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_을 펴내며2017.06.23 19:45

출판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원고지를 채워나가던 2016년 봄 서울역사편찬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울이천년사] 35권과 40권에 원고를 보태 감사를 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서울역사편찬원에서 별도로 기획, 발간중인 서울문화마당 시리즈 단행본 가운데 하나인 [근현대 서울의 집] 원고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서울이천년사] 원고만 하더라도 시간에 쫓겨 꾸역꾸역 원고를 썼던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새로운 원고, 그것도 단행본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니 일단 어렵다고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판단하고, 사정이 딱하지만 힘들다고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그런데 다시 청을 해 와 하는 수 없이 덜컥 그러마고 했고, 결국 원고마감을 가까스로 지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채운 원고지가 600여 장 정도. 물론 그림도 꽤 많아 내심 원고량을 걱정하였지만 서울역사편찬원에서 잘 마무리 해 주신 덕택에 자그마하고 단정한 책으로 만들어졌다. 2017년 6월 23일이 출간일이니 책이 나온 날 바로 받은 셈이 되었다. 이 책은 비교적 잘 읽히도록 만든다는 것이 의도였지만 그렇다고 쉽게 써야 할 것은 아니었으니 결국 글솜씨가 문제인 셈이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다시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미 책은 나왔으니. 이제 모든 잘못은 필자에게 있음이다.

 

여는 글 /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인 천만 서울시민의 삶의 기억

 

<서울연구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2015년 말을 기준으로 서울에는 모두 천만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데 한 세대는 평균 2.39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대략 420만 정도의 세대로 구성되어 대도시 서울에서의 삶을 꾸리고 있다. 역사도시이자 첨단도시, 국제도시로서 한 나라의 수도라는 특별한 지위를 갖는 서울을 움직이는 천만이 넘는 시민은 280만 채에 이르는 에서 하루를 열고 닫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천만의 시민들이 이어가는 일상은 매우 독립적일뿐만 아니라 서울이라는 지리적 공간의 범주를 넘나들며 서로 다른 장소와 공간에서 다채로운 삶의 양태를 드러냄으로써 현대도시 서울의 거주풍경을 만들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천만 서울시민의 다양한 삶이 지속되도록 지지하고 지탱하는 최소의 거주단위인 의 유형은 생각과는 달리 몇 가지로 수렴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변화 정도가 가장 적고 비록 그 모습이나 내용이 일부 바뀌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 변화주기가 가장 길었던 건축 유형의 하나가 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건축사와 문화사, 생활사를 통해 확인한 바 있을 정도로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서울시민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는 오늘의 주택유형을 꼽아본다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일반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그것으로 280만 채에 달하는 집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2015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서울에 존재하는 280만 채에 달하는 [住宅]’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아파트로서 전체 주택유형 중 58.6%를 차지한다. 15년 전인 1990년에 비해 110만 채 이상이 늘어, 전체 서울의 재고주택에서 차지하는 점유비도 35%에서 가장 많이 늘었다. 그러니 서울을 아파트 도시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비약적인 증가라 아니 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높은 점유비율을 보이는 주택유형은 다세대주택이다. 다세대주택이 654천 채를 넘는 수치를 보임으로써 서울의 재고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아파트에 이어 23.4%를 차지한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한 다른 주택유형을 내림차순으로 살펴보면 누구나 쉬 짐작하듯 일반 단독주택연립주택이 뒤를 있는다. 그 가운데 단독주택은 12.7%를 점하고 있으며, 연립주택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4.2%를 기록하고 있다. 단독주택은 대략 355천 호, 연립주택이 117천 호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서울시민이라면 짐작할 수 있듯 서울의 주택유형 가운데 끊임없이 늘고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점점 줄어드는 유형도 당연히 존재한다. 이미 서울의 비약적 인구 증가는 거의 그쳤고, 해마다 다르지만 일부 줄어드는 경우도 나타난다.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은 예외 없이 늘어나는 주택유형에 속하지만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유형에 속한다. 근래 서울의 행정구역 확장이나 축소 등의 변화가 없었고, 인구 역시 급격하게 늘거나 줄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이는 곧 오래된 것의 소멸과 새로운 유형의 등장의 반복되며 그 모습을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줄어들며 그 자리를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가 빠르게 채워나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주거유형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거주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달리 말하면 소위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통해 도시의 공간구조나 풍경이 바뀌었다는 사실로도 설명할 수도 있다. 결국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라는 주택유형으로 서울의 집이 수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공유주택이니 타운하우스니 하는 새로운 호칭을 가진 집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법률적, 제도적으로 이들의 대부분이 다세대주택이거나 연립주택인 것처럼 오늘날 서울의 집은 유형학적으로 본다면 결코 다양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서울의 집가운데 아주 미미한 숫자에 불과한 비주거용 건물 내 주택을 제외하고 유형학적으로 살피자면 아파트, 다세대주택, 단독주택, 연립주택의 네 가지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근현대 서울의 집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지난 100년 동안 이들이 서울의 집을 대표하게 된 연원을 계통적으로 살피고 그 궤적을 따라 걷는다. 일례로 도시한옥처럼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커다란 반향을 보이며 대중적 유행을 누렸으나 그 명맥을 잇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그 가치와 의미가 새롭게 평가되어 70여 년 만에 다시 서울의 집을 대표하는 유형으로 새롭게 자리매김을 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승만 정권 때 도시미화의 방편으로 별안간 궁리된 상가주택이나 허허벌판이던 도시 주변부를 새로운 교외주택지로 만들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고안한 점포주택이 서울의 고밀화 과정을 통해 단지형 아파트주상복합아파트로 변태를 거듭했던 사실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흐름을 산책하듯 따라 걷자는 취지로 쓰였다.

 

책 제목 끄트머리에 주택이 아니라 을 택한 이유는 단순히 주택의 형태와 형식에만 주목하는 건축역사와 양식사의 시선에서 벗어나 서울시민들의 보편적, 규범적 생활문화사를 폭넓게 다루어보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울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집의 변화 혹은 변이의 과정과 경로를 일정한 궤적에 따라 살핀 뒤 다시 오늘의 모습에 이르게 된 과정을 담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 책은 서울이라는 지리적, 공간적 영역에 주목하되 행정구역의 확장이나 그에 따른 도시계획의 변화 등과 같은 입장에서 조금 비켜선 채 서울 주거문화 흐름과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기원을 찾아보고, 변화의 동인이 무엇인가를 살핀 것이다. 책에 담긴 내용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공감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근현대 100년 동안 서울 사람들이 살아온 풍경이며 기거문화를 소설과 신문 등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대중매체와 각종 문헌자료에 의지해 담아보았다. 물론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이는 모두 필자의 책임으로, 나태함이 빚은 과오다.

