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집_일기2015.05.04 17:31

봄이 기다려진다는 소망을 적은 것이 얼마 전이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시간을 속절없이 흘러 벌써 여름으로 향하는 느낌이다. 언제부터인가 봄을 무척이나 기다렸는데 매년 봄이면 약간의 우울과 서러움으로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기대한 것 이상의 포만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올해도 비슷한 모양이다. 물론 매번 짬이 날 적마다 이제는 봄이 아닌가?’하며 스스로에서 위안의 말을 던지기는 하였지만 번번이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매번 아쉬움만 남는다.

 

올해는 윗집 친구와 약속한 것처럼 집 전체에 걸쳐 이곳저곳 손을 보기로 한 해다. 겨울부터 그동안 적어두거나 혹은 보아두었던 것들을 일일이 메모를 해 손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지만 무슨 일이 그리도 걸리적거리는지 도통 생각대로 움직이지 못하다가 윗집 친구의 권유로 집을 손보기로 한 것이다. 집을 지어 입주한 후 매 4년마다, 그러니까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리는 해마다 큰 공사는 아니더라도 소소한 곳을 보수하기로 한 약속을 입주 후 새집 입주 후 4년 반 만에 실행에 옮기게 된 셈이다.

 

 

그동안 집 안팎을 오가며 살펴 둔 것들이란 그저 소소한 것들이거나 정기적으로 보수를 해야 하는 것들이어서 크게는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 두었었다. 하나는 벽돌로 치장한 외벽에 발수제(撥水劑)를 바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콘크리트로 마감된 계단이며 포장면에 강화제를 발라 내구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마지막 하나는 각종 철제 난간 등에 녹이 슨 곳이 있다면 이를 긁어낸 뒤 방청제를 바르고 다시 페인트로 마감공사를 마치는 것이다. 윗집도 아랫집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집을 지은 건설회사에 이 일을 맡겨 한꺼번에 보수공사를 하자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었고, 바쁜 시기에도 ()에스화이브에서 선뜻 나서 주었다.

 

위아래집 모두 보수를 마치는 데는 모두 보름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으며, 아랫집은 300만 원 정도가 든다는 것이 시공사의 의견이었고,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보수공사는 비가 뜸한 시간을 골라 하는 것으로 했고, 420일부터 시작해 54일에 두 집 모두를 마칠 수 있었다. 마침 절기가 좋은 탓에 그동안 비가 며칠 내리기는 했지만 공사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어서 계획한 그대로 일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혹시라도 시간이 지나면 잊을 것이 염려되어 보수공사를 한 내용들을 여기 적어놓기로 한다. 대문 밖 벽체에 노출되어 있는 도시가스 배관의 페인트 박리 부분과 함께 마당의 철제 난간과 부엌 밖의 장독을 놓을 수 있는 데크의 철제 난간에 녹이 슨 부분을 모두 벗겨내고 방청제를 바른 뒤 회색의 페인트로 다시 마감하여 새 집처럼 보이도록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빗물받이와 주차장 자동문의 앵커 등에도 페인팅을 새로 했으며, 마당쪽과 부엌 바깥의 데크 목재 위에도 새롭게 오일스테인을 다시 도포하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현관으로 오르는 계단과 지하 주차장 바닥, 그리고 서재 앞마당과 뒷집으로 연결되는 뒷마당의 콘크리트 노출 부분은 아직은 특별히 손 볼 것이 없어 보이지만 이왕에 보수를 한다는 차원에서 모두 콘크리트 강화제를 두 차례 정도 발라 콘크리트가 공기 중에 오래 노출되면서 날이 무뎌지거나 가루가 생기는 부분을 보수하였다.

 

그리고 제법 손이 많이 가고 비용도 드는 외부 마감재인 벽돌면 위에 새롭게 발수제를 모두 도포하여 벽돌이 습기를 머금거나 습기로 인한 외벽의 강도 약화를 미연에 방지하였다.

 

나머지는 매우 소소한 것들이어서 일부 줄눈이 이탈된 곳의 몰탈을 들어내고 다시 충진하거나 일부 파손된 벽돌은 들어내고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벽돌로 이를 채우는 방식으로 외벽을 가지런하게 정리하였고, 실내에 있는 욕실의 이음매 부분은 곰팡이가 피었거나 일부 접착력이 약화된 것이 발견되어 모두 떼내고 모두 다시 코킹하는 방식으로 보수공사를 진행하였다.

 

햇수로 만 4년이 넘었으니 1층과 2층의 창문에 설치된 방충망 일부가 뜯어지거나 울퉁불퉁한 상태가 되었는데 ()필로브 창호에 연락을 하니 하룻만에 기술자가 집으로 와 모두 교체하였고, 모든 창호의 여닫이 기능을 재점검하면서 나사를 조이거나 바꾸는 등의 훌륭한 서비스를 해 주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능소화가 줄기를 늘이며 마당의 철제 난간에 강하게 부착되어 있었는데 난간 보수공사를 위해 할 수 없이 3년이나 자란 능소화의 줄기 일부를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아쉽지만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작업자들에게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이제 4~5년 뒤에나 다시 벌어질 일인데 보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행여 일상이 불편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고도 세심하게 일을 마무리한 실무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공사가 마무리된 5월 초에는 마침 연휴가 있어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당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4년 반이나 지난 시간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제는 봄맞이를 위해 농원이나 화원에 다닐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화초와 수목이 자리를 잡고 잘 자라주어서 늘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특히 작년에 긴 가지를 뭉텅 잘라낸 배롱나무에서 잔가지와 이파리들이 꼬물꼬물 생기는 것을 볼 때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가쁨의 탄성이 터져 나왔고, 어김없이 꽃을 틔운 수선화며 튤립도 봄 풍경을 완성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

 

 

봄날은 그 안타까움만큼이나 하루하루가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마당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 바로 그 징표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짧은 봄날의 아쉬움 때문인지 봄날의 하루는 우리가 경험하는 하루의 시간과는 사뭇 다르다. 어제 발견할 수 없었던 새순이 별안간 눈에 띄기도 하고 분명 이틀 전에는 그저 흙이었던 부분에 붉은 새순이 벌써 자라서 눈인사를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서럽고 안타까운 절기다 곧 봄이다.

