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꽃과 나무2015.05.26 17:49

"창백하리만큼 흰 꽃의 꽃술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갓 활짝 열린 순간, 미풍도 낙화가 애석해 잠깐 쉬고 있는 듯 주위는 화장하고도 고즈넉했다. 풍염한 도화의 말로가 육감적인 복숭아이듯 이화의 결실이 청아한 배인 건 아주 당연했다."

 

 

from 박완서,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_01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파주, (주)문학동네, 2012.1,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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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생각2014.09.02 14:55

기억을 퍼 올리는 마르지 않는 샘

2년 전 우리 곁을 떠난 박완서 선생은 40년의 작가 생활을 통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글을 남겼다. 길고 짧은 소설과 수필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이야기를 남긴 작가 중 한 분이다. 필자는 작가의 작품을 한 마디로 뭉뚱그려 말할 깜냥은 못 되지만 작가의 다채로운 글들은 적어도 공간과 장소에 대한 재현 가치와 더불어 우리가 어떻게 지난 세월을 살아냈는가를 민낯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독본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은 알아차릴 정도다. 가운데 흥미를 일으키는 대목은 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집은 모두 세 곳이다. 하나는 작가가 나서 자란 개풍군 박적골의 조선 기와집인데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거나 동무들과 더불어 즐겁게 생활을 하던 유년의 기억을 품은 장소로 묘사되곤 한다. 다른 하나는 소설 엄마의 말뚝에 등장하는 현저동 괴불마당 집이다. 마당이 괴불처럼 세모여서 괴불마당 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지막은 노년의 느린 삶을 품어주었던 아치울 마을의 땅집(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이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 작가가 살았던 이 집들에 대해 소설이나 수필을 막론하고 끊임없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그 집들은 마음을 의탁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고향이며, 그런 까닭에 작가 생활 40년을 버티게 한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길어 올리거나 떠내도 마르지 않는 샘.

 

박적골의 조선 기와집은 유년의 기억을 온전하게 한 장소였다. 서울 사람이 되었음을, 그리고 번듯한 내 집을 가진 특별시민이 되었음을 어렴풋하게 확인시켜준 괴불마당 집은 가족의 울타리를 제대로 만들게 한 장소였다. 그리고 작가에게 주어진 삶의 마지막 12년을 안식과 평화로 바꾸어 준 곳이 바로 아치울 마을의 마당 딸린 집이다.

 

두꺼운 삶

1990년 작고한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현은 아파트에 살면서 아파트를 비난하는 체하는 자기모순. 나에게 칼이 있다면 그것으로 나를 치리라. 나를!’이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글을 30여 년 전에 잡지를 통해 발표한 바 있다. 글의 제목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문학평론집 제목이기도 한 두꺼운 삶과 얇은 삶이다. 당시 그는 반포의 서른두 평짜리 아파트에 사년 째 살면서도 처음 문패를 달았던 땅집의 낮은 지하실과 높은 다락방을 그리워했고, 이웃들이 왁자하던 외갓집의 너른 부엌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낸 고향 남도의 조그마한 섬을 마음 끝자락에 두곤 했다.

 

그리고 사물과 인간의 두께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라야 두꺼운 삶을 사는 것이고, 깊이가 없는 평면적인 삶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질타한 바 있다. 모든 것의 깊이를 무시한 엷은 시선을 떨쳐버리고자 수없이 많은 밤을 고민했노라 했다. 칼이 있으면 나를 치리라는 자학에 가까운 절규 속에서 그가 걱정한 바는 아이들의 미래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겹겹으로 만들어질 아이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할 것인가를 걱정한 것이다.

 

기억공동체로서의 집

집이란 곧 크고 작은 편린의 기억들을 두텁게 쌓아 두는 공간이며, 기억이란 가족이라는 씨실과 시간과 이웃이라는 날실이 촘촘하게 엮여 만들어낸 삶의 실체이자 온전한 삶의 뿌리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개인의 삶이 당연하게도 역사가 되는 것은 두터운 기억의 이어달리기가 만들어내는 힘이며, 가족, 시간, 곁을 주는 이웃에 대한 기억을 길어 올리는 마르지 않는 샘이 곧 집이다.

