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집_일기2011.06.26 01:30

오늘은 새건협의 지인들이 살구나무집을 찾기로 수 주일 전에 어정쩡하게 약속했던 날이어서 다른 약속 없이 비워둔 시간이었는데 건축계 친구들의 살구나무 위아랫집 방문 약속이 금요일이어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조금 불편한 듯 보여 일정을 열흘 정도 미뤄서 6월 18일 토요일로 다시 정했다는 P 교수의 말을 전해들은 터라 학교의 강의는 물론이고 다른 외부 일정이 전혀 없는 금요일을 맞았다. 약속이 연기되었다는 말에 어제 저녁부터 큰아이가 나서 오늘은 양재동 농원에 다녀오자 했고, 아내도 내심 반기는 표정이어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양재동으로 다시 나섰다. 금요일의 오후여서 그런지 양재동 일대는 조금 붐비는 정도였지만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 양재동 농원에 도착하여 몇 가지 나무와 꽃을 구입하였다.

아내는 오래 전부터 남천 몇 그루와 함께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나무를 구입하기를 원했고, 마침 윗집에도 자그마한 것을 사 마당에 심은 것을 보더니 적당한 크기의 미스김 라일락 한 그루를 구입했고 남촌 네 뿌리와 배롱나무 아래에 둥그런 모양으로 심어두면 풍경이 그럴 듯할 것이라면서 영산홍 10주를 추가로 골랐다. 그리고는 아주 작은 황금조팝 여섯 분을 골랐고, 큰아이와 나는 기린초 두 촉을 구입한 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로 나섰는데 양재동 꽃시장을 오가면서 염곡동 근처의 농원 간판을 여러 번 보았는데 집에 가는 길에 무엇을 파는 곳인지 구경이나 한 번 하자고 해서 분당-내곡간 자동차 전용도로 입구의 농원에 들렀다.


이곳 농원은 양재동의 경우와는 달리 주로 관상용 교목이나 관목을 주로 판매하는 곳으로 보였고, 아기자기함 보다는 넓은 농원에서 마음껏 자란 좋은 나무들을 대량으로 판매하거나 납품하는 곳들로 여겨졌다. 이리저리 구경을 하던 아내가 사람 키 정도의 높이로 자란 공조팝 가식지(假植地)를 보더니 문득 생각났다는 듯 우리 집 옹벽의 트인 부분 안쪽에 이들을 심어 그 끄트머리를 길거리로 향하도록 하면 좋겠다면서 주인을 찾아 가격을 물어보더니 두 덩어리를 팔라 청하는 것이었다. 자세히 알고 보니 그곳에 심겨있는 공조팝은 이미 다른 곳에 납품을 기다리는 것이었다는 설명이었고, 농원 주인은 아내의 청이 간곡해서인지 선뜻 두 묶음을 각각 만 원씩에 가져가라 하는 것이었다.


공조팝이 조금 큰 것이어서 트렁크에 실을 수 없어 자동차의 앞문을 열고 뒷좌석으로 길게 누은 형상으로 싣고 집으로 오며 아내와 큰아이는 마치 횡재라도 한 듯 한껏 기분이 좋은 모습이었다. 그동안 몇 곳의 농원이나 꽃시장을 다니면서 화초나 묘목의 소매 가격을 아는 터라 오늘 구입한 공조팝은 너무나 싸게 산 것이라면서 다음에 충분히 둘러볼 시간을 가지고 염곡동의 농원에 다시 와야 한다면서 혹시 가격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도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직 신도 벗지 않은 상태에서 일이 시작되었다. 헐값에 구입한 공조팝은 식구들이 모두 생각한 것처럼 대문 안의 서측 마당 길가에 바짝 붙여 자리를 잡도록 식재했더니 지나가는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모양이 좋다면서 좋아라 했고, 내친 김에 공조팝을 심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불두화 여섯 촉은 다시 서측 경사마당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기린초 두 촉은 각각 사사가 심긴 부분의 아랫단에 자리를 잡았다.


남천 네 뿌리 가운데 두 개는 윗집으로 오르는 계단 귀퉁이의 삼각형 모양의 잔디밭에 이미 심었던 남천과 어울릴 수 있도록 추가로 식재되었고, 나머지 두 개는 안마당에 있는 세 촉의 남천 옆으로 추가 식재되었다. 안마당으로 옮겨진 영산홍은 아내의 뜻대로 배롱나무 아래에 둥그런 모습이지만 서로가 엇갈리도록 이중으로 심은 뒤 키높이를 맞출 수 있게 위로 자란 줄기들을 일부 전지하였다. 남천이나 영산홍 탓에 밀려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던 앵초 등 키 작은 야생화들은 다시 안마당의 다른 위치로 옮겨지거나 아니면 아예 서측의 경사마당으로 자리를 바꾸기도 했다. 결국 오늘도 예외 없이 도미노 놀이를 한 셈이었다.


미스김 라일락은 내가 강력하게 주장한대로 명자나무와 열을 맞추면서 안마당의 남측 담장 안쪽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배롱나무 밑을 지키던 자잘한 꽃잔디는 며칠 전 심은 감나무 아래로 동그란 모양으로 이주하였으며, 잔디 몇 장 역시 파내진 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이동하기도 하였다. 벌써 해가 넘어가 어둠이 내리자 아내와 큰아이는 배고픔을 이유로 오늘의 일을 마치자고 으름장을 놓았고, 아주 어린 황금조팝 다섯 분과 덤으로 얻어온 이름 모를 야생화를 대문 안 오름계단에 놓은 채 저녁식사를 위해 동네 상점가로 나섰다.