 

     

 

올봄에 새롭게 알아차린 발견은 모란의 향기가 무척이나 그윽하고 정갈하다는 것이다. 3년 전에 심은 백모란이 외로운 듯해 작년에 아주 작은 가지 하나를 천 원에 구입해 홀로 외롭던 모란 옆에 심었더니 올해는 두 개의 가지에서 모두 세 송이의 하얀 모란이 꽃을 피웠는데 근처에 이르면 딱히 어디라고 밝히지는 않으면서 향기를 자아내는 모습이 꽃빛깔만큼이나 우아하고 그윽하다. 붉음 모란의 타는 듯한 빛깔에 비해 너무 정온한 느낌이어서 흥취를 돋구지는 않는다고 다소 서운해 하던 아내도 어스름 저녁 마당에 깔리는 그윽한 흰 모란의 향기를 맡으면서는 그 자태와 냄새에 반한 표정이고, 아이들도 마당에 나서면 모란에 코를 들이대고 봄내음을 맡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봄은 과연 색채가 마술을 부리는 시간이다. 마당 귀퉁이에 서 있는 한식 담장에 붙어 두 달 동안이나 봄을 느끼도록 한 붉은 잔꽃들이며 이제 막 개화를 시작한 미스김 라이락의 빛깔은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으며, 강한 표정과 색깔로 이제 곧 여름이 온다는 것을 알리는 대문 안 경사마당의 푸르름 경쟁은 집 안에 들어서는 이들로 하여금 하루의 피로를 온전하게 풀어낼 뿐만 아니라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자양제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5월에 접어드니 서서히 봄이 떠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낮에는 20도를 넘나드는 기온이 그렇고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 으스스한 기분이 없어졌으니 절기가 봄은 아닌 듯하다. 다시 또 1년을 기다려야 이 계절이 돌아올 것이니 서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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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3.12.31 14:30

또 한 해가 간다. 살구나무집에서의 생활도 이제 4년째로 접어드는 셈이다. 이제 겨울의 한복판에 놓인 셈이지만 세밑 날씨는 제법 화창하고, 늘 소망하듯 일상은 평화롭다. 살구나무집이 있는 죽전은 몇 해 살아보니 다른 곳보다는 제법 눈이 더 많이 내리는 곳이고, 눈 치우기가 겨울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곳이라고 애써 위안을 해 본다. 겨울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이지만 벌써 대문 앞 눈치우기를 여러 번 했다는 느낌이고, 첫눈이라기에는 너무 많이 내린 마당의 눈은 여전히 시절이 한겨울임을 말해 준다. 세밑이면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 크고 작은 회한과 고마움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평화롭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이제 막 해넘이가 시작될 지난 한 해도 크게 그르치지 않은 삶을 이어갔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 1224일에는 살구나무 아랫집의 귀염둥이인 마루가 태어난 지 만 4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아이들이 씌워준 고깔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은 마루는 그저 온 식구가 하루 종일 집안에서 북적이는 것이 좋을 뿐이다. 겨울철 생활비를 아끼느라 아내는 보일러가 가동될 때마다 방을 오가면서 실내온도 낮추기에 여념이 없는 세밑이다.

 

11월의 부안 강연에 이어 12월에는 부산 강연을 핑계로 식구들과 나들이를 했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지내다 보니 다른 곳에 살던 때와는 달리 집을 떠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집을 비운다는 생각이 크지 않은 탓에 뜸했던 가족여행을 지방 강연을 핑계로 이어가기로 한 것이 지난 가을이다. 그 덕분에 비록 하루 이틀이지만 온 가족이 부안 나들이를 했고, 또 아내와 호젓하게 부산여행을 할 수 있었다. 어제는 직장에 다니는 큰 아이의 연차휴가를 이용해 세 모녀가 전주로 당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렇듯 집은 베이스캠프다. 그 베이스캠프가 적어도 영원히 고정될 것 같은 생각에 살구나무집에서의 일상은 제법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세밑에 문득 들기도 한다.

 

 

 

꼼꼼하게 가계부를 쓰는 주부처럼 지난 3년 동안의 살구나무집 유지관리비를 모두 정리해 보았다. 중계동의 41평 아파트에 살 때 월평균 관리비가 373천원이었는데 2013년은 228천원으로 줄었다. 이미 [아파트와 바꾼 집]에서 살펴본 것보다 훨씬 더 관리비가 줄어든 셈이다. 전용면적은 1.7배가 늘었는데 관리비는 4년 전의 아파트 관리비에 비해 월평균 15만 원 정도가 줄었으니 꼼꼼히 살피며 산 셈이다.

2013년의 관리비가 2012년에 비해 큰 폭으로 낮아진 이유는 당연히 태양광 발전설비에 의한 전기발전량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는 전기 걱정 없이 살림을 꾸릴 수 있었고, 전체적으로 여러 가지 공과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낮은 관리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일 년쯤 더 지나면 태양광 발전설비의 설치 효과를 좀 더 실증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판단하게 되었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또 다른 한 해가 시작된다. 바라건대 새해의 소망 역시 온 가족의 건강과 평화로운 일상이다. 재물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폭이 넓고 깊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런 소망의 튼튼한 버팀목으로 살구나무집이 베이스켐프가 되기를 세밑에 소망한다. 나이 드신 어머님의 평화로운 일상도 욕심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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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3.09.23 16:47

5일 동안이나 이어진 추석 연휴는 그야말로 휴식의 연속이었다. 어머님이 편찮으신 탓에 처음으로 차례를 모시지 않아 5일 동안의 연휴를 한국민속촌 방문-영화 감상(관상)-야구경기 관람(LG:두산)-서울시립미술관(고갱전) 전시회 관람 등으로 하루씩의 일정을 채우고 남은 시간은 모두 집에서 가족들과 어울린 그야말로 황금 같은 연휴였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지칠 즈음이면 마당으로 나가 빠르게 가을로 접어드는 절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때론 카메라에 담아 다시는 오지 않을 2013년의 초가을을 만끽하였다.

 

늦은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시간은 모두 채송화의 계절이다. 2년 전 쯤 곤지암에 이르는 국도 옆의 옹기가게에서 옹기까지 몽땅 가져온 채송화 단지는 스스로 피고 지기를 계속하면서 대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는 이들을 맞아준다. 올해도 어김없이 홑잎의 조선 채송화가 만개하였다. 조금 아쉬운 일이라면 채송화가 만개하는 시기에 아주 오랜 동안 비가 내려 개화가 화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또 어떠랴. 내년이면 다시 또 그 화려한 비단결의 꽃을 다시 볼 수 있으니 하며 마음을 접는다. 아내는 꽃이 진 뒤 씨앗을 따로 받아 안마당의 후미진 곳에 뿌려두면 내년에는 안마당에서도 채송화를 볼 수 있겠다며 내게 씨를 받아둘 것을 청하였다.

 

 

마당은 이제 잔디가 키 키우기를 그만하고 뿌리 내리기에 애쓰는 모양이다. 지난 여름 잘 자라던 잔디가 문득 키 키우기를 그치면서 빛을 잃기 시작했다. 자연의 이치니 따로 보탤 말은 없지만 올 여름에는 맨발로 마당에 나선 일이 적었다는 생각에 약간의 아쉬움도 배어난다. 지난 해 가지를 심하게 자른 감나무는 예상한 그대로 과실을 맺지 못하고 잎만 크게 키우더니 다른 집과 달리 단풍도 일찍 들기 시작했다.

