃이 만개하면 서재 밖의 높은 곳에 올라 뷰파인더에 그득 풍경을 담는 일을 잊지 않은 것이다. 작년에는 너무 많은 살구가 달려 잼도 만들고, 집을 드나들면서 자주 주워 먹었던 살구가 올해는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사람들의 말처럼 해걸이를 한다면 올해는 작년과 달리 열매가 거의 달리지 않거나 달려도 아주 조금 열릴 것인데 매년 문밖에 퍽퍽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살구 낙과 소리를 못 들을까 아쉬운 마음도 적지 않다. 물론 기다려보아야 할 일이기는 하다.

 

 

415일 경에는 튤립이 만개하였고, 그 오묘한 빛깔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를 사랑초도 고운 자태를 드러내며 꽃을 피웠다. 붉은 색과 흰 색의 앵초와 신비스러움으로 제 몫을 다 하는 물망초도 드디어 만개하기 시작하며 마당의 우울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금요일 늦은 저녁이면 퇴근한 아이들과 더불어 마당으로 나서 밤 벚꽃놀이를 흉내 내기도 했다. 밤에 흐릿한 조명을 받아 보는 벚꽃이 왜 좋은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란 곳에서 뿌리가 뽑힌 채 전혀 생소한 곳으로 옮겨 심은 능수벚이 꽃을 피우는 일이 정말 대견스러운 시간이었다.

 

 

봄날은 평화로운 시간이지만 겨울을 이겨낸 우울이 함께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봄날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과 무력감이 자리하지만 고양이들의 느긋함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봄이 조급하고 우울하다지만 그것 역시 세상의 흐름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갈 순간이라는 것을 믿어본다. 라일락 향기에 그 우울을 떨쳐보자. 봄날이 지나는 시간이다. 며칠 전 동트기 전 잠이 깨 마당에 나섰더니 라일락 향기가 가득한 마당 한가운데로 벚꽃 잎사귀 하나가 이리저리 날리며 떨어지는데 휘파람 새소리가 고요를 뚫고 들렸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반달이 몸피를 부풀리는 시간이었는데, 이게 바로 봄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이끼용담과 공조팝이 필 시간이다. 더불어 모란이며 작약도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으니 또 그 녀석들도 기다려진다. 무언가에 쫓긴다는 것은 달리 말해 기다림이라고 해야 옳다. 마당 귀퉁이의 흰꽃 배롱도 매끈한 수피를 뚫고 붉은 색 줄기를 내보내기 시작했고, 공조팝 가지 끄트머리는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봉오리가 맺혔다. 흰 꽃 모란은 큼지막한 다섯 송이가 벌써 무게를 더하고 있고, 자줏빛과 연분홍을 자랑하는 작약은 쭉쭉 키를 키우는 시간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니 시간도 그만큼 지나리라. 세상 어느 곳이라고 우울이며 걱정이 없겠는가. 주어진 시간을 만끽하고 그 안에서 조금 더 느긋해진다면 봄날의 화사한 꽃들처럼 인생을 반추할 시간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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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