 

책을 이루는 글의 덩어리는 모두 네 가지로 구성되었다. 1장은 일제강점기의 단독주택을 대표하는 관사와 사택, 도시한옥과 문화주택으로부터 영단주택을 거쳐 한국전쟁 복구과정에 등장한 다양한 유형의 주택을 살핀 뒤 개발경제기에 등장하게 된 민영주택과 이후 오늘의 보편적 서울의 집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게 된 다세대주택에 이르기까지의 경로와 과정을 살펴보았다. 특히 1960년대 중반 민영주택의 등장과 확산과정을 생활문화사 차원에서 살핌으로써 단독주택의 갈래를 살폈고, 단독주택이 1980년대를 거치며 여러 가지 색다른 유형으로 바뀌게 된 과정을 훑었다.

 

2장은 아파트의 등장과 변화의 흐름을 주로 기술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 최초의 아파트와 초기 사례부터 1960년대를 관통하는 정부와 서울시의 아파트 공급 전략을 통해 국민주택의 대표적 유형이었던 아파트를 새삼 확인한 뒤 대한주택공사와 서울시의 아파트 건설 내용을 경향적으로 살폈다. 이를 통해 단지형 아파트와 좌절된 서울시민아파트 등이 도시중간층의 급신장으로 인해 중산층용 맨션아파트로 변모하는 과정을 기술했다. 그리고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아파트가 서울의 다수를 차지하는 대단위 단지형 아파트로 변모하는 과정을 바라보았다.

 

3장은 연립주택의 기원과 전망을 다루었다. 일제강점기에도 노동자주택이나 합숙소의 형태로 일부 등장한 바 있는 연립주택이 한국전쟁 이후 부흥주택 등으로 대표되는 복구와 재건의 시기에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주거유형으로 주목받았던 내용을 먼저 다루었다. 그 뒤를 이어 연립형 주택이 개발경제기를 거치며 여러 가지 실험과 시도를 통해 새로운 보편적 도시주택 유형인 오늘날의 연립주택으로 자리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또한 급격하게 신장된 새로운 도시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아파트와의 시장주택 경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아파트의 하위 주택상품으로 전락하는 과정과 함께 저밀도라는 환경의 질적 조건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강남 개발과 함께 고급 연립주택을 일컫는 빌라와 맨션으로 분화하는 과정도 더불어 다루었다.

 

4장은 전후 복구와 수도 서울의 위신 세우기 수단으로 궁리되었던 상가주택과 교외주거지 개발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만들어졌던 점포병용주택이 1960년대를 관통하며 도시미화와 정비의 효과적인 방편으로 활용된 상가아파트로 변신하는 과정을 살폈다. 특히, 1970년대에 본격화된 강남 개발에 따른 노선상가 아파트 확대와 일부 중산층 아파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아케이드형 맨션아파트를 거쳐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 이르게 된 과정을 눈여겨보았다. 이 과정에서 단독주택이 주를 이루었던 상당수의 교외 점포주택지는 이미 서울의 보편적 주거유형이자 지배적 유형인 대단위 단지형 아파트에 편입되거나 여전히 오래 전의 풍경을 간직한 채 서울의 주거지로 남았음을 확인하고 그 내용을 간추렸다.

 

일정한 시기 혹은 사회변화의 기제이자 가치라고도 할 수 있는 의미어로서의 근대 혹은 현대는 대도시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구한말의 개화에서부터 일제강점기의 수탈적 식민지 근대화, 건국과 분단, 산업화과정과 주택시장의 급신장 과정에서 빚어진 인간 소외와 불구적 이미지화를 거쳐 때론 천박한 자본주의의 극한적 양태라고도 불리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지난 백여 년 동안 기거양식의 일정한 질서라 할 수 있는 주거문화는 혼돈과 충돌 그리고 갈등과 수용의 연속이었다. 근현대 서울의 집은 주마간산 격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담아내려고 애쓴 결과물이다.

 

이 책을 통해 서울시민들이 근현대의 시간을 함께 산책하며 어렴풋한 기억을 길어 올려 복원하거나 반추한다면 어떤 이에게는 편리와 풍요, 성장과 발전이라는 양지로 회상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뿌리 뽑힘과 난민 정서로 대표되는 응달의 상흔을 남기기도 할 것이다.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그리고 연립주택과 단독주택은 오늘날 서울의 대표적 주거유형이자 시민들의 삶을 의탁하는 보편적인 장소이자 사회적 공간이다. 이들이 어떻게 서울의 대표적 주거유형으로 정착하게 되었는가를 따라 천천히 걷는 근현대 서울의 집을 통해 서울 시민 모두가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인 삶의 기억을 반추하는 한편 역사도시 서울이 맞닥뜨릴 새로운 시대의 문화풍경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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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취와 기억'2016.06.07 10:45

[박철수의 '거취와 기억'] (5) '응팔' 정환의 집처럼... 구별짓기 경쟁이 낳은 부잣집 상징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210100&artid=201605122217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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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을 펴내며2014.11.11 15:32

우연한 일로 책을 꾸리는 일에 간섭하게 되었다. 물론 오지랖 때문이었고, 도움을 줄만한 깜냥조차 되지 않았지만 도서출판 [집]의 요청이 컸다. 발을 내닫았으니 책을 꾸리는 과정마다 이런저런 참견을 했고, 급기야는 책 머리에 글을 하나 써 주십사 하는 부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름하여 [건축가가 지은 집 108]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의 머리글을 쓰게 된 이유다. 글은 기획위원이라는 거창한 감투를 쓰게 된 두 사람이 이메일을 통해 번갈아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마무리하였다. 이름하여 "책머리에 부쳐"라는 글이다.

 

 

책머리에 부쳐

 

이런 책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궁리를 시작한 것은 2년 여 전의 일이다. 당시 우리 두 사람은 위아래로 붙은 땅에 각자의 집을 함께 지은 뒤 집짓기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깨알 같은 사실까지 챙겨 담은 아파트와 바꾼 집(동녘, 2011)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언젠가는 내 집을 짓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는 제법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한동안 부러움이 담긴 인사와 집짓기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들에 답하며 지내게 만들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설계를 어떻게 했느냐예산은 얼마나 들었느냐였다. 이미 책에서 세세히 밝혀 놓은 내용인데 다시 묻는다는 건 설계와 예산에 대한 더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어서다. 어떤 방법으로 설계자를 찾아야 하는지, 예산은 꼭 그만큼 들여야 하는지를 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인을 통해 왜 이런 질문들이 끊이지 않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분은 트위터를 통해 아파트와 바꾼 집을 읽었음을 알리면서 보통 사람들이 당신들 건축과 교수처럼 사려 깊은 건축가를 만나 설계를 의뢰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럴 확률은 길을 가다가 유명한 발레리나를 만날 가능성만큼 낮을 것이라고 퉁을 놓았다. 얼마 후 그 분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그 말의 진의를 여쭈었더니 집짓기의 실천 사례들은 많지만 집을 지으려고 작정한 사람에게 정작 필요한 올바른 정보나 유익한 지식을 얻기는 너무도 어려운 우리의 현실을 에둘러 말한 것뿐이라는 말씀을 주셨다.

