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나이2015.01.14 13:34

패션과 문학의 콜라보레이션이라 불리는 프로젝트 소설집인 [The Closet Novel_7인의 옷장]이라는 모음집에 실린 은희경의 짧은 소설 <대용품>들다, 쓰다. 신다, 입다라는 4개의 꼭지에 일곱 명의 작가가 글을 삽입한 모양새다. 패션과 소설이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킨 것인지를 가늠할 깜냥은 못 되니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고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은희경의 소설 <대용품>은 이 가운데 신다라는 모음에 들어간 소설이다. 시인 서정주의 신발이란 시에서 착안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좋아하는 물건이 있는데 잃어버려서 똑같은 것을 사도 같은 게 아닌, 그래서 대용품인 까닭에 친구의 죽음과 바뀐 신발이라는 마음과 물건의 상실을 시간의 상실로 구부려 그 이미지를 글자로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친구의 상실과 열세 살 시절에 품었던 두근거리던 마음의 상실이 안타까움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해 봄 두 소년은 열세 살이었다. 어른들의 당부와 독려와 충고가 부쩍 늘어났다. (중략)소년들은 나날이 몸이 달라졌다. 관심사와 거기에서 생겨나는 잡념도 많아졌다. 싫은 것과 불만과 두려움에 대한 견해는 강해졌지만 놀이와 장난에는 시들해졌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은 아주 적은 수가 되었다.”

 

from 은희경, <대용품>, [The Closet Novel_7인의 옷장],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410,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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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한국주거사2014.11.04 15:22

1982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일상의 자잘한 삶에 녹아 깃든 미세한 균열을 주로 그린 작가 이혜경의 두 번째 장편소설인 [저녁이 깊다]20098월부터 20108월까지 계간 문학과사회<사금파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작품인데 연재를 마친 후 4년 만에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소설은 1960년대 말 지방 소읍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동급생으로 만난 기주와 지표가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 특히 소설이 나올 때 50 중반을 맞이한 베이비부머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1970~1990년대를 그리면서 우리 사회에 그 모습을 드러낸 세속과 현실사회의 단면을 조명하고 있다. 믿고 기댈 곳이라곤 아무 것도 없이 오직 공부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잘하는 것이 없는 전학생 지표가 체험한 가난과 그로 인한 결핍, 좌절과 세속적인 도전이 펼쳐지면서 그와의 연대를 통해 우정을 쌓아가는 병묵, 넉넉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갖춰진 삶이 못내 불편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기주, 돈이라면 가질 만큼 가지고 누리지만 돈밖에 없는 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형태 그리고 훈육적인 학교 반장으로서 매사 규범과 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정구 등이 복원한 당시의 풍경은 이 땅에 발 딛고 있는 중년 누구에게나 대입이 가능한 상황적 문법이기도 하다.

 

소살은 이들이 감당한 지난 40여 년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새운상가 아파트(1968)를 보고 놀라는 장면으로부터 서울올림픽(1988), 아직도 누구에게나 머릿속에 화인처럼 간직된 성수대교 붕괴(1994)와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참사(1995), 삼풍백화점 붕괴(1995)IMF 외환위기(1997까지, 시간의 누적이 만든 일상과 환상은 이들에게 서로 다른 가치관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때론 상황을 견디거나 모면하거나 혹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 우리들의 자화상을 고스란히 복원한 작품이 바로 이혜경의 [저녁이 깊다]이다.

 

"콘크리트 기둥이 위압적인 세운상가 고층에 빨래가 나부끼는 장면도 기주를 사로잡았다. 안내양의 눈총을 받아가며 뒤늦게 내린 기주는 무작정 그 건물로 향했다. 찻소리 끊이지 않고 매연 투성이인 중심가의 상가 위쪽에서 누군가가 밤을 해 먹고 몸을 뉘고 빨래를 하며 살아간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거기엔 D시에서 보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기름에 볶은 듯 윤기 흐르는 불개미 더미엔 양기회복이라고 쓰인 팻말이 꽂혀 있었다. 이 나라와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외국 여배우의, 몸매에 비해 너무 커서 그 자체로 다른 생명임을 주방하는 듯한 유방이 드러난 사진 패널들도 있었고, 염료로 그린 눈에 안질을 앓는 듯 희부연 눈으로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고무인형이 섬뜩했으며, 태엽을 감으면 감긴 만큼 도르르 굴러가다 멎는 장난감 행상도 있었다."