내일은 토요일이지만 학교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살구나무 집짓기의 경험과 과제라는 이름의 주제 발표자로 나서야 하는 까닭에 집에서 일을 도울 형편이 되지 못하지만 아내의 성품으로 보아 그대로 둘 일은 없을 것이고, 학교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자리를 잡지 못했던 어린 황금조팝과 야생화가 마당 어느 곳인가에서 내게 인사를 건넬 것이 거의 분명하다 하겠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4.05 00:48

조금 늦은 아침식사로 정오 가까이 출근해서 이메일을 확인하자 솔토건축의 이상목 실장이 보내온 메일이 도착되어 있었다. 내용은 두 가지로서 하나는 한샘 전시장에서 수납장에 대해 집에 어울리는 내용을 조언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견적에 관한 문건이었다.

보낸 사람  솔토건축 soltos@unitel.co.kr
받는 사람  cspark@uos.ac.kr
받은 날짜  2010년 09월 10일 03시 14분
제       목  가구 견적 진행상황_솔토건축0910
첨부 파일  한샘 붙박이장.pdf 4.0M / 0910 가구견적.docx 15K

교수님 안녕하세요.
솔토건축 이상목 실장입니다.
몇 일 전에 한샘매장을 방문해서 몇 가지 사항를 협의하고 왔습니다.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진행상황을 말씀드리고
의견을 여쭙고자 메일 보내드립니다.
문서파일과 이미지를 파일을 첨부하였습니다.
교수님들께서 최근에 질문하신 내용에 모든 답변을 드리진 못했습니다.
잊지 않고, 상황에 맞추어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첨부문건 2010/09/10

가구 견적 진행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1. 부엌가구
한샘 담당자에게 도면을 전달하고, 두 분 교수님께서 선정해주신 상품을 기준으로 아래와 같이 견적을 요청했습니다. 1차 레이아웃과 견적은 다음 주 초에 받기로 했고, 이후에 디자인과 레이아웃에 대한 세밀한 조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1) 박철수 교수님
-유로
5000 노블 시리즈
(2) P 교수님
-1안
: 유로 5000 노블 시리즈, 백색계열 인조대리석
-2안
: 기본틀, 유로 5000 노블 시리즈+ 하부장 재질, 키친바흐 오닉스 오크 , 라토나 상판
(3) 보조주방
- 한샘에서 보조주방 용으로 제작하는 저가형의 모델
(백색 하이그로시)
(4) 추가사항
- 가스오븐(본주방), 후드(본주방), 도마 및 식칼소독기, 쌀통

2. 건가구
- 한샘 매장에서 전시된 붙박이장을 위주로 둘러보고, 대략적인 자당 가격을 체크해봤습니다. 신형의 물품이 대략 자당 17만원~22만원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13만원부터’라고 홍보하고 있는 보급형 붙박이장이 있었습니다만 내부 구성이 패키지화 되어있고, 수납장 길이가 30cm 단위로 제한되어 있어 맞춤형으로 설계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당초 계약금액은 자당 15~16만 원 정도로 산정되어 있습니다.
- 박철수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부러운 가구를 포함해서, 몇 가지 브랜드의 가격을 좀 더 조사해보고, 최적의 브랜드 제품을 일관성 있게 배치하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하겠습니다.
- 한샘에서 검토해 본 제품의 이미지를 몇 장 첨부 드립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하시라고 보내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가격의 영향력이 큰 상황이라 우선 분위기에 대한 생각을 여쭙고자 보내드립니다.

3. 타일
P 교수님의 글 중에 타일매장의 대한 질의에 답변 드리겠습니다. 두 곳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 제품을 보시고 판단하기에는 논현동에 있는 ‘상아타일’이 좋습니다. 5층 건물전체가 타일 매장으로 가격대와 사용하실 곳을 말씀하시면 안내 받으실 수 있습니다. 위치는 강남구 논현동 228-2 상아타일 빌딩, 3442-1250 입니다. www.sangahtile.co.kr
웹사이트 주소입니다.
다른 한 곳은 지난번 욕실도기와 타일을 선택했던 곳입니다. 김봉섭 사장이 거래하는 곳이라, 가격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 선택했던 곳입니다. 대일 세라믹이라는 곳으로 논현동 208-14번지, 전화번호는 540-6727 입니다. 이은희 실장을 찾으시고, 죽전 주택이라 말씀하시면 기억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방문 전에 저에게 말씀하시면 미리 전화를 해 놓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메일이 학교의 서버에 도착한 시간을 보니 오늘 새벽 3시인 것으로 미루어 밤샘작업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메일은 박인석 교수와 내게 모두 보낸 것으로서 두 집의 견적에 대한 참고사항이 문건으로 첨부된 것임을 알 수 있었지만 특별하게 공정을 진전시킬만한 내용을 담았거나 비용 문제가 타결될만한 언급은 아직 없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후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는데 이상목 실장이 내게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을 안다면서 솔토건축이 추천한 경우가 마음에 흔쾌히 드는 것이 아니어서 약간의 불만을 말하자 아직 시간을 두고 판단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 하였다면서 자신이 인터넷을 통해 확인한 결과 맞춤가구 가온(www.gaondesign.com) 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그곳의 워시 마감 처리 내용이 괜찮다면서 다만, 손잡이가 마땅치 않다는 언급을 했다.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니 아내가 흡족하지는 않더라도 마음에 조금 들어 하는 것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품명은 ‘가온 워시 1011’이라는 것으로서 자연무늬목을 워시 기법으로 마감한 것이었다.

