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2.01.10 15:38

오늘은 살구나무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을 맞는 날이다. 조금 더 비장하게 말하면 이제 이 집에서 살아야 할 정해진 시간이 있다면 그 중에서 1년을 까먹은 셈이 되기도 한다. 어제 늦은 밤 아내와 함께 마당에 나서서 살구나무집에서의 지난 1년이 참 빠르게 지난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누었으니 우리 내외도 객관적으로 나이가 들었다고도 하겠다.

지난 1년은 빠르게 지나기도 하였지만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고,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식구들 모두가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서는 여간 다행이고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혹한의 겨울 한복판에 새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행여 관리비가 감당하지 못할까 염려되어 아래위층을 오가며 난방 밸브를 줄이고 전등 끄기를 일삼았던 기억부터 따뜻한 봄날 양재동과 과천, 모란시장을 풀방구리처럼 오가면서 야생화와 자잘한 묘목을 심던 일, 만개한 살구꽃 아래서 꽃비를 맞으며 즐거워했던 날들, 퍽퍽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살구를 먹으며 여름을 즐긴 일 그리고 맞이한 낙엽과 단풍의 계절과 다시 맞은 추운 겨울.

조금은 긴장했던 이웃들과의 만남과 이제는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위아랫집과 옆집의 따뜻한 이웃들. 우리집 오시기를 늘 고대하시는 여든 다섯 잡수신 노모의 편안한 볕쬐기 풍경 등은 그저 고즈넉한 한 폭의 그림으로 가슴에 남아 있으며, 집 안팎을 뛰는 강아지의 모습에서 ‘잘했다’ 싶은 생각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하였다.

살구나무집을 다녀간 지인들의 부러움과 시샘에 즐거워했고, 살구나무집을 찾겠다는 분들의 성화도 마음을 들뜨게 했던 지난 1년이었다. 지난 1년 동안의 여러 가지 일들을 묶은 책이 <아파트와 바꾼 집>이라는 이름의 책자로 세상에 나왔을 때에는 이 일이 단순히 바람직한 집짓기의 일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운동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 또한 적지 않았다. 건축가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살구나무집을 설계한 건축가 조남호 선생에게 진지한 건축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겠다는 심정에서 여러 불편을 무릅쓰고 집을 찾는 분들의 인터뷰나 기사 작성에 도움을 주려고 했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대중 앞에 나서서 건강한 집짓기의 교훈이나 경험을 전파하느라 나름 애를 쓴 시간이었다. 마침 살구나무집 1년을 맞는 오늘 동녘출판사는 <아파트와 바꾼 집> 2쇄 인쇄를 결정하였다는 소식이다.

무엇보다 새 집 생활 1년을 맞으며 이렇다 할 문제 하나 없이 아파트 생활에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연착륙하도록 도움을 준 모든 분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무엇보다도 억눌렸던 욕망을 끄집어내게 하고 집터 고르기에서부터 더불어 살기에 이르는 모든 어려움을 도와주고 삶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 박인석 교수, 자금 마련에 곤혹스러움을 느낄 때 흔쾌히 집을 내어주신 동료 교수님, 살구나무집의 설계자인 건축가 조남호 선생과 솔토건축의 식구들, 시공자인 (주)에스화이브 김봉섭 사장과 집짓기의 모든 공정에 열과 성을 다 하신 많은 현장의 작업자들, 공사 현장의 온갖 불편함을 감내한 지금의 이웃은 모두 내게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한 조력자들이다. 살구나무집 생활 1년을 맞은 감상이라면 모든 것이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평온의 일상을 만든 아내와 아이들이 오늘처럼 언제나 곁에서 빙그레 웃으며 행복한 자유인으로 생활하는 날들이 지속되었으면 싶다. 살구나무집 1년의 생활에 대한 감상이 자못 감상적이 되고 말았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10.29 21:18

10월 7일 취재기자와 사진작가가 함께 다녀간 살구나무집 기사가 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 2011년 11월호에 실렸다. 기사 제목은 [조남호씨가 설계한 집_’아파트와 바꾼 집‘에서 더불어 살기]. 인터뷰에 응했던 목적에 맞춰 기사 제목이 뽑혔으니 일단은 만족. 내용도 크게 나무랄 것이 없으니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내용이다.


일전에 건축가협회 기관지인 <건축가>와 <건축문화> 그리고 <와이드>에 살구나무집이 실리면서 잡지를 통한 살구나무집 알리기가 모두 끝났다고 선언했는데 <행복이 가득한 집> 덕분에 그 말은 이미 허언이 되고 말았다. 사실 건축 전문잡지가 아니어서 인터뷰와 사진 촬영 요청이 왔을 때 조금 망설인 끝에 건축가에게 의견을 달라 했더니 웃으며 혹시 설계수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하는 바람에 건축가의 일감 늘리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응하겠노라 잡지사측에 얘기를 전했는데 마침 꼭지의 제목도 “건축가가 지은 집”으로 구성되었고, 기사의 말미에 건축가 조남호 선생의 사진이 멋지게 들어 있으니 의도한 바 그대로 일이 꾸려진 셈이다.


더구나 제목과 기사의 끄트머리에 ‘아파트와 바꾼 집’이라는 단어가 거푸 등장하니 11월 말 경에 출간 예정인 <아파트와 바꾼 집>을 알리는데도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으면 싶은 마음이다. 물론 책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것 보다는 그 책에 담긴 나와 윗집 친구의 집에 대한 생각과 주장이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5.25 15:57

박사학위논문 심사가 겹쳐 모 대학교에서 오전을 보낸 뒤 다시 서울대학교로 이동하여 심사과정을 마치니 저녁 어스름이 짙어지는 오후 5시 30분. 다시 서둘러 양재동의 새건협 사무실로 향하는데 새로 바꾼 스마트폰에서 간헐적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확인해보니 크고 작은 일상의 일들이 메일과 문자로 날아들었는데 그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이 솔토건축에서 보내온 메일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다른 메일은 잘 열려 보이는데 유독 솔토건축의 메일만이 열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이 솔토의 이상목 실장에게 전화를 거니 어제 전화를 통해 알려준 조명기구 가격 인하분 100만 원을 대문과 현관의 디지털 도어와 보안시스템 증액분에서 삭감하여 추가적으로 다시 70만 원을 지불해야 하며, 며칠 동안 현장에서의 변화과정을 알려주는 내용과 더불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언급했던 신축주택의 강아지집 사이즈에 관한 물음이라는 것이었다.

운전하는 동안 한 통화라 자세하게는 언급하지 못했지만 알았다고 한 뒤 어제 아내가 다시 요청한 대청초등학교에 면하는 옹벽의 트인 부분에 대한 철제난간 추가 설치를 다시 말했더니 복잡한 심경으로 보이는 대답이었다. 하긴 현장에서는 건축공사비에 신경이 날카로운 상황이고, 건축가는 이런 사실을 알지만 좀 더 나은 건축을 위해 건축주와 더불어 이것 저것 요청이 쇄도하는 상황에서 건축가가 가지고 있던 생각에 자꾸 새로운 요청을 건축주가 보태니 난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아무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양재동으로 향하는데 이상목 실장이 보고를 했는지 다시 조남호 소장의 전화가 걸려 왔다.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건축주로서 건축가의 생각에 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하는 주택으로서 공간을 이용하는 건축주의 심리적 안전성도 고려해 달라면서 다시 철제난간 요청을 했더니 역시 이상목 실장과 비슷한 느낌으로 한 번 생각해보겠노라는 대답이었다. 마지막까지 새로운 의견이나 요청이 있어 일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닌지 무척 미안한 마음이라면서 전화를 마쳤다.