 

기억공동체로서의 집을 되찾기 위해서는 가족과 시간 그리고 이웃이 관건이다. 머묾은 가족과 시간의 중첩과 누적이 그 두께를 만들어 줄 것이며, 이웃은 장소에 개인이나 가족공동체의 일상이 얼마나 깃드는가에 달린 것이다. 결국 한 곳에 뿌리내리고 오래 머물러 사는 정주(定住)와 가족의 일상생활이 어느 정도까지 번져나갈 수 있는가에 기억의 깊이와 삶의 두께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제 돌아보자. ‘마분지로 만든 얄팍하고 각진 신도시’(전경린의 여름휴가)공중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보금자리’(이창동,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어렵사리 마련하고는 베란다 너머 병풍처럼 서 있는 고층아파트’(배명희, 온수관)를 쳐다보며 송파는 강남 바로 턱 밑, 분당은 미니 강남, 강동은 진군 중. 강북 하고도 상계는 두통 나는 곳’(우영창, 하늘다리)이라는 허언을 믿으며 십억 짜리 아파트에 살며 이십억이 안 되니까 안심할 수 없다 엄살떠는 중산층’(이지민, 타파웨어에 대한 명상)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온전한 삶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항로를 벗어날까 노심초사하며 무리지음과 서열화의 공간 정치 현장에 뛰어들어 아파트에서 아파트로의 이사를 일삼는 아파트 유목민이 참된 내 모습인가 말이다.

 

우리 세대가 앞만 보고 달려 고향을 잃은 실향 세대라 한다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퍼내도 마르지 않는 온전한 기억의 샘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며 공간과 장소의 두께를 입체적으로 느끼고 그 속에서 가족들과 오순도순 만들고 키운 가족들과의 기억을 쌓을 수 있도록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두꺼운 삶의 필요조건이다. 집값의 오르내림에 들썩거리는 얄팍한 내 자신보다는 동무를 잃고 새로운 환경에 두려워할 아이의 조바심을 먼저 다독이는 마음이 필요하다.

 

도시사회학자인 얀겔(Jan Gehl)흥미와 속도는 반비례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빠른 길은 재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반면 느린 속도로 지나치는 길은 다양한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하는 말이다. 이 말에 삶의 속도 아니 이사의 빈도를 대입시키면 기억의 누적을 통해 두꺼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는 자명하다. 적어도 다음 세대의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어른들의 도리가 아닐까.

 

열린사회를 향한 단지의 해체

이웃 역시 시간의 종속변수다. 다만 시간이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한 곳에 아무리 오래 머물며 삶을 의탁했다 하더라도 열린 사회를 향한 바른 태도를 가지지 못한다면 역시 두꺼운 삶에 다다를 수 없다. 좁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하늘을 가릴 정도의 높은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단지(團地) 안에서 자폐적인 삶을 산다면 그것은 얇은 삶에 다름 아니다.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채 규격화 된 칸막이 안에 자신을 가둔 사람들’(김사과, 미나)도시 속의 완벽한 요새’(김채원, 푸른 미로)에서 자신들의 행복을 구가한다면 이는 곧 물리적 이익공동체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을 의탁할 수 있는 고향이 될 리 만무하다. 고향은 열린 사회에서 얻어지는 과실이며, 어울림의 기억이라는 점에서 닫힌 사회는 배격되어야 한다. 그래야 깃듦의 기억이 쌓이는 것이다.

 

아무리 퍼내도 기억이 마르지 않는 샘이 곧 집이고, 두터운 기억이 곧 두터운 삶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한 곳에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는 정주와 열린 사회를 향한 단지의 해체야말로 온전한 집이 존재하게 하는 조건이다.

 

 

이 글은 <국토연구> 282호, 2012.3에 기고한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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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생각2013.04.12 17:36

참여연대가 발간하는 월간 [참여사회] 2013년 4월호의 특집이 "집"이었고, 아주 짧은 글을 의뢰받아 <온전한 집>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냈습니다.

 

출처 : 월간 [참여사회] 2013.04(통권 197호), 8~11쪽

 

http://www.peoplepower21.org/Magazine/Magazine/1010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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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꽃과 나무2012.07.19 14:39

"...A여중 둘레는 옛날부터 진상 배로 유명한 배 고장이라 온톤 배밭인데 마침 배꽃이 만개해 있었다. 도시에서만 자란 나는 이렇게 무리져 만개한 배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창백하리만큼 흰 꽃의 꽃술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갓 활짝 열린 순간, 미풍도 낙화가 애석해 잠깐 쉬고 있는 듯 주위는 화창하고도 고즈넉했다.

풍염한 도화의 말로가 육감적인 복숭아이듯 이화의 결실이 청아한 배인 건 아주 당연했다...."

