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집_일기2017.04.24 15:52

봄의 시작을 3월이라 한다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울의 한 해를 보내고 조금은 다른 우울로 맞는 것이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봄인데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아무래도 집 이야기를 펼치는 곳이니 그동안 SNS에 끄적거린 내용들을 다시 훑어보게 된다.

 

3월을 맞으며 처음 한 일 가운데 하나는 포천에서 그동안 맘에 품었던 벚나무 한 주를 들여온 일일 게다. 언젠가 경기도 백암 일대를 지나다가 마주했던 능수벚나무 한 그루가 너무 좋아 보여 그동안 마음에 담았던 일인데 우연히 경기도 포천에서 죽전의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소위 45일로 정해진 식목일이 나무를 옮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시절이고, 그보다 한 달은 앞서서 몸을 움직여야 제철에 꽃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조금은 서둘렀다.

 

 

집으로 옮기기 위해 정한 날짜는 아무래도 토요일이 나을 듯해 정한 것이 2017311. 마침 하루 전인 310일에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 선고가 헌법재판소에서 이루어진 까닭에 이름하여 탄핵기념식수가 되었고, 관리번호는 ‘20170310’으로 정했다. 옮기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5톤인지 8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크레인이 부착된 대형 트럭이 집 앞에 도착하였고, 잔가지 몇 개를 잘라낸 뒤 마당 한켠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른 아침부터 집으로 온 두 분이 벌써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 나무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요리조리 자리를 잡는 아내의 의견에 따라 나무를 옮기고 물을 댄 뒤 혹시라도 바람에 흔들려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을 염려해 세 곳에 앵커를 묻고 줄을 늘여 단단하게 고정하는 것으로 작업을 마치고, 잠시 동안이지만 바람결에 휘날리는 벚꽃을 그려보기도 했다.

 

마침 살구나무집에서 처음 봄을 알리는 노루귀도 만개한 날이었고, 수선화도 거친 땅을 뚫고 올라와 꽃대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살구나무집의 봄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창밖 나른한 햇살을 받는 곳에 자리한 빈카미아너는 이미 꽃을 우기 시작했고, 어느 것보다도 생명력과 복원력이 강한 앵초며 물망초 등도 이파리를 키우고 그 안에 작은 꽃대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봄에 무엇보다도 기다려지는 것이 있으니, 이름하여 인디언 앵초이다. 작년 봄 조금은 늦은 봄에 양재동 꽃시장에서 세 촉을 사다가 심어두었던 것인데 올해는 이 가운데 하나가 촉을 퍼뜨려 얼핏 눈으로 보기에는 네 촉이 푸른 이파리를 만들며 설렘을 배가시킨다. 326일에 본 모습인데 416일에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꽃잎을 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지만 자연의 신비와 그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을 감탄하기에 절대 부족함이 없다.

 

49. 마당으로 옮긴 능수벚이 서서히 꽃잎을 열고, 서재 마당 바깥에 늘 늠름한 모습으로 살구나무집을 지키는 오래 묵은 살구도 엄청난 꽃을 피웠다. 살구나무집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바야흐로 봄의 절정에 진입하는 모습이다. 앵초며 할미꽃도 특유의 빛깔을 가진 꽃을 피웠고, 능수단풍 아래 작은 꽃밭은 이제 형형색색의 봄꽃들이 저마다 제 자랑이 한창인 풍경을 연출했다.

 

 

또 무슨 일을 꼽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고양이 얘기를 빼먹을 뻔 했다. 고양이 얘기는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10월인가, 윗집에서 살던 순이가 얼룩고양이 세 마리를 데리고 살구나무 아랫집을 찾았다. 아직은 젖을 물려야 해서 홀쭉해진 어미가 가엾다 여긴 아내가 새끼들을 돌보게 되었고, 추위를 피하도록 여러 궁리를 했고, 봅을 맞아 세 녀석 모두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다시 집으로 데려온 녀석들인데 이제는 아주 편안하게 서재마당이며 거실마당을 차지하고는 게으름과 어리광으로 자연스럽게 마당 식구가 된 것이다. 등에 검은 털이 거의 없는 녀석은 도도’, 그리고 검은 털이 두 덩어리 정도 올려진 녀석이 레레’, 마지막으로 등에 길게 검정 털을 얹은 녀석의 이름이 미미. 아침저녁으로 사료를 준 덕에 이제는 식구들만 보면 쫓아와 다리에 등을 부비는 등 재롱을 부리고, 주로 서재 마당에서 생활하지만 휴일이면 마당에서 두런거리는 식구들 소리가 궁금한 지 마당으로 와 잡초를 뽑는 식구들의 모습을 호기심 담긴 눈으로 쳐다보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달라는 듯 고양이 울음소리를 여러 번 내다가 다시 서재마당으로 돌아가곤 한다. 덕분에 집안에서 생활하는 강아지 마루가 호흡이 거칠어지고, 샘을 내는 풍경을 연출한다. 사람들의 눈으로는 평화로운 풍경이라 하겠지만 녀석들의 눈에는 아마도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눈치 전쟁이 심각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올해도 예외 없이 살구나무가 만개한 집 풍경을 촬영했다. 마치 꼭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살구꽃이 만개하면 서재 밖의 높은 곳에 올라 뷰파인더에 그득 풍경을 담는 일을 잊지 않은 것이다. 작년에는 너무 많은 살구가 달려 잼도 만들고, 집을 드나들면서 자주 주워 먹었던 살구가 올해는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사람들의 말처럼 해걸이를 한다면 올해는 작년과 달리 열매가 거의 달리지 않거나 달려도 아주 조금 열릴 것인데 매년 문밖에 퍽퍽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살구 낙과 소리를 못 들을까 아쉬운 마음도 적지 않다. 물론 기다려보아야 할 일이기는 하다.