양재동 회의에서 만난 P 교수는 날이 추워져서 걱정이라면서 어제 저녁 퇴근길에 현장에 들렀더니 밤 8시가 되었는데도 불을 환히 밝히고 공사가 계속되는 모습을 보았다면서 외부 공간 일부에 타일을 붙였는데 영하 10도를 가리키는 기온에 잘 견딜지 걱정이라면서 자칫 잘못하면 내년 봄에 다시 타일공사를 해야 할 판이라고 걱정이 대단하였다. 아울러, 통인가게에다가 이사비용 견적을 부탁했고, 어제 현장에서 자신은 디지털 보안장치 추가 비용에 대해 이미 말을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번 주 토요일은 둘이 함께 가야할 혼사가 있어 그 시간을 염려하여 죽전현장에서 오전 10시에 만나 현장을 둘러본 뒤 11시 30분경에 P 교수의 차를 이용해 함께 혼례식에 갈 것을 약속하고 회의를 마쳤다.

늦은 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오늘 솔토건축과 나눈 얘기를 전하고, 이제는 현장도 신경이 곤두 선 상태이고, 건축사무소 역시 막바지 공사를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은 모양이니 철제난간 문제도 이 정도에서 그 조치를 두고 보자고 의중을 전하였다. 아내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철제난간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뒤 강아지를 부르면서 ‘너도 이제 새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면서 새 집으로 들어갈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늦은 밤 확인한 솔토건축의 이메일은 이미 서로 인지한 내용 그대로를 담고 있었다.

보낸 사람 솔토건축 soltos@unitel.co.kr
받는 사람 cspark@uos.ac.kr
받은 날짜 2010년 12월 15일 10시 42분
제 목 죽전주택_출입보안관련 추가금액 등 1215

박철수 교수님
솔토 이상목 실장입니다. 출입 보안 관련하여 추가금액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EZON 출입보안시스템으로서 최초 견적은 174만 원이었으나 다시 견적한 결과 170만 원으로 낮아졌고 알토조명의 가격인하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비용 100만 원이 줄어 추가 비용 합계는 70만 원입니다. 이상입니다.
P
교수님은 어제 늦게 현장에 방문하셔서 추가 금액 관련 말씀 별도로 드렸습니다.
현장의 식수계획은 땅이 얼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만, 금요일에 할 예정이며, 현재, 대문간에 오배수관을 모두 연결하고 땅 정리를 완료한 상태입니다.
농담 반 진단 반으로 말씀드린 강아지 집 제작과 관련해서는 바닥 면적을 45x35cm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크기에 관한 의견을 주시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소식은 오수배관 연결이 모두 완료되고 외부공간의 땅 정리가 모두 끝났다는 것이다. 그동안 적지 않게 마음이 쓰였던 오배수 문제가 모두 처리된 셈이니 골칫거리 하나가 없어진 셈이고, 지난 번 현장소장의 말로는 자재 반입 역시 모두 마쳤다고 하니 이제부터는 일의 속도만 남은 셈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걱정하던 조명기기 역시 지난 주 현장에서 확인한 것처럼 모두 현장에 반입되어 있으니 내부공사가 진척을 보일 수 있고, 외부는 또 외부대로 장애요인이 없어졌으므로 현장 내부에서 일의 능률만 올리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생각2011.04.18 11:49
4월 12일 한복디자이너 이혜순씨가 한복을 입고 신라호텔 식당에 갔다가 직원으로부터 한복이 오가며 식사하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치맛단이 밟히거나 다른 손님들이 거추장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어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식당 출입에 대해 제지를 당한 뒤 사건이 불거지면서 결국 신라호텔측의 공식 사과로 이어진 사건은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대부분의 반응이 '황당하다'는 것이었고, 일부 인터넷 매체에서는 울분을 토하기 전에 과연 우리가 한복을 그동안 아끼고 존중했는가 라는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이 글은 한복을 입은 사람이 한국의 대표적인 호텔 식당에 출입을 제한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공분을 토로하거나 거대기업 삼성의 기본적인 가치관을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 사건은 그야말로 웃기지도 않은 '황당사건'으로 정리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사건의 배경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풍조를 좀 더 성찰적으로 살피고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물론 다른 분야나 영역에서도 그 상황과 장면만 다를 뿐 유사사건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일지배하다. 건축계로 불리는 사회로 눈을 돌려보면 허구헌 날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무슨무슨 명품 디자인 혹은 명품 도시를 만든다는 발주자측의 의지는 바로 이어서 외국인 디자이너나 건축가의 우선적 참여를 보장한 뒤 한국 국적의 디자이너나 건축가는 그렇게 지명된 외국인 건축가들을 모시고, 그의 아이디어에 종속되어 협의와 인허가 행위, 실시설계 도면을 만들도록 강제하는 것이 그것이다.

공공주택 공급기관의 대표젹인 LH의 경우만 하더라도 일단의 외국인 건축가를 먼저 지명한 뒤 한국의 설계사무소에 대해서는 그들이 지명한 건축가와 공동으로 설계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일감을 찾지 않으면 안되는 한국의 설계사무소는 지명된 건축가들과의 짝짓기를 위해 동분서주한 뒤 억지로 짝을 이루어 설계작업을 하고, 공모에 필요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한 뒤 당선이 되면 다시 지난한 협의과정과 인허가 과정을 거쳐 설계를 완성한다. 시공과정에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설계변경 역시 국내의 사무소가 도맡아 하지만 일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책임보다는 권리만을 강조하는 외국의 건축가와 설계사무소의 태도와 발주자측의 공사 속도 내기 사이에서 한바탕 곤혹을 치루기 일쑤이다. 어렵사리 일을 마친 뒤 각종 언론매체와 건축잡지 혹은 일간신문의 부동산 섹션에는 그렇게 힘들인 국내의 건축설계사무소 이름은 당연히 사라지고, 기본구상이나 기본계획 정도에 그친 외국인 건축가의 이름이 '세계적인'이라는 형용어를 붙인 채 설계의 주체로 엄연히 유통되는 쓰라림을 맛보아야 한다. 이런 류의 사건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며,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한반도라는 지리적 공간영역에서, 한국인의 정서가 유전적으로 내재된 건축가나 디자이너가 '우리의 것'을 만들고자 하는 일념이나 정성은 비싼 비용을 들여 주마간산격으로 상황을 살핀 뒤 그들의 생각과 건축관행, 작업의 습속으로 만들어지는 '세계적인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건축산업 수출전략'에 의해 깡그리 무시되는 꼴과 다름 아니다. '우리 것'이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말들이 허언임을 재삼 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뼛속까지 우리의 것이 중요하고 강조할 필요도 없는 공리임을 자각하기 전에는 이러한 황당사건들이 반복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 땅에서 우리의 흔적과 땅의 기억을 온전히 담아보려는 건축가들의 노고는 아시아에서의 일감 찾기라는 매우 실질적인 이유와 외국인 건축가에게는 특별히 느슨한 각종 건축행위규제의 특혜 속에서 실험과 시도를 해보겠다는 외국인 건축의 욕망 분출 의지에 그 힘을 잃는 것이다. 저급한 문화의식과 우리 것의 소중함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는 발주자들의 만행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명품 조급주의와 전시행정 그리고 반문화주의가 결합하면서 만들어 낸 이질적 풍경의 속내가 바로 신라호텔의 '황당사건'을 일으킨 주범인 것처럼 건축계의 크고 작은 폭력 역시 '황당사건'이라고 하겠다.