 

from 박완서,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1], 파주, (주)문학동네, 2012.1(2판 7쇄),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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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2.03.20 15:25

지난 1월에 국토연구원으로부터 집필 의뢰 받은 바 있는 '살구나무집' 1년의 단상(斷想)이 월간 <국토> 2012년 3월호에 정갈하게 인쇄되어 배달되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아파트와 바꾼 집>을 보고 마당을 가진 집에서의 삶 1년 동안의 감상을 원고지 10매 내외로 써달라는 부탁을 편집자로부터 받고 바로 전화를 끊자마자 그 자리에서 생각의 끄트머리를 적은 것이었는데 오래 생각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지난 1년의 땅집살이를 잘 담아냈다는 느낌으로 활자로 찍힌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공간이 어떻게 장소로 변할 수 있는지, 땅집살이 1년 동안 나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그래서 얻은 지혜가 무엇인지를 녹인다고 한 것이 글재주가 얕아 명문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느낌을 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담는꼭지가 ‘짧은 글 긴 생각’인데 편집자의 의도대로 글이 맞춤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읽는 이들에게 봄날의 작은 감흥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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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공간산책2011.05.02 23:22

등단한 지 30년이 되던 해에 나이 일흔의 작가 박완서가 펴낸 [아주 오래된 농담]은 산업사회에서 자본의 지배력과 에너지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가부장적 사회제도의 모순과 더불어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을 이야기로 풀어낸 장편소설이다.

초등학교 6학년에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훌륭한 의사가 되어 돈 없는 사람들을 치료할 것이라고 답했던 '한광'과 한광에게 빼앗긴 모범답안 때문에 유명한 의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겠노라 답했던 '심영빈'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훌륭하고 돈도 많이 버는 의사와 결혼하겠노라던, 능소화가 피는 이층집 딸 '유현금'. 대물림으로 탈없이 산부인과 의사가 된 한광과 적당히 존경받으면서 하자없는 수입으로 윤택한 생활을 누리 수 있는 직업이 의사라고 생각했던 어머니의 심정과는 달리 초등학교 때 능소화가 피는 이층집 딸 현금(玄琴)에 대한 애틋한 기억으로 역시 내과의사가 된 영빈이 초등학교 졸업 후 30년 만에 이미 이혼한 현금을 재회하면서 일상의 일탈이 시작되는 소설. 긴 이야기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되지만 이야기의 풀림이나 맺음을 알아차리기에는 쉽지 않다.

소설속 인물 가운데 ‘현금’이라는 이름은 아주 의미있는 복선이다. 마치 현악기의 음처럼 고운 자태를 가진 여자를 직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한껏 멋부린 이름의 뒤에는 돈[現金]이 있음이기 때문이다. 작가 박완서는 소설책의 말미에 붙인 글을 통해 ‘돈에 대해서 말한다는 게 여성의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게 돼버린 것도 독자가 눈여겨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적고 있다. 새로 태어나는 생명도 그리고 몹쓸 병에 걸려 죽어가는 장면 모두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은 나이 일흔에 이른 작가 박완서가 보는 세상사는 지혜일지도 모른다.

"택시는 금방 잡혔지만 영빈은 자기 병원 이름도 동네 이름도 떠오르지 않았다. 기사가 재차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자 그는 얼떨결에 강변북로라고 둘러댔다. 강남에 있는 그의 아파트는 강가는 아니지만 밤에 북쪽으로 통유리가 달린 다용도실로 나오면 앞동과 동 사이로 강변북로를 지나는 차들의 불빛이 보였다. 현금의 아파트를 알게 된 후로 그는 강변북로의 불빛을 볼 때마다 가슴이 후둑후둑 소나기 오기 직전의 숲처럼 설레이곤 했다. 곁에 있어도 한강만큼의 거리가 느껴지는 현금, 헤어져 있어도 예민한 현(絃) 같은 게 당겨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녀, 그 소통의 끈은 미세한 바람에도 오묘하게 떨릴 것처럼 긴장돼 있었고, 영빈은 그 소리를 가슴으로 들을 때 살아있음의 번뇌와 희열을 오싹하니 실감하곤 했다. 다용도실은 그의 집에서 유일하게 정돈되지 않은 채 버려진 여백이었다. 그 0.7평의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한 개비의 담배보다 더 속절없다 해도 그보다 중요한 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텅 빈 느낌은 얼마나 황홀한가."