 

이혜경, [저녁이 깊다],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4.9, 초판 1, 15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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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나이2012.09.06 11:31

소설에는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 작가 지망생 그녀가 등장한다. 이제 작가되기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몸을 누일 따뜻한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며 마음 속에 품었던 작가 등단을 위해 어렵사리 도회 생활을 이어왔던 스스로의 무거움을 버릴 수도 없다. 신춘문예 응모를 위해 소설 속 주인공을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던 그녀에게 결혼을 앞둔 오빠의 전화가 걸려 온다. 그녀거 어렵사리 모아 장만한 전세보증금 2천만 원을 일년 동안만 돌려달라는 부탁이다. 물론 그럴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지만 그녀는 오빠의 말이 권유를 넘은 명령으로 이해하고 그러마고 답한다. 이제 집도 절도 없는 처지가 될 그녀는 소설가 되기를 포기하고 낙향을 할 것인가 아니면 보다 헐한 집에서 보증금도 없는 월세를 살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면서 과연 세상의 질문들이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얻은 답은 질문이란 명령이라는 것이며, 신춘문예 응모를 위해 쓰고 있던 소설 속의 서른 살 주인공을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를 고민하던 마음을 다잡는다. 살려두기로. 

 

“그는 서른 살이었다. 서른이란 상황에 따라 ‘무려’와도 어울리지만 ‘겨우’와도 어울릴 수 있는 나이 아닌가. 딱히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살기에는 늦은 나이가 아니지만 마땅히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죽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물론 그런 일에 적당한 나이가 따로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from 김미월, <질문들>, [제2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서울, (주)문학과지성사, 2012년 5월,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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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을 읽다가2012.04.04 11:49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다. 그것은 한트케가 <피로에 대한 시론>(1992)에서 "분열적인 피로"라고 부른 바 있는 바로 그 피로다."

from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피로사회>, 서울, (주)문학과지성사, 2012년 3월(1판 6쇄), 66쪽

백번 동의하는 문구다. 소위 신자유주의로 포장된 오늘날의 삶의 방식에 내재된 개인의 고립화와 진영을 가리지 않는 처절한 싸움을 야기하는 가치가 빚어내는 결과적 현상이고, 사회적 우울증의 대표적 현상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어느 하나를 빼놓을 수 없이 이뤄지는 보이지 않는 무엇. 그것이 바로 성과주의 사회의 구조이고 그 결과가 빚는 시공간적 증후가 바로 피로인 셈이다.

대학교수는 그 효용이 의심되는 논문만들기의 전장에 모두 끌려나가고 언론은 그 양의 많고 적음으로 대학을 서열화하며, 그 서열은 다시 공교육 현장과 학원가의 성적 서열화를 만들고, 학생과 학부모는 이를 신봉하면서 학교를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대학생들은 의미 없는 영어 성적에 목숨을 걸고, 연봉이 높은 기업에 입사하는 것을 성공으로 확신한다. 기업에서 승승장구 출세를 구가하는 과정에서도 개인적 실적이 평가의 잣대가 되는 경쟁주의가 팽배하게 되고, 임원으로 승진하는 자를 제외한 많은 중년 초입의 장년들은 밖으로 내몰린다. 스포츠 분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1등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낙오하기 때문이다. 엘리트 스포츠가 피로사회인 것이다. 운동선수는 너나 없이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걸거나 빅리그에 진출해 큰 돈을 쥐는 것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설정한다. 그 결과 누구도 2등이나 마이너 리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1등만 존재하고 많은 돈을 버는 선수만 의미를 부여받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 종국의 모습은 모두에게 아무런 행복이나 성취를 부여하지 않는 그야말로 피로에 찌든 사회의 자화상만 남는 것이다. 행복 없이 등위만 존재하는 사회는 결국 모든 이들을 고립시켜 고독한 피로를 느끼게 한다.

어제 상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한 명이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빨갱이'로 몰려 아무도 곁을 주지 않았으며, 생계는 막연해지고 가슴의 응어리조차 나눌 이가 없는 현실에서 마음의 피로가 가중된 탓이다. 이런 사회가 바로 인간이 추구하려던 사회인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연대'와 '나눔', '소통'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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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공간산책2011.05.09 23:39

신문에 연재되었던 소설을 다시 묶어 2001년 6월에 다시 펴낸 복거일의 장편소설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는 소위 '시간이 해놓은 일들을 되돌리는데는 불가피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시간의 압제‘라는 명제로 풀어놓은 소설이다.