목적하는 바를 잘하는 집단이나 개인이 그 일을 하도록 하면 그만이다. 그 목적하는 바의 옳고 그름을 떠나 외국인 건축가의 경연장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외국인 건축가들이 초청되어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면 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이 땅에서 벌어지는 건축행위가 '세계적인 건축가'로 조작된 사람들의 아시아 시장 일감으로 전락하는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미 이 땅에도 훌륭한 건축철학과 우리 것에 대한 내리사랑이 유전자로 각인된 많은 건축가들이 있으며, 건축학교에서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학생들이 우리의 공간환경에 대한 사랑의 방법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복 차림으로 신라호텔 식당에 들어섰다가 봉변을 당한 한복 짓기 장인인 이혜순씨는 바로 이 땅의 수많은 건축가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오늘도 폭력적인 발주자들로부터 크고 작은 봉변을 당하고 있으며, 호텔이라는 하나의 권력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저급한 문화주의로부터 뭇매를 맞는 것과 다름 아니다. 우리 것에 대한 존중은 비단 한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2.21 11:55

한 달 동안의 유럽여행 중에 아내 혼자 꾸려 이사한 잠실의 아파트에서 하루를 묵고 급한 마음에 죽전 현장에 도착하자 미리 정한 약속시간을 30분이나 넘긴 10시 30분이었다. 현장에는 P 교수 내외와 건축가 조남호 선생 그리고 김봉섭 사장 등이 모두 자리하고 있었으며, 허가과정 등을 책임졌던 솔토건축의 이상목 실장도 인부들과 더불어 여러 가지 의논을 하는 모습이었다. 출국 전에 보았던 풍경과 크게 다른 점은 1393-7번지의 지붕틀 목조공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저 약속한 것처럼 외벽에 붙일 파벽돌을 고르는 의논이 시작되었다. 윗집의 외벽 귀퉁이에 쌓아놓은 벽돌의 종류는 모두 6가지였다. 짙은 회색으로 보이는 전벽돌을 제외하고는 모두 붉은 색 계열의 벽돌이고, 이들이 현재 평택항에 반입되어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벽돌이라는 설명이었다. 처음 벽돌을 보는 순간 가장 왼편의 것과 세 번째 벽돌이 눈에 들었는데 조남호 선생의 의견은 좌측 처음의 것이 좋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건축가
조남호 선생 역시 세 번째 것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평택항에서 직접 벽돌을 살펴보니 강도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것보다는 벽돌의 각이 많이 무뎌진 상태여서 본인의 건축을 구현하는데 조금 망설이게 하는 것이었고, 우연히 발견한 처음 것이 강도 측면에서나 자신의 건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좋을 것으로 판단하였다는 것이다. 즉, 자신은 이번 설계를 통해 외벽 자체가 사람들의 눈에 들거나 하는 것보다는 건축이 전체로서 판단되기를 희망하며 그런 점에서 보자면 약간은 드러나지 않는 색조가 좋을 것이며, 전체적으로 스토커와 어울리면서 징크가 지붕을 가볍게 눌러주는 느낌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재료를 보는 순간 이것을 선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P 교수 내외와 우리가 큰 무리 없이 동의하였다. 아내는 너무 흐릿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모습이었지만 다른 사람들 모두가 건축가의 뜻대로 하도록 하자는 논의에 이르자 전체 의견을 따르겠다는 말을 함으로써 외벽재료 선정은 쉽게 이루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재료는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러시아 군인들의 막사에 사용하던 것이 반입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집에만 설치되는 소위 ‘한식담장’은 두 번째 벽돌을 길이 방향으로 켜서 생기는 타일 모양의 재료를 눕혀서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즉, 좌측 두 번째 벽돌을 슬라이스로 켜서 사이사이에 몰탈을 채우면서 켜진 재료를 눕히는 방식으로 벽을 만들어서 가로 방향으로 불규칙한 패턴으로 재료가 드러나는 형식을 권하였고, 평소 내가 가졌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그렇게 할 것을 주문하였다.
 
논의의 대강을 마치고 
윗집과 아랫집을 자유롭게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윗집도 출국 전과는 달리 골조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이제는 지붕틀 공사가 시작되기 바로 전의 모습이었고, 내부 계단은 우리집의 경우와 달리 콘크리트 타설이 다 되었고 거푸집 제거를 하면 골조 공사가 마무리될 모습이었다. 외부계단은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거푸집 공사중이다.


우리집은 본격적인 지붕틀 목조공사가 시작되는 모습이었다. 소위 대들보가 2층 지붕에 걸렸고 양방향으로 서까래를 펼치는 공정이었는데 이 광경을 보고 있는 내 옆으로 조남호 선생이 오더니 ‘잘 보아두시라’는 것이었다. 지금 이 때까지만 목구조가 보일 것이니 잘 보아두라는 것이었다. 지붕틀 공사가 마무리되면 서까래들 사이에 그 두께 만큼의 단열재가 채워지고 그 안으로는 합판이 붙여지고 밖으로는 징크가 덮이기 때문에 목구조의 강한 힘과 리듬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최초 설계과정에서부터 현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보아 온 아내 역시 건축가의 언급이 무슨 뜻인지를 잘 이해한다면서도 다소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조남호 선생은 실내에서 힘있는 목골조가 보이게 하는 것은 괜한 치장으로 나무를 덧대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였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경골목조가 지붕선의 꼭지선을 이루는 모습을 보자 비로소 집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되메우기가 거의 이루어진 마당에는 본격적인 목공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재료가 수북하게 쌓여 있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나이 지긋한 분들이 1층 거실 부분에서 이상목 실장과 그림을 그려가면서 목구조 공사 프로세스를 의논하는 모습이었는데 모두들 진지한 표정이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아랫집 목공사가 거의 마무리되면 바로 이어서 윗집 목공사도 이어질 것으로 판단되었다. 아직 외벽 단열재 위에 덧대지는 타이벡 방수재는 붙이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보였다.