from 박완서, [아주 오래된 농담],
실천문학사, 2000년 10월,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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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공간산책2011.04.19 15:21

처음 제정된 황순원 문학상 본심에 오른 10편의 중‧단편 가운데 2001년의 수상작으로 뽑힌 박완서의 <그리움을 위하여>는 마치 그 전에 발표한 <너무도 쓸쓸한 당신>과 혼동을 일으킬 정도로 분위기가 비슷한 짧은 소설이다. 물론 이야기의 구조가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막 노년에 들어선 작가의 삶이 고즈넉하게 담겼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잃고 싶지 않은 가장 소중한 것을 대라면 서슴지 않고 보행의 자유를 대겠다던가 일상속에 고집스럽게 움켜쥐고 있는 요즘 세태에 대한 못마땅함이 작가적 삶의 경륜 속에서 튕겨나온 짧은 문장들로 젊은 독자들의 가슴을 찌르기도 한다.

[2001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있는 <그리움을 위하여>는 환갑 진갑을 모두 지난 두 노인네의 노년살이를 그린 작품이다. 살림이 그리 여유롭지 못한 여덟 살 아래인 사촌동생과 평생상전인 남편을 사촌동생보다 3년이나 먼저 보낸 비교적 풍족한 사촌언니의 일상을 통해 노년의 그리움을 살포시 짚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박완서 특유의 작풍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자유라고 일컬어질 수도 있는 인간의 노년이 오히려 본질적으로는 그리움인 것이며, 그리움을 잃어버린 삭막한 세상살이에 대한 아쉬움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이다.

작품해설을 쓴 임규찬이 이 소설을 ‘수다’과에 속하는 ‘박완서표’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사람살이에 대한 꼼꼼한 묘사가 온통 다른 곳에 눈돌릴 겨를도 주지 않고 혀에 친친 감친다. 그리움은 축복이고 노년이라는 질병보다는 오히려 그리움의 부재가 현대적 질병임을 탓하면서 마치 교장선생님과 같은 남해의 선주와 재혼한 사촌동생과의 화해를 받아들이면서 그 동생이 부쳐올 남해의 분홍빛 도미를 기다리는 ‘나’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세상살이에 대해 어르신의 얘기를 듣는 셈이다. 그런 작가도 이미 고인이 되었으니 이제는 들을 기회도 없게 되었다.

"나에게는 옥탑방에 사는 사촌동생이 하나 있다. ‧‧‧‧‧<중략>‧‧‧‧‧집을 날린 건 다행히 남매를 다 결혼시킨 후였다. 제대로 가르치지도, 잘해 보내지도 못한 사회 초년생들이라 모셔갈만한 여력은 없었지만 그래도 효성들은 지극해서 힘을 모아 마련한 모갯돈으로 얻어준 전세방이 우리 아파트단지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밖에 떨어지지 않은 단독주택 단지 옥탑방이었다. 나는 이사갈 때 딱 한 번 가봤는데 지은 지 얼마 안되는 집이라 옥상으로 통하는 야외계단만 좀 위태로워 보일 뿐, 널찍하고 깨끗한 방에 주방과 수세식 화장실이 달려있을 뿐만 아니라 옥상을 온통 마당처럼 쓸 수 있어서 셋방이라는 구차스러운 느낌이 안 들었다. ‧‧‧‧‧<중략>‧‧‧‧‧이사갈 때만 해도 겉은 반드르르해 보였지만 워낙 날림집인데다 세줘먹으려고 나중에 올린 옥탑방은 더 엉터리여서 여기저기 뒤틀리고 금 가서 겨울에는 수도와 화장실이 얼어붙어 못 쓰고 여름에는 비까지 새서 비닐조각으로 임시변통을 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까지 있는 집 꼬락서니가 그러하니 다년간 누적된 누추가 어떠하리하는 건 짐작하고도 남았다. 보이고 싶지 않아하는 동생 마음에 따르는 게 수였다. 얼어붙은 상하수도 때문에 겨울이면 물통이나 요강까지 들고 옥외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동생의 관절염은 해마다 조금씩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from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앙 M&B, 2001년 9월, 1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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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3.03 00:00

입추 말복이 다 지났건만 여전히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다. 광주 전남 일대의 남부 지방에서는 폭우가 내려 집이 여러 채가 잠기는 등 볼썽사나운 일도 벌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어젯밤 늦게 머리맡에 있던 박완서 선생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릅답다]는 책에 담긴 글을 읽다가 우연히 죽전 주택의 앞으로의 풍경과 비슷한 내용이 있어 책장을 접은 뒤 학교에 오자마자 다시 한 번 그 글을 읽고 이곳에 옮겨 적는다. 아마도 오랜 동안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과 경기도 구리의 경계쯤이라 할 수 있는 아치울 마을에 삶을 놓으신 뒤 쓰신 글로 보인다.