아내의 말대로 손잡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아내가 선호하는 붙박이장의 실제 사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런 까닭에 솔토건축의 이상목 실장이 제시한 한샘 브랜드의 붙박이장에 대해 아내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 했던 것이었다.

또 하나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상목 실장이 한샘 부엌가구를 살피시되 선택 범위를 자당 20만원 내외에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잘못된 것이며, 대개 자당 15~16만 원 내외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새롭게 알려주었다면서 일전에 전시장에 다녀온 적이 있는 ‘부러운’ 제품의 경우는 이보다 자당 단가가 높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조금 더 힘에 부치는 선택이 아니겠느냐는 자포자기식의 물음이 이어지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아직 한샘 부엌가구의 레이아웃 디자인이나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인 견적 내용과 단가를 근거로 새롭게 붙박이장의 재질이나 형태, 브랜드 등을 결정하는 일이 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색상은 제작업체가 제시한 여러 가지 가운데 화이트가 될 것이며, 나뭇결무늬가 워시 처리 기법으로 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고(인터넷을 통해 부러운 가구를 확인한 바로는 자당 제작비 19만원에 설치비 2만원이 추가되는 것으로서 전체를 생각한다면 자당 21만 원 내외) 다행스럽게도 문짝 개폐 방식은 미닫이에서 여닫이로 전환된 것이 분명한 판단으로 확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어제부터 서울과 경기 북부를 중심으로 내리는 비는 다시 오후 시간이 되면서 강해졌고 기상 예보에서는 경기 남부 지역은 많은 비가 내리지 않는 것으로 예보되어 있어 현장 걱정이 심적으로는 다소 덜하지만 현장에서는 3일 정도 바짝 인원을 붙여 끝내겠다던 치장 줄눈 공정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까닭에 일의 성과가 사뭇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양재동의 새건협 강좌 참석을 위해 서둘러 짐을 꾸렸다.

내일은 다시 주말. P 교수는 이번 주말에는 아무래도 현장에 한 번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고 알려 왔고, 토요일 오전에는 다른 볼 일이 있어 어렵다고 했으므로 함께 현장에서 만나려면 아무래도 오후가 되어서일 터이다. 내일 현장 방문 여부는 집에 돌아가 아내와 의논할 요량으로 학교를 나섰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3.08 23:50

개강을 맞아 조금 이르게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오늘 퇴근시간에 대해 물어왔다. 저녁 5시쯤에 솔토건축에서 회의를 하고 양재동의 새건협 편집위원회의 회의가 다시 밤 9시부터 있으니 매우 늦을 것이라 답하자 솔토건축에 들르거든 세 가지 정도를 추가적으로 의논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마 함면서 내일이 공사도급 계약서 상의 건축공사비 총액의 20%를 보내주는 날이지만 하루를 더 은행에 둔다고 크게 이자가 느는 것이 아니라면 현장사무소의 자금유동성 확보나 안정적인 임금 지급 등을 위해 하루 먼저인 오늘 돈을 부쳐주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말하고 자금 이체를 부탁하였다.

아내는 요즘 죽전동 주택신축 현장에 다녀오는 일이 잦더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살림을 사는 입장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고 하면서 내게 전한 추가적 요구 사항 세 가지는 ① 1층 손님용 화장실에 별도의 수도꼭지를 하나 설치하는 문제, ② 1층 주방과 보조주방에 전기콘센트를 조금 넘치다 싶을 정도로 충분하게 설치하는 것, ③ 모든 화장실의 문턱 하단 부분은 석재나 타일 등으로 처리하여 전에 살던 아파트의 문지방처럼 물이 닿는 부분이 습기에 마모되는 경우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지금 사는 아파트의 목욕탕 입구 부분의 사진을 찍어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마고 대답하고는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개강을 맞은 학교는 마침 반짝 갠 하늘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가벼운 발걸음의 학생들이 교내를 가득 메우고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듯 매미 소리가 요란하였다. 연구실에 들러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자 P 교수의 메일 두 통이 들어 있었다. 먼저 보낸 것은 무시하고 다시 보낸 것을 참고하라는 메일에는 그림 파일 3개와 엑셀 파일이 1개 첨부되어 있었는데 그림 파일은 윗집의 평면에 새로 짜 넣을 가구에는 노란색이 칠해져 있었으며, 이에 따른 비용 상승에 대한 P 교수댁의 의견이 엑셀 파일로 정리된 것이었다. P
교수가 새롭게 제안한 내용에 따라 산정된 증액공사비는 모두 1,800만원 정도였다. 이는 지난주에 언급한 1,600만 원 정도의 증액에 비해 다시 200만 원 정도가 늘어난 것이어서 다소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인데 자세한 사항은 오늘 오후 솔토건축에서의 미팅에서 들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오후 5시. 솔토건축 5층에는 조남호 소장이 이상목 실장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모습이었다. 나를 반가이 맞이한 조소장은 우선 저간의 공사비 증액에 대한 고민과 염려를 이해하는 듯 두 가지 정도의 대안 검토가 가능하다는 말로 논의를 시작하였다. 하나는 현재의 시공회사는 오로지 건축 공정에만 주목하고 내장에 쓰이는 가구는 일체를 건축주가 별도의 전문업체나 제작자에게 의뢰하여 완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상황을 전제로 솔토건축에서 몇 가지 지혜로운 대안을 찾아 이를 현장에 중재하는 방법으로 집을 만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후자에 따라 마음 편히 현장이 진행되기를 바라는 것이 현재의 내 심정이라고 하자 곧 이어 도착한 P 교수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따라서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죽전 주택의 붙박이장 등 가구제작 문제는 대체적인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조소장 말로는 율디자인이 그 이전에 조금 더 자금이 풍부한 집을 지을 때 협업을 한 곳인데 이번 경우도 그 이전의 경우처럼 매우 고도의 내장목수가 현장에서 아주 꼼꼼히 작업하는 것으로 비용을 산정한 것으로 보이고, 현장 역시 세밀하게 검토한 비용을 증액분에 포함한 것이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는 점을 전제로 솔토건축에서 두 군데 정도를 대상으로 별도의 내역을 받아본 뒤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현재의 비용(계약 비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일을 마무리지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사뭇 편안한 분위기가 된 우리는 며칠 동안 고민에 고밍을 거듭한 바 있는 의견들을 조금 더 추가하는 선에서 서로의 속내를 나누고 가구제작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지었다.