 

 

415일 경에는 튤립이 만개하였고, 그 오묘한 빛깔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를 사랑초도 고운 자태를 드러내며 꽃을 피웠다. 붉은 색과 흰 색의 앵초와 신비스러움으로 제 몫을 다 하는 물망초도 드디어 만개하기 시작하며 마당의 우울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금요일 늦은 저녁이면 퇴근한 아이들과 더불어 마당으로 나서 밤 벚꽃놀이를 흉내 내기도 했다. 밤에 흐릿한 조명을 받아 보는 벚꽃이 왜 좋은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란 곳에서 뿌리가 뽑힌 채 전혀 생소한 곳으로 옮겨 심은 능수벚이 꽃을 피우는 일이 정말 대견스러운 시간이었다.

 

 

봄날은 평화로운 시간이지만 겨울을 이겨낸 우울이 함께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봄날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과 무력감이 자리하지만 고양이들의 느긋함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봄이 조급하고 우울하다지만 그것 역시 세상의 흐름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갈 순간이라는 것을 믿어본다. 라일락 향기에 그 우울을 떨쳐보자. 봄날이 지나는 시간이다. 며칠 전 동트기 전 잠이 깨 마당에 나섰더니 라일락 향기가 가득한 마당 한가운데로 벚꽃 잎사귀 하나가 이리저리 날리며 떨어지는데 휘파람 새소리가 고요를 뚫고 들렸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반달이 몸피를 부풀리는 시간이었는데, 이게 바로 봄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이끼용담과 공조팝이 필 시간이다. 더불어 모란이며 작약도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으니 또 그 녀석들도 기다려진다. 무언가에 쫓긴다는 것은 달리 말해 기다림이라고 해야 옳다. 마당 귀퉁이의 흰꽃 배롱도 매끈한 수피를 뚫고 붉은 색 줄기를 내보내기 시작했고, 공조팝 가지 끄트머리는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봉오리가 맺혔다. 흰 꽃 모란은 큼지막한 다섯 송이가 벌써 무게를 더하고 있고, 자줏빛과 연분홍을 자랑하는 작약은 쭉쭉 키를 키우는 시간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니 시간도 그만큼 지나리라. 세상 어느 곳이라고 우울이며 걱정이 없겠는가. 주어진 시간을 만끽하고 그 안에서 조금 더 느긋해진다면 봄날의 화사한 꽃들처럼 인생을 반추할 시간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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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6.04.18 16:27

며칠 전부터 개화하기 시작한 살구나무꽃이 따뜻한 기온 때문인지 만개하면서 먼저 핀 꽃들은 벌써 꽃비를 내리기 시작한다. 서둘러 집 밖 등성에 올라 사진 몇 장을 촬영하였지만 맘 먹었던 데킹오일 도포 작업은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데킹오일은 한 번 바르면 적어도 3시간 이상을 말리고 다시 발라야 하는데 오일을 도포한 곳으로 꽃잎이 날린다면 일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봄꽃 구경으로 소일해야 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봄이란 그런 절기였다. 게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비까지 내리니 정말 봄은 안타까운 시간일 수밖에 없다.

 

 

 

43일 일요일에 내린 비는 결국 새로 만든 서재마당 데크 위를 온통 살구꽃잎으로 도배하는 형국이 되었다. 살구꽃이 피면 집에 오겠다는 지인들에게 미처 연락을 넣기도 전에 살구꽃이 피고 진 것이니 집으로 오겠다는 이들에게 허언을 한 셈이 되었다. 매년 419일 경에 살구꽃이 만개하고, 66일에는 동네 이웃들이 모여 살구를 수확한다고 정해 두었는데 사람의 약속을 자연을 매번 거스르게 하는 셈이다. 하지만 어쩌랴. 사람보다 훨씬 더 올곧은 것이 자연이니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살구나무집의 봄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미 그 한복판에 접어들었다. 이제 남은 일은 모란이며 작약의 꽃망울을 즐기고, 전지가위를 들고 마당을 서성이는 즐거움을 누리는 일일 것이다. 2016년의 봄을 이렇게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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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4.06.17 16:52