“이 집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던 것은 커다란 살구나무 때문이었다. 내 고향 집에도 살구나무가 있었고 그건 그 마을 유일의 살구나무여서 봄에 그 꽃이 활짝 피면 온 동네가 환해졌다.”(같은 책, 34쪽, <유년의 뜰>에서)

내가 새로 살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죽전 주택지가 5년 동안이나 분양이 안 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살구나무를 우선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그 나무가 지켜내고 있는 몇 개의 봉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꺼렸던 때문이었다고 들었는데 건축가 조남호 선생과 나 그리고 P 교수는 오히려 살구나무(처음 땅을 보러 갈 적에는 그것이 살구나무인지도 사실은 잘 모르고)를 크게 칭찬했었고, 그 기분으로 지금의 집터를 사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살구나무가 집 터의 경계 바로 바깥에 서 있었기에 그 풍광을 놓고 즐기는 것에 자못 큰 기대를 걸었었던 것인데 마침 박완서 선생님의 글이 꼭 내 경우를 예로 든 것처럼 판단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살구꽃이 필 철이 아니어서 급히 지난 4월에 촬영했던 살구나무 사진을 다시 올려 구경하였다.


아무튼 이 나무는 그 후 설계의 전제 조건이자 주택 내부의 방의 위치와 창문을 내는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정도로 죽전주택의 많은 것을 결정하게 한 귀중한 조건이었다. 우리집의 서재가 서측에 놓이도록 했으며, 서재의 책상을 앉은뱅이 책상으로 하고자 의도하게 했고, 앉은 자리에서 넓고 큰 창을 통해 살구나무를 그윽하게 올려볼 수 있는 창을 크고 넓게 구성해 달라 건축가에게 요구하기도 했고, 큰아이 방의 테라스와 쪽창에서 살구나무를 볼 수 있도록 의도하였다. 물론 건축가는 살구나무가 드리울 서측의 따가운 햇살을 살구나무가 막아설 수 있도록 하고 살구나무 밑의 작은 마당에 나무로 만든 툇마루를 두기로 결정하기도 하였다. 물론 아내는 힘없이 떨어지는 살구로 인해 현관 입구가 냄새가 나거나 지저분해지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알고 보면 그 표정도 즐거움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침 올해는 살구꽃이 만개한 뒤 바로 이어서 큰 비가 내린 탓에 살구꽃이 모두 떨어져 박완서 선생의 기억처럼 온 동네를 밝게 해주는 시간이 그야말로 찰라에 불과했지만 내년 봄에는 방에서, 마당에서 그리고 공부방에서 살구꽃과 더불어 봄을 즐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렇게 살구나무는 이제 우리 동네의 명물이 될 것이고, 그 안에서 꽃같은 아름다운 마음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또 내 숙제가 되고 말았다. 내년 봄을 기다린다. 내친 김에 열매를 모두 내리고 풍성한 초록의 무더기를 이루었던 7월의 사진을 다시 한 번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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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공간산책2011.02.20 20:53

2003년 제48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의 끄트머리에 역대 수상작가 최근작으로 실린 세 편의 소설 가운데 하나가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난 작가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이다. 그러니 이 작품은 10년 전인 1993년에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10년 뒤 작품이 되는 셈이다. 1931년생이니 올해로 그저 헤아리는 나이로는 일흔 하고도 세 살이나 되는 박완서는 노령이라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작품을 거침없이 쓰고 있으니 노익장이라면 외람된 표현일까.

작가 박완서는 어느 작품에서인가 머리글에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걸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라고 쓴 바 있다. 그런 점에서 <그 남자네 집>은 노년에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걸음의 즐거움을 작가에게 그득하게 안겨준 작품이라 하겠다. 지금부터 50년 쯤 전의 과거로 돌아가서 갈래머리 여고시절에 살던 집 터와 동네를 황혼에 다시 밟으며 아름다운 청년과의 명징한 기억을 텍스트에 의한 잔상으로 엮어낸 소설이기에 더욱 그렇다.