이어서 나는 아내의 질문 내지는 요구 사항에 대해 설명했고, 조소장과 이상목 실장은 친절하게 응답해 주었다. ① 1층 손님용 화장실에 별도의 수도를 하나 설치할 것에 대해서는 통상적으로 1층 손님용 화장실은 물을 아예 쓰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을 권했고 나는 아내와의 통화를 통해 강아지의 목욕이나 배변 등이 1층 손님용 화장실에서 이루어질 것이 예상된다는 점을 말하자 그렇다면 수도와 샤워기가 일체로 된 수전을 설치하겠노라 답하는 것으로 의논이 마무리되었다. ② 1층 주방과 보조주방에 전기콘센트를 충분하게 설치되어 있는지를 묻는 아내의 질의에 대해 전기도면을 보여주면서 확인해 보자 모두 11개의 콘센트가 설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이는 현장에서 이상목 실장이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겠다는 것으로 논의를 마쳤으며, ③ 모든 화장실의 문턱 하단 부분은 석재나 타일 등으로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물론 문지방에 물이 스며 부패하는 문제를 고려하여 이미 재료분리 부분이 되는 문턱에는 알루미늄이나 강재 혹은 타일을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해 두었노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④ 추가적으로 생각이 나서 언급한 화장실 벽면 타일의 경우 아내는 조금 더 밝은 빛의 타일 선택을 원한다고 하자 이를 충분히 고려하겠다는 대답을 하였다. 또한 ⑤ 안방에서 드레스룸, 서재로 이어지는 일자형 수납공간의 개폐방식을 가급적이면 미닫이로 하고 싶다는 아내의 의견에 대해서는 최근 유행이 미닫이에서 다시 여닫이로 바뀌고 있다는 점과 안방이나 서재에서 볼 때 시각적으로 여닫이가 깔끔해 보일 것이라는 의견을 주면서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결정을 하면 그에 따라 비용을 산정하는 등의 후속조치를 하는 것으로 논의를 하였다.

따라서 우리집의 경우는 현재의 아파트에서 사용하는 12자 짜리 한샘 시스템 수납장을 큰아이 방으로 옮기는 것과 서재/큰아이방의 책상은 추후 검토한다는 점을 확정하고 나머지는 솔토건축에서 별도로 2~3군데의 견적을 받아 최종적으로 선택하되 비용의 증가폭이 크지 않도록 한다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으며, 각층 화장실의 카운터 수납공간과 선반 설치, 욕실 코너선반 추가와 지하실 등의 선반 설치 등에 따른 비용이 추가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그 범위가 충분히 수용될 정도에서 검토해 줄 것을 이상목 실장에게 요청하였다.

P 교수 역시 붙박이장에 대한 솔토건축의 새로운 제안을 수용하면서 몇 가지 의문이 되는 점과 건축가의 의견을 구할 내용들을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계속되었다. P 교수의 집은 여전히 드레스룸을 개방적인 옷방의 개념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수납장 형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좀 더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으며, 우리집의 경우 손님용 화장실의 샤워기 설치에 대해 의견을 내자 그동안 자신은 강아지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우리집과 의견을 같이한다는 견해를 표명하기도 하였다.

붙박이 가구에 대한 대강의 의논을 마칠 무렵 이상목 실장이 매우 중요한 의견을 냈다. 다름 아니라 주방의 싱크 설치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동안 독일의 하드웨어를 그대로 가져와 상판 등만 국산으로 조립할 것을 생각했던 주방설치 회사와 가격 등의 문제로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에 이를 변경하여 한샘주방으로 바꾸어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건축주는 물론 비용의 증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상목 실장은 ‘한샘 유로급’에서 전체적인 스타일이나 테이블 상판의 컬러 등을 선택하면 될 것이라면서 주말 시간을 이용해 아내들과 더불어 함께 전시장이나 매장 등에 다녀올 것을 청하였다. 또한 조남호 소장은 자신의 집에 새롭게 들여놓은 식탁이 ‘세덱(SEDEC)’ 제품인데 값도 비싸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작하는 비용에 비해 매우 저렴하다는 점에서 우리들에게도 적극 구경할 것을 권하였다. 이어서 한샘 부엌가구에 대한 팸플릿을 구경삼아 살펴보았으며,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 다시 한 번 오늘 논의를 마무리하는 선에서 회의 내용을 정리하였다.

1. 윗집과 아랫집 모두 붙박이장과 책꽂이 책상 등 가구류에 해당하는 내용 일체는 그동안의 건축주들이 제안한 다양한 의견을 솔토건축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비용 증가분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있으므로 최초 공사계약에 포함된 가구류 비용의 범위 내 혹은 증가가 최소화되는 범위에서 솔토건축에서 율 디자인이 아닌 다른 두어 군데 제작 업체의 견적을 받아 판단한 후 이를 중심으로 건축주에게 추천하고, 수용될 경우 현장에 이 대안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솔토건축 측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조치한다.