이 작품은 글의 내용에 앞서 재미있는 구석이 두 가지나 있다는 사실에 우선은 흥미를 느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소설 속 주인공이 마치 작가 복거일을 대리하는 인물처럼 읽힌다는 것이다. 시인이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을 하면서 살고 있고 다른 시인의 작품을 해설하기도 하는 소설 속의 인물 '한도린'이 언젠가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영어공용화의 한 가운데 있던 작가 복거일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며, 다른 한 가지는 사실 우스개 소리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탤런트 최지우를 생각하면서 혼자 웃었다는 점이다. 오래 전 ‘겨울연가’라는 드라마로 인기 절정에 있는 탤런트 최지우가 진짜 그러한 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녀의 혀가 남보다 짧아 ’실장님‘을 ’실땅님‘이라고 발음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듣고 난 뒤 소설 속의 한도린이 한 때는 연구소의 국제협력실장이었기에 같은 직장에 있던 동료들이 그를 언제나 ’실장님‘으로 부르는 소설 속 대목을 읽을 때마다 헛웃음을 지었기 때문이다.

소설 제목으로는 조금은 재미없어 보이는 동시에 낯설어 보이는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는 15년 전에 헤어져 수봉그룹의 며느리가 된 14살 연하의 옛애인 '정임'을 매개로 한 남성의 시쓰는 일과 그 일이 사람의 거친 손길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당위를 각각 마법과 마법성으로 직유한 글이며, 그 에너지의 원천에는 옛애인 정임이 자리하고 있음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런 까닭에 소설의 제목이 정임(貞荏)의 한자어를 풀이한 ‘구김살없이 깨끗한(끼끗한) 들깨’이며, 그녀가 곧 삶의 혹은 생산의 원천이라는 점을 직설한 것이기도 하다.

승모판폐쇄부전증(僧帽辦閉鎖不全症)이라는 어려운 이름의 심장병을 앓고 있는 중학교 1학년의 딸 '효민'과 처형의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내를 둔 쉰 셋의 한도린은 일하던 연구소에서 명예퇴직을 한 뒤 번역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 연구소의 동료였던 사람의 아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결혼식을 앞둔 두 주일 동안 옛 애인 ‘민정임’과의 재회를 준비하며, 정임 이외에는 다른 어떤 사랑의 꽃도 피울 수 없었던 가슴을 자신이 가졌노라고 확인한다. 마치 수국처럼 부드럽고 헌신적인 아내에 대한 연민과 옛 연인을 향해 지칠 줄 모르는 그리움 속에서 번민하는 도린은 결혼식장에서 민정임과의 싱거운 만남 이후에 마침내 정임과 꿈 같은 해후를 한다. 낡은 여관방이었지만 둘만의 마법성 속에서 마법 같은 사랑을 나누고 마법처럼 느꼈던 자신의 사랑도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조로 본다면 무척 단순해 보이는 통속에 지나지 않지만 여러 유형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거침없이 들려주는 작가의 타고난 장광설을 따라 읽다보면 ‘시간’과 ‘늙음’에 대한 성찰이 독자들에게 무겁게 주어지기도 하며, 소설의 중간 중간에 써 내려간 아름다운 시들 또한 큰 읽을거리가 아닐 수 없다. 혹자는 복거일의 지나친 장광과 타인에 대한 자기 지식의 지나친 강요를 탓하기도 한다.