후배의 집 구경 초대에 응해 성신여대 근처의 최신식 이층집을 찾은 ‘나’(아마도 작가 자신이겠지만)는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이나 변했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태의 모진 풍파와 세월의 흐름에도 변치 않고 조선기와집으로 남아있는 그 남자의 집을 발견하고는 당시의 비루했던 삶과 아름다운 기억에 젖어든다. 이미 그 남자의 부음을 들은 지도 십년 가까이 되었지만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으로 기억되는 그 남자의 편에 서서 영원히 구슬같은 처녀의 마음으로 써내려간 이 작품은 기억과 회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활력이며, 또 생의 에너지인가를 보여준다. 되돌아보건대 50년 전 자신과 그 남자는 모두 플라토닉의 맹목적 신도였으며, 요즘 젊은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외설스러운 순결주의로 여겨질지도 모를 젊음의 분홍빛 기억을 얼른 치마 속에 감추고 성신여대 앞의 커피점을 나서는 작가 박완서의 약간은 삐진 얼굴이 소설의 마지막 장에 겹쳐진다.

박완서의 말년 작품들은 늘 먼 기억의 끄트머리에서 건져낸 장소와 물건으로부터 기술된다. 물론 요즘의 젊은 것들에 대한 다소간의 못마땅함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표현되기는 하지만 그보다 앞서 자신이 작품을 쓸 당시 이미 일흔을 넘긴 노인이라는 사실을 턱 걸쳐놓고 이야기를 꾸며가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것도 없다. <그 남자네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름이나 숫자에 대한 현저한 기억력 감퇴가 노쇠현상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하면서도 결코 잊지 못할 일들에 대해서는 명쾌하고도 분명한 기억능력을 과시한다. 그러니 작가의 요즘 작품에 줄기를 이루는 것은 아름다운 날들에 대한 기억과 잔상으로 투영된 장소나 공간이며 이들에 대한 과거의 스틸화면이 긴 분량으로 서술되곤 한다. 물론 독자는 그 속에 담긴 순수를 읽는 즐거움을 갖는다. 그리고 이 작품은 현대문학 창간 5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장편으로 꾸며져 출간되었다.

"안감내만 찾으면 그 집을 쉽게 찾을 줄 알았다. 성북동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삼선교 돈암교를 거쳐 우리 동네 앞을 흐르던 개천을 우리는 그때 ‘안감내(安甘川)’라고 불렀다. 안감내는 수량이 풍부하고 맑아서 동네 사람들은 큰 빨래만 생기면 그리로 들고 나갔다. 개천과 나란히 난 천변길은 인도와 차도가 따로 있을 정도로 너른 한길이고 개천 쪽으로는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어 차가 많지 않은 당시에는 다른 동네 사람들까지 일부러 산책을 올 정도로 한적하고 낭만적인 길이었다. 내 머릿속 지도의 한가운데를 대동맥처럼 관통하는 안감내는 찾아지지 않았다. 그게 안 보이는데 무슨 수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한단 말인가. 안감내가 복개됐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복개됐더라도 개천과 천변길을 합치면 8차선 넓이의 대로로 남아 있어야 했다. 80년대 초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가서 센 강을 보고 애걔걔 그 유명한 센 강이 겨우 안감내만 하네,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내 기억속의 안감내는 개천 치고는 넓은 시냇물이었다. 집만 나서면 개천 건너로 곧바로 성북경찰서의 음흉한 뒷모습과 거기 속한 너른 마당이 바라다보였다. 그만한 거리감 없이 우리 식구가 거기서 허구한 날 그 건물을 바라보며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동네에 그렇게 넓은 이면도로는 없었다. 복개된 개천 자리 다음으로 표적이 될만한 건 성북경찰서였다. 그건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찾은 게 아니라 우리가 맴돌던 지점에서 후배가 조오기라고 손가락질해 보여주었다. 그제서야 내가 천주교회와 신선탕 중간 지점에 서 있다는 걸 알았다. 나의 옛집은 바로 신선탕 뒷골목에 있었고 그 남자네 집은 천주교당 뒤쪽에 있었다. 천주교당도 신선탕도 천변길에 있었다. 교회는 증축을 했는지 개축을 했는지 그 자리에 있으되 외양은 많이 바뀌고 커져 있었지만 목욕탕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이고 이름까지 그대로였다. 세상에 50년 전 그 목욕탕이 그대로 남아있다니, 50년이면 목욕탕이 온천이나 사우나나 찜질방으로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아닌가. 나는 그놈의 목욕탕 때문에 그 넓지 않은 이면도로가 안감내를 복개한 길이라는 걸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내 머릿속 지도는 실재하는 거리가 아니라 다만 확보하고 싶은 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신선탕 뒷골목의 옛 조선기와집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 일대가 다세대주택이 들어서서 정확한 집터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from 박완서, <그 남자네 집>, [
2003년 제48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현대문학, 2002년 12월, 265~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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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생각2011.02.19 22:28
오늘이 절기상 우수니 말 풀이 그대로라면 눈이 녹아 물이 되어 대지를 적신다는 날이다. 그러니 오늘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봄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안마당의 담장 모서리와 대문 안쪽의 귀퉁이에 조금 남아 있는 잔설이 겨울을 지나고 있음을 알릴 뿐 다른 모든 것은 이제 봄을 향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풍경이기도 하다.