 

집을 지으려는 사람에게 정작 필요한 정보나 지식이란 무엇일까. 집짓기에 대한 욕망은 매한가지이더라도 그 욕망을 실천해야 하는 각자의 상황과 처지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책에서 아무리 이것이 좋은 집이라 목울대를 높여 외친다한들 그 집을 지은 이나 그 책을 꾸린 이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기성품인 아파트라면 입주 시점에 맞춰 집값을 조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일 테지만 기성품이 아닌 내 집을 짓는 문제라면 살피고 따져야 할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집터를 어느 곳에 어느 정도 규모로 마련해야 하는지, 구조 형식이나 재료는 무엇으로 해야 하며, 내장재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 설비 수준이나 마당의 크기 또는 층수는 어떠해야 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지만 그런 질문에 맞춤한 정보나 유용한 실례는 찾아보기 힘드니 제 집을 지으면 십년을 늙는다는 얘기가 결코 헛말은 아니라는 깨달음에 이르기도 한다.

 

일본만 하더라도 매년 착공 주택의 50% 이상을 단독주택이 점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개인의 집짓기 욕망과 의지를 사회 시스템과 건설 산업이 지탱하는 구조로 짜여 있음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전체 신축주택 총량에서 단독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이 기껏해야 4% 정도에 머무는 우리의 경우는 내 집을 짓겠다는 개인의 의지나 가족의 욕망은 자칫 섶을 들고 불속에 뛰어드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서로 견줄 만한 집짓기에 관한 정보나 지식이 한곳에 뭉뚱그려 담긴 경우가 희박하거니와 있다손 치더라도 개인의 주관적 경험담에 그치거나 지식으로 위장한 상행위를 위한 광고성 정보에 그칠 뿐이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은 우리가 만들고 키운 것이니 이러한 지적은 결국은 우울한 자기비판이 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라고 했던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평소 아파트에 매몰된 우리 주거 상황의 개선은 가격과 품질에서 아파트와 경쟁할 만한 내 집 짓기가 가능해질 때에나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보통 수준의 공사비로 지을 수 있는 좋은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이 늘어나야 하고 이들이 지은 집에 대한 정보를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떠들고 다니던 차에 도서출판 집에서 힘을 보탰다. 출판사의 지지에 힘입어 야심찬 기획이 진행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좋은 집짓기에 노력하는 건축가들이 설계해 지은 집의 사례들을 가능한 한 많이 모아서 구조와 재료, 층수와 규모 등 설계에 대한 정보는 물론 집을 짓는데 들어간 설계비와 공사비 정보를 제대로 담아서 내 집 짓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만들어 보자는 기획이었다.

 

대략 10년 전을 경계로 그 이후에 지어진 단독주택과 다가구다세대주택 혹은 복합주택(점포나 사무실 병용주택)과 같은 보통 사람들의 내 집 짓기 대상이 되는 집들을 망라하기로 하고 평소 알고 지내던 건축가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당초에 기대했던 건축가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최근에는 집을 설계한 적이 없어서, “있긴 한데 아직 공사중이어서 사례 수집에서 제외되기도 했지만 그들이 알려 준 다른 건축가들의 집짓기 사례들이 추가되면서 우리의 사례 목록은 차곡차곡 쌓여 갔다.

 

이렇게 모인 집짓기 사례들 각각에 대해 건축가들에게 정보 제공 요청을 했다. 집짓기에 관한 각종 자세한 정보와 도면, 사진뿐 아니라 건축가의 의도나 집짓기 과정에 관한 짧은 글도 써 주십사하는 다소 무리할 성 싶은 청을 했는데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스스럼없이 들어 주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모두 108채의 집짓기 사례가 정리되었다. 이 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108채의 사례들은 하나하나 대지 위치, 지역지구, 층수, 건축면적 및 연면적, 구조 형식, 외부마감 재료, 주차 대수 등 집에 대한 기본 정보와 설계도면, 외관 및 내부 사진 등 집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들로 정리했다. 이와 함께 설계기간 및 공사기간, 설계비 및 감리비, 공사비 등 집짓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궁금해 할 정보들을 꼼꼼히 챙겨서 담았다. 특히 설계비 및 감리비, 공사비는 집짓기의 향방을 좌우하는 가장 중차대한 항목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만큼 되도록 상세하게 밝혀 충실한 정보로 제공되기를 의도했다. 다만, 설계비는 항상성(恒常性)이 전제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대지의 조건과 건축주의 요구, 나아가 설계의 수정 정도와 설계 행위의 반복도, 현장 감리의 빈도와 정도 등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림 가격이 작가에 따라 달리 매겨져 거래되는 것처럼 주택의 경우도 설계자에 따라 설계비를 달리 부르고 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적 조건으로 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설계비를 밝히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다.

 

공사비의 경우는 설계비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인테리어 공사나 조경공사를 건축공사와 일괄로 시행하는 경우도 있고 건축주가 나중에 별도로 시행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들 비용을 모두 합하여 총공사비를 계산한 경우도 있고 건축공사비만을 총공사비로 계산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총공사비를 단순히 건축바닥면적으로 나누어 평당 공사비를 산출한다는 것이 정확한 정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에서 몇몇 사례에서는 총공사비와 평당 공사비가 산술적으로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 평당 공사비가 비싸다고 해서 반드시 보다 고급 수준의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땅의 위치와 지형조건에 따라 자재 반입의 용이성 정도와 공사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며 이에 따라 공사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집짓기에 참여하는 현장 작업자의 숙련정도에 따라 인건비 역시 다를 수밖에 없으며, 이 책에 담긴 집이 지어졌을 당시의 재료비와 자재비, 인건비 등이 몇 년이 지난 지금과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물론 이 책에 담긴 개별 사례별 공사비 정보 하나하나는 정확한 정보이지만 모든 집짓기는 저마다 고유한 조건과 변수 속에서 공사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들 공사비 자료를 다른 집짓기에 그대로 적용할 표준적 기준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집짓기를 다루는 대부분의 책들은 설계자 정보에 인색할 뿐만 아니라 시공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않는다. 이런 현실도 건강한 집짓기 확산의 큰 장애 요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각 사례 말미에 설계자와 시공자 정보를 따로 담았다. 설계자 정보는 장황한 약력 소개 대신에 설계사무소 주소와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와 홈페이지 등 실용적인 정보를 비교적 자세하게 담았다. 집을 지으려는 이들의 적극적인 정보 탐색을 권장하고자 하는 의도이며 좋은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정보 탐색이 바른 집짓기의 시작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기 위함에서였다. 물론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공연히 작가주의의 무거움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108채 사례마다 건축가의 의도와 집짓기 과정을 담은 건축가가 직접 쓴 글을 담았다. 이 짧은 글에서 독자들은 집짓기에 대한 여러 건축가들의 생각과 사례별로 자못 다채로운 집짓기 과정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집짓기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키울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나의 집짓기를 함께 하며 이끌어 줄 건축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러기를 희망한다.