작년에 거의 한 알도 영글지 못했던 살구가 여름 하늘 가득하다. 매년 66일 현충일이면 몇몇 집의 동네 남자들이 힘을 보태 살구를 수확한다는 것이 글로 쓰이지 않은 동네 약속이어서 올해도 이른 살구 털기에 나선 것이 66일 현충일이었다. 물론 날짜는 정했어도 살구가 영그는 모습을 보아 가면서 하루 이틀 앞으로 당기거나 미는 것이 상례지만 올해 조금 이르게 살구 수확에 나선 것은 낯모르는 이방인들의 출현 때문이다. 6월 초 휴일에 창밖으로 나서니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 한 분이 살구나무를 타고 오르면서 아직도 단단한 살구를 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고, 행여 낙상을 하시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조금 야박하게 말씀을 드렸던 터였다.

 

 

66일의 살구는 아직도 과육이 단단했고 빛깔도 여물지 않은 것이 분명할 정도로 초록색을 띠고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먼 동네 어르신들의 괜한 욕심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고 잼이 아닌 청으로 만들기에는 덜 익은 것도 괜찮다는 이웃의 청에 따라 윗집 친구와 때 이른 살구 수확에 나섰다. 접이식 사다리를 꺼내고 길게 늘려 사용할 수 있는 전지가위를 들고 햇빛이 조금 누그러진 오후 시간에 살구수확에 나섰다.

 

하긴 몇 년 동안이나 잔가지를 쳐내지 않은 탓에 과수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가지끝마다 풍성하게 달린 살구는 제법 토실토실한 모양으로 자랐고, 가지도 일부 잘라줄 겸 열매도 수확할 겸 흥겹고 즐거운 살구 수확은 저녁시간까지 계속되었고, 하도 올려다보며 일을 한 탓에 목이 아파 더 이상 살구를 수확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서야 일을 그칠 수 있었다. 일차적으로 수확한 살구나 15kg에 달했고, 좀 더 익으면 다시 살구를 수확해 살구잼을 만들자는 정도에서 하루의 울력을 마쳤다.

 

다시 살구 수확에 나선 건 614일 토요일. 오래 전에 약속한 손위 처남의 생일 잔치에 다녀오니 어마어마하다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양의 살구가 아랫집과 윗집 사이 마당에 그득하였고, 이웃들이 힘을 보태 나무에 직접 올라 가지를 쳐내면서 살구를 수확했다는 것이다. 처음 살구를 수확한 뒤 열흘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시장에 내다 팔아도 될 정도로 과육이 풍성하고 빛깔도 좋은 살구가 그득 마당에 놓였다.

 

 

살구나무집이라는 이름에 맞춤인 수확이었다. 열흘 전의 모습에 비해 몇 개는 농익은 정도여서 서재마당으로 자연스럽게 떨어진 살구는 아예 터진 채였고, 흠집이 생긴 열매에서는 진한 살구향이 배어나기도 했다. 늦은 저녁까지 맥주와 와인을 비워가면서 얘기가 이어졌고 동네 이웃들에게 한 바구니씩 맛을 보게 하자는 것으로 결실을 나누기로 했다. 물론 살구잼을 만들거나 청을 만들어 보관하겠다는 이웃도 있고 해서 필요한 만큼 편하게 가져가 각자가 하고 싶은대로 살구를 처리하기로 했고, 우리집은 잘 익은 살구를 한 소쿠리 골라 갈무리한 뒤 주방에 두어 입맛이 없을 때 오가며 한두 알씩 먹어 없애자는 선에서 합의가 되었다. 살구가 익어가는 풍경을 잘 즐겼으니 아내의 일손도 덜자는 식구들의 합의였다.

 

여전히 살구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그득하게 달려 있다. 아침이면 서재 마당이 온통 농익은 살구가 떨어져 여름 풍경을 만들었고, 시도 때도 없이 산새들이 찾아와 노래를 부르곤 한다. 정겹고 평화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또 슬프고도 아름다운 2014년의 봄이 지났고, 녹음의 계절 복판에 들어섰다. 마침 늦은 밤에 돌확 근처로 개구리도 살구나무집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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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풍경2014.06.09 17:17