2. 1층 손님용 화장실의 수전은 샤워기가 함께 달린 것으로 설치함으로써 두 집 모두 애완견의 목욕이나 배변 후 물청소 등에 샤워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3. 주방과 보조주방의 전기콘센트 개수는 각종 기기나 설비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충분한 숫자를 확보하고, 이를 현장에서 재확인한다. 아랫집의 경우는 보조주방의 에어컨 옆에 1구가 더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며, 두 집 모두 보조주방에는 별도의 가스레인지나 후드 등은 설치하지 않는다.

4. 화장실의 타일은 좀 더 선택폭을 넓힐 수 있도록 동일한 질의 다른 것을 다양하게 추천하면 좋겠고, 아랫집의 경우는 기존에 선택한 타일보다 훨씬 더 밝은 색으로 적용될 것을 희망한다.

5. 아랫집 안방에서 드레스룸, 서재로 이어지는 일자형 수납장의 개폐방식은 가급적 미닫이로 하되, 솔토건축에서 여닫이와 미닫이의 경우로 나누어 견적을 받아보고 이를 건축주가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6. 주방의 싱크 및 수납장은 기존의 수입산 하드웨어 이용방식을 변경하여 한샘부엌 가구를 적용하되 건축주가 한샘 브랜드 가운데 유로급 이하의 범위에서 상판 컬러와 재질, 포함기능(예를 들면, 쌀통이나 도마 소독 등)을 선택, 제안하고 스타일도 선택하여 솔토건축에 제안한다. 필요에 따라 건축주가 구체적인 설명이나 도면을 솔토건축에 제공한다. 두 집 모두 기본적으로는 도마와 식칼 소독기, 쌀통 등 기본사항만이 추가되는 것으로 한다.

7. 건축주는 주방 설비와 가전제품의 위치와 용량 등을 확인한 후 이를 순서에 맞추어 도면이나 설명의 방법을 이용해 솔토건축에 이른 시간 안에 통보하여 가구견적이나 제작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8. 창호 제작기간이 30일 이상 소요된다는 점에서 솔토건축은 가급적 이른 시간 안에 창호 디테일 등을 정해 창호제작 업체인 Filobe와 공사현장 사무소에 통보하여 현장의 공정 진행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9. 지붕틀 제작 후 일부 남은 목재를 이용해 지하공간에 충분한 정도의 수납용 선반을 현장에서 제작하고, 욕실의 코너선반(유리 혹은 강재)과 벽체에 설치되는 1~2단의 선반, 욕실 내 각종 수납공간이나 카운터 등등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비용증가를 고려하여 제안한다.

10. 최근 빈번한 강우 때문인지 두 집 모두 지하수에 대한 우려와 함께 지하층에 들어찬 물이 들이친 것인지 아니면 지하에서 누수가 된 것인지에 대해 염려한다는 점에서 현장의 확인이 필요하고 대응 역시 요구된다.

11. 아랫집 대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계단 서측의 흙더미가 강우로 인해 자꾸 붕괴되는 점에 대해 건축주로서 우려한다.

12. 건축주가 추후 개별적으로 구입 설치한다는 책상 등은 좀 더 시간을 두고 보면서 현장 목수에게 부탁을 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으며 기성제품을 구입한다면 세덱 등의 브랜드가 미적으로, 경제적으로 선택 가능한 것으로 판단한다.

13. 윗집과 아랫집 모두 공용공간에 독자적으로 서게 되는 책꽂이는 가급적이면 벽체 속에 삽입되는 모양이 될 수 있도록 벽체와 일체형을 고려한다.

14. 외벽 조적조의 메지 깊이는 타일처럼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는 정도에서 건축가의 선택을 지지한다.

15. 아랫집의 다락방 출입구 확장과 목재 막이를 강재로 변경하는 등의 부재 변경이나 그밖의 사항에 대해서는 건축가의 제안을 수용하는 범위에서 현장 시공한다.

솔토건축에서의 회의를 마치고 오늘 전체 건축공사비의 20%를 계약에 따라 에스화이브의 김봉섭 소장에게 계좌이체 방식으로 지불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김봉섭 소장으로부터 감사하다는 문자를 받았다고 동석자들에게 전하자 현장에서는 제 때에 공사비가 지급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은 것이라면서 조남호 소장이 저녁식사를 사겠다고 해서 회의에 참석한 네 명 모두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낙지볶음으로 저녁을 먹고 난 뒤 P 교수와 나는 다시 새건협 편집회의 참석을 위해 자리를 떴다.

양재동에서의 회의를 마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아내와 함께 오늘 회의의 내용에 대해 요약하여 설명해 주었다. 아내는 오늘 회의내용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다고 해 주방 싱크를 골라야 한다는 것과 주방과 보조주방에 들어갈 가전제품에 대해 위치와 순서를 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자정이 지난 시간에 다시 인터넷에 접속을 하고 집에서 가지고 갈 가전제품과 새로 사기를 희망하는 제품들의 용량과 치수 등을 고르는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설계도면을 보고 주방의 쓰임새를 요모조모 살피는 시간을 함께 하였다. 두 딸 아이는 ‘또 집 얘기냐’는 표정이었고 하루 종일 혼자 집을 지켰다는 강아지는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에 불만인 듯 거실 바닥에 펴놓은 도면에 올라 앉아 공을 던져줄 것을 요청하는 등의 모습이었다.