 

이 책은 독자의 관심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선택해서 읽을 수 있도록 몇 가지 켜로 구분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우선 주택 유형을 단독주택(79), 다가구다세대주택(12), 복합주택(17)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그러니 관심이 있는 부분부터 주의 깊게 살펴 읽으면 된다. 각 주택 유형별 사례들은 집의 규모(건축연면적)를 기준으로 오름차순으로 정리했다. 예를 들어 단독주택의 경우 총 79채를 건축연면적이 가장 작은 36.4(11.03)부터 시작해 가장 큰 350.9(106.1)를 마지막 순서로 배열했다. 다가구다세대주택과 복합주택 역시 같은 방법으로 배열했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규모로 집을 지을 것인가가 집짓기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며, 이는 곧 예산에 직접적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같은 설계자가 지은 집이라도 규모에 따라 다른 곳에 배치했다.

 

책의 뒷부분에 붙인 부록에는 108채를 특성별로 집계, 분석한 집계 표와 그래프를 담아 집짓기에 관련된 요소들의 큰 줄거리와 경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즉 대지가 위치한 지역, 주택 종류, 층수, 지하층 유, 구조 형식 등에 따라 대지면적, 집의 규모(건축연면적), 공사비의 평균값을 산출한 집계 표와 이것이 사례별로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보이는 그래프를 제시하고 그 속에서 읽히는 의미 있는 사실과 경향들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 분석을 통해 책에 담긴 단독주택 사례들의 평당 평균 공사비는 600만 원이지만 사례에 따라 낮게는 260여 만 원에서 높게는 900만 원 이상까지 매우 넓은 범위에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서울과 수도권 지방도시 등 지역별 대지면적과 건축면적 분포는 물론 층수별로 혹은 지하층의 있고 없음에 따라 건축면적이 어떻게 다르고 공사비가 어떻게 분포하는지, 어떤 구조 형식을 택했는가에 따라 공사비가 어떻게 다른지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집짓기에 대한 고민과 구상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어느 지역에 어느 정도 규모의 집을 얼마에 지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고도 민감한 관심 사항일 것이다. 이 분석 내용이 그러한 고민과 구상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 이 책에 담긴 사례를 하나씩 살펴보기 전에 먼저 둘러보아도 유익할 것이다.

 

이 책은 기획을 시작하고부터 세상에 나오기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이 걸렸다. 우선 76명에 이르는 건축가가 설계한 집 108채의 정보를 취합하고 글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종 자료와 정보를 다 모은 후에는 과연 책을 어떻게 구성하고 순서를 정할 것인가부터 설계비와 공사비의 공개 여부에 대해 논의하고 설계자와 건축주의 동의를 구하는 일, 사진작가들의 사진사용 허락을 얻는 일 등에 많은 시간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고를 끼치는 무리한 청을 기꺼이 받아들인 여러 건축가들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이 책은 아직도 머릿속 생각에 머물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시대 집짓기에 대한 이들의 열린 생각이 이 책을 마무리하도록 한 셈이다. 또한 건축 전문 사진작가들의 사진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습으로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기획자로서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한다.

 

이 책을 출간한 도서출판 집은 독립출판사다. 종이책의 종말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기획자들의 어렴풋한 생각을 한 권의 책으로 꾸리겠다고 마음먹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난처한 처지와 환경을 감수하며 일하는 이들이 있어 오늘도 종이책이 그나마 읽히고 나뉜다는 점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늘 고마운 마음이다. 이들의 노고는 책을 골라 읽는 이들로 위로받을 터이다.

 

책이 늘 만들어지고 읽히기를 소망한다.

 

2014년 겨울 문턱에서 기획위원 박인석/박철수

 

[책의 향기]_동아일보 http://news.donga.com/3/07/20150103/688918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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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3.01.09 14:59

평교사로 정년 퇴임을 한 곽노와 그를 폐쇄공간에 은폐하고 방기하는 아내가 살아가는 다세대주택의 풍경을 그린 김숨의 <북쪽 방>은 2013년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에 수상자인 작가가 가려 선정한 슬프고 화가 치미는 소설이다. 3층 혹은 4층의 다세대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찬 골목길에서 벌써 7개월째 폐기능 유지를 위해 약을 먹었지만 더 이상의 호전은 없이 이제는 완전히 무너져내린 폐 때문에 하루 종일 누워 지내는 것이 일상이 된 38킬로그램의 곽노를 두고 아내는 우족을 사러 나갔다. 328개월을 중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친 곽노는 이제 철저히 사회라는 공간과 사람으로 불리는 관계와 격리되고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아내로부터 권유로 위장된 강압에 의해 서로 다른 공간으로 나뉜 다세대주택 1층의 북쪽 방에서 삶을 이어간다. 그렇게 완벽하게 외부 세계와 차단된 채 예순일곱 살이 되었고, 지하의 가발공장 미싱소리와 골목길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쇠공 놀이 소리에만 진지하게 반응한다. 격리된 상태에서 최소한의 관계와 양식으로 사육되는 곽노의 삶은 이제 자폐를 오히려 강화시키고 어느 덧 그런 자폐가 황홀의 경지라 믿으며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피붙이가 찾아와도 불편하지 그지 없고, 일어나 앉는 일조차 귀찮거나 쓸데없는 일이라고 여길 즈음 골목길에서 아내의 목소리로 여겨지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머리가 깨졌어요!’ 그리고 그 소리가 아내의 것이라고 여길 즈음 곽노는 북쪽 방의 미닫이 창으로 관 같은 것이 들어오는 환영을 본다. 우족을 사러 나간 아내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 소설에는 1990년대를 관통한 단독주택 밀집지역의 다세대주택 건축 광풍이 묘사되어 있다.

 

"비록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속 시원히 팔지 못하고 떠안고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다세대주택이 자신 명의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곽노는 안도한다. 어차피 자신이 죽으면 온전히 아내와 자식들의 차지가 될 테지만 곽노로서는 그래도 의지할 것이 다세대주택 밖에 없다. 곽노가 지금의 다세대주택을 지어 올린 것은 1990년도였다. 서울 변두리마다 단층집을 허물고 다세대주택을 짓는 것이 유행이었다. 전세 대란까지 겹쳐 손바닥만 한 땅만 있어도 바벨탑을 쌓듯 층층이 방을 쌓아 올렸다.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한 우세가 되었다. 단층집뿐이던 골목 안에도 다세대주택이 들어섰다. 자고 일어나면 전날까지 멀쩡하던 집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3, 4층 높이의 다세대주택이 들어섰다. 곽노의 아내도 성화에 못 이겨 멀쩡한 집을 부수고 3층짜리 다세대주택을 지어 올린 수밖에 없었다."

 

김 숨, <북쪽 방>, [2013년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서울, ()현대문학, 201212(초판), 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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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생각2012.08.09 20:47

‘백약이 무효’라는 말은 요즘 부동산 정책 입안자들이 자조하는 말이다. 냉담한 시장은 자신도 그 효능을 자신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진통제를 원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그나마 지닌 몸의 면역력을 아주 상실할 것이 염려되는 까닭에 정책입안자들은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도리가 없는 형국이다.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잘 알려진 처방을 반복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어렵사리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를 내놓으니 빚 늘려 은행이자 갚으라는 얘기냐는 비난에 직면하고,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한다는 뜻에서 몇 가지 생각했던 감세 조치 등을 발표했더니 그렇게 할 일이 없어 골프장 사업자 걱정이냐는 핀잔이 돌아온다. 은행은 그 끝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계속되는 집 값 하락으로 인해 담보가치인정비율(LTV)이 높아지자 이자는커녕 원금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며 내심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정부는 가계대출에 대한 은행간 CD금리 담합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이유가 은행의 높은 이자율 때문이라면서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대책 없는 책임전가가 진흙탕 싸움과 다를 것이 없다.