2층
의 아이들 방 상부에 설치되는 목구조 설치공사는 설계에 반영된 다락방도 함께 만드는 작업이어서 다소 공정이 까다로울 것으로 판단되는데 늦더위와 장마전선에 의한 폭우 등이 염려된다는 현장소장의 설명이었다. 아직은 푸른 하늘이어서 폭염이 염려되는 정도지만 일기예보에 의하면 내일부터는 폭우가 경기도 일대에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걱정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된다면 나무가 썩지 않겠느냐는 걱정이었고 함께 둘러보던 이상목 실장이 저녁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천막을 덮어 비를 가릴 것이라고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큰 아이방
을 둘러보던 아내는 지난번과 달리 방 남측에 붙은 발코니가 상당히 넓어 보인다면서 만족을 표하자 옆에서 일하던 분이 여기에 보태 공사가 마무리되면 훨씬 더 커 보일 것이라는 말씀을 건네주었으며, 실내에 마련된 1층과 2층의 욕실에는 기본적인 배관설비가 진행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1층과 2층의 지붕틀과 함께 앞으로 공사가 진행되면 볼 수 없게 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바로 2층 큰아이 방의 발코이가 그것인데 지금은 1층의 식사공간에서 올려다보면 돌출된 모습이 보이지만 1층 지붕틀이 만들어지고 징크가 씌워지만 내부공간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 되는 것이었다.


반적으로 공정은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최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현장소장의 설명이었다. 급히 이사를 하고 주민등록을 아직 어디로 옮길 지도 결정하지 못한 아내가 그럼 늦어지는 것이냐고 묻자 이런 경우를 가정해서 원래 한 달 정도의 여유를 더 잡아서 10월 말이라고 얘기한 것이라면서 공정표를 보여주면서 10월 한 달 동안의 마무리 공정이 바로 여유 시간을 잡은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라면서 10월 말에 끝내야 겠다는 의지를 거듭 보여주었다.

아직
몇 가지 결정하지 않은 사항으로는 두 집의 서측 외부마당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와 두 집 사이의 경계부 처리 문제 그리고 지하수를 어디로 어떤 방법으로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라면서 오늘이라도 결정이 가능한 것이 있다면 공사 진척도를 당기기 위해서라도 의논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남호 선생의 언급에 우선 두 집 사이의 경계 처리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문제에 대해 건축가가 가지는 기본적인 생각은 두 집을 무 자르듯 옹벽으로 갈라놓는 것은 배제하자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아니라면서 마당을 만들기 위해 설치한 윗집의 높은 옹벽 부위는 지금 상태에서 그대로 두고 나머지 동서 방향의 옹벽은 높이를 많이 낮추되 시각적으로는 충분히 구분되고 이용면에서는 공용의 마당이 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원칙적인 설명에 이어, 두 집 사이의 레벨차이가 80cm 이므로 서측 단부는 같은 레벨로 하고 아랫집의 서재 바깥마당에서 목재 계단으로 4단 정도를 오를 수 있도록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다.


, 아랫집의 서재 바깥마당은 평평한 상태로 해서 윗집의 작업실 앞마당보다 80cm 낮도록 하고 그 레벨이 그대로 북서측 단부까지 이어진 뒤 아랫집 북측 외벽으로 이어지도록 하지만 그 폭은 외벽에 생기는 습기를 말릴 정도의 폭으로 하고 북서측 모서리 부위로 4단 정도의 계단으로 오르도록 한뒤 그곳에서 다시 아랫집 북측 외벽을 따라 4단 정도를 동측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두 집의 대지 경계가 만나는 서측 모서리를 평평한 공용마당이 되도록 하자는 제안이었고, 각자의 의견교환을 거쳐 그렇게 하도록 결정하였다. 김봉섭 소장은 이 결정에 대해 다른 무엇보다도 기뻐했다. 왜냐하면 건축주와 건축가가 합의를 하였기 때문제 자신은 그 결정을 존중해서 시공을 하면 되기 때문이라면서 아주 어려운 결정 하나가 이루어졌다고 좋아라 했다.


다음
은 윗집의 옹벽 처리 문제였다. 현재 높이 쌓아올린 거푸집은 1번지의 마당을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것이어서 윗집의 작업마당과 아랫집의 북측 오픈 스페이스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의논 끝에 현재의 높은 옹벽은 지금의 상태에서 마무리를 하고, 그 지점부터는 윗집의 작업마당 레벨로부터 120cm 정도의 높이로 아랫집의 2층 창문 서단부까지 쌓는 것으로 정리하였고, 그 지점으로부터 동측으로 60cm 정도 더 나아간 지점에서부터 동측 방향으로 아랫집의 뒷마당에 이르는 계단이 4단 정도 놓이게 되는 대안이었다. 건축가의 제안에 따라 참석자 모두가 흔쾌히 동의하였고 깁봉섭 소장 역시 대만족을 표시하였다.

마지
막 쟁점은 윗집과 아랫집의 경계부에서 용출하는 두어 군데의 지하수 처리 문제였다. 건축가와 현장소장의 의견은 그 부분은 마무리 공정에 해당하기 때문에 급히 결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이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정해 놓아야 할 것이라면서 현재로서는 자연스럽게 서측 단부로 흐르다가 공원부지의 물 처리 시설로 흘리거나 아랫집의 대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계단 측면을 따라 흘린 뒤 배수구로 이어가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현재 임기응변으로 처리하고 있는 방법을 좀 더 구체화한 뒤 이를 시설로 고정한다는 것이었다. 가벼운 의견교환이 있었지만 누구도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 이 문제는 건축가가 좀 더 시간을 두고 궁리하는 것으로 일단락 하였다. 자리를 파하기에 앞서 P 교수는 윗집 서측 마당의 처리 문제를 조속하게 마무리해야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모두 모인 드문 자리라는 점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오리역
근처의 남도미락으로 자리를 옮긴 일행은 흥겹고 유쾌한 식사를 하였는데 생태탕과 파전 그리고 삼합을 곁들인 점심식사를 잘 먹고 각자의 일상공간으로 돌아가는 자리에서 우리 부부는 국민은행 LH공사 지점에 들러 아파트 담보 대출금의 일부를 이미 오래 전에 갚았지만 서류상으로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내용을 말끔하게 정리하여 이를 증명하는 서류를 중계동의 부동산중개업소에 팩시밀리로 보낸 뒤 다시 잠실의 아파트로 와 아내를 내려준 뒤 근 한 달 만에 학교로 향했다. 학교로 가서는 이번 유럽 여행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은 바 있는 이미지 4장 정도를 골라 P 교수와 솔토건축에 보내주었다. 서측 외부공간의 처리는 일부 콘크리트 판석을 만들고 일부는 목재를 끼우거나 거친 잔디가 자랄 수 있도록 흙으로 메워두는 방식을 코펜하겐에서 보았고, 빗물을 잘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스톡홀름 교외의 단안한 교회 중정과 에스토니아의 탈린에 위치한 식민기억박물관의 중정에서 보았던 사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직은 공사가 진행중이긴 하지만 근 한 달 만에 찾은 현장은 이제야 비로소 집의 모양과 형태를 갖추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으며, 윗집의 골조공사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두 집의 형태적 조화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풍경2011.02.16 17:57
사실 이 방향에서 집을 바라다볼 기회나 경험은 당연히 적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구나무 아랫집의 풍경 하나로 꼽은 이유는 아직은 마른 가지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봄 소식과 더불어 우리 집 식구들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 줄 배롱나무 잔가자에 대한 매력 때문이다,