우선 새로 들어갈 집의 주방에 대해 한샘 부엌가구를 둘러보았으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어 주말을 이용해서 잠실 인근의 전시장에 갈 것을 아내에게 부탁하고 싱크대의 카운터 길이와 쓰임에 대해서 의논하였다. 주방이 그리 큰 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주방 쪽으로 나와 있는 대형 냉장고를 보조주방으로 들여보내고 그 자리에 싱크대 볼에 이어지는 상판을 연장하는 것이 좋겠다는 점에 서로 동의함으로써 주방의 기본적인 레이아웃에 대해 거칠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어서 매우 현실적인 감각과 생각으로 지금 집에서 사용하는 세탁기 등을 이전하고 14년이나 된 냉장고는 새 것으로 바꾸고,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스탠드형 김치냉장고와 냉동고를 새로 살 것을 전제로 각각의 기기에 대한 치수를 확인하고, 보조주방을 대상으로 이들이 들어갈 위치를 결정하였다.

2009/06/29 토지분양 신청금=10,000,000원
2009/06/30 토지분양 계약금=38,803,000원
2009/06/30 1차 토지분양계약금에 대한 취득세 976,060원+농특세=1,073,660원
2009/12/14 설계계약금(총 설계비의 30%)=15,000,000원
2009/12/28 토지분양 잔금 전액(7% 선납할인율 적용)=369,979,300원
2009/12/28 근저당권 설정비용=951,600원
2009/12/28 지상권 설정비용=1,191,000원
2009/12/28 소유권 이전비용=12,790,912원
2010/01/27 토지대금 완납에 따른 취득세 8,375,640원+농특세 837,560원=9,213,200원
2010/03/09 건축허가에 따른 면허세(27,000원)+채권매입비(2,360,000원→할인 235,816원)=262,816원
2010/03/09 개발행위에 대한 면허세(18,000원)+지역개발기금 공채매입(1,012,500원→할인 134,478원)=152,478원
2010/03/09 개발행위에 따른 이행보증금(3,003,840원→보험처리 15,000원)=15,000원
2010/04/21 총 설계비에 대한 50% 추가 지불(설계비의 80%인 4,000만 원 지불 완료)=25,000,000원
2010/04/30 건축도급공사비의 1차 약정금액 지불=46,800,000원
2010/08/30 건축도급공사비의 4차 약정금액 지불(2차, 3차는 P 교수가 6.30/7.30에 지불)=171,600,000원
계 702,832,966원

2009/12/14 공무원연금관리공단 퇴직금 담보대출=33,000,000원
2009/12/28 우리은행 전문가 대출=110,000,000원
2009/12/28/ 우리은행 계약서 담보대출(근저당권+지상권)=160,000,000원
계 303,000,000원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생각2010.12.16 21:30
'특수전문요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석사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다른 이들에 비해 무척 짧은 6개월 간의 훈련소 입소훈련을 마치면 소위 계급장을 붙이고, 임관식과 전역식을 동시에 치루는, 그래서 소위 임관과 동시에 제대로 된 장교 생활은 단 하루도 하지 않은 채 임관식 당일 집으로 돌아와 민간인의 신분으로 되돌아오는 아주 특별한 단기군복무 제도가 한 동안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제도가 한 때는 수많은 석사학위 소지자들이 필답고사를 치루고 그 결과를 기다린 뒤 합격과 불합격에 따라 한 편은 단지 6개월의 장교 훈련 후 제대가, 다른 한 편은 현역입영으로 신병훈련소에 들어가 당시 법령이 정한 기한을 사병으로 근무하게 되는, 입영대상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가리는 제도였다. 시험에 응시할 자격은 석사학위소지자로 한정하고, 사험에 합격한 사람은 경북 영천에 소재한 육군제3사관학교에서 6개월의 초임 보병장교 훈련 후 임관과 동시에 전역하는 제도이므로 세상 사람들은 공식적인 이름인 '특수전문요원'이라는 복잡하고도 이해하기 곤란한 용어 대신에 '석사장교'로 부르거나 이를 줄여 '석장'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나 역시 그 제도가 운영될 때 석사학위 과정을 마친 현역입영대상자였고, 대학원 졸업 후 시험에 응시해 요행으로 합격하여 다른 합격자들과 더불어 6개월의 장교훈련을 마치고, 임관과 동시에 전역을 거쳐 예비군, 민방위 등을 모두 지낸 뒤 이제는 그야말로 그저 보편적인 도회인의 한 구성원으로서 크고 작은 정치적 상황에 핏대를 올리고, 아내를 무서워하면서도 아이를 바른 길로 가라 혼내기도 하지만, 편안한 친구들과 어울려 구석진 방에서 낄낄거리며 매달 월급을 달콤하게 받아들이는 장삼이사의 생활인이 되었다.