 

소위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하우스 푸어’ 중에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고 고집하면서 집값 앙등을 노리고 자금을 끌어다 댄 투기꾼이 없지 않겠지만 열심히 주어진 일과 세상을 살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듣도 보도 못했던 ‘하우스 푸어’에 속하고 만 경우도 적지 않다. 약삭빠르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오늘도 빚 걱정에 한숨이 턱에 차오른다. 열심히 일터에 나가 월급 받아 알뜰살뜰 모아 집을 장만하려고 한 것이 죄가 되었을 뿐이라는 점에서 세상을 탓하지만 약삭빠르지 못했다는 주위의 핀잔 때문에 그 궁극은 자기 모멸감으로 되돌아온다. 좁은 집에서 살다 조금 넓은 집으로 늘려가려던 애틋한 소망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을 ‘하우스 푸어’라 싸잡아 비난하는 일에는 세상이 야속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까지 모리배나 투기꾼으로 뭉뚱그려 낙인을 찍고 비난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하우스 푸어’에 대한 일방적 편견을 잠시 거두고 상황을 살펴보며 대안을 찾는 일이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될 터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공공정책이다. 집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주거권의 토대이고,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보장되는 나라라면 공공정책이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가능하게 만들어야 하며, 그래야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결국 지혜를 모아 민심을 거스르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그동안의 처방이 효과가 없었다면 다른 대안 찾기에 나서야 한다. 그저 소나기만 피하자는 식의 임시방편이거나 자본과 시장 분위기에 눌려 좌지우지되는 남의 다리 긁는 식의 종합 처방이 아니라 병증(病症)의 원인을 제대로 짚고 구조적이며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의 안전망과 건전성, 나아가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한 부동산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기금이나 국민주택기금 등과 같은 목적형 정책기금, 혹은 공공기관의 매입임대 사업 예산 등을 이용해 문제가 되고 있는 거래 정체 현상의 물꼬를 트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다. 공무원연금이나 재건축 사업 대상이 되는 공무원임대아파트 등 공공임대주택의 매각 기금의 일부와 국민주택기금 등 부동산 관련 기금 그리고 공공기관의 매임 임대주택 관련 예산을 종자돈으로 하고 시중에 차고 넘친다는 유휴 민간 자금을 활용해 정체 현상을 빚고 있는 시장의 매매 대기 주택을 매집하여 공적 목적으로 비축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이를 전문으로 하는 제3섹터의 조직이나 특수목적법인을 새로 설립할 수 있다.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우선 비축대상 주택으로 삼되 향후 정책적 효과를 보아가며 확대할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즉시 사용(입주) 가능한 국민주택규모 이하를 1순위로, 그렇지 않은 경우를 2순위로 삼는다면 서민과 중간층을 위한 정책이라는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당연히 민간건설업체의 미분양 아파트 등은 비축대상에서 제외한다. 비축대상 주택의 우선순위와 매수대상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급증하고 있는 ‘베이비부머’들이 소유하고 있는 주택을 전세나 월세 등으로 전환하기 위한 주택매집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비축 대상주택의 매입가격은 재산세 부과의 기본이 되는 공시가격을 최저가로 하고 비축대상 주택의 부동산 거래 신고서를 통해 세무당국에 신고한 가격을 최고가로 하는 범위 안에서 공정한 감정평가사의 평가 결과를 참고하는 협의 매수방식을 택한다. 결국 주택소유자의 입장에서는 손절매(損折賣)라는 탈출구를 갖게 되는 셈인데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적어도 당분간은 공시가격 이하로 집값이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시그널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정책적 신뢰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투기꾼과 실제 ‘하우스 푸어’를 구분하는 실효성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전국에서 매집된 비축 주택은 전세가격 안정 등을 위한 공공 및 민간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신규 주택구입 희망자에게 매도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소유권 이전이 완료되는 매도 시기는 임차계약이 완료되는 시점에 맞추면 세입자와 소유자 사이의 분쟁이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으며, 공공이 비축한 주택을 매입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서는 중개수수료 면제와 더불어 일정 비율의 취등록세 감면 조치를 통해 거래활성화를 제도적으로 지원한다. 소유주택을 전세 등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경우에는 임대차보호법에서 정한 범위 안에서 거주자의 계속 거주권을 보장하는 방법도 동원할 수 있다. 비축주택 매입 가격 대비 매도 가격이 높을 경우 발생하는 차익에 대해서는 주택 비축에 종자돈이 된 공공기금이나 민간 유휴자금의 투자 이익으로 계상하거나 배당하고 이익에 대한 일정한 세금 감면조치를 더불어 취하면 될 터이다.

 

이 방법은 그동안 반복을 거듭했던 규제 완화나 감세 조치와는 아주 다른 방법일 수 있으며 정책적 목표 이외의 다양한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우선은 거래 정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서민과 중산층의 주택거래 활성화에 기여해 자금 흐름의 차단 현상을 상당부분 해소함으로써 높은 이자 부담으로 고통 받고 있는 ‘하우스 푸어’들의 걱정거리를 줄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연기금의 공적 활용이라는 대의와 명분을 얻을 수 있는 동시에 시중의 부동자금을 건전한 투자처로 유인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주택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의 일정 부분을 완화하거나 해소함으로써 경제계층의 자연스런 이동 효과를 도모할 수 있다. 또한 불안정한 전세가격의 안정에 기여함은 물론 전국적으로 다양한 규모의 공공 임대주택을 비축함으로써 노령화와 가구구성 변화에 공공의 정책적 대응력을 높이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분양주택의 판매와 신축 아파트의 입주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효과를 나타냄으로써 건설경기 활성화에 긍정적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실수요자와 투기꾼을 자연스럽게 구분함으로써 정책적 수혜 대상자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으며, 이는 공공정책의 순기능에 부합하는 일이다. 물론 부동산 거래 활성화로 조세 수입 증가가 기대될 뿐만 아니라 안정적 주거공급을 통한 내수시장 활성화에도 적지 않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다리 걷어차기로 인식되고 있는 현재의 ‘하우스 푸어’에 대한 오해 혹은 편견이 해소됨으로써 경제계층 상승을 위한 안정적인 사다리를 제공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나아가 조기 퇴역하는 ‘베이비부머’들의 소유주택을 임대주택으로 전화함으로써 그들의 경제활동 유인력을 제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같은 아이디어는 현재의 집값이 미약하게나마 상승하거나 적어도 보합세가 유지되거나 한다는 점을 가정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 하락이 지속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 마련 역시 준비되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는 가정은 단순히 부동산 정책의 문제뿐만 아니라 세수(稅收)의 대폭 감축과 함께 중간층의 급격한 붕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어차피 준비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다른 정책과의 연계를 통해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하며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공적 연기금의 손실 보전방안이나 투자자금의 손해 발생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 대책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미리 준비되어야 할 정책적 틀은 부동산 가격의 단기 폭락보다는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가격 하락을 정책적으로 유인해야 한다는 상황에 대한 공감이며 이를 위해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방안도 매뉴얼 형식으로 마련해두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원론적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그 간극을 줄이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구체적인 상황의 해소 방안을 가지고 논쟁하고 토론하고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원론적 주장의 대립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많은 ‘하우스 푸어’에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주장을 들이대면서 정치적 선명성을 구분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아직 정쟁의 대상으로 심기에 이른 감이 없지 않다.