튼실한 밑둥으로부터 적당하게 자라 오른 줄기와 그곳에서 다시 나뉜 잔 가지들이 아주 수려한 모습으로 마당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만약 기다리던 봄이 와 푸른 얖사귀라도 늘어뜨리면 새로 지은 집의 동측면을 감상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에 아직도 잔설이 많이 남아있는 마당을 촬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실 분합문의 폭 전체를 데크공간으로 만들지 않고 굳이 1/3 정도에는 목재 널을 깔지 않은 이유는 거실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의 구성 때문이라는 것이 건축가의 설명이었다. 즉, 실내공간인 거실의 소파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면 바닥면의 확장으로 이해될 데크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밀식된 화초나 작은 수목들이 보이기를 희망했었기 때문이다. 건축물 사용승인을 받던 시기가 마침 겨울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때에서 마당은 아직 마사토를 얕게 깔아놓은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새 봄이 되었을 때 만나게 될 풍경을 미리 떠올리는 과정에서 마당의 일부는 자연스런 토양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살구나무 아랫집과 윗집은 건축적으로는 동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들이 유전적 동일성을 보이는 것은 구조체와 외장재의 사용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외장재는 파벽돌과 스터코를 이용하였는데 면의 구성 원칙은 간결한 도형 단위로 동일한 느낌의 질감을 주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조적부분과 스터코 부분이 주로 수직선에 의해 나뉘고 한 번 나뉜 단위공간에는 균질적인 재료가 씌워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살구나무 아랫집의 외피를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또한 대지 동측의 경계에서 바라보는 주택의 동측면이다.

배롱나무가 초록의 기운을 받아 서서히 빛깔의 강도를 높여갈 때 그 후면부에서 배경이 되는 회색의 스터코와 강한 대비색으로 작용할 파벽돌의 겹침은 살구나무 아랫집이 소박하지만 만만치 않은 색감의 조화를 이루어냈다는 것을 알게 해 줄 것으로 판단한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2.16 17:26

어젯 밤 너무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와 아내와 아이들에게 대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계단에 대한 경미한 설계 변경이 솔토측으로부터 제안되었고, 기존의 경우보다 나을 것으로 판단되어 이에 동의하였다고 설명하면서 솔토측에서 보내온 파일을 노트북에 올려 보여주었다. 식구들 모두가 좋을 것이라는 동의가 이루어졌는데 쟁점과는 별개의 다른 논란이 불거졌다. 다름 아니라 1층 서재 밖에 설치된 툇마루형 벤치가 고정식인지, 고정식이라면 앉는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이 콘크리트 구조물로 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었다.

아내는 고정식으로 하기 보다는 이동이 가능한 시설물로 하여 식구들의 편의와 계절의 쓰임에 따라 위치를 옮겨가면서 이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었고, 아이들 역시 아내의 의견에 동감하였는데 나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오래 전 조남호 소장의 설명 내용을 상기하면 그 벤치가 고정형이라는 점과 어제 보내온 스케치업 파일로 미루어보건대 지지체는 콘크리트로 보인다는 주장이었다. 또 다른 이견은 갈수기를 맞아 혹시 심을 수도 있는 마당의 잔디에 물을 주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마당 귀퉁이의 편리한 곳에 수도꼭지가 하나쯤 설치되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집에 있는 도면으로는 이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도면을 다시 펴 보면서 기계부문과 설비부문을 확인한 결과 수전설비가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식구들의 얘기를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지만 워낙 늦은 밤이어서 건축가와 전화로 의견을 나눌 수 없는 형편이어서 날이 밝으면 조남호 선생과 의논하겠다고 약속하고 잠자리에 들었었기 때문에 학교에 출근하자마자 이상목 실장에게 전화를 넣어 확인을 요청하였다. 이상목 실장의 말로는 서재 밖의 툇마루 모양의 벤치는 기본적으로는 목재를 이용해 제작할 것이며, 최초에는 고정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왕에 식구들의 의견도 있고 하니 그 문제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생각해도 될 문제라는 답을 주었다. 또한 마당에 수돗물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은 설계 과정에서 미리 고려하지 않았지만 클라이언트의 요청이 그러하다면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기 전 다시 한 번 서재 밖 툇마루 벤치의 이동가능성에 대해 고려할 것과 안마당에 수돗물 사용이 가능하도록 수전설비를 끌어다 놓을 것을 재차 요청하였고, 다시 조남호 선생에게 이메일을 통해 이상목 실장과 의논한 사항을 챙겨 줄 것을 재차 요청하였다.

보낸 사람 박철수 cspark@uos.ac.kr
받는 사람 솔토건축 soltos@unitel.co.kr
받은 날짜 2010년 06월 17일 14시 29분
제 목 조남호 선생님께
박철수 입니다.
오늘 오전에 이상목 실장과 의논한 내용이긴 합니다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차원에서 메일을 드립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 집 서측 서재 밖의 툇마루인데... 고정형 보다는 이동이 자유로운 형식이었으면 한다는 식구들의 의견이며, 다른 하나는, 마당에 수도가 하나쯤 인입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도면을 보니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잔디가 깔릴지도 모르고 혹시 물을 대야 하는 갈수기도 있을 것으로 보여 그리하였으면 합니다. 현장과도 적절하게 의견 나누시기 바랍니다.
박철수 드림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풍경2011.02.14 23:54
집의 설계과정에서 아내가 가장 고심한 곳 가운데 하나가 주방의 각종 설비시스템 배치 위치와 싱크대의 구성, 그리고 주방 보조공간에 대한 수납공간 구성 방식이었다. 필자가 이런저런 설명을 보태면 오히려 핀잔을 받기가 일쑤였던 까닭에 가급적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간을 꾸며보자'고 했고, 결국은 건축가의 의견이 대부분 받아들여진 곳이기도 하다.


현관을 통해 실내로 들어온 뒤 다시 오른쪽으로 90도를 돌면 동서방향으로 길게 구성된 보조주방 공간을 만나게 되고, 그 끝의 자작나무 합판 미닫이문을 열면 주방으로 이어지도록 만든 곳인데, 설계과정에서 아내가 불만족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음식물 쓰레기 등을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외부공간과 직접 통하는 출입구가 봉쇄되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별도의 드나는 문이 없는 상태로 건축공사가 마무리되었으니 지금 와서 해 보아야 괜한 투정이 되고 말아서인지 새 집으로 이사온 뒤로는 그런 불평을 들었던 적이 없다.

새 집을 지으면서 원했던 중요한 설계요구 사항 가운데 하나는 남아돌더라도 수납공간은 많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보조주방이라 이름 뭍인 이곳 역시 좌우 측으로 충분한 수납공간을 확보하였다. 바닥은 주방으로 이어지는 곳 모두를 타일로 마감했으며, 바닥에 난방이 되도록 설계에 반영해 줄 것을 요구해 그리 시공되었다. 원래의 천장은 남측 경사지붕에 만들어져 거실에 직접 채광을 하는 것이었는데, 보조주방이 별도의 창호가 없이 동서방향으로 길게 만들어지게 되면서 건축가 조남호 선생이 이를 북사면으로 옮겼고, 대신 거실 방향으로는 수벽 높은 곳에 유리 등으로 막히지 않는 창살문을 설치해 자연광이 보조주방과 거실로 유입되도록 한 곳이기도 하다.

사진에 보이지는 않으나 왼편은 벽체 전부를 수납공간으로 해 주방에 쓰이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넣어두는 곳으로 사용하고, 오른편에는 카운터 길이와 보울의 길이가 거의 비슷한 정도의 보조 싱크 하나가 더 설치되어 있으며, 나머지 공간에는 냉장고와 냉동고, 세탁기, 광파오븐렌지 등이 이용빈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위치를 잡고 있다.