"아빠, 저게 뭐야?" 효민이의 목소리가 그를 상념에서 깨웠다.
녀석이 가리킨 건너편 아파트 옆 벽엔 긴 현수막이 세로로 걸려 있었다. 그 위에 짙푸른 글씨로 씌여 있었다: '도장 한 번 잘못 찍고 평생 동안 후회한다.‘ 이어 조금 작은 검정 글씨로 ’남서울 아파트 재건축 비상대책위원회‘ 라고 씌여져 있었다.
“아, 저거?” 그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저건 말이다, 우리 아파트의 재건축에 대해서‧‧‧‧‧ 효민아, 너도 알지, 우리 아파트를 헐고 새로 짓기로 한 거?”
“응. 25층짜리 새아파트를 짓는다던데.”
“그래. ‘재건축 추진위원회’라고 우리 아파트를 그렇게 새로 짓는 일을 추진하는 단체가 있다. 얼마 전에 그 단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다른 단체를 만들었다. 저 현수막은 그 단체에서 내걸었다.”
“그래요? 왜?”
“저 사람들 얘기는 ‘재건축 추진위원회’에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내놓은 조건이 좋지 않다는 거다. 건설회사와 짜고서 그렇게 했다는 거다. 그렇게 조건이 나쁘니까, 동의서라는 서류에 도장을 찍지 말라는 얘기다.”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현수막을 가늠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빠, 조건이 어떻게 나쁜데?”
“글쎄‧‧‧‧‧ 얘기가 아주 길고 복잡하다.”
“아빠, 그러면, 어느 편이 좋은 사람들이야?”
자신의 대꾸가 만족스럽지도 현명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는 늘 하는 대답을 다시 내놓았다. “효민아, 세상일은 너무 복잡해서, 그렇게 편을 가르긴 어렵다.”
그러나 녀석은 그런 대답에 대응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아빤 어느 편이야?”
“으음, 아빤 말이다, 어느 편도 아니다. 아빤 두 편을 화해시키려고 했다.”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슬쩍 물었다. “그래서 아빠가 두 편을 화해시켰어?”
“화해시켰다면, 저 현수막이 내걸렸겠니? 아빠랑 최시영이란 사람이 양쪽을 오가면서 화해를 권했지만, 우리 얘길 듣지 않더라.”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추진위원회’ 사무실을 나올 때 누가 그의 등에 대고 던진 고약한 얘기와 뒤에 전해들은 ‘비상대책위원회’ 사람들의 냉소적 반응은 아직 그의 가슴에서 다 삭혀지지 않은 터였다."

from 복거일,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
문학과 지성사, 2001년 6월, 66~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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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공간산책2011.02.19 14:33

매우 낯설게 읽은 작품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응당 윤후명의 <외뿔 짐승>이라 하겠다. <가장 멀리 있는 나>라는 표제작과 함께 두 편으로 구성된 그의 소설집을 이룬 다른 하나의 소설이 곧 <외뿔 짐승>이다. 다소는 환상적이고 이미지 지향적인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작가 윤후명이 본래 시인이었다는 점을 계속 되뇌이며 인내하였다는 것이 솔직한 독자로서의 심경이다. 어떠한 망령(혹은 잔상이라 해도 좋을)엔가 끊임없이 시달리는 한 남자의 이미지 여행을 그린 <외뿔 짐승>은 보통의 독자로서는 현재라는 시간에 끊임없이 종속되어 있으되 그 끈으로부터의 일탈은 여전히 제한적일 수박에 없는 인간의 본연을 그렸다는 말 밖에는 달리 후감을 드러낼 수 없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결국 ‘나를 찾아나서는 구도자로서의 길’을 그렸음이렸다. 어떤 단어 하나가 갖는 이미지적 유사성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와 잔상으로 글을 이어가는 작품이 그러하며 타자적인 공간을 통해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성찰공간으로 유인하는 과정 또한 그러하다. 실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책에서는 언제나 실존하는 일각수(一角獸), 외뿔짐승을 통해 존재하지 않지만 언제나 존재한다고 믿는 자신의 실존을 끝없이 찾는 소설속의 화자 ‘나’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얘기를 그려내고 있다. 자칫 그것이 작가의 얘기인 듯하면 그렇지 않게 보이고, 전혀 꾸며낸 얘기라고 하기에는 다소간의 무리가 따르는 그의 글쓰기에 독자는 책장을 넘기면서 서서히 지쳐가기도 한다. 아마도 이것을 유인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를 찾아가는 길이란 그렇듯 언제나 지쳐 넘어지는 결과만을 가져온다는 것을 소설을 구성하는 텍스트라는 이미지를 통해 얘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이다.

작가 윤후명은 ‘작가의 말’에서 쉬운 얘기로 이르기를 “내가 추구한 나는 과연 어디에 있으며, 내가 파악한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이제나 저제나 간절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니, 세태의 부박함에는 그저 속절없이 가슴앓이를 할 뿐이다.”라고 쓰고 있다. 아둔한 독자로서는 그가 적어놓은 단어 하나하나에 그저 눈심지를 밝힐 밖에. 그리고 고작 발견한 것이 ‘문학으로서의 삶, 삶으로서의 문학의 길을 걷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언급한 작가 윤후명의 말대로 그의 ‘후명(後命)’이 무엇인가를 다른 작품을 통해 기다릴 수밖에.