작년에는 무슨 연유인지 살구나무의 달렸던 살구가 모두 익기도 전에 떨어지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의 낙담이 컸는데 올해는 이른 개화와 불순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제법 알이 굵어져 가지가 늘어질 정도로 열매가 많아 달렸다. 현충일부터 이어진 사흘의 연휴는 누구에게나 뭔가를 결심하고 실행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른 아침 윗집 친구로부터 살구를 털자는 연락을 받았지만 오래 전부터 약속한 장모님 성묘를 핑계로 어렵게 청한 친구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곤지암의 정씨 집성촌에 자리한 처가댁 어르신들의 성묘를 마치고 다시 집에 당도하니 아직도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하루 해가 길게 걸렸다. 친구에게 연락을 넣어 살구를 수확하기로 하고 사다리와 긴 전지 가위를 준비해 살구털기에 나섰다. 마침 가녀린 비도 살포시 내리니 노동과 휴식이 제법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작년에 큰 맘 먹고 구비한 접이식 사다리를 모두 펴고 전지 가위를 가장 길게 늘려 사다리에 오르니 일석이조의 느낌이었다. 잔가지도 일부 쳐내고 가지 끄트머리마다 달리 살구도 수확하는 기쁨이 적지 않았다. 매년 6월 6일 정도에 살구를 수확하자는 것이 이웃들과의 약속이었으니 올해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제법 큰 바구니에 그득하게 살구를 수확하고도 넘쳐 잼이나 청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기에 충분한 정도여서 아직도 잔 가지에 붙은 살구가 주렁주렁 달렸지만 풍경을 위해서 조금은 남겨두자는 데 쉽게 합의하고 어스름 저녁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으나 혹시라도 시기를 놓쳐 농익은 살구가 서재마당으로 떨어지면 낭패가 된다는 생각에 연휴의 끄트머리를 노동으로 보내니 그로 인한 기쁨이 적지 않다. 살구가 막 열매를 맺었지만 혹독한 비바람에 서재 마당으로 과실을 떨굴 때 들었던 아쉬운 생각도 쉽게 여름밤에 날려보내고 더위를 맞는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매실을 수확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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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4.04.02 19:58

봄날의 하루는 다른 절기의 하루와는 사뭇 다름을 느끼게 된다. 예년에는 4월 중순이 지나서야 만개하는 살구며 앵두가 올해는 3월 말에 꽃잎을 펼치더니 벌써 꽃잎을 떨구기 시작한다. 안방 동측의 좁은 마당에서 겨울을 난 매실나무는 언제 꽃이 피었었는지 모를 정도로 예쁜 꽃망울을 터뜨리며 미색과 더불어 은은한 향기를 뽐내고 있다.

 

살구꽃과 함께 살구나무집이 온통 꽃밭으로 바뀌었다. 수선화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노란 꽃을 피웠고 감나무 밑둥의 꽃잔디는 작년과 같은 모습으로 둥그렇게 화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돌단풍은 긴 꽃대가 하얗게 바뀌더니 진한 초록빛의 잎사귀가 보는 사이에도 자라듯 맹렬하게 손을 뻗친다. 꽃말을 좋아하는 나와 비단주머니 모양의 꽃을 좋아하는 아내가 각각 골라 처음으로 서재마당에 심은 노루귀와 금낭화도 하루가 다르게 몸을 불리고 키를 늘인다.

 

 

 

튤립은 모진 겨울을 잘 이겨낸 흔적을 상처 투성이의 잎에 간직한 채 꽃대를 올리며 봄을 즐기기 시작했고, 앵초와 솔채, 장구채도 각자 봄맞이에 여념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푸른 색을 띄기 시작하는 마당의 잔디는 늦은 밤이 되면 다음날을 설레게 하는 자극제가 되고 있으며 작약도 여린 새순이 굳은 땅을 헤치며 나도 보아달라고 소리치는 듯하다. 바야흐로 봄인 것이다.

 

 

봄날의 마당은 늘 신기함과 오묘함으로 가득하다. 겨우내 눈보라와 추위로 굳어진 땅 속 곳곳에서는 이미 봄을 준비하는 만물이 있어 매일 아침마다 오늘은 또 무엇이 새로 생겨났을까 물으면 여지없이 이런 것들이요, 하며 대답을 해 준다. 잊었던 은방울꽃이 벌써 9개나 촉을 내놓았고 둥글레며 매발톱이며 노루오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솟아올라 식구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할미꽃도 우우한 자줏빛 꽃을 살포시 열어 마음을 들뜨게 하고, 무스카리와 분홍주름잎은 어느 새 보라색 꽃대를 만들거나 분홍빛 꽃살을 살짝 드러낸다. 아내의 정성으로 제법 모양을 갖춘 앵두나무 줄기마다에는 5장의 꽃잎이 달린 흰꽃들이 오종종 달라붙어 하늘을 가리는 살구꽃과 좋은 대조를 이루며 현관 마당을 봄빛으로 물들게 한다.