이 공간의 바닥에는 일반쓰레기와 분리수거를 위한 쓰레기, 빨래감을 모아둘 수 있는 통, 생수통과 진공청소기 등이 통행에 방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줄줄이 놓여 있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현관쪽에서 이곳으로 드나는 문은 아예 닫아놓고 주방에서 드나들면서 필요한 물건을 꺼내거나 들여놓거나 하는 공간사용이 일반적이다. 이 공간이 매우 흥미로운 점은 자연광과 인공광이 서로 교차하면서 상상하지 못했던 빛이 연출된다는 것이며, 또 경사면이 서로 다른 각도로 만나는 곳에 매우 견고한 순수한 입방체들이 그 아래에 놓이면서 공간감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생각2011.02.12 18:24
며칠 전 길을 가다가 문득 어릴 적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장의사' 업소를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대형종합병원의 돈벌이에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는 '기업형 장례식장'의 등장과 'OO원'이라 이름 붙인 '틈새형 장례식장' 등에 밀리면서 서서히 말라 죽는 과정을 거친 결과, 이제는 도농을 불문하고 동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업소의 하나가 되었다고 봐야 하겠지만 문득 든 생각에 여러 가지 기억의 흔적이 아스라히 살아나며 꼬리를 문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발소'다. 조금 멋진 이름을 붙인다는 핑계에서 '이발관'이었거나 아니면 '이용원'이었던 적도 있었고, 머리 깍는데 드는 비용조차 없던 그 시절에는 아주 싼 값으로 이발과 면도와 머리감기까지를 시원하게 해 주던 'OO 이발기술학원'도 있었지만 그저 이들을 대표해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여전히 '이발소'라 하겠다. 물론 그 이름 그대로, 그리고 그 분위기 그대로 여전히 상가의 한 귀퉁이에 추레한 모습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지하공간의 복도 끄트머리 계단실 옆에 가까스로 터를 잡고 골목길 생태계의 말단을 점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선사하는 곳이 '이발소'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 등장하는 것처럼 오래 묵은 동네에서 40년 혹은 50년 동안이나 제 자리를 지키며 동네 어르신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해 온 '이발소'나 '이용원'이 있는가 하면 쉬는 날이면 도구를 싸들고 독거노인들을 방문하거나 교도소나 복지시설을 찾아 재능을 기부하는 천사같은 이발소의 이발사들이 운영하는 중소도시 읍내의 이발소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하도 빨리 바뀌는 것이 세상인지라 한 곳에 자리를 잡고 특별한 소망이나 바람없이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천직인양 머리깍기를 충실하게 해 오는 과정에서 세월의 더께가 자연스럽게 쌓이면서 이발이라는 고유한 직능보다는 지역의 명물이자 장소의 랜드마크로서 제 자리를 지키며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소가 있기도 하다.

이 정도가 이발소의 보편적 풍경이라면 가히 크게 볼 때 거의 이발소의 종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 상대방에 놓였던 '미용실'을 생각하게 된다. '미용실'은 이용과 미용의 대척항으로 존재하다가(그래서 미용실이 한때는 미용원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다양한 분열양상을 보이더니 지금은 'OO헤어살롱', 'OO뷰티샵', 'OO미장', 'OO헤어뷰티', 'OOO에스테틱', 'OO헤어디자인' 등으로 불리는 것은 보통이요, 미용사(아니, 미용사라 하면 안 될 것이고, 헤어디자이너라 불러야 하겠다)의 이름 석자(아니다. 이름 두 자인 곳도 많다) 그대로를 상호에 박아 넣은 업소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마치 동네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커피 전문점의 이름처럼 상호만으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조차 알 수 없는 미용실과 헤어샵도 거리에 넘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이발소'는 명맥도 유지하지 못한 채 그저 낭만과 추억의 공간으로 회자되곤 하는 몇 곳만이 근근히 삶을 이어가면서 추억의 도시공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대척점에 있던 '미용실'은 어찌 하여 다채로운 직능의 결합(손톱정리, 피부마사지, 의료행위에 가까운 보조의료 행위까지)을 통해 여전히 그 생명력을 잘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건축을 하는 분들과 어느 자리에선가 우스갯소리를 겸해 오늘날의 건축설계사무소가 택할 전략은 '이발소 전략'이 아니라 '미용실 전략'이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 불현듯 생각났다.