"케이블 티브이의 교통관광방송(TTN)에서 새삼스럽게 수인선 협궤열차에 얽힌 이야기를 찍으러 가겠다고 내게 안내자 겸 해설자로 나와달라는 교섭이 왔을 때, 퍼뜩 나는 떠올렸다. 그 열차가 이미 1년 전에 운행을 중지하고 ‘사라진’ 열차라는 건 저희도 압니다만, 그러니까 더욱 같이 가주셔야‧‧‧‧‧ 피디(PD)는 ‘사라진’을 강조했었다. 물론 나는 그 열차가 지날 적이면 쇠바퀴가 철로를 굴러가는 잘그락 소리마저 들리는 곳에서 꽤 오랫동안 살았었다. 그런 소문을 어찌어찌 들은 피디가 그 언저리 장면을 담는 나를 곁들이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그 열차가 사라지기 전에 나는 그곳을 떠나왔었다. 즉, 나 역시 그곳으로부터 ‘사라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래서 더욱 적격이라고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라진 것을 회상하기 위해 사라진 사람을 초대한다? 나는 왠지 아득하고도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 열차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예고되어 있었다. 따라서 마지막 운행이 언제 있으리라는 것도 정해져 있었다. 하루에 두 번밖에 오가지 않던 열차였다. 거기에 맞춰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신문, 방송까지 보도들을 하고 있었으니, 그 보잘것없는 실세에 비해 퇴역식은 자못 거창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그 마지막 열차를 타보기 위해 집을 나섰던 것도 신문보도를 보고 나서였던 것이다.
피디와 대충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은 나는 마지막 열차를 타러 갔던 때를 마치 아득한 먼 옛날을 회상하듯 돌아보았다. 그때 신문들은 “수인선 협궤 열차 역사 속으로”라거나 “추억의 협궤 열차 마지막 경적”이라는 등의 제목을 달고 “1937년 처녀 운행한 지 5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상자 기사를 제법 큼지막하게 싣고 있었다. ‘아듀’라는 표현을 쓴 신문도 있었다. 1995년 12월 31일 저녁 8시에 마지막 출발을 함으로써 ‘아듀’였다."

from 윤후명, <외뿔짐승>,
[가장 멀리 있는 나], 문학과 지성사, 2002년 3월, 7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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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1.02.17 20:32

‘진정한 가치를 향한 탐구의 강고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평을 얻은 이창동의 두 번째 소설집의 타이틀이기도 한 중편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삶에 담긴 진실의 복합성과 인간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15살에 가출하여 무작정 상경한 후 학교의 급사에서 서무과 직원으로 그리고 다시 야간대학을 거쳐 자신이 급사였던 학교의 기술담당 선생이 된 서른 다섯의 '홍준식'은 10년 만에 불현듯 자신을 찾아온 이복동생 '강민우'와의 만남을 통해 아주 심각하게 자신과 스스로의 삶에 대한 정체성 혼란을 경험한다. 특히 학생운동을 거쳐 사회운동가로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동생 민우는 서무과 직원이었던 현재의 아내와 함께 소시민적인 행복과 안락의 추구를 향해 내달아온 이복형 준식에게 커다란 삶의 회의를 던지게 된다.