오늘도 손님들이 여럿 다녀가셨다. 그런데 오늘 땅집을 찾은 손님들은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고, 그 수도 너무 많아 미처 헤아려 볼 엄두도 나지 않아 대접 또한 융숭하지 않았다고들 하실 것이 분명하다. 친척 가운데 어느 분이 지난 해 땅집을 지어 엄동설한에 이사를 해 이제 막 봄을 맞으려 하는 손 아래 동생이 있다고 교회에 풍문을 퍼뜨린 탓에 신도 가족의 혼례식에 참석한 교회분들이 혼인식장에서 봉고를 탄 채 그대로 우리집으로 들이닥쳤고, 어디 쯤이라는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 댓 분 정도의 손님들이 새로 지은 땅집을 찾으신 것이다.

이렇게 우리집을 찾으신 분 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집을 지으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고, 또 어떤 분은 경기도 가평에 집을 한 번 지은 적이 있는데 한 번 더 해보려 하신다면서 구경에 따라나섰다고도 하신다. 자연의 절기 우수가 드디어 사람들의 작심을 행동으로 풀어내는 모양이라 느끼며 집 안팎을 차분하게 안내해 드리고, 물으시는 말씀에 아는 정도에서 설명도 해 드렸다.

오늘 집을 찾으신 분들로부터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고, 한 치의 오차나 왜곡이 없이 설명을 다 드렸는데 딱 한 가지 답변하기에 어려운 질문이 있었다.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니 무엇이 좋더냐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좋다'는 '나쁘다'라는 필연적 상대어를 두고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으며, 선호의 문제와 개인적 주관이 작용하는 가치게재적 해석이기 때문에 공감을 얻기도 어려운 주제이다. 만약 아파트 살이에 비해 한 뼘이라도 마당이 있어 좋다고 한다면 다시 마당을 가졌기 때문에 빚어지는 쓸기, 깎기, 심기, 자르기 등의 일이 좋으냐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어 판단의 사분오열이 빚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좋으냐와 나쁘냐의 질문이나 판단은 기본적으로 현재 자신의 입장과 처리를 대변하기 위해 그 가치를 우월적 지위에 두고 상대적인 상황을 촌스럽거나 야만적인 것 혹은 비문명적인 것으로 몰아가는 천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땅집'에 사는 것과 '줄행랑(얼마 전 타계한 작가 박완서의 소설에서 아파트를 이른 말이다. 이외수는 감성사전을 통해 이보다 더 거친 표현으로 아파트를 이르길, 인간보관용콘크리트 캐비닛이라 했다)에 사는 것 가운데 무엇이 좋으냐는 것은 결국 주관적 가치를 묻는 일에 불과할 뿐 보편적 대답을 얻기에는 부적절한 질문이 되고 만다. 따라서 아파트에 사는 것에 비해 단독주택에 사는 것이 무엇이 좋으냐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기 곤란했고, 이 글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되리라는 판단이다.