결국 이발소의 몰락은 전략적, 전술적 실패라는 것이다. 과거의 이발소가 여전히 명분과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는 고급호텔의 사우나 시설 부속기능이거나 혹은 대규모 대중목욕탕(사우나)의 한 귀퉁이에서이다. 그들은 호텔이나 사우나가 존재할 때 비로소 부수되는 종속적 기능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대규모 종합시설의 부대용도로 자리를 고정하고 있는 것이다. 타자의존적이며, 주체성을 결여한 기생업종이 되고 만 것이다. 이에 비해 '미용실'은 여전히 골목길 생태계의 주요 허브인 동시에 다른 업종들과 과감히 경쟁하면서 단지내 상가에서부터 근린생활시설의 2, 3층에 경쟁적으로 입점하고 있고, 전문직능인으로 예우받으면서 동네를 지키고 있다. 그 힘이 주체적인 동시에 생존의 방법 또한 지극히 적극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발소의 주인이나 이발을 담당하는 분들에 대한 호칭은 언제나 '아저씨'인데 반해 '미용실'의 주인은 늘 '원장님'이고 미용기술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선생님'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미용실은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해 이발소를 찾아나서지만 도무지 찾아나설 힘과 의지가 없어 할 수 없이 미용실을 찾았던 남성들이 처음 느끼는 생경함은 주인쯤 되는 분이 옷을 받아 걸면서 '어떤 선생에게 머리를 맡길 것인가'를 묻는 일로 기억될 것이다. 즉, 스스로의 머리 스타일을 지극히 개인적으로 주문할 수 있는 사람을 두고 있냐는 질문이기도 하고, 한 번이라도 방문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머리를 손질했던 사람 쯤은 기억해야 한다는 주문과 다름 아니다. 이는 자신이 부리는 사람에 대한 객관적인 대중의 평을 요구하는 경영전략이며, 기억되는 전문가에게 다시 일을 맡김으로써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겠다는 전략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미용실의 분화와 성장, 그리고 노력에 비해 이발소의 그것은 특별하달 것이 없었다고 기억하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들이 머리를 짜내 결국 감행에 이른 전략은 매우 수세적인 것으로서 소비자 가운데 일부 제한적이고 특정한 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비재칭 전략인 바, 퇴폐업종과의 결합이 그것이다. '이발소'가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하고, 면도를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것들과 더불어 안마와 마사지와 여성들에 의한 손톱깎기와 발톱 자르기에서부터 귀지 파주기 등으로 진화하더니 급기야는 지하공간 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퇴폐의 온상으로 극한을 달린 것이다. 물론 모든 이발소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대로의 일을 묵묵히 수행했던 업소는 왜 그런지를 판단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빠른 시간 안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매우 소수의 제한적인 업소가 고유직능과 업역을 왜곡하면서 몰락의 속도에 가속을 더하는 바람에 이발소 모두가 한 몫에 퇴폐업소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미용실의 전략과 전술은 사뭇 달랐다. 업역의 확장을 공개적이고 투명한 서비스 영역으로 확장하였으며, 소위 고데와 파마로 불리던 전문 기능 이외에 과감하게 남성 커트와 염색에서부터 탈모방지를 위한 두피 마사지 등으로 외연을 넓혔으며, 머리를 감는 행위 자체도 누워 감는 여성의 방식으로 남성의 습속을 변화시켰고, 샴퓨 선정과 머리 손질을 위한 정보 제공 등으로 남성 고객을 모으는 틈새확보 전략으로 시장 공략을 확대하였다. 더불어 가족관계에 대한 기억의 환기를 통해 개인적 기호의 문제를 가족구성원 보편의 주제를 다루는 곳으로 공간의 포지셔닝을 이루었다. 시장논리에 따른 결과로 이발소 선택은 고사하고 업소 발견하기조차도 어려운 형편에 처한 남성은 할 수 없이 혹은 개인적 취향과 선호에 친절하게 대응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받기 위해 미용실을 찾았고, 당연한 결과로 미용실은 매장 규모의 증가와 양적 확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며, 또 당연하게도 미용업 종사자의 수적 증가가 시장에서 분출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소위 프랜차이즈 경영에 나서 도시의 다핵화에 발맞추어 인구이동과 경제활동의 집적지를 대상으로 전문업소를 확대하면서 자신의 서비스를 브랜드화 하고, 각각의 점포에 표준적 기술을 보유한 전문인력을 공급하기 위한 교육 훈연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용기술 습득이 곧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적극적 경제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개인에서 집단으로 유포되면서 젊은 여성들과 남성들로 하여금 미용기술을 습득하도록 유도하였고, 특별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경우에도 동네 미용실에서의 견습을 통해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도제시스템이 확장되었다. 그리고 당연한 귀결이지만 취업이 대학의 수준이나 학과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교육수요자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재빨리 눈치 챈 전문계 고등학교와 전문대학 등이 미용업 관련 전문인력을 공급한다는 취지에서 미용관련 학과나 전공과정을 개설하여 제도권 안팎에서 안정적인 인력수급 시스템을 이룬 것이다. 그 결과 이미 디자이너로 바뀐 미용사의 유명세를 이용한 대형 미용실과 프랜차이즈 업소가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상황에서도 작은 미장원이나 미용실이 여전히 골목길 생태계에서 헤어살롱과 팽팽한 경쟁관계를 유지하면서 머리만지기의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유전자 변이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미용실의 규모나 위치에 관계없이 업계 종사자들은 한결같이 스스로의 일을 귀하게 여기면서 서로의 호칭과 점주의 호칭을 새로이 만들고 유통시키면서 대중들을 간접적으로 훈육하였다. 일정한 경력과 기술수준을 습득한 기술인력에 대해서는 당연히 '선생님'으로 예우받도록 관행과 습속을 규정하였으며, 점주는 예외없이 '원장님'으로 불러주면서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들 앞에서 마치 강조하듯 통일된 호칭을 사용하였다. 경력과 발휘할 수 있는 기술의 수준 및 속도 그리고 회자되는 이름의 빈도가 미용사들의 수입을 결정하고, 손님의 요구에 대한 맞춤서비스 수준과 친절도가 곧 개인 평가의 척도가 되도록 미용실 이용자와 기술자가 친밀한 대면관계를 갖도록 1:1 관리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어느 선생에게 머리를 했느냐'고 묻는 원장의 대응으로 나타났다고 할 것이다.

건축설계사무소의 경우로 눈길을 돌려보자.

급진적인 규모의 양극화 과정에서 몸을 불린 대형설계사무소는 더욱 커지는 것이야말로 시장에서의 우위를 점유하는 첩경이라 믿는 것으로 보인다. 비대한 몸을 지탱하려다보니 먹잇감의 종류와 영양가치를 따질 겨를이 없고, 오로지 승자독식의 논리로 무장하면서 일감을 찾아 헤맨다. 당연히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설계사무소와 소형 설계사무소의 일감이 줄어들고, 이들은 결국 대형사무소가 수주한 커다란 일의 일부를 싼 값에 하청받아 처리하는 제조업 공장으로 전락한다. 마치 이발소가 뱔다른 자구책이 없이 몰락의 과정을 가더니 결국에는 호텔이나 대형사우나 업소의 부대기능으로 전락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상대적으로 여력이 나은 대형설계사무소는 저가 하청으로 얻은 인건비 절감의 잉여분으로 중소규모의 건축설계사무소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인건비를 내걸고 막 대학을 나온 재능 넘치는 잠재 인력의 블랙홀이 되면서 중소규모 설계사무소의 마지막 숨구멍조차 막아버리고 만다. 중소 규모 설계사무소가 버틸 힘은 점점 쇠약해지며,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로 결판나는 것이다.

건축설계사무소는 전통적인 건축설계의 영역에서 거의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의 유연화와 기술적 진보의 속도와 그에 따른 요구는 가히 혁명적이어서 큰 몸집으로 산발적인 수요와 요구에 대응하기 어려운 구도가 고착되었다. 할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 부문별 전문화 전략과 어쩔 수 없는 하청 확대 전략이다. 대규모 조직을 부문별로 전문화 한다는 것은 일견 합리적인 것으로 판단되지만 통괄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경우 비용증대가 예상되는 고질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고질적이라 할 수 있는 문제 상황은 '건축'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어느 누구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재벌기업들이 전략실이나 조정실이니 하는 이름의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이나, 규모 거대화에 수반되는 필수적인 과정이듯 너무 다양한 일감을 싼 값으로 수행하려다보니 건축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깊은 사색은 유희가 되며, 그것을 따져 묻는 소위 문화론자들의 설 자리는 좁아진다. 결국 어렵사리 얻은 일이라고는 하지난 일을 따면 딸수록 매출액 대비 프로젝트별 순이익 비율은 점점 줄고, 비대한 몸집은 각종 질병으로 솨락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건축설계사무소는 미용실이 택한 규모의 적정화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용실의 전략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원장의 대부분이 미용기술자라는 점이다. 설계사무소의 대표는 반드시 건축사자격증을 가져야 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들은 특별한 경우에만 직접 머리만지기에 나서며 대부분은 몇 명의 선생들로 업소를 유지하고 운영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손님과의 1:1 대면관계를 맺고, 유지하면서 기술을 습득하고 현장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현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건축설계사무소의 경우와 비교해본다면 상당한 괴리 현상을 찾을 수 있다. 설계작품의 크레딧이 모두 건축사사무소 대표에게 부여되는 현실 속에서 개별 건축가가 온갖 궂은 일과 밤샘, 적은 임금을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스스로의 작업과 성과에 만족할 수 있도록 상황과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미용실의 전략이었다면 건축설계사무소가 기꺼이 따라 배울만한 전략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소비자들이 스스로 돈을 지불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도록 한다는 것은 고도의 전략이다.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불릴 수 있는 직업과 직종은 그리 많지 않다. 초중고의 교사나 대학의 교수, 그리고 기껏해야 병원의 의사나 약사, 변호사, 회계사와 이들과 비슷한 예우를 받는 몇몇의 전문직종 종사자의 경우에 불과할 것이다. 스스로를 귀히 여겨 자존을 높이고, 자신의 일이 바람직한 공간환경의 구축에 필수적이며 긴요한 일이라는 점을 자각하지 않는 한 건축가가 사회적으로 예우받을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저 우리끼리 '선생님'이라 부르거나 단체를 통해 '건축사님'으로 통일하자고 목청을 높여도 건축주는 여전히 '용역업자'로 취급하거나 '업자'로 취급하며, 언론에서는 기껏 '설계사'로 부르거나 아니면 제 밥그릇 챙기기라고 몰아세우는 것이 현실이다. 건축주가 기꺼이 설계비용을 들이면서도 지금과는 다른 태도로 건축가를 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이라면 다시 미용실의 전략을 따라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요구 시스템이 이발이나 미용과 건축의 경우는 전혀 다르고, 어디 비견할 곳이 없어 지고한 건축설계사무소와 이발소를 비교하느냐는 질책도 있을 것이다. 이발이나 미용은 기본적으로 개체적 개인의 서로 다른 요구가 특별히 정해진 규준이나 기준없이 이행되는 것에 비해 건축설계는 이와는 무척 다르고, 건축설계가 기획되고 발주되고 관리되는 절차와 단계가 전혀 다르므로 갖다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격을 놓고 다투거나 불만을 터트리기 전에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은 건축설계사무소의 생존전략을 구비하는 것이다. 논의의 선후가 있을 수 있다면 이들 문제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공과를 따져도 늦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발소와의 경쟁에서 완승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는 미용실의 전략이나 전술을 그대로 복제하고 그들의 전술이나 전략궤적을 좇아 고스란히 따라하자는 것이 아니다. 생존을 걱정하는 건축사사무소 운영자나 건축계의 여러 재능있는 건축가들, 그리고 건축가가 되기를 마음 속에 그리며 지금도 스튜디오에서 밤을 새우는 수많은 학생들과 더불어 우리가 보듬어 온 건축설계사무소의 변화를 진정으로 걱정하자는 것이며, 변화의 속도와 내용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이발소와 미용실의 차이를 생각해 본 것이다.