급사출신이 나중에 교장까지 해먹을 것이라는 뜻에서 동료교사들이 번듯한 ‘홍선생’이라는 호칭을 놔두고 그를 대신하여 부르는 ‘급장’이라는 비야냥거림과 민우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자신과의 결혼생활을 ‘냄새나고 더러운 쓰레기 위의 거짓된 삶’으로 몰아버리는 아내 '정미숙'의 지속적인 경멸과 멸시는 결국 소설 속 주인공인 준식으로 하여금 동생 민우의 소재를 경찰에 알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상계동 신시가지에 23평 크기의 자신의 집을 갖게 된 준식의 아내 정미숙은 제 집이 생기기가 무섭게 남편 준식에서 자신이 오래 전부터 세워놓은 세 가지 목표인 거실의 수족관 설치와 비디오 그리고 오디오 세트를 갖추는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그녀의 이같은 물화된 욕망은 순수를 추구하는 남편의 이복동생 민우의 출현으로 관심밖으로 밀려나며 준식과 미숙의 결혼생활에는 되돌릴 수 없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어디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없었던는 준식은 별안간 만들어진 가정불화를 뒤늦게 금붕어와 수족관으로 복원시키려 하지만 그 일은 이미 의미 없음으로 퇴색된다. 소설속 주인공으로 그려지는 준식의 소시민적 생각이나 여전히 순수한 사회운동가로서의 모습만이 하얗게 묘사되는 민우의 태도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삶의 가치와 의미를 다른 것으로 대체시킨 준식의 아내 정미숙 등에게 부여된 삶의 모습과 가치의 추구를 통해 작가 이창동은 ‘과연 인간적인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 이창동은 영화감독으로도 일정한 명망을 쌓은 사람이다. 나이 사십이 되어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으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시나리오를 썼고 문성근, 명계남 등과 힘을 합쳐 영화사를 차리는 등 그는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변모하였다. 1997년에 발표한 <초록 물고기>는 그가 감독한 처녀작으로서 산업화와 도시와의 와중에서 꿈을 짓밟힌 소시민적 삶을 그린 영화로 관객들에게 깊은 사색의 인상을 남긴 작품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2000년에는 <박하사탕>을 만들었으며, 2002년에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 <오아시스>를 만들어냈다. 모두 다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런 점에서 본다면 <녹천에는 똥이 많다>와 그 여운은 매한가지이다. 그가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발탁되기도 했었다.

"
아, 드디어 진짜 우리집에 왔네.”
일주일 전 이삿짐을 실은 트럭을 타고 아파트 앞마당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아내가 내뱉은 첫마디 말이었다. 정말이지 그들은 너무나 멀고 험한 길을 돌아서 이제 마침내 ‘진짜 우리집’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들이 얻은 집은 이른 바 상계동 신시가지라 이름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한쪽 끝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15층이나 되는 고층 아파트 맨 아래층 귀퉁이에 있는 집이었다. 맨 아래층 귀퉁이집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같은 동(棟), 같은 평수의 집 가운데서도 가장 집값이 떨어진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집값이야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그의 집이 아내의 말마따나 ‘진짜 우리집’이란 사실이었다.
아홉 번의 실패 끝에 가까스로 아파트 추첨에 당첨되었을 때, 준식은 갑자기 졸부가 된 기분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불행에 너무 길이 잘 들여져 있었으므로, 자신에게 닥친 이 행운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학교의 급사로 일할 때는 교실 한구석에 있는 계단 밑 방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나중에는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달동네의 월 삼만 원짜리 사글세 방에서 자취를 하면서 지냈다. 비가 오면 천정에서 비가 줄줄 새는 방이었다. 결혼한 뒤에도 그들 부부가 얻은 첫 보금자리는 남의 집 지하 셋방이었다. 그 방은 유달리 천정이 낮아서 아내가 결혼할 때 가지고 온 장롱이 들어가지 않아 다리를 잘라내야만 했는데, 아내는 장롱의 다리를 자르는 것이 자기 신체의 일부를 자르는 것만큼이나 상심해했었다. 그곳에서 이태를 살다가, 좀 더 나은 집으로 옮겼다. 이번에는 남의 집 이층이었다. 그러나 그 집과 처마가 붙어 있다시피 한 옆 건물의 이층에 하필이면 교회가 세들어 있어서 날마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찬송가 소리와 회개하라고 외쳐대는 목사의 설교와 “아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또한 방바닥엔 제대로 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젖먹이였던 딸아이에게 감기가 떨어지는 날이 없었고 한때는 폐렴까지 걸려서 이마에 주사바늘을 꽂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셋방살이의 고통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마침내 수도꼭지에서는 뜨거운 물이 항상 쏟아지고 방이 세 개에다 조그만 거실까지 있는 23평 아파트가 준식 자신의 소유가 된 것이었다. 수돗물을 많이 쓰고 집안에서 떠들고 다녀도 누구 하나 잔소리 할 사람도 없고 눈치볼 일도 없었다. 물론 집세 올려달라고 할까 걱정할 일도 없어졌다."

from 이창동, <녹천에는 똥이 많다>, [
녹천에는 똥이 많다], 문학과 지성사, 2002년 10월(10쇄), 114~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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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0.12.28 14:17