 

※ 이 글은 2010년 8월 20일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글 “하우스 푸어, 조금은 생뚱맞은 생각”을 보완, 발전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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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1.02.22 11:50

서울의 경우, 구릉지의 주택지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탁 트인 전망과 넓은 마당을 향유하면서 남의 눈 거칠 것 없이 나와 내 가족의 공간적 확장과 고급스러움의 풍요를 누리는 집단이며, 다른 하나는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변혁의 과정에서 가도시화를 거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시의 언저리에서 주변적 인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의 공간환경이 그것이다. 전자는 서울의 평창동이나 장충동 혹은 성북동 일대의 고급 단독주택지를 일컫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난곡이나 신림동 혹은 봉천동이나 삼양동, 미아리 등의 불량주택 밀집지역을 이르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서울을 포함하여 이런 류의 공간양극화 혹은 삶의 공간에 대한 양가성은 여러 신흥도시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정이현의 장편소설 [이현의 연애]에는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과 그의 상대자인 '이현'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풍요로운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는 조건을 내세운 이현의 계약결혼 요청에 응한 이진의 기록에는 앞서 언급한 구릉지 주택지의 양가적 풍경이 잘 묘사되고 있다. 그렇게 묘사된 4편의 영혼의 기록 가운데 하나인 ‘창세기’는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젊은 부목사의 종교적 탐문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인데 무력한 신의 영원한 침묵이라는 제의를 놓고 인간적 고통의 임계점과 종교에 대한 인간의 내면적 욕구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부분의 시작부에 묘사된 구릉지 단독주택지의 풍경은 근대도시의 허상을 쓴 모든 도시에 거의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그래서 누구든 그 양상을 읽을 수 있는 도시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지대가 높은 산동네에 사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크게 부유하여 아파트의 재산가치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숲과 탁 트인 전망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그들은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넓은 개인주택에 살며 근처에 편의시설이 없어서 감수해야 하는 소소한 생활의 불편을 한적한 평화 속에 묻어둔다. 대부분 식구 수대로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장바구니를 들고 언덕길을 오르면서 흘러내리는 찝찔하고 끈적끈적한 땀방울의 불쾌함은 경험하지 않는 편이다.
또는 몹시 가난하여 평지에 집 한 칸을 장만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꼭 재산상의 이유라고 할 수 없겠으나, 굳이 분류하자면 젊은 부목사는 명백히 후자에 속했다. 그가 살고 있는 동네는 비탈길을 오를 때 등산하는 것만큼이나 무릎에 힘을 주어야 하는 가파른 산동네였다. 집집마다 가난이 비켜가지 않은 이 마을의 장점이라면 어느 집이나 평등하게 나누어가진 시원한 조망권이었다. 이 동네에서 그나마 형편이 괜찮아 삼사층 다세대주택을 짓는 경우 그 뒷집은 그나마 손바닥만한 해방감조차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 때문에 이웃간에 사이가 틀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지만 적어도 이 마을 사람들이 가장 자부심을 가지는 부분이 시원한 전망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from 정이현, [
이현의 연애], 파주, 문학동네, 2006년 11월(초판), 167~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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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공간산책2011.02.20 20:53

2003년 제48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의 끄트머리에 역대 수상작가 최근작으로 실린 세 편의 소설 가운데 하나가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난 작가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이다. 그러니 이 작품은 10년 전인 1993년에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10년 뒤 작품이 되는 셈이다. 1931년생이니 올해로 그저 헤아리는 나이로는 일흔 하고도 세 살이나 되는 박완서는 노령이라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작품을 거침없이 쓰고 있으니 노익장이라면 외람된 표현일까.

작가 박완서는 어느 작품에서인가 머리글에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걸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라고 쓴 바 있다. 그런 점에서 <그 남자네 집>은 노년에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걸음의 즐거움을 작가에게 그득하게 안겨준 작품이라 하겠다. 지금부터 50년 쯤 전의 과거로 돌아가서 갈래머리 여고시절에 살던 집 터와 동네를 황혼에 다시 밟으며 아름다운 청년과의 명징한 기억을 텍스트에 의한 잔상으로 엮어낸 소설이기에 더욱 그렇다.

후배의 집 구경 초대에 응해 성신여대 근처의 최신식 이층집을 찾은 ‘나’(아마도 작가 자신이겠지만)는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이나 변했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태의 모진 풍파와 세월의 흐름에도 변치 않고 조선기와집으로 남아있는 그 남자의 집을 발견하고는 당시의 비루했던 삶과 아름다운 기억에 젖어든다. 이미 그 남자의 부음을 들은 지도 십년 가까이 되었지만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으로 기억되는 그 남자의 편에 서서 영원히 구슬같은 처녀의 마음으로 써내려간 이 작품은 기억과 회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활력이며, 또 생의 에너지인가를 보여준다. 되돌아보건대 50년 전 자신과 그 남자는 모두 플라토닉의 맹목적 신도였으며, 요즘 젊은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외설스러운 순결주의로 여겨질지도 모를 젊음의 분홍빛 기억을 얼른 치마 속에 감추고 성신여대 앞의 커피점을 나서는 작가 박완서의 약간은 삐진 얼굴이 소설의 마지막 장에 겹쳐진다.

박완서의 말년 작품들은 늘 먼 기억의 끄트머리에서 건져낸 장소와 물건으로부터 기술된다. 물론 요즘의 젊은 것들에 대한 다소간의 못마땅함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표현되기는 하지만 그보다 앞서 자신이 작품을 쓸 당시 이미 일흔을 넘긴 노인이라는 사실을 턱 걸쳐놓고 이야기를 꾸며가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것도 없다. <그 남자네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름이나 숫자에 대한 현저한 기억력 감퇴가 노쇠현상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하면서도 결코 잊지 못할 일들에 대해서는 명쾌하고도 분명한 기억능력을 과시한다. 그러니 작가의 요즘 작품에 줄기를 이루는 것은 아름다운 날들에 대한 기억과 잔상으로 투영된 장소나 공간이며 이들에 대한 과거의 스틸화면이 긴 분량으로 서술되곤 한다. 물론 독자는 그 속에 담긴 순수를 읽는 즐거움을 갖는다. 그리고 이 작품은 현대문학 창간 5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장편으로 꾸며져 출간되었다.