 

 

 

봄날이다. 더 없이 화사한 봄날이다. 살구나무집의 지금 봄에 흠뻑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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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3.12.31 14:30

또 한 해가 간다. 살구나무집에서의 생활도 이제 4년째로 접어드는 셈이다. 이제 겨울의 한복판에 놓인 셈이지만 세밑 날씨는 제법 화창하고, 늘 소망하듯 일상은 평화롭다. 살구나무집이 있는 죽전은 몇 해 살아보니 다른 곳보다는 제법 눈이 더 많이 내리는 곳이고, 눈 치우기가 겨울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곳이라고 애써 위안을 해 본다. 겨울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이지만 벌써 대문 앞 눈치우기를 여러 번 했다는 느낌이고, 첫눈이라기에는 너무 많이 내린 마당의 눈은 여전히 시절이 한겨울임을 말해 준다. 세밑이면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 크고 작은 회한과 고마움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평화롭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이제 막 해넘이가 시작될 지난 한 해도 크게 그르치지 않은 삶을 이어갔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 1224일에는 살구나무 아랫집의 귀염둥이인 마루가 태어난 지 만 4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아이들이 씌워준 고깔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은 마루는 그저 온 식구가 하루 종일 집안에서 북적이는 것이 좋을 뿐이다. 겨울철 생활비를 아끼느라 아내는 보일러가 가동될 때마다 방을 오가면서 실내온도 낮추기에 여념이 없는 세밑이다.

 

11월의 부안 강연에 이어 12월에는 부산 강연을 핑계로 식구들과 나들이를 했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지내다 보니 다른 곳에 살던 때와는 달리 집을 떠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집을 비운다는 생각이 크지 않은 탓에 뜸했던 가족여행을 지방 강연을 핑계로 이어가기로 한 것이 지난 가을이다. 그 덕분에 비록 하루 이틀이지만 온 가족이 부안 나들이를 했고, 또 아내와 호젓하게 부산여행을 할 수 있었다. 어제는 직장에 다니는 큰 아이의 연차휴가를 이용해 세 모녀가 전주로 당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렇듯 집은 베이스캠프다. 그 베이스캠프가 적어도 영원히 고정될 것 같은 생각에 살구나무집에서의 일상은 제법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세밑에 문득 들기도 한다.

 

 

 

꼼꼼하게 가계부를 쓰는 주부처럼 지난 3년 동안의 살구나무집 유지관리비를 모두 정리해 보았다. 중계동의 41평 아파트에 살 때 월평균 관리비가 373천원이었는데 2013년은 228천원으로 줄었다. 이미 [아파트와 바꾼 집]에서 살펴본 것보다 훨씬 더 관리비가 줄어든 셈이다. 전용면적은 1.7배가 늘었는데 관리비는 4년 전의 아파트 관리비에 비해 월평균 15만 원 정도가 줄었으니 꼼꼼히 살피며 산 셈이다.

2013년의 관리비가 2012년에 비해 큰 폭으로 낮아진 이유는 당연히 태양광 발전설비에 의한 전기발전량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는 전기 걱정 없이 살림을 꾸릴 수 있었고, 전체적으로 여러 가지 공과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낮은 관리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일 년쯤 더 지나면 태양광 발전설비의 설치 효과를 좀 더 실증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판단하게 되었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또 다른 한 해가 시작된다. 바라건대 새해의 소망 역시 온 가족의 건강과 평화로운 일상이다. 재물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폭이 넓고 깊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런 소망의 튼튼한 버팀목으로 살구나무집이 베이스켐프가 되기를 세밑에 소망한다. 나이 드신 어머님의 평화로운 일상도 욕심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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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3.10.14 17:44

제법 화사한 가을 아침이자 휴일이다. 윗집 친구가 무얼 하려는지 뒷마당의 공구 다루는 소리가 요란하다. 잠옷 차림으로 뒤꼍으로 나서니 얼마 전부터 마음먹었던 수도관을 부엌 바깥 외벽에 새로 설치하는 일을 시작한 모양이다. 꼼꼼하기가 이를 데 없는 친구여서 각종 부품을 잘 구비해 두었는지 물으니 어제 다녀간 시공사 작업자들이 이미 벽체에 구멍을 뚫어놓아 크게 힘 들이지 않고도 수도꼭지를 새로 설치할 수 있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아침을 먹고 윗집 친구 일도 도와줄 겸 밖으로 마당으로 나섰더니 뒷마당의 잡초도 제거하고 마당 귀퉁이에 깎다 말고 남겨둔 잔디도 제대로 고르라는 아내의 청이다. 마당 잔지는 날이 조금 차지면서 이제는 겨울 채비에 나섰는지 키는 자라지 않고 누렇게 겨울을 맞는 느낌이다. 작년에 가지를 크게 자른 감나무는 식구들의 예상처럼 올해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잎사귀만 커진 채 하나 둘씩 낙엽을 떨군다. 바야흐로 가을인 셈이다.

 

마당의 잔디를 깎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상당한 노동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비록 손바닥만 하더라도 잔디를 제대로 고르기 위해서는 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정성스럽게 자란 이파리를 잘라야 하기에 오리걸음걷기 벌을 받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마당 이곳저곳을 다니며 잔디의 키를 재고, 조금 높다 싶은 곳에 기계를 대서 잔디를 깎는 일로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이제는 뒷마당 잡초 뽑기. 늦은 봄에 정신없이 싹을 틔우는 잡초들을 뽑은 뒤 한 번도 잡초를 제거하지 못한 터라 뒷마당은 그야말로 이름 모를 잡초들의 천국이다. 민들레는 꽃씨를 이미 바람에 날려 보낸 뒤 뿌리를 깊게 심은 탓에 호미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억센 힘을 요구하였고, 뿌리가 깊지 않은 풀들은 여러 곳에 뿌리를 내리고 내년을 기약하는 모습이다. 징검다리처럼 만들어놓은 뒷마당의 돌 위에 뽑아놓은 잡초를 올려놓으니 일을 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친 김에 겉 자란 나무들의 가지도 몇 개 쳐내고, 집 옆 텃밭에서 크게 자란 돼지감자 덕분에 요사이는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머루를 따기로 했다.