최인훈의 1970년대 작품 <하늘의 다리>는 서울의 도시공간에 대한 해부학인 동시에 서울에 대한 해부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을 서로 교차시킨 소설이다. 1969년부터 1970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은 소설의 주인공인 화가 ‘준구’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병치되는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서울의 하늘에 절단된 사람의 다리가 떠 있는 환상을 모티브로 서울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담아내려는 화가의 이야기지만 다른 하나는 고향인 북한 원산에서 은사였던 선생님의 부탁으로 맥주홀에서 일한다는 선생님의 여식인 '성희'를 찾아내 도와주려는 이야기가 중첩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소설 속의 화자인 준구의 위치 설정이다. 즉, 소설 속에서 그에게 부여된 위치적 조건은 ‘피난민’이라는 것인 바, 이는 이방인의 의식으로 서울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가 기거하는 곳이 고층의 아파트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는 서울의 핵심적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서울은 4층 높이의 아파트에 살았던 이방인들에게 어떤 표정으로 다가왔을까?

"낌새-부연 고층 건물과, 달리고 보자는 듯이 뻗친 길과 아귀아귀 뻗어가는 교외의 이 언저리의 북새판 같은 주택 붐과, 이 모든 것들. 뻗치는 삶의 힘이란 게 이런 것일지. 그러나 어딘가 의젓하고 상냥스런 기가 있어야 옳은 힘이 아니겠는가. 힘으로 친다면야 암세포가 번식하는 것도 하기사 힘이다. 이것은 제가 저를 다스리지 못하는 힘이다. 저 피난민 수용소에서 배급날마다 벌어지던 수라장 난장판-프티 부르주아의 체면이 걸레처럼 찢겨 나가던 그 판이 아닌가. 이십 년이 지났는데도 꼭 그 낌새가 그 낌새라니 어찌 된 노릇인가. 규모가 좀 커지고 차례가 좀 번거로워지면 피난민이 피난민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었다. 없이 살고 세상 알지 못하고 살아와서 무식하기는 할망정 이건 아무래도 틀려먹었다. 더러워서 못 살겠다. 그게 이 도시의 선(線)에, 색깔에 보이는 것이었다.(97~98쪽)
사월에 들어서 준구는 또 한 번 그의 캔버스가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마포에 있는 아파트가 무너진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곳인 관계로 준구는 실감을 가지고 사건을 받아들였다. 신문에서 또 여러 소리를 하고 여러 사람이 의견을 말했다. 다 옳은 말이었다. 이 사건을 자기 그림과 연결시킨 것은 그의 그림의 구도 때문이었다. 밤하늘에 다리가 걸려 있고 그 아래로 도시의 집들이 있다. 그것이 무너져내린 일은 어떤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아마 모든 사람의 느낌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죽는다거나 집이 무너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산다. 사람은 언제까지나 살고 아는 사람들은 늘 주변에 있겠거니 하고, 눈익은 집은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알고 산다. 캔버스 밖에 있는 사람의 다리가 그림보다 더 환상적이고, 캔버스 밖에 있는 집이 그림보다 더 쉽사리 뭉개지는 것을 보고 불쌍하고 무능한 환쟁이는 질려버린 것이었다. 사람과 집을 그렸다 지웠다 하는 어는 보이지 않는 손. 이름없는 화가. 보이지 않는 붓. 준구는 상대가 안 되는 화가와 그만 맞닥뜨리고 만 것이었다. 안개의 저편에 있는 노래 같은, 소금장수 귀신처럼 얼굴 없는 이 익명의 예술가. 이런 공간 배치(配置).(이상 110~111쪽)……"

from
최인훈, <하늘의 다리>, [최인훈 문학전집 4], 서울, 문학과지성사, 1991년, 97~98쪽, 110~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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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0.12.16 13:44

1969년부터 1972년 초까지 연작으로 발표되었던 최인훈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교외 도시한옥 밀집지역에 대한 묘사는 그것이 비록 1930년대에 활발하였던 집장사들에 의한 새로운 주택이라 하더라도 서민층의 링상과 생활에 걸맞는 자그마한 지음새들이 거창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집으로 언급하고 있다. 적어도 1920년대 말부터 1930~40년대에 집중되었던 도시한옥이 아파트가 도시주택의 전형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전까지는 일정한 정도의 시장성과 경쟁력을 갖춘 주택이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속 공간이 구체적으로 어디인가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소설 속의 구보씨 행동반경으로 미루어 도심을 약간 벗어난 지역의 도시한옥 밀집지역임은 분명하다 하겠다. 서울이 불어나는 바람에 서울사람이 저절로 되어 버린 사람들이 사는 곳이며, 거의 단층 살림집이고 교외주택 바람이 불기 시작한 첫 무렵에 지은 집들이라는 점에서 보문동 도시한옥 밀집지역 쯤으로 보아 크게 잘못이 없을 것이다.