"안감내만 찾으면 그 집을 쉽게 찾을 줄 알았다. 성북동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삼선교 돈암교를 거쳐 우리 동네 앞을 흐르던 개천을 우리는 그때 ‘안감내(安甘川)’라고 불렀다. 안감내는 수량이 풍부하고 맑아서 동네 사람들은 큰 빨래만 생기면 그리로 들고 나갔다. 개천과 나란히 난 천변길은 인도와 차도가 따로 있을 정도로 너른 한길이고 개천 쪽으로는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어 차가 많지 않은 당시에는 다른 동네 사람들까지 일부러 산책을 올 정도로 한적하고 낭만적인 길이었다. 내 머릿속 지도의 한가운데를 대동맥처럼 관통하는 안감내는 찾아지지 않았다. 그게 안 보이는데 무슨 수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한단 말인가. 안감내가 복개됐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복개됐더라도 개천과 천변길을 합치면 8차선 넓이의 대로로 남아 있어야 했다. 80년대 초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가서 센 강을 보고 애걔걔 그 유명한 센 강이 겨우 안감내만 하네,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내 기억속의 안감내는 개천 치고는 넓은 시냇물이었다. 집만 나서면 개천 건너로 곧바로 성북경찰서의 음흉한 뒷모습과 거기 속한 너른 마당이 바라다보였다. 그만한 거리감 없이 우리 식구가 거기서 허구한 날 그 건물을 바라보며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동네에 그렇게 넓은 이면도로는 없었다. 복개된 개천 자리 다음으로 표적이 될만한 건 성북경찰서였다. 그건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찾은 게 아니라 우리가 맴돌던 지점에서 후배가 조오기라고 손가락질해 보여주었다. 그제서야 내가 천주교회와 신선탕 중간 지점에 서 있다는 걸 알았다. 나의 옛집은 바로 신선탕 뒷골목에 있었고 그 남자네 집은 천주교당 뒤쪽에 있었다. 천주교당도 신선탕도 천변길에 있었다. 교회는 증축을 했는지 개축을 했는지 그 자리에 있으되 외양은 많이 바뀌고 커져 있었지만 목욕탕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이고 이름까지 그대로였다. 세상에 50년 전 그 목욕탕이 그대로 남아있다니, 50년이면 목욕탕이 온천이나 사우나나 찜질방으로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아닌가. 나는 그놈의 목욕탕 때문에 그 넓지 않은 이면도로가 안감내를 복개한 길이라는 걸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내 머릿속 지도는 실재하는 거리가 아니라 다만 확보하고 싶은 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신선탕 뒷골목의 옛 조선기와집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 일대가 다세대주택이 들어서서 정확한 집터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from 박완서, <그 남자네 집>, [
2003년 제48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현대문학, 2002년 12월, 265~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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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1.02.17 21:22

구경미의 소설집 [노는 인간]에 실려있는 <봉덕동 블루스>는 1980년대 크게 욕망하지 않는 사람들의 일상적 공간과 그 일상에 대한 불현듯한 격노가 잘 표현된 작품이다. 회사 경리팀의 직원인 ‘나’는 한 달 내내 야근을 하며 결산보고를 끝내고 동료들과 함께 경리팀장의 집을 찾는다. 팀장이 결산보고를 끝낸 직원들에게 자신의 봉덕동 집에서 한 턱을 내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는 경리팀장의 산뜻한 이층짜리 주택과 예쁘고 부지런한 그의 아내 그리고 살가운 두 아이를 만나게 되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살고 있는 굴 속 같은 다세대 전셋집과 그곳에서 하루 종일 노는(뒹구는) 동거녀를 떠올리면서 그녀의 초점없는 눈동자와 무기력한 몸짓을 떠올린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세대 주택의 거주환경의 열악함과 그 속에서 과연 어떤 욕망이 분출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무기력과 권태와 우울이며, 그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동거녀에 대한 자신의 심성 또한 통제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분 좋음이 착잡함을 지나 우울로 발전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굴속 같은 다세대 전셋집을 생각했다. 또 그는 자신의 굴속 같은 다세대 전셋집에서 하루 종일 뒹구는 동거녀를 생각했다. 동거녀의 초점없는 눈동자와 무기력한 생활을 생각했다.
동거녀는, 직장을 그만둔 후 다시 구할 노력도 하지 않고 굴속 같은 그의 다세대 전셋집에서 두더지처럼 웅크리고 살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최소한의 양만 먹고 최소한의 몸만 움직였다. 가령 화장실에 간다거나 기지개를 켜기 위해 팔다리를 뻗는 정도. 책을 읽을 때도 침대에 드러누운 채 허리가 배길 때마다 이쪽 저쪽 한 번씩 몸을 굴려주는 게 다였다. 더러 눈동자를 빛내며 백지 위에 계획 같은 것들을 잔뜩 적기도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다음날이면 여전히 늘어지게 자고 난 얼굴로 퇴근하는 그를 맞았다.
그동안 왜 행복하지 않았는지 그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동거녀 때문이었다. 행복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행했던 것도 아니지만, 이제 그는 행복해지고 싶었으므로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던 그동안의 삶이 불행하게 여겨졌다. 그가 먹여 살리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약속한 것도 아니므로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던 동거녀의 생황이 마침내 불만스러워졌다. 동거녀의 방만한 생활태도가 그의 눈앞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독이 되었다. 막연히 감지되던 불안의 실체가 비로소 또렷이 드러난 느낌이었다. 모든 게 동거녀 때문이다. 동거녀 때문이었어,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야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가 꿈꾸는 또 하나의 생활은, 그러므로 예쁘고 부지런한 아내와 햇빛이 잘 드는 산뜻한 이층집을 갖는 것이었다."

from
구경미, <봉덕동 블루스>, [노는 인간], 서울, 열림원, 2005년 11월(1판 1쇄), 125~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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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1.02.17 21:17

표명희의 소설집 [3번 출구]에 실린 <야경>은 장마철 낡은 반지하방에 기거하는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서 『창작과 비평』 2001년 겨울호에 이미 발표된 단편이다. 젊은 시절부터 여자로서의 교태와 색기를 가졌던 엄마를 떠나 이제 막 꿈 많은 스물 살 시절의 항로를 향해 막 걸음마를 떼려 할 때 갑작스럽게 쓰러져 암 진단을 받은 엄마의 수발과 욕창 치료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한 젊은 여성 Y가 잠든 어머니를 뒤로 하고 자신의 제한된 자유를 향해 밤길을 걸어 수영장에 다니는 모습은 사회적 약자이자 여성인 어머니의 삶이 딸 세대에 이르러서도 결코 전복되지 않은 채 세습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삶에 대한 징벌의 의미를 내포하기까지 한다.

결국 소설 속의 화자 Y는 자신의 삶에 내재한 부박함을 이겨내는 것 보다는 오히려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더욱 약자인 대상에 대한 조롱과 비웃음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보상받는 인물로 그려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때론 여성의 사회적 신분에 대한 억눌린 욕망의 분출이며, 그 희망의 전도에 대한 암운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연 여성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 항로가 얼마마 스산한 것인가를 묘사하는 대목에 등장하는 단독주택의 다세대주택으로의 변모, 그리고 그 안에서의 거주공간 이동은 1980년대 우리들의 삶의 한 토막으로서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다.