 

 

큰 감나무 이파리가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그 자리에 다행스럽게도 아내가 심어놓은 달리아가 붉은 꽃잎을 열러 서운한 마음을 달래준다. 마침 꽃잎이 지는 배롱나무 아래서는 연보랏빛 해국이 개화를 시작해 가을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고추잠자리도 여름을 아쉬워 하듯 붓꽃의 이파리에 앉아 가을을 맞는다.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에서 가장 다행으로 여기는 일은 아무래도 강아지 마루의 일상환경이다. 거실만 나서면 맘껏 달리며 재롱을 부릴 수 있는 마당이 있고, 현관을 거쳐 대문으로 나서면 이웃집 강아지들과 놀며 하루를 지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때문인지 식구들은 모두 시간이 나기만 하면 강아지를 데리고 이웃집으로 마실을 가거나 멀리 탄천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사람 손을 많이 탄 때문인지 마치 자신이 사람인 듯 밥이 차려지는 시간이면 먼저 의자에 올라 간식을 보채기도 하는 모습은 생활의 윤활유라 하기에 충분하다. 강아지와 어울려 틈을 즐기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살구나무집에서의 새로운 즐거움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가을은 문득 다가온다. 해 저물녘이면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거실 분합문을 닫고 가벼운 담요를 끌어당기는 모습에서 가을이라는 절기를 새삼 느낀다. 그래도 아직은 가을이 오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것은 늦게 심은 방울토마토가 싱싱하게 자라는 모습을 볼 때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시간이어서 담벼락에 바짝 붙어 있는 머루가 이미 가을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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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풍경2013.08.20 23:17

이제 살구나무집으로 삶을 의탁한 지 만 2년 반이 지났다. 매년 앞뒷 마당을 찾는 여름 손님들이 변하지 않지만 올해는 좀 더 진기한 객들이 집을 찾았다. 가장 먼저 기억하고 싶은 일은 제법 떨어진 이웃집 강아지가 자주 살구나무 아랫집을 찾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주인집 식구들이 서로 오가며 정을 나눈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길을 따라 걷고 문 앞에서 컹컹 짖어 문을 열어달라 청하고, 문이 열리기 무섭게 안마당으로 올 적마다 제법 정갈하고 맛있는 간식을 건넨 아내의 정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이웃집 강아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살구나무 아랫집을 찾는다.

 

 

 

 

올해 여름 처음 발견한 곤충은 하늘소다. 습기가 꽉 찬 상태에서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던 8월 초 콘크리트 옹벽을 느릿느릿 오르는 하늘소를 보고 마치 초등학교 시절 곤충채집을 위해 한강 둑방을 거닐다가 아무도 발견한 적이 없는 진기한 곤충을 보았을 때의 그 느낌 그대로였다. 몸집 만큼이나 긴 더듬이를 천천히 움직이며 콘크리트 옹벽을 오르는 하늘소를 보며 원하는 곳 어딘가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원을 하기도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개구리가 집을 찾았다. 작년에 온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등 빛깔이 제법 누런 색인 토종 개구리였는데 깊은 밤 비비추와 무늬바위취가 자리한 곳에서 인기척에 놀라 몸을 움추린 녀석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방아깨비며 쓰르라미며 귀뚜라미를 만나는 것은 다반사니 하늘소와 개구리를 만난 것 만큼 흥미롭지는 않다.

 

새들도 제법 마당을 찾아 지저귀는 일이 다반사지만 올해는 특히 대문 안 경사마당 초입에 두고 있는 돌확의 물을 먹으러 오는 새를 여러 번 만날 수 있었다. 녀석들의 반응이 너무 재빨라 미처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전에 도망가기가 일쑤지만 돌확의 물을 마시고 있는 녀석을 집 안에서 우연히 촬영할 수 있었다. 비록 지하수를 자연스럽게 흘린 것이지만 벌이며 새들이 찾아 목을 축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흐믓한 마음이 드는 것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누리는 다른 여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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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풍경2012.08.13 21:43

유난히 무더운 2012년 여름. 보름 가까운 날 동안 유례 없는 열대야가 계속되었고, 살구나무 아랫집 마당은 오후 3시가 넘어야 길게 그림자가 드리운다. 마치 지중해 연안 국가의 사람들처럼 아침부터 오후까지 동네 사람들은 납작 엎드려 기척이 없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할 무렵에야 이집 저집에서 개 짖는 소리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가 담장 밖으로 흘러나온다.

 

아직도 방학이어서 게으름을 필 수 있기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깨어나면 제 멋대로 키를 키우는 마당의 들꽃이며 나무와 달리 식구들은 거실에 틀어놓은 선풍기를 친구 삼아 졸다가 깨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폭염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는 것은 마당의 배롱나무 꽃과 그 아래 다소곶하게 앉아 있는 벤치 그리고 항아리가 풍기는 풍경의 냄새다. 해가 지고 아직 어스름이 몰려오기 전이면 이곳에 나가 앉아 실오라기 같은 바람을 느낄 수 있고, 진한 커피 한 잔을 내다 나름의 상념에 잠길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여름 더위와 짝을 이루는 살구나무집 풍경이다.

 

 

밤이면 온 동네가 암흑에 젖지만 2층 아이방의 따뜻한 불빛과 마당에서의 올림픽 중계 시청은 더 없이 풍요롭고 정겨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비록 열대야와 폭염으로 기억되는 2012년 여름이더라도 사위가 어둠에 묻힐 때 방의 노란 불빛을 배경으로 짙은 어둠 속에 마당의 잔디를 깔개 삼아 담장을 화면으로 만들어 이웃들과 함께 시청한 런던 올림픽 중계방송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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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2.07.16 21:34

혼인한 뒤 바로 브라질로 가 사업을 하는 손아래 동서와 처제가 모처럼 함께 고국나들이에 나섰다. 비록 사업 규모가 크지는 않더라도 어느 하나가 사무실을 비울 수 없어 한국으로 나들이를 할 때면 들 중 하나만 오던 것이 통례였는데 이번에는 둘이 함께 오도록 브라질의 사무실을 단단히 단속하고 나들이를 했다고 한다.

 

일요일의 오후 시간. 이미 어제 살구나무집에서 하루를 보낸 동서 내외의 환영을 받으며 처가 식구들이 모두 모이니 그 인원이 스물다섯에 이른다. 윗집에서 가져온 의자를 마당에 놓고 대형 그릴에 불을 붙여 고기를 굽는 한편 집 안에서는 여인들의 수다가 한창이다. 나보다 나이가 위고, 아내의 오빠가 되는 작은 처남은 아직 서툴다는 핑계를 대지만 섹스폰을 꺼내 마당 한 켠에서 연주를 겸한 연습이 한창이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뒤 처음으로 모두 모인 6남매(2남 4녀)는 모처럼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 죽전 귀퉁이 마을의 저녁을 꽤나 시끄럽게 만들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한 6남매의 즐거운 표정을 찍느라 반대편에서는 동서와 조카들 그리고 처남댁들이 또 시끄럽다. 오랜만에 동기간을 만난 아내는 아이처럼 좋아라 했고, 늦은 밤까지 웃음과 소란은 계속되었다.