 

 

 

 

집 안에서 제법 깊은 중간 크기의 접시를 들고 나와 짙은 보라색으로 농익은 머루를 따니 접시가 넘칠 정도였다. 아내는 머루를 용기에 담아 설탕과 1:1 정도로 배합한 뒤 효소를 만들겠노라 집 안에서 나름 준비를 하고, 나는 여전히 많이 남은 뒷마당의 잡초 뽑기에 다시 나섰다.

 

짧아진 해가 서산으로 질 무렵에야 마당의 잔디 깎기와 뒷마당의 잡초 제거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집 안에서 하루를 보내며 가끔씩 밖에다 대고는 무슨 할 일이 그리 많으냐고 관심을 보일 뿐이다. 마당에서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니 마당을 즐길 줄은 알아도 손을 보태지는 않는 것을 탓할 일은 없다. 부모, 특히 애비의 성화 때문에 편안한 아파트를 떠나 원치 않은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했을 수도 있으므로.

 

요즘의 내 관심과 주목은 온통 털머위에 집중되어 있다. 얼마 전 식구들이 함께 한 제주 여행에서 숙소 근처의 털머위가 노랗게 꽃을 피운 것을 보면서 우리집의 털머위는 꽃도 피우지 않는다고 타박을 한 뒤에 집에 돌아와 우연히 한식담장 뒤에서 높은 꽃대가 오른 것을 발견한 뒤로 미안한 마음에서 아침저녁으로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의 그것에 비해 하나도 뒤질 것이 없을 정도로 튼실한 꽃대를 밀어 올린 털머위는 이제 맨 끄트머리 꽃봉오리가 막 꽃잎을 열기 시작했기 때문에 노심초사 만개를 기다리고 있다. 황국이나 해국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줄 것이 분명하므로.

 

매번 그렇지만 마당 잔디가 잘 깎인 것을 보니 하루의 고된 노동을 충분히 보상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깍인 잔디 이파리와 뒷마당의 잡초를 비닐 포대에 꾹꾹 눌러 담아 가득 채워놓으니 노동이 주는 기쁨을 다시금 만끽할 수 있었다. 일요일의 쉼이란 마당이 딸린 집에서는 어디서나 크게 다를 것이 없으리라. 이제 또 한해의 마무리가 시작되는 절기다. 차가운 겨울 채비를 위해 김장을 담는 일과 마당의 배롱나무 따위가 얼어 죽지 않도록 보온재로 친친 감아주는 일 이외에 또 무슨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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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풍경2013.08.20 23:17

이제 살구나무집으로 삶을 의탁한 지 만 2년 반이 지났다. 매년 앞뒷 마당을 찾는 여름 손님들이 변하지 않지만 올해는 좀 더 진기한 객들이 집을 찾았다. 가장 먼저 기억하고 싶은 일은 제법 떨어진 이웃집 강아지가 자주 살구나무 아랫집을 찾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주인집 식구들이 서로 오가며 정을 나눈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길을 따라 걷고 문 앞에서 컹컹 짖어 문을 열어달라 청하고, 문이 열리기 무섭게 안마당으로 올 적마다 제법 정갈하고 맛있는 간식을 건넨 아내의 정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이웃집 강아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살구나무 아랫집을 찾는다.

 

 

 

 

올해 여름 처음 발견한 곤충은 하늘소다. 습기가 꽉 찬 상태에서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던 8월 초 콘크리트 옹벽을 느릿느릿 오르는 하늘소를 보고 마치 초등학교 시절 곤충채집을 위해 한강 둑방을 거닐다가 아무도 발견한 적이 없는 진기한 곤충을 보았을 때의 그 느낌 그대로였다. 몸집 만큼이나 긴 더듬이를 천천히 움직이며 콘크리트 옹벽을 오르는 하늘소를 보며 원하는 곳 어딘가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원을 하기도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개구리가 집을 찾았다. 작년에 온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등 빛깔이 제법 누런 색인 토종 개구리였는데 깊은 밤 비비추와 무늬바위취가 자리한 곳에서 인기척에 놀라 몸을 움추린 녀석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방아깨비며 쓰르라미며 귀뚜라미를 만나는 것은 다반사니 하늘소와 개구리를 만난 것 만큼 흥미롭지는 않다.