스스로에게 익숙하고 편한 제도와 문화 그리고 환경을 기준으로 그와는 다른 모든 것을 꼼꼼하게 살펴 자신의 생활이나 태도와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땅집에 대한 질문에 앞서 마음 속에 접어둔 속내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파트 생활에 비해 단독주택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다른가를 설명한다면 이는 분명 사실(facts)에 해당할 것이고, 그 사실이 진실한 것이라고 믿어진다면 그에 대해 주관적인 평가를 가함으로써 개별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 후 아파트 생활과 참 다르다고 스스로 느낀 사실들을 담담하게 기술하는 일이 필요하다 생각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글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며, 이제 새 집으로 이사온 지 한 달 조금 넘게 된 땅집 초년생의 사실 기록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글 쓰기의 여백을 좀 더 남긴다는 뜻에서 아파트에서의 생활과는 생판 다르게 된 필자 자신만의 환경과 행태변화를 기록해 본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 글은 한 해 겨울을 통과하면서 스스로 느낀 점만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가장 뚜렸한 변화는 신발이다. 눈이 자주 왔고, 내리는 눈을 더 쌓이기 전에 치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 바깥마당과 안마당 그리고 대문 밖 길의 눈도 치우려니 오래 전 어릴 적 나이드신 분들의 필수품처럼 보였던 털신이 참 유용하겠다는 생각에서 재래시장에서 털신을 구입했고, 이번 겨울을 나는데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당연히 아파트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항용하던 슬리퍼는 현관이 놓인 채 먼지를 쓰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집 근처 가게를 오가면서 운동화를 가장 많이 신지 않았나 여겨진다.

그 다음의 차이는 옷차림이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으로서는 집 안에 몇 벌은 있지만 자주 입지 못했던 운동복(소위 츄리닝)을 평상복으로 활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겨우내내 거의 입을 일이 없던 내복을 상복하였다. 물론 이번 겨울 추위가 예년과 달리 길게 지속되었고 평년 온도보다도 낮았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내복이 다음 해 겨울에도 쓰일 것은 거의 100% 확률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난 패딩 조끼 정도가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번갈아 쓰이거나 혹은 겹쳐 입기도 한 옷들이다. 그러니 반팔 티셔츠는 단 한 번도 꺼낼 생각도 하지 못했고, 꺼냈다 하더라도 입지 못했을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단독주택이 아파트에 비해 무조건적으로 춥다는 것은 아니다. 난방과 취사 모두 도시가스에 의존하다보니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런 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아파트생활에 비해 가족 모두가 에너지 사용에 좀 더 민감하게 변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일상생활의 변화에서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아니더라도 단 하루도 마당에 나가기를 안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집 안의 화분에 물을 주기 위해서, 마당에 날라 들어온 비닐봉지를 거둬들이려고 혹은 볕이 좋았던 날 강아지 운동을 시키라는 성화나 부엌일에 몰두한 아내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라도 안마당이나 바깥마당 나들이를 거른 적이 하루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아침에는 분주하게 오가는 집 앞 길거리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새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으며 밤이면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늘어 달 모양의 변화와 함께 별도 자주 보게되는 시간 또한 당연히 늘었다. 몸피가 작은 새들의 노래소리가 큰 새들에 비해 훨씬 더 영롱하고 아름답게 들린다는 사실도 이로 인해 몸으로 안 사실이다. 땅을 밟지 않고는 결코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된 집이어서인지 집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는 휴일에도 밖으로 나가는 빈도수는 아파트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머무는 시간은 아파트보다 훨씬 짧은 반비례 관계의 옥외생활을 경험했다.

아울러 딱히 일이라고 규정하기에는 낯부끄러운 것이 되겠지만 마당쓸기와 눈치우기의 두 가지로 인해 동절기에 필요한 생활용품이 꽤 된다는 사실도 알았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동네에 아직도 떡하니 버티고 선 철물점을 찾았을 때 발견한 용품들의 가짓수에 놀랐고 무엇인가 몸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하다 싶은 것들은 모두 다 있겠다는 생각에서 호기심을 배우기도 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열쇠를 한 곳에 모아두는 열쇠꾸러미, 넉가래와 함께 눈을 치우는 삽과 땅을 파는 삽을 따로 구입하고, 싸리비를 몇 개 샀으며, 선 채로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빨간색의 플라스틱 용기와 알루미늄 집게, 재활용품을 날짜에 맞춰 수거하기에 편리하도록 포장하는 비닐봉지 등 물건 모두를 한 곳에서 구입하였으니 철물점이 무척 소중한 곳으로 다가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이제 막 한달 여의 땅집 생활에서 얻은 경험이나 차이가 별 수 있겠냐 생각하지만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개인에게는 생경한 경험이었고, 이제 우수를 지나 다음 계절을 맞으며 아파트에서의 봄과는 다른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파트에 비해 땅집 생활 가운데 무엇이, 어떻게, 멀마 만큼이나 좋은가를 묻기 보다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믈어야 하며, 그에 대한 대답이 있다면 대답 속의 사실들이 자신의 가치관이나 생활세계의 지향점과 합치하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속으로 되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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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