 

 

사실 스물다섯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한꺼번에 집을 찾는다는 소식에 걱정을 많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비록 좁기는 하나 마당이라는 여유 공간이 있어 큰 걱정이나 불편 없이 일을 치룰 수 있어 마당 딸린 집의 넉넉함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식구들이 모두 돌아간 밤에는 모처럼 처제 내외와 지난 일을 추억하기도 하고, 돌아가신 장모님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식구의 따뜻한 정을 새삼 확인하는 날이었다.

 

마당이 있어 제법 풍성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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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2.06.25 13:32

주말 이른 아침부터 대문의 벨 소리가 요란하다. 아직 설잠에서 깨지 못한 강아지를 따라 방에서 나와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고 사람을 맞으니 <Esquire>라는 이름의 남성 잡지책 한 권이 배달되었다. 포장지를 벗겨내고 보니 열흘 쯤 전에 보낸 원고가 벌써 인쇄가 되어 책으로 꾸며져 집으로 배달된 것이다. 내가 쓴 원고가 어디에 있는지를 목차를 보고 어렵게(?) 쪽수를 찾아보니 깨알 같은 글에 그림이라곤 전혀 없는 말 그대로 글자만으로 가득한 두 쪽을 찾을 수 있었다.

 

 

6월 7일. 내게 원고를 써 달라 청탁한 잡지사의 요청은 이런 것이었다.

 

“… 출간하신 <아파트와 바꾼 집>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희 잡지에서도 건축, 그 중에서도 집짓기, 그 중에서도 '마당 딸린 내 집 갖기'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땅콩집과 더불어 살구나무집에 관한 얘기들이 심심치 않게 오가는 것을 지켜보며 이 트렌드의 가장 핵심에 계신 교수님께 원고 청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청탁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최근 대중들의 관심이 '건축'에 쏠리고 있습니다. 때마침 영화 <건축학 개론>이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고,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일간지 칼럼에서도 건축과 건축가를 다루며 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콘텐츠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 역시 뜨겁습니다. 서점가에서는 집짓기와 관련된 책들이 연일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에스콰이어에서는 최근의 이런 경향과 흐름을 간단하게 짚어 본 후, 현장에서 가장 생생하게 '마당 딸린 내 집'을 갖게 된 박철수 교수님의 생생한 '건축학 개론'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3,40대 남성 독자들에게 '집'이란 과연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며칠 동안 글의 시작을 어떻게 할까를 궁리하다가 원고 마감을 하루 앞두고 부리나케 글을 마무리해 잡지사에 보낸 것인데, 원고를 보낸 지 채 열흘이 되지 않아 벌써 책으로 꾸며져 독자들과 서점가에 선을 보인 모양이다. 글을 장식한 그림이 T자라는 점이 조금은 생뚱맞은 느낌이지만 잡지사에 보낸 글은 <아파트와 바꾼 집>에 담았던 ‘살구나무집 생활 9개월’의 뒷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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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바꾼 집’ 그 후

 

박철수(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살 곳을 바꾼다?

 

<난문쾌답>이라는 책이 있다. 경제 한파와 고용 불안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피로사회에 어쩔 수 없이 귀속된 많은 직장인들에게 공감을 하게 했다는 광고가 붙은 책이다. 지은이는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여러 가지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기는 하지만 다 떼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두 가지다. 경제학자이자 경영인이라는 것. <난문쾌답>은 오마에 겐이치가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Business Breakthrough)’라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남겼다는 글이나 말을 골라 직원이 오마에봇(@omaebot) 계정을 만들어 트위터를 이용해 알린 것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책이다.

 

<난문쾌답>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3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3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라고. 물론 잘 지켜지지 않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반복하는 작심(作心)을 가장 무의미한 행위라 언급하고 있으니 허탈하기 그지없다. 그가 했다는 말을 천천히 읽으며 다시 곱씹어보자. 스스로를 대입시켜 본다면 공감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오마에 겐이치가 제시한 인간을 바꾸는 방법 3가지를 따로 떼어내 함수 관계나 선후 관계를 따져보자면 ‘사는 곳을 바꾸는 것’이 다른 것에 우선하겠다는 점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시간을 달리 쓴다고 해서 사는 곳이 바뀌지는 않으며, 새로 사람을 사귄다 해서 사는 곳이 바뀌지는 않는다. 결국 사는 곳을 바꿔야 새로운 사람을 사귈 가능성이 높아지고, 시간을 달리 쓸 기회를 얻게 되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 바뀌기를 원하거나 다른 이에게 삶을 바꾸라 권고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사는 곳을 바꾸는 것’이 첩경일 것이라는 말과 다름 아닐 것이다. 이민을 갈 수도 있고, 답답하고 복잡한 도회지를 떠나 자연에 나를 맡기고 그 섭리에 의탁하는 새로운 생산의 삶인 귀농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일상이 놓일 지리적 위치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움직인 곳의 거처가 여전히 ‘아파트’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가의 울타리를 넘거나 전혀 다른 풍경과 생산 방식이 작동하는 사회에 터를 두고 그동안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새로 꾸릴 요량이더라도 매일 매일의 일상이 반복되고 누적되는 ‘아파트’가 몸을 누일 거처라면 작심하고 떠나온 곳의 삶과 크게 다를 것이 없겠다. 레디-메이드 인생일 가능성이 높고 인간이 바뀔 개연성도 여전히 봉쇄될 것이 분명하다. 아파트에 사는 우리가 이유 없이 권태를 느끼는 것처럼. 책에서 인용한 글을 현실적이고 다분히 한국적인 상황으로 달리 해석하자면 결국은 장삼이사의 보편적 도시주택으로 불리는 ‘아파트’를 떠나 다른 집으로 거처를 바꾸는 것이 곧 삶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일 수 있겠다. 그래야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이어가게 되고 그로 인해 사람이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일까.