 

새들도 제법 마당을 찾아 지저귀는 일이 다반사지만 올해는 특히 대문 안 경사마당 초입에 두고 있는 돌확의 물을 먹으러 오는 새를 여러 번 만날 수 있었다. 녀석들의 반응이 너무 재빨라 미처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전에 도망가기가 일쑤지만 돌확의 물을 마시고 있는 녀석을 집 안에서 우연히 촬영할 수 있었다. 비록 지하수를 자연스럽게 흘린 것이지만 벌이며 새들이 찾아 목을 축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흐믓한 마음이 드는 것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누리는 다른 여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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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3.06.21 16:29

5월 하순에 집에 이상스럽게 생각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지하주차장에서 혹시 물을 쓸 일이 있을 때 그 물이 바로 하수구로 빠져나가도록 만들어놓은 주차장 입구의 개거(開渠)에 자꾸 물이 차오르며 불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윗집 친구와 동네 이웃까지 살구나무 아랫집을 찾아와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궁리한 끝에 가벼운 실험을 하기로 했다.

 

우선 부엌의 싱크에 물을 가득 받았다가 한 번에 배수구로 내려 보내는 실험을 해 보니 예상한 것처럼 지하주차장 입구의 배수로에 물이 차오르는 것이었다. 좀 더 확실한 진단을 위해 이번에는 목욕탕의 욕조에 물을 받았다가 같은 방법으로 내려 보내자 똑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서로 의논 끝에 얻은 결론은 싱크와 욕조의 생활하수가 집 밖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어딘가에 문제가 생긴 것이고, 변기의 물이 나가는 오수(汚水)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고 살구나무집 시공자인 에스화이브의 김사장께 전화를 넣어 가급적 이른 시간 안에 문제 해결을 부탁했다.

 

 

 

61일 주말을 이용해 오랜만에 서주임과 함께 일하시는 분이 집에 찾아와 설명을 들은 뒤 대문 안쪽의 작은 마당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몇 삽 파지 않은 상황에서 주차장 입구의 배수로에서 이어지는 플라스틱관이 깨진 것을 발견했고, 다시 플라스틱관을 따라 메인 배수로까지 땅을 파보니 집안 전체에서 도로 하부의 하수관으로 이어지는 메인 배수관이 일부 막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집에서 사용한 용수가 집 밖으로 나가다가 막힌 것이고, 막혔던 물이 주차장 배수로로 역류한 것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두 시간 정도는 집 안에서 물을 사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 에스화이브 사람들은 원인을 알았으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것이라며 점심을 먹으러 나갔고, 아내와 이리저리 상황을 살피며 노심초사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다시 시작된 보완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새로 가져온 플라스틱관을 깨진 것과 바꾼 뒤 시멘트를 비벼 이음 부분을 모두 채운 뒤 다시 흙을 되메우는 방법이 삽시간에 진행되었다.

 

아내는 이 기회에 그동안 썩 맘에 들어 하지 않았던 대문 안 마당을 아예 다른 방식으로 바꿔보려는 눈치였다. 도로방향의 콘크리트 옹벽 때문에 빛이 잘 들이 않아 잔디 생육에 문제가 있고, 결국은 머위, 무늬바위취 등이 자라는 곳이니 이곳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려는 것이었다. 마침 휴일을 맞아 집을 찾은 이웃들은 모두 굵은 마사토를 입혀 깔끔한 마당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고, 아내는 그리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피력하였다. 이제 남은 일은 거칠게 흙으로 덮인 대문 안쪽의 평평한 곳을 어떻게 바꾸냐는 것이었다. 그 일은 일요일에 생각하기고 하고 토요일의 뒤숭숭한 마음을 정리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마당으로 나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결국 단골 농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 여러 포트로 구입한 것이 바로 금계국이었고, 마침 굵은 마사토도 충분히 구입해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안쪽 마당의 흙을 평평하게 다진 뒤 구석구석에 금계국을 심고, 무늬맥문동을 조금 옮기고 나니 제법 심란하던 마당이 제법 시원한 모습으로 바뀌었고, 아내는 일을 하는 김에 마무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제 굵은 마사를 잘 도포한 뒤 다져서 비가 와도 흙이 흘러내리거나 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제 혼자 남아 낑낑대며 마사토를 넓게 펴고 다지니 아내의 예상대로 매우 깔끔한 작은 마당이 만들어졌다.