"이 언저리는 한식 가옥들만 들어차 있다. 집장수가 한꺼번에 지어놓은 모양이었다. 꼭 같은 모양의 대문이 양쪽으로 늘어선 이 사이를 구보씨는 걸어갔다. 집들은 물론 전쟁 후에 지은 것이겠지만 알맞게 낡아 있어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과 공기와의 사이에 어떤 원근법을 다듬어가고 있었다. 생활이라는 붓이 천천히 끊임없이 손질을 해가는 그림처럼 땅에서 자라는 식물처럼 자라고 있는 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이상 53쪽).
구보씨가 앉은 툇마루는 뒷마당으로 난 방문 밖이어서 기역자로 꺾인 안방에서 행여 누군가 나온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을 자리였다. 이 집에 구보씨가 하숙하면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게 이 넉넉한 뒤뜰이다. 신흥주택이 들어서면서 갑자기 붐비는 동네가 됐지만 원래는 변두리다. 이만한 터를 가진 게 그때만 해도 남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지금 와서는 사정이 다르다. 새로 지은 집들은 이런 뜰을 엄두도 못 낸다. 하숙을 찾아다니던 구보씨는 널찍한 터에 들어앉은 이 한옥이 대번 마음에 들었다. 나무도 여러 그루 있고, 한쪽에는 채소밭도 있다(167쪽)"

from 최인훈,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서울, 문학과지성사, 1991년, 53,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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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나이2010.12.10 10:56

인간사회 특히 조직사회로 불리는 현대 도시사회의 허위와 위선에 대해 주목한 서하진의 소설 <사소한 일>은 소위 직장생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급 남성의 하위직 여성에 대한 성희롱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그러나 작가가 주목한 것은 이렇게 발생하거나 진행되는 성희롱 사건과 그로 인한 책임 등이 모두 일종의 기획에서 비롯될 수도 있으며,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있다.

비명문 K대 출신으로서 소위 비명문대학 사원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는 '신민호 이사'와 명문 K대 출신으로서 입사 성적 최고, 최단기간 대리 승진이라는 표찰을 달고 있는 '이영주'라는 여성 사이에 벌어진 사소한 일은 상황과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한 사건이지만 결국 신이사는 자신의 입사 동기인 '박 상무보'의 조언에 따라 회사를 그만 떠나게 된다. 이에 따라 휴게소에 모인 직원들은 삼삼오오 이면의 크고 작은 소문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일상을 계속하게 되었고, 사건을 사내 전자 게시판에 올려 신이사의 사직을 유도한 이영주는 영등포 지사의 감사역으로 좌천이라 할 만한 처분을 받게 된다.

이영주는 묵묵히 새로운 일터로 향하고 도덕경영을 내세운 회사는 변함없이 분주히 돌아가는 와중에 일부에서는 이 조치가 회사 차원의 감원을 목적으로 한 음모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존재하기도 한다. 결국 사건의 끝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각자 사람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한 가면을 중심으로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인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신이사의 입사 동기인 박 상무보가 위로를 가장한 채 찾아와 전하는 넋두리는 이 세상에 과연 무엇이 옳은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위로에 감추어진 음흉함과 뒤로 물릴 수 없도록 하는 사악함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 봐, 신 이사. 단순하게 생각해. 우리 나이, 벌써 오십이야. 다른 회사에서는 대부분 퇴직이지. 이런 대기업 이사까지 했으니 어디 다른 자리를 알아볼 수도 있어. 자네라면 모셔가려고 경쟁할지도 몰라. 버티면서 욕보고, 싸우고, 징계 받고 퇴직금 깎이고…… 그거 보통 일이 아니야. 아이들 생각도 해야지. 자네는 더구나 딸들이 아닌가."

from 서하진, <사소한 일>, [착한 가족], 서울, (주)문학과지성사, 2009년 1월(초판 2쇄),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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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