 

아파트 권태 증후군

 

‘아파트’에서의 일상은 누구에게나 큰 차이가 없다. 오죽했으면 ‘인간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이외수, <감성사전>)이라고 했을까. 그 안에서 아이들은 ‘22평 친구들’(박민규, <비치보이스>)을 사귀고 부모들은 ‘아파트 평수와 자녀의 석차를 삶의 목표로 삼는 닫힌 사회’(정운찬, ‘국무총리 취임사’에서)에 기꺼이 편입되어 ‘무리지음과 서열화의 정치학’(이영미, <광화문 연가>)을 배우고 익혀 ‘십 억짜리 아파트에 살며 이십억이 안 되니까 안심할 수 없다 엄살떠는 중산층 환자들’(이지민, <타파웨어에 대한 명상>)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아이들 과외공부 시켜 대학까지 보내놓고 나서 빚 없이 강남의 오십 평 아파트에 산다면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박완서, <마흔아홉 살>)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삶을 살아낼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아무리 도리질을 해도 정밀하게 짜여 쉼 없이 돌아가는 아파트단지에서의 일상 회로를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파트’에 살다 보면 전혀 의도한 적이 없는데 뜬금없이 괴이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살 것인가’라는 의문이 그것이다. 평일은 평일대로 주말과 휴일은 또 나름의 반복된 규칙이 일상으로 굳어진 습속을 되풀이하다보면 삶에 대한 회의나 권태가 생각이나 행동에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증상은 감지되었지만 원인을 도무지 찾을 수 없고 당연히 치유 방법도 난감할 뿐이다. 일컬어 ‘아파트 권태 증후군’인 것이다. ‘풍뎅이처럼 저마다 제 영역에서만 영일 없이 푸드덕 거리는 요상한 시절에다 또 그렇게 살아가도록 짜인 생업’(김원우,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본>) 때문에 빚어지는 마음의 상처가 아닐까.

 

이런 점에서 최근 대중들의 관심이 ‘건축’에 쏠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서 열광에 가까운 ‘집짓기’에 관한 관심은 전에 경험하지 못한 생경한 것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흥행이나 집짓기에 관한 예능 프로그램의 공중파 방영, 일간지를 통한 연속 기획 기사 마련과 서점가에서 전례 없이 지속되는 집짓기 신간의 출간과 관련 서적의 판매 약진 등은 크게 보아 아파트 권태로부터 불거진 일종의 욕망 분출이거나 아파트 권태 증후군에 대한 치유 방식의 서막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특히, <두 남자의 집짓기>는 누적된 아파트 권태 증후군의 새로운 돌파구 구실을 톡톡히 했다. ‘땅부터 인테리어까지 3억으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의 삶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제법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머뭇대는 이들에게 믿음과 용기를 준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소위 ‘땅콩집’을 통해 ‘살 곳을 바꾼’ 이들은 베이비부머들과는 전혀 다른 사회경제적 환경과 도시문화적 상황을 경험하고 생산한 세대라는 것이다. 그들은 어두운 ‘다방’이 아닌 안팎이 공존하는 ‘카페’ 문화의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며 탁 트인 열린 공간에서 담요를 깔거나 걸치는 일에 익숙한 ‘담요문화’ 세대이다. 아파트와 아파트단지의 절대적 폐쇄를 열린 카페의 개방감으로 치유하고 땅집으로 의식을 확장한 세대이다. 게다가 그들은 주택의 절대적 부족과 그로 인한 부동산 가격 앙등으로 이익을 챙길 가능성이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현실 세계에서 알아차린 세대이다. 아파트 되팔기를 통해 재산을 늘릴 수 있는 기회도, 능력도 없거니와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 시절이 되었음을 이미 몸으로 느낀 세대이다. 그러니 ‘팔기 위해 집을 살’ 까닭이 없고, ‘아파트 권태 증후군’을 스스로 진단하고 ‘아이들에게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살 곳을 바꾼다’는 치유의 방식을 깨달은 의지가 충만한 세대인 것이다.

 

아파트와 바꾼 집

 

<아파트와 바꾼 집>을 통해 알려지게 된 ‘살구나무집’은 베이비부머들의 단독주택이다. ‘땅콩집’이 하나의 필지에 두 집이 마당을 함께 쓰며 각자의 집은 수직으로 쌓아 붙여 사는 집인 반면에 ‘살구나무집’은 각각의 땅에 서로의 집을 따로 지어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이 없는, 흔히 알고 있는 단독주택이다. 다만 다른 단독주택에 비해 다른 점이 있다면 살구나무 윗집과 살구나무 아랫집으로 불리는 두 집의 터가 남북 방향으로 붙어 있고, 건축주가 20년 지기여서 두 집 사이에 경계는 갖추되 트인 풍경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마침 집 터 바깥의 공원부지에 100년은 족힌 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어 자연스럽게 살구나무를 경계로 윗집과 아랫집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된 집이다.

 

두 집의 남자는 동갑이고 오랜 친구다. 하는 일도 같고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분야도 비슷해 많은 생각이나 주장을 공유하는 사이다. 그동안의 삶이 판에 박은 듯 똑같지는 않지만 집에 관한 한 서로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궤적을 걸어왔다. 그러니 그들이 ‘아파트’를 소유하게 된 방식 역시 다른 베이비부머들과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결혼 후 부모의 경제적 보탬 없이 전세로 시작하여 내 집 마련에 온 힘을 쏟아 스스로의 힘으로 아파트를 마련했고, 여러 가지 처지와 상황에 따라 집을 늘리면서 팔고 사기를 거듭해 각각 경기도 분당과 서울 중계동의 40평형대 아파트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베이비부머들과 조금 다를 것을 꼽으라면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 아파트를 떠나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사는 곳을 옮겼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 ‘아파트 권태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과 달리 서둘러 사는 곳을 바꾼 것이다. 둘은 운 좋게도 서로 붙은 터를 따로 구입해 같은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고 건축가가 추천한 시공자를 통해 집을 지어 거의 동시에 새 집으로 이사해 서로 곁을 주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우리 역시 오랜 아파트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동안 살아왔던 아파트에 만족한 적은 없었다. 집이 좁아서도 아니고 직장과의 거리가 문제가 된 적도 거의 없었다. 크기를 늘리거나 이사를 반복해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이건 아니지 싶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사는 곳을 바꾸는’ 일에 윗집 친구가 먼저 나섰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기분으로 아랫집이 뒤를 따랐다. 다행인 것은 우리 둘 모두 건축학과 교수로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집짓기에 대해 사전 지식이 제법 있었고 주변의 도움이나 조언을 힘들이지 않고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은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건축학과 교수인데 설계를 다른 건축가에게 왜 의뢰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이가 있었고, 돈을 많이 벌었으니 집을 짓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빈정거림과 더불어 나이가 들면 오히려 도심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왜 밖으로 나가느냐는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점잖은 조언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강단이나 연구실 책상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현장의 다양한 실제를 집을 지으며 직접 몸으로 습득할 수 있었으며 집을 짓기 전부터 새 집으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주거건축 전문가로서 가질법한 모든 의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며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답하기를 거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값진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눠야 한다는 의무감과 함께 좋은 집 짓기가 대중적인 사회운동으로 번져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였다. 집짓기 과정의 오해와 편견을 바로 잡아야 하고, 확인된 쟁점이나 진실에 대해 여과 없이 알려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마침 출판사에서도 우리들의 뜻을 흔쾌히 받아주었고, 집짓기의 모든 것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기록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기로 한 것이다. <아파트와 바꾼 집>이다.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

 

<아파트와 바꾼 집>은 ‘좋은 집’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자 의도한 책이다. 살구나무집을 지으면서 분명한 답을 얻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해 궁리를 거듭할 수 있었고 나름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럴 것이라 여겼던 어렴풋한 추정에 대해서는 비교적 분명한 논거를 가질 수 있었고, 저잣거리의 소문이 만들어낸 가공된 진실에 대해 증거를 들이대면서 핏대를 높일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돈의 문제에 대해서는 1원 단위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고스란히 밝혀 아파트와 비교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파트는 나쁜 집이고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이야말로 좋은 집이라는 순진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경계하였다. 아파트건 단독주택이건 좋은 집이 많이 만들어져야 삶이 풍요롭다는 공동선에 대해 일갈한 것에 불과하다.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지만.