당시 제3사관학교에서 운영되었던 석사장교 훈련은 6개월의 기간을 다시 7일을 한 주일로 하는 주단위 훈련일정으로 모두에게 고지하고 장교후보생이었던 우리들은 게시판에 붙은 26주 과정의 훈련계획을 보면서 다른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한 주 한 주 훈련을 끝낼 때마다 전역까지 남아있는 주 수를 헤아리거나 달력에 붉은 색의 X표를 긋곤 했었다. 그래서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게 된 것이 1년은 대략 52주이고, 6개월은 그 반인 26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숫자가 우연히 다시 떠오른 때가 바로 2006년 9월 경이었다. 새건축사협의회라는 단체에서 건축사 자격을 갖춘 이들을 위해 본격적인 재교육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하루 이틀 정도의 단기교육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일상적인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모임의 의견이 집약되면서 필자가 이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관리하며 운영하는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더불어 교육연구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감투도 쓰게 되었다. 일을 하려니 감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과의 논의와 공감을 거쳐 강좌운영은 1년간 매주, 설계작업을 하는 이들의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여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하는 것이 좋겠다는 필자의 의견이 그대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강좌를 듣는 분들에게 호소력이 있으면서도 프로그램의 내용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제목이 필요하다고 여길 때 불현듯 '2452'라는 네 자리 숫자가 떠오른 것이었다. 매주 금요일 24시에 끝나는 강좌이고, 1년 동안 52번의 강의로 구성된다는 것이 단순한 아이디어였다. 이 제안 역시 많은 분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결국 이 명칭은 자연스럽게 새롭게 만들어 운영할 강좌의 프로그램 명칭이 되었고, 상당 기간 지속한다는 점에서 맨 앞에는 강좌가 운영되는 해를 알리는 숫자를, 그리고 강좌에서 주목하는 분야를 당시에는 주택분야로 한정한다는 뜻에서 'Housing'이라는 용어도 함께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만들어진 전문가 강좌의 이름이 바로 '2007 Housing Lecture 2452'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명칭은 3년간 그대로 사용하다가 일부 전문가들로부터 사실과 달리 강좌의 명칭에 'Housing'이 들어가 있으니 '주택부문' 이외의 영역이나 분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강좌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는 조언을 들었고, 2010년부터는 주위 분들의 조언에 따라 강좌의 내용을 좀 더 확장하여 'Housing, Architecture, Urbanism'을 모두 망라하는 것으로 전환하였고, 이름도 각각의 영어 표현 머릿글자를 하나씩 따서 '2010_HAU Lecture 2452'로 변경하였다. 명칭과 내용이 바뀌고 한 해가 지난 이제는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운영하게 될 코디네이터도 바뀌게 되었지만 2011년으로 이어질 강좌의 이름에도 '2452'가 그대로 남게 되었다. 마치 손은 떼었으되 유전자가 남아 대대로 전해지는 그런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지난 4년 동안 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로서 강좌 운영을 위해 매년 바뀌는 두어 명의 간사들과 매주 금요일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예외없이 양재동의 새건축사협의회 세미나실을 지켜 왔고, 이제 비로소 그 프로그램으로부터 떠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금요일 밤으로부터 토요일 새벽의 시간을 온전하게 가질 수 있는 행복을 얻게 되었다. 프로그램 간사들은 매년 대학원 과정에 들어오는 석사과정 학생들이 1년씩 번갈아가며 맡아주었으니 그들이 계속한 시간은 1년이었지만, 운영 책임을 맡았던 나는 간사를 바꿔가면서 4년 동안의 매주 금요일 밤을 양재동에 머물었던 것이다. 돈도 내지 않고 대한민국의 전문가와 석학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간이었으며 많은 분들과 서로 안면을 트고 생각을 나누는 사회적 자산의 축적 시간이기도 했다.

내년부터 인하대학교의 박진호 교수, 중앙대학교의 송하엽 교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의 차주영 박사 등이 코디네이터 역을 맡아 운영하게 될 전문가 강좌의 최초 산파역을 감당한 입장에서 물러나려고 마음 먹은 것은 더 이상의 코디네이터직 수행은 프로그램의 사유화로 비춰지거나 혹은 개인적 네트워크의 강화로 오인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Housing'에만 주목하는 끼리끼리의 친목모임처럼 잘못 알려질 우려를 서둘러 경계하기 위함이다. 즉, 전문가 강좌는 우리들 모두에게 어느 영역에서나 필요한 일이고, 이를 위해 건축계에서 먼저 시도한 독특한 프로그램이며 강좌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일정 기간마다 프로그램 운영의 주체를 바꾸어가야 사회적 관심과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축계 스스로의 자기혁신 기회의 한 가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200번의 금요일을 양재동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낼 생각이나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토요일과 일요일의 휴무로 이어지는 사실상 주말의 시작 시간인 금요일을 공부를 핑계로 언제나 밖에서 보내고 토요일 새벽 1시가 되어서야 귀가했고, 그 탓에 토요일 오전 시간을 침대에서 보낼 수 밖에 없었던 남편과 아비를 관대하게 용인했던 아내와 아이들에게 조금 더 자유롭고 평안한 금요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를 이제부터라도 소망할 뿐이다.

아울러 어렵사리 마련한 전문가 강좌 프로그램이 해를 거듭하면서 굳건한 토양과 풍부한 자양분으로 한국건축계의 미래를 밝게 해 주는 전문가 재교육의 바탕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권한을 가지고 휘둘렀던 시간이라는 기억보다는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유익한 정보와 지식을 대물림할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더불어 매년 35명에서 40명에 이르는 전문가가 휴일로 이어지는 금요일 밤 양재동을 찾아 건축과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과 헌신으로 자신의 모든 지식을 쏟아주었던 노고에 운영의 한 축을 담당했던 코디네이터로서 마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그 분들의 노력과 관심에 성원과 지지를 보낸다.

금요일 밤 양재동을 밝힌 불은 수강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동력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분 한 분 모두에게도 감사와 성원을 보내며, 강좌에 참여한 그 분들 역시 금요일의 늦은 밤이 언제곤 풍요로운 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생각2010.11.03 17:50
2010년 10월의 끄트머리에서 11월에 이르는 며칠 동안의 기간 동안 나는 몇 가지 일에 주목했다.