 

 

 

배수구의 작은 문제 때문에 그동안 꺼림칙하던 대문 안쪽의 작은 마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탄생한 것이니 집이 새롭게 느껴졌고, 장마에 맞춰 문제를 모두 해결한 셈이 된 것이다. 혹시 많은 비가 올 것을 염려해 배수관로 한 쪽으로 땅의 기울기를 맞추고 토사가 흐를 것을 대비해 철망을 이용해 마무리를 하였고, 대문 방향으로 흙물이 넘어오지 않도록 보관해두었던 전벽돌을 경계에 세워 쌓으니 내놓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제법 마음에 드는 공간이 새로 만들어졌다. 아이들도 좋아라 했고, 아내 역시 흡족한 표정이니 이틀의 휴일은 밥값을 제대로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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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3.04.23 11:42

봄은 애틋하고 안타깝고 서운한 계절임이 분명하다. 곡구(穀雨)가 지나면 본격적인 농사철이라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이 곡우인 지난 토요일에는 비바람이 거셌고, 주말을 지내니 본격적인 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려는 듯 날이 맑고 포근하다. 사람들은 분명 이러다가 별안간 더워질 것이라며 봄을 못내 아쉬워한다. 즐기지도 못했는데 봄이 가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움이 길거리에 자욱한 것이다.

 

살구나무집에도 당연히 진한 봄이 들었다. 겨우내 황무지처럼 보였던 안팎의 마당 구석구석에는 나를 보라는 듯 이름 모를 화초들이 제각기 건강함을 자랑하며 새순을 틔우고, 415일 내외에 만개하던 살구나무도 벌써 꽃비를 내리더니 푸릇푸릇한 잎사귀를 내보인다.

 

 

안마당과 서재마당, 그리고 경사마당은 마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떡잎이 나와 제 모습을 갖출 때까지는 아무도 무엇이라 확정하지 못하는 야생화들이 모두 봄기운을 받아 각각의 모습대로 발아하고 있으며, 죽은 둣 고요하고 딱딱하고 거친 나무 가지에서도 영롱한 빛을 띤 새순이 각양각색으로 돋아나기 시작한다. 누가 뭐라해도 봄의 절정은 아무래도 각종 야생화다. 작은 수선화가 먼저 노란 꽃을 피우더니 곧 이어 신비한 보랏빛을 띤 무스카리가 봄의 전령처럼 꽃대를 높였다.

 

감나무 아래의 꽃잔디는 마치 화관(花冠)을 다리에 두른 듯 풍성하고 여유로운 꽃을 무리로 내놓았고, 분홍주름잎과 각시붓꽃이 돌단풍을 배경으로 화사한 꽃잎을 보여주었다. 명자나무와 공조팝도 새순을 틔웠고, 매발톱과 할미꽃도 부끄러운 듯 꽃봉오리를 가득 부풀렸다. 바야흐로 봄이다.

 

 

살구나무 아랫집의 즐거운 소식 가운데 하나는 지난 초겨울 설치한 태양광발전설비가 겨울을 나더니 처음으로 전기사용량 0kWh를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사용한 전기량보다 발전량이 많아 이번 달 전기사용량이 0라는 것이다. 식구들 모두가 흥분하고 들뜬 분위기여서 강아지 마루의 수술 소식을 덮을 정도였다.

 

 

 

 

 

봄이면 무수히 땅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각종 야생화를 보는 즐거움과 기대 탓에 더 이상은 화초를 사다 심지 않으라는 약속은 언제나 깨지고 만다. 휴일이면 동네 근처의 재래시장을 찾거나 농원을 방문해 마음을 녹이는 화초를 한 두 개씩 구입하곤 하게 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여러 번 마음을 다잡고 그러지 말자고 했지만 혹시는 역시로 상황을 뒤집는다. 그러니 새식구가 늘기 마련인 것이 땅집 생활이기도 하다.

 

아내 역시 나와 다르지 않아 집 옆 빈터를 텃밭으로 이용하시는 어르신에게 밭 한 이랑을 구해 본격적인 텃밭 가꾸기에 나섰고 아이들도 시간이 날 때마다 도와 상추며 쑥갓 등을 얻겠다는 포부를 키웠다. 지난 해 구입한 뒤 버려두었던 플라스틱 용기를 다시 꺼내고 퇴비를 조금 구입해 흙과 잘 섞어 준비한 끝에 지난 주말 시간을 이용해 여러 가지 푸성귀 모종을 심었으며, 현관 입구 자투리땅에는 펜지를 심어 꽃밭을 만들었다. 비록 일년초에 불과하지만 15,000원의 값어치는 할 것이기에 매년 그만큼의 비용을 들이겠노라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고, 결코 소비적인 일은 아니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봄이 처연하고 안타깝고 서운한 이유는 이렇듯 꽃을 피운 나무나 화초들의 화사함을 즐길 여유를 만들어주기 않는다는 것이다. 살구꽃이 떨어지는 순간 그 아래의 앵두나무가 흰꽃을 피우고 그 꽃을 아쉬워하는 순간 마당의 모든 야생화들이 저를 보라 소리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에 깊은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하고, ! 하는 감탄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벌써 꽃잎들을 떨구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여든여섯을 잡수신 어머님이 집에 오신다고 하니 어르신이 머무시는 동안이라도 화사하고 밝은 봄의 색감과 내음을 유지했으면 싶다. 숨 가쁘게 일생을 살아오신 어머님께 이런 봄날이 앞으로도 여러 번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게 또 사람들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이번 봄은 더욱 서운하고 안타까운 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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