 

흥미로운 주장은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제법 정리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집이란 누구나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철학자들의 귀한 글귀를 주워섬길 것도 없다. 그저 사는 이들에게 마음의 풍요를 주고 한 곳에 오래 머물도록 권하는 일상의 공간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에 두고 살구나무집을 지으며 우리가 공감한 좋은 집이란 ‘보통 수준의 공사비로 지은 건실하고 품격 갖춘 집’이다.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비싸지 않은 집’이다. 보통 수준의 공사비로 지을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수준이라니?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리라. 보통 수준이라면 말 그대로 중간 수준이다. 집장사집의 통상 공사비와 건축가들의 작품주택에 드는 공사비의 중간을 이른다. 여러 가지 자료를 살피고 들여다본 결과 흔히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집장사 집에 드는 평당 공사비의 150% 이상이고, 유명건축가들의 작품주택에 드는 비용의 70% 정도라면 보통 수준으로 얘기할 수 있고, 국토해양부에서 매년 고시하는 고급 연립주택이나 테라스 하우스의 평당 건축공사비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래야 아파트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냉난방비 걱정 없이 따뜻한 겨울과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는 집’이다. 흔히 얘기하는 실용적인 집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결로(結露), 누수(漏水)로 대표되는 각종 하자(瑕疵)와 부실한 설계에서 비롯되는 매일 매일의 고달픔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심한 설계와 꼼꼼한 시공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앞서 가져야 할 기초적인 생각은 외벽의 총량을 줄이고 여닫거나 들고 나는 창호를 적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에너지 손실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세 번째는 ‘솜씨 있고 진지한 건축가가 설계한 품격을 갖춘 집’이다. 많은 비용을 들이는 것이 반드시 품격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저렴한 비용이 남루함으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초가집이 검박하지만 남루하지 않은 것처럼, 백자항아리가 질박하지만 추레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품격의 필요조건은 어울림이고 어울림의 필요조건은 편안함이다. 익숙하고 편안한 형태와 쓰임직한 곳에 쓰임직한 재료를 선택해 사용하는 일이다. 이는 설계의 핵심이므로 진지한 건축가들을 만나는 것이 상책이다. 집 지을 사람이 쏟는 정성의 일부만 헐어내 진지한 건축가를 찾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당연히 설계비가 지불되어야 한다.

 

마지막은 ‘기꺼이 동네에 배경이 되는 집’이다. 다시 말해 동네 풍경에 보탬이 되는 집이라야 좋은 집이라는 역설 아닌 역설이다. 내 집이 소중한 것처럼 이웃들의 집도 내 집 이상의 소중한 개인 자산이며 더불어 보듬어야 할 공동의 동네 자산이다. 스스로 나서기를 꺼려하는 집이라야 싫증이 나지 않을뿐더러 오래도록 마음에 두고 기억과 시간을 담을 수 있는 집이다. 그래야 오래 머물 수 있다. 이를 위해 배려와 물러섬의 집짓기가 되어야 한다. 집 앞의 길을 걷는 이들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이웃집의 풍경과 일상에 대해 배려하는 집이 좋은 집이다.

 

살구나무집 이야기, 그 후

 

‘살구나무집’으로 사는 곳을 바꾼 지 어느 덧 1년 반이 되었다. <아파트와 바꾼 집>에서는 새 집에서의 생활 9개월의 변화를 담았지만 그 뒤에 일어난 변화는 더욱 흥미롭다. 집 앞 도로의 눈 치우기에서 시작된 어른들의 안면 트기와 오가기가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번져 그들은 스스럼없는 동네친구가 되었고, 지난달에는 아이들 몇이 어울려 배낭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주말의 한가한 시간이면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 일상이 되었으며 강아지들도 덩달아 내남을 가리지 않고 이웃을 따라 나선다. 야생화 기르기의 노하우를 넌지시 건네기도 하고 이웃집 일에 힘을 보태거나 솜씨를 나누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음식을 나누거나 식재료를 공동 구매하는 일 역시 별스러울 것이 없는 동네 생활이 된 지 오래다.

 

마당의 꽃이며 나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기 위해 주말 오후가 되면 느린 걸음으로 윗집이나 옆집으로 나다니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으며, 힘을 모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도와 달라 청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마당에 놓을 나무 의자를 함께 만들어 나누기도 했고 늦은 밤 혼자 즐기기에 아까운 뒷마당의 꽃향기를 함께 나누고자 이웃들에게 방문을 청하기도 한다. 마당일에 필요한 장비나 공구는 편안하게 빌려 쓰고 돌려주는 일이 이웃 사이의 규범이자 상식이 되었으며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버리기에 앞서 이웃에게 소용될 것인지를 먼저 묻곤 한다.

 

아파트 권태 증후군은 봄 눈 녹듯 치유되었다. 아파트 시세 등락 소식에 웃거나 찡그리는 일도 사라졌다. 아이들은 서둘러 귀가하여 시간의 변화가 만들어주는 세상의 변화에 기꺼이 탄성으로 참여한다. 아침에 일어나 편안한 차림으로 신문을 가져와 마당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거나 해가 들지 않은 마당에 시원하게 물대기를 하는 풍경이 제법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이웃과 말을 건네고 인사를 나누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사는 곳을 바꾸니 새로운 사람을 사귀게 되었고, 시간을 달리 쓰게 되었다. (출처 : <Esquire> 2012년 7월호, 156~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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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의 마지막에 쓴 것처럼 주말인 토요일 저녁 해가 넘어가기 무섭게 마당의 나무와 각종 야생화에 물을 주며 며칠 동안의 풍경 변화를 사진으로 담아두었고, 담장 너머 집 옆 텃밭의 고구마와 가지, 고추, 땅콩밭도 가뭄에 시무룩한 표정이어서 담장 너머로 시원하게 물을 대니 속이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본격적인 여름이고 폭염이 계속된다는 소식에 사흘에 한 번 꼴로 마당에 물을 대지만 지독한 가뭄 때문인지 물을 주고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흙이 바짝 마르는 지경이다. 농사짓는 분들의 심정이 안타깝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2.05.05 15:50

여름이라고 불러야 적당할 정도의 높은 기온과 그림 한 점 없는 하늘이 5월 5일의 주말을 선사하였다. 진딧물이 대문마당의 공조팝에 조금 보이는 듯해 서둘어 진딧물 약을 살포하고, 노곤한 점심을 맞았다. 늦봄은 하루가 달랐고, 어제와 오늘의 다른 풍경을 선사하였다. 대문 마당으로부터 안마당에 이르기까지 늦봄의 살구나무 아랫집 풍경을 그림으로 담았다.