그리고 미용실의 전략이 적어도 건축이 지향하는 다양한 가치와 세계에 더욱 부합한다는 뜻에서 현재 우리의 건축설계사무소들이 취하는 태도가 자칫 이발소 전략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미용실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생각2011.02.04 00:26
2011년 1월 10일, 8개월 이상의 공사를 마치고 드디어 죽전의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 집을 지으려고 맘을 먹고 설계를 의뢰하고 공사를 진척시키는 도중에 지인들로부터 크고 작은 질문이 쇄도하곤 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가운데 하나가 건축주인 내가 직접 설계를 했으리라는 단정에 가까운 치레성 질문이었다. 건축학과 교수이므로 당연히 설계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게다가 자기 집을 짓는다고 하니 당연히 스스로 설계를 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그저 다시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건축계의 많은 지인들은 다르게 물어왔다. 설계는 어디에 의뢰했느냐,는 것이었다.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건축가에게 의뢰했다. 물론 건축설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고, 나는 법적으로 정한 자격과 기준을 갖추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애초부터 그럴 생각조차도 갖지 않았다. 그러니 건축가에게 의뢰를 할 수 밖에...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옛 말 그대로 나를 단독주택으로 이끌고, 더불어 옆 필지에 같이 집을 지은 친구 역시 건축학과 교수임에도 나와 같은 생각에서 내 집의 설계를 의뢰한 건축가에게 건축설계를 의뢰했다.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이나 행동이 당연할 뿐만 아니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건축설계를 건축학과 교수인 우리가 스스로 했을 것이라 믿는 주변 사람들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다보기까지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서로 붙은 두 개의 필지에 같은 건축가가 설계를 했는데 설계비를 각각 따로 지불했냐는 것이 꼬리를 문 질문이었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우리는 판단했다. 

집을 짓는 도중에 소위 '안중근기념관 준공식 사건'이 신문을 통해 활자화 되었다. 애정을 가지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건축물의 준공식 자리에 초대받지 못한 건축가의 얘기가 대중들에 회자되면서 건축계가 들끓었고, 급기야 새건축사협의회를 중심으로 기자회견이 열리고 크고 작은 사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건축가의 자리찾기 운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될 동력을 얻기도 하였다.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617288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49241.html

아무튼 집의 준공이 가까워질 무렵, 우연히 우리들이 지은 집을 위해 시간과 노력 그리고 공을 들인 분들이 적지 않을 터이니 앞으로 새 집에서 살아가면서 그 분들의 품이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친구와 함께 소위 '준공석'을 대신할만한 건축명패를 하나 소박하게 제작해서 담벼락이나 대문 주위의 적당한 곳에 하나쯤 걸어놓자는데 공감하였다. 내친 김에 건축시공을 책임졌던 시공사 대표에게 청을 넣어 두 집의 신축과정에 힘을 보탠 모든 분들의 성함이나 알자고 했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의 이름과 협력업체의 법인명이 일의 구분과 내용에 따라 정리된 문건으로 돌아왔다.

명패 디자인 역시 전문가에게 의뢰하였다. 하나디자인의 이승주 실장이 여러 차례 디자인 대안을 만들어주었고, 매번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오탈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여러 번 애를 먹였고, 드디어 최종 디자인 대안을 확정하였는데, 아뿔사!!! 이번에는 아내가 은근한 얘기를 건네온 것이다. 다름 아니라 큰 아이가 캘리그라피를 배우러 다니더니 며칠 전부터 이른 새벽까지 건축명패의 머릿글을 몇 번씩 쓰고 있더라면서 한 번 봐서 괜찮으면 그 아이가 쓴 손글씨로 명패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단독주택으로의 이사가 비록 성인이 되었지만 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크고 작은 일상이 쌓여 기억으로 누적되는 장소를 만들어 주고 더불어 공유하자는 취지도 목적의 하나였으므로 좋은 아이디어가 되겠다는 생각에서 아이에게 공식적으로 손글씨를 쓸 기회를 주었고, 아이는 여러 시간과 공을 들여 몇 가지 시안을 보여주었다. 온 가족이 모여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의견을 나눈 뒤 결국 내가 선택한 대안을 명패 제작에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다시 하나디자인의 이승주 실장의 손을 빌려 마지막 정리를 끝낸 후 알루미늄 계통의 금속에 음각을 하는 것으로 디자인이 최종 정리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축명패는 지금 '최가철물'에서 가공중이며, 아마도 설 명절이 지나면 집으로 배송될 것이다. 아직까지 건축설계를 책임맡았던 건축가 조남호 선생 등과 집 짓는 8개월 이상의 시간을 현장에서 거의 기거하다시피 에스화이브의 김봉섭 사장을 비롯한 많은 분들을 공식적으로 초청하지 않았다. 그 분들의 노고를 잊어서가 아니라 적당한 예우와 감사의 뜻을 멋지게 전해드리기 위함이다. 그 분들과 더불어 비록 소박하지만 멋진 건축명패 제막식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고자 의도한 명패는 2011년 2월 10일, 드디어 물건으로 제작되었습니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