하나는 10월 26일 남산 안중근 기념관 개관식에서 벌어진 일로서 그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개관식장을 떠나면서 중앙일간지의 어느 기자에게 남겼다는 문자 메시지를 접한 것이다. "(개관식 행사장에) 건축가 자리도 없고, 테이프커팅도 없고, 호명도 없는 준공식. 슬픈 현실이죠. 그냥 돌아가가는 길이에요"라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트윗을 통해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건축계와 문화계의 인사들이 더불어 울분을 토하고, 이런 현실이 부끄럽다는 얘기를 주고 받았으며, 널리 퍼뜨렸다.

두번 째 일은 남산의 안중근 기념관 사건으로 빚어진 새건축사협의회의 상임위원들 사이에 오간 이메일에 담긴 여러 가지 생각들의 교감과 11월 1일 상해 통지대학교에서 개막한 Emerging Voices라는 이름의 한국현대건축전 개막식으로 이어진 뒷 담화자리에서의 울분 토로와 건강한 움직임의 제안이 그것이다. 이는 소식을 접한 서울시립대학교 김성홍 교수와 몇 분의 건축가들이 모여 대책을 숙의하자는 의견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서울시립대학교 김성홍 교수가 새건협 상임위원들에게 보낸 메일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새건협 여러분께
현대건축 아시아전 개전식에 참가하고 상해에서 어젯 밤 돌아왔습니다. 
함인선회장님, 임재용, 윤승현부회장님, 박진호교수님 그리고 여러 건축가들은 오늘 귀국하십니다.
상해에는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가 동행 취재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번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저녁시간에 오고갔습니다. (중앙일보에 글을 쓴 이은주 기자가 참석).
저의 생각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임영환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위원회를 구성하여, 차분히, 그러나 치밀하고 단호하게, 그리고 장기적으로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저작권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를 아주 복합적이고,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단기, 장기적 처방이 필요하고 이는 공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위원회를 가동합시다.
김성홍 드림

그 다음 내가 무언가를 느낀 사건은 11월 1일 월요일 오후에 서울시립대학교의 나눔마루에서 진행된 '건축학부 장학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였다.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들이 매년 10월 중에 자신이 소장한 물건들을 시중가격의 1/4 정도 가격으로 내놓되 판매 희망가격이 1인당 10만원 정도로 한 뒤 만약 그 물건이 바자회에서 팔리지 않으면 물건을 내놓은 분이 도로 사야 하는 룰이 적용되는 이상한(?), 그렇지만 결국은 1인당 10만 원의 장학금을 내놓는다는 취지에서 올해 일곱번 째를 맞이한 행사가 그것인데 비록 추운 날씨였지만 많은 분들이 적극 참여하여 210만 원의 장학금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새건협 회의가 열릴 것이고, 많은 분들이 울분을 토하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일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대책은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번 일을 직접 겪은 임영환 선생님을 주축으로 하는 몇 분의 소임으로 맡겨질 것이고, 다른 이들은 또 상황을 잊은 채 일상으로 침잠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을 바로 잡음에 있어서는 의지와 행동도 필요하고, 일정한 공분도 필요하다. 바람직한 사회와 건전한 풍경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구조건이고 전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이들이 격려와 용기를 주어야 하며, 거기에는 반드시 참여의 의무가 뒤따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건을 조금 더 실천적인 일로 꾸려 풍토를 바꾸기 위해서는 참여의 전략이 필요하다. 물론 회의를 위해 모이는 분들의 식사비 정도도 있어야 하고, 시간을 내서 오가는 수고에 대해 울분을 가진 이들은 적절한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들이 만든 성과나 결과를 미리 예측하거나 예단할 필요는 없지만 과실이 내게도 돌아올 것이라면 적어도 염치를 차리기 위해서도 그렇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건축가들과 건축학과 교수들, 그리고 이번 일로 분개한 많은 문화예술계와 언론계의 몇 분들이 모여 새로운 일을 기획한다. 기왕이면 트윗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여론을 만들어 가도 좋겠다.

꾸리는 일은 건축가, 건축학과 교수, 문화예술분야 기자 등 되도록이면 공약수를 갖는 분야의 많은 분들에게 참여를 호소하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안 쓰는 물건이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 혹은 책이나 재능이어도 좋겠다. 이들에게 일정한 형식과 절차를 알려주고 스스로 자신의 물건을 가지고 한 자리에 모여 물건을 판매한다. 당연히 세간의 유명세를 가진 분들을 만나거나 잡지 혹은 신문을 통해 이름을 알고 있는 건축계나 언론계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목적으로 건축계의 많은 학생들이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비교적 넓고 아늑하고 따뜻한 곳에서 1일 바자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사진 촬영에도 응해주고, 사인도 해 주면서 그들과 덕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고, 물건을 내놓는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지 못하는 많은 동학이나 지인들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물론 물건 구입이나 구경을 위해 그 자리에 참석하는 학생들은 건축계의 현실을 함께 느끼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동시에 선배들의 행동하는 양심에 대해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이 행사를 언론계가 주목하고 기사나 그림으로 만들어 주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대중들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

바자회를 통해 얻어진 수익금은 투명한 회계절차를 전제로 이번 사건을 바로 잡기 위해 앞자리를 차지한 분들의 활동비와 식비, 그리고 가능할 지는 모르지만 분명 많지 않을 것이 뻔한 수고료로 사용될 수 있다. 생각과 이데올로기를 떠나 건축계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이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며, 이 땅의 문화예술인들과 많은 지식인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차분히, 치밀하고 단호하게 준비하자는 것이 자칫 메아리 없는 외침이나 소리없는 구호에 그칠 것을 염려하는 뜻에서 오늘 회의 참석 전에 이 글을 써 본다. 물론 나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 분명하다.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 8시 회의 참석을 묻는다. "예, 참석합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바 있는 중앙일보 이은주 기자는 11월 5일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617288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