 

대문마당의 비비추와 며칠 전 꽃을 피운 머위 그리고 무늬바위취의 군락

 

작년 고사한 산딸나무 대신 상록수를 하나 준비하자는 아내의 뜻에 따라 새로 옮긴 섬잣나무와 영산홍 그리고 공조팝과 주목 

 

경사마당의 지하수를 받는 돌확 주변의 비비추와 뱀딸기, 돌나물, 맥문동과 바위채송화

 

소담스럽게 자란 백리향과 불두화와 황금조팝

 

대문 안 오름계단의 참에 이어 붙은 야생화마당의 양지꽃 등

 

 이제 서서히 과육을 키우고 있는 앵도나무

 

서재 앞 비밀의 정원. 매발톱, 아주가, 무스카리, 분홍주름잎, 은초롱꽃, 아기별꽃, 두릅 등

 

큰 아이와 애써 만든 흙막이목책과 산수국

 

뒷마당을 돌아 안마당으로 이르는 구석의 줄사철

 

윗집 트임난간 앞에 새로 심은 황매화와 일년이 자라 울창함을 뽐내는 찔레

 

감나무 아래 화관처럼 고리 모양을 이룬 꽃잔디

 

화살나무 세 그루와 외로운 모습으로 자리를 차지한 상사화

 

한식담장 남측을 오르는 인동덩굴과 줄사철의 건강한 모습

 

안마당의 늦봄 손님 공조팝

 

안마당의 귀공자인 배롱나무와 영산홍 고리

 

담장 너머 동네풍경에 보탬이 되로독 의도한 대문마당의 공조팝

 

붉은 꽃잎을 떨구는 명자나무와 이제 막 봉오리를 올리는 미스김 라일락. 무성하게 잎을 키우는 장미

 

가족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감나무

 

마당에 나름의 그늘을 드리우는 공작단풍

 

경희대학교 온영태 선생님 농장에서 가져온 산사나무, 산딸나무 묘목들의 건강한 모습들. 그리고 중간의 매화

 

뒷마당에서 동측 모서리를 돌아 안마당으로 이르는 과정에서의 마당 모습

 

집 밖으로 나서기 위해 현관을 열면 맞딱들이는 고목 살구나무

 

봄 절기 내내 피고 지기를 반복하면서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매발톱

 

귀여운 모습에 늘 웃음짓게 하는 은방울꽃의 가녀린 모습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2.05.01 23:40

4월 중순이 지나면서도 봄이라고 하기엔 제법 날이 찬 날이 며칠 더 계속되더니 전에 없던 봄비가 꽤 내리면서 비로소 며칠 동안의 봄날이 제법 화사함을 안겨주었다. 살구꽃 만개도 닷새를 넘기지 못하고 꽃잎을 마당에 내려놓았고 급기야는 과실을 맺지 못한 꽃받침들이 서재 마당을 가득 채우는 5월이 시작되었다. 마당이 딸린 집에 와 15개월이 지나면서 두 번째 맞고 보내는 봄이어서인지 작년과는 사뭇 다른 여유가 생활에 물들었다.

 

정말 놀랄만한 일은 겨우내 무심하던 안팎의 마당이 그동안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루가 다르게 땅 속에서는 무언지 모를 새싹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머리를 내밀면서 온 가족을 흥분하게 했다. 비비추와 작약이 그랬고, 분홍바늘꽃이 또 그랬으며 머위와 무늬바위취도 아침이면 마당에 나서는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명자나무의 붉은 꽃은 벌써 꽃잎을 땅에 내리며 초록의 향연을 펼치기 시작했으며, 공조팝은 자그마한 꽃망울을 무리로 피워내기 위해 기운을 모으는 모습이었다.

 

 

 

 

안마당의 한식담장을 기대고 있는 줄사철과 인동덩굴은 튼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통통한 줄기를 힘차게 세우고 있고, 두터운 내복을 여러 겹 껴입은 모습으로 겨울을 난 배롱나무에도 굵고 가는 줄기를 가릴 것 없이 틈을 여는 여린 잎사귀의 자리 차지가 마치 소리로 번역될 정도이다. 대문 안의 경사마당은 바야흐로 녹색의 연주장이다. 꼿꼿한 모습으로 작년에 꽃을 피운 노루오줌은 벌써 연갈색 여린 잎이 무성하게 솟아오르고 있고, 불두화와 황금조팝은 경사마당의 싱그러움을 전하는 전령사 노릇을 톡톡히 한다.

 

 

 

공원과 접한 서재마당의 울타리라 할 수 있는 사철나무와 쥐똥나무는 빛나는 푸르름과 연녹의 빽빽함을 내보이며 서재마당의 형상이 괴불마당을 닮았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으며, 제법 나무의 꼴을 갖춘 앵두나무도 부끄러운 꽃을 내리고 과육을 살찌우기 시작했다. 양지꽃의 노랑빛은 너무 강해 과연 노랑색이라 부를 수 있는 색인가를 궁금하게 할 정도이다. 아기별꽃의 연한 보라와 순백의 가녀림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과연 가련함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사실 살구나무 아랫집의 올해 봄 풍경 만들기에 특별히 가족들이 힘을 보탠 것은 거의 없다. 작년 봄에 휑한 모습이었던 안팎의 흙마당에 양재동과 과천을 오가며 싼 값으로 사다 심은 다년생 야생화들이 추운 겨울을 잘 견디고 봄을 맞아 스스로, 어김없이 새순을 틔웠기 때문이다. 살구꽃에 취해 4월 초순을 보냈더니 중순을 지나며 이번에는 땅 속 곳곳에서 기억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의 많은 생명들이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뿐이다. 바로 이것이 자연이리라.

 

 

그리고 봄의 절정이랄 수 있는 5월의 첫날, 드디어 묵은 체증을 확 날려버리는 봄맞이의 마지막 일이 마무리되었다. 작년 늦은 봄 심었지만 까닭을 알 수 없이 고사한 산딸나무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섬잣나무 한 그루를 새로 심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까지 식구들과 더불어 서재마당에 자그마한 야생화 몇 가지를 채우면서 올해는 작년에 비해 아주 수월하게 봄맞이를 마무리했다고 여겼지만 아무래도 말라 죽은 채로 대문마당 귀퉁이를 지키고 있던 산딸나무가 마음과 눈에 모두 거슬렸는데 오늘 비로소 제법 모양을 갖춘 섬잣나무로 풍경을 바꾼 것이다.