"엄마가 자리에 눕고는 이년에 한 번씩 올려받는 전세 차익이 고정 생활비였다. 어쩌다 집에 문제가 생겨 크게 보수공사라도 하는 달이면 물을 벗어난 물고기처럼 한참을 허덕였다. 작년에는 급기야 전세 차익을 더 챙기기 위해 집의 맨 아래층인 반지하로 옮겼다. 벋듯한 집은 세입자들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사층짜리 다세대주택의 주인이던 그들 모녀는 지난 십년간 맨 위층에서 계속 한층씩 내려앉았다. 넓고 전망 좋던 꼭대기층에서 그 절반 넓이인 삼층으로, 삼층에서 다시 옆 건물의 그늘이 가려지기 시작하는 이층으로, 또다시 이층에서 받던 빛의 절반만 들어오는 일층으로, 그리고 어둡고 눅눅한 지하로 …… 어느 순간부터 삶이란 내려앉기의 연속이었다. 한층씩 내려앉을 때마다 심한 우울증을 보인 엄마는, 급기야 지하층으로 옮길 때는 그것이 이제는 정말 막다른 골목임을 절감하는 듯했다. 다음으로 갈 곳이 어딘지 알겠구나. 체념과 절망의 바닥에 닿아 있는 엄마의 목소리는 오히려 담담했다. 이젠 무덤 밖에 더 남았겠니. 엄마의 메마른 입술에서 처음으로 죽음과 관련된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그 말은 더없이 감미롭고 고혹적이어서 마치 이 세상의 언어 같지 않았다. 물속 같기도 하고 혹은 피안의 집 같기도 한, 영원한 안식의 공간…… Y는 엄마를 제치고 자신이 먼저 그곳에 닿고 싶었다. 생에 대한 집착이 강한 쪽은 언제나 엄마였고 일찍부터 그런 엄마의 삶의 태도에 의아해했던 것은 Y 자신이었다."

from
표명희, <야경>, [3번 출구], 서울, 창비, 2005년 12월(초판), 110~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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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1.02.17 21:10

공선옥의 연작소설 [유랑가족]은 소외된 사람들의 팍팍한 애옥살이와 끊을 수 없는 질긴 인연처럼 엉겨붙어 세상의 변방만을 겉돌게 하는 지겨운 피딱지 같은 가난의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사람들의 거덜난 삶과 가족의 해체 그리고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결핍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한’의 렌즈를 통해 포착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꼬리를 물고 질긴 인연의 굴레에 얽힌 우리들의 주변인들이다. 꿈이라곤 찾을 수 없는 피폐한 시골구석에서 만난 '미정이'와 '경애'와 '향숙이', 서울로 올라가 공사장을 전전하며 도망간 아내를 찾아나서는 미정이 아빠 '김달곤', 중국 연변에서 시집와 김달곤의 아내와 같이 서울로 줄행랑을 친 김달곤의 이웃인 '기석'과 그의 처 '장명화', 이들 두 여자에게 일터를 마련해준다고 꼬여 서울의 노래방 도우미로 이들을 팔아버린 '배사장'과 그 과정에서 달곤의 아이가 아닌 카센터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된 미정의 엄마 '서영애' 등.

이들은 모두 가난이라는 하나의 회로에 묶여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상을 계속하고 있으며, 다시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갈 꿈은 그 앞에 도사리고 있는 웅덩이로 인해 언제나 실패로 거듭된다. 결국 가난이라는 굴레가 가족의 해체와 유랑이라는 노마드적 삶을 추동하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관계가 싹틀 것을 희망하는 메시지가 곧 공선옥의 연작소설 [유랑가족]이다. 연작소설집에 두 번째로 실린 작품 <가리봉 연가>는 과거 개발연대에 우리의 순박한 청춘들이 점유했던 공간에 대한 기억과 여전히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도시인과 서울의 꿈을 좇아 한국으로 들어온 조선족들의 모자이크가 다시 새로운 집합적 삶의 형태로 공간을 점유하고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여기 등장하는 1980년대 중반 이후의 다세대, 다가구주택이 요즘의 주상복합 대신에 ‘주공복합’으로 묘사되는 점은 흥미를 넘어 우리 사회의 유랑적 단편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는 삶이 무서운 형벌인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 것이다.

"도저히 집을 찾지 못하고 전화를 했다. 바로 위라는 경수 말에 다세대주택들의 숲 속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5층짜리 건물 맨 위 창문에서 경수 아내가 아이를 안고서 밑을 내려다보고 있다. 다세대주택 출입구로 막 들어서는데 지하에서 기계들의 소음이 들려온다. 계단 참에는 부직포 뭉치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주상복합이란 게 있다더니, 여긴 주공복합이냐?”
“인형공장이에요. 그래도 우리집은 5층이라 소리가 덜 나긴 하지만, 날마다 5층 계단 올라다니다 보면 무슨 등산을 하는 것 같다니까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경수 입이 헤벌어져 있는 것이, 아무래도 2천5백짜리 이 전셋집을 장만하게 된 것이 딴에는 기쁜 모양이었다.
“형, 이제 저 말마다 따순 물로 우리 아들하고 목욕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날마다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경수의 말이 한에게도 실감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이 맨 처음 보일러가 설치된 전셋집을 구해 들어가서, 맨 먼저 온 가족이 따뜻한 물로 목욕부터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니까. 십여 년 전에는 아저씨였다가 지금은 형이 되어 있긴 했지만 말을 하다 말고 얼굴을 살짝 붉히는 것이 한에게 경수는 여전히 전라도 곡성 산골 소년으로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5년 전에 경수는 지금의 제 아내를 한에게 소개시키며 대뜸, 우리 형이야, 그랬다. 이제 어였한 청년이 된 경수 같은 동생이 생긴 게 한도 기분 좋았다. 간호보조원 출신인 경수 아내 미순은 요새 구로성당 옆에 있는 ‘파랑새공부방’에서 임시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네 살 먹은 경수 아들 강산이가 미순이 차려놓은 음식상 앞에서 자꾸 머리를 득득 긁어댄다. 미순이 부끄러운 듯 한의 눈치를 보며 강산이를 목욕탕으로 데려간다. 경수가 미순에게 묻는다.
“애기한테 이약 안 쳤어?”
“이라니? 요새도 이가 있니?”
“요새 강산이 엄마가 공부방에 강산이를 데리고 다니거든요. 아마 거기서 옮은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까 나도 근지럽네. 하여간 온 식구가 요새 이 때문에 밤에는 이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니‧‧‧‧‧까요.”
아내 눈치를 슬쩍 보며 말끝을 맺는다. 경수 말과 행동이 재미있어 한이 웃는데 문득 경수가 노란 표지의 책을 한권 내민다."

from 공선옥, <가리봉연가>, [
유랑가족], 서울, 실천문학사, 2005년 3월(초판 1쇄), 7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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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