 

 

오후 2시쯤에 온다던 농원의 전문가들이 섬잣나무 한 그루를 구해 집에 다다른 시각은 오후 3시를 훨씬 넘긴 시각이었다. 마침 개교기념일이어서 집을 지키던 나와 아내는 오후 2시를 넘기면서는 아예 대문을 열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도착한 섬잣나무는 사진으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모양을 갖춘 것이었고, 집을 찾은 이웃분들도 나무가 예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고사한 산딸나무를 베어 들어낸 뒤 약간의 가지치기를 마친 섬잣나무가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경사마당의 모습이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고, 아내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섬잣나무 관리 요령을 전문가들로부터 듣고 익힌 뒤 작업의 뒤처리를 마치니 어느 덧 저녁시간이었지만 마음에 두었던 올해 봄맞이와 여름 채비를 모두 마무리했다는 느낌은 제법 심리적 충만감을 안겨주었다. 작년에 비해 크게 나다닌 일도 없이 봄을 맞고, 즐기고,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두 번째 맞는 살구나무집의 봄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봄을 계절의 처음으로 꼽는 이유가 이처럼 맞이하는 일로 해를 시작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봄은 맞는 것이고 그 맞이하기가 마무리되면 바로 여름이 시작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때문인지 오늘 기온이 섭씨 25도를 훌쩍 넘었고, 습도도 제법 높아 비라도 내릴 분위기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2.04.01 22:59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서자 윗집 친구 내외의 대화가 윗집 마당에서 들려온다. 소리 내어 뭐하냐고 묻자 담장 위로 장갑을 끼고 모자까지 갖춘 내외의 모습이 드러난다. 아침부터 마당의 잡초도 뽑고, 겨우내 손을 보지 않았던 마당을 둘러본다는 것이었다. 뒤따라 마당으로 나선 아내가 윗집 내외와 인사를 나누더나 내게 양재동 꽃시장이나 다녀오자며 서두를 것을 제안했고, 큰 아이 역시 그러자고 동의하는 바람에 모처럼의 일요일 나들이에 나섰다.

양재동 꽃시장은 우리 식구들처럼 봄기운에 들뜬 상춘객들로 북적거렸고 활기를 띤 꽃시장과 나무시장은 연신 크고 작은 짐차들이 오가며 활력을 더했다. 서너 군데를 둘러보면서 몇 가지 야생화를 구입했고, 오래 전부터 담장 한 쪽을 배경 삼아 심었으면 하던 아내의 뜻대로 화살나무 작은 것 세 그루를 구입하였다. 나는 커다란 꽃이 풍성하게 열리는 작약이나 모란 등을 좋아하는 까닭에 다른 품종들에 비해 조금 값이 더 가는 모란 두 뿌리를 구입했고, 아이는 향기가 천리까지 간다는 천리향과 수호초 몇 뿌리를 골라 카트에 올렸다. 다양한 봄맞이 야생화들은 모두 포트에 심겨진 아주 여린 줄기들이어서 포트당 1,000원 정도씩 하지만 그것도 이것저것 모아 놓고 보니 오늘 구입한 묘목과 포트값이 모두 5만 원이나 되었다. 단독주택으로 옮긴 후 잔돈이 남지 않는다는 아내의 투정 아닌 투정이 이어졌고, 안마당이며 서재마당, 현관마당 등에 구입한 묘목이나 포트를 옮겨 심는 일도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지난 1년 동안의 경험은 마음을 서두르게 해 점심식사를 집에서 가볍게 하자고 한 뒤 서둘러 양재동을 나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작업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서 바쁜 손놀림을 한 지 두 시간 정도 만에 오늘의 일은 일단 매듭을 지을 수 있었다. 동네 풍경에 보탬이 되라는 뜻에서 조성한 대문 옆 영산홍 무리를 좀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 집 안에 있던 영산홍 열 뿌리 정도를 밖으로 내서 보태 심는 일과 안마당에 화살나무를 일렬로 세워 심는 일 이외에는 삽을 쓸 일이 없었고, 나머지는 모두 모종삽 정도로 쉽게 심을 수 있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앙증맞은 크기의 포트에 담긴 다채로운 야생화들은 모두 아내가 나서서 심을 곳을 정하거나 새로 자리를 정해 옮길 것을 정하면 나와 큰아이가 이를 옮기고 갈무리 하는 방법으로 마당일이 진행되었다. 할미꽃은 대문 안 경사마당의 윗부분에 서로 삼각형을 이루면서 자리를 잡았고, 내가 고른 모란은 내 뜻대로 안마당의 한식담장 남측에 불두화와 교차로 서는 자리에 새롭게 심었다. 큰아이는 자신의 힘으로 만든 플랜트 박스에 천리향과 산호수, 수호초 등을 옮겨 심어 현관 입구를 풍성한 풍경이 되도록 힘을 보탰다. 그리고 식물도감과 야생화 조경도감을 통해 얻은 지식을 활용해 바위틈에서 잘 자란다는 바위솔과 바위채송화는 경사마당의 돌확 주변에 심었으며, 향기와 꽃이 좋기로 소문난 꽃댕강나무는 빨리 자라 담장을 넘어 동네에 향기로움 기운과 붉은 기운이 넘치도록 하자는 뜻에서 이웃과 면하는 안마당의 담장 아래 자리를 잡아 일렬로 식재하였다.

이밖에도 처녀치마와 양지꽃은 서재마당의 경사가 시작되는 지점에 나란히 자리를 잡아 주었으며, 꽃이 예쁠 것이라며 큰아이가 한 포트만 차에 실었던 섬초롱꽃도 오롯한 탱자나무 묘목 아래 둥지를 틀었다. 아직 새순도 나오지 않은 돌단풍은 여전히 구근의 모습이었는데 아내와 큰아이가 머리를 맞대고 수군대더니 서재마당 돌확 옆에 깊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창 마당작업에 열중할 즈음 이웃집 내외가 탱글탱글하고 앙증맞은 크기의 호박고구마 스무 개 정도를 쪄서 내오셨다. 보아하니 꽃시장에 다녀오신 것 같고, 한창 일을 하실 것으로 생각되어 일하다가 먹으면 제 맛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쪄서 가져왔다는 말씀과 더불어 아내가 새로 심었다고 자랑한 화살나무와 꽃댕강나무의 자리 잡은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다. 마침 아내는 그 집에서 며칠 전 얻어온 좀눈향도 오늘 작업하는 김에 심었다면서 경사마당의 좀눈향 자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꽃시장에 다녀와 몇 번의 삽일을 하는 사이 어느 덧 하루가 저물기 시작한다. 겨울보다 낮이 길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해가 질쯤이면 날이 차가울 정도를 느껴졌고, 작업으로 데워진 몸도 식기 시작하였다. 4월 1일, 4월의 첫 날을 맞아 감행한 양재동 나들이는 살구나무집 식구들에게는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과 같은 느낌이다.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즐겁고 유쾌한 살구나무집에서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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