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집_일기2012.04.16 00:11

지난해에 비해 2월에 이은 3월 한기가 만만치 않았으나 자연은 늘 그러하다는 말처럼 살구나무 꽃은 오히려 작년에 비해 사흘이나 먼저 만개하였다. 어제는 주말을 맞아 살구나무 꽃이 만개하였다는 소식에 동네 이웃들이 각각 한 접시씩의 쿠키며 과일 등을 들고 와 살구나무 아랫집에서 차를 곁들인 조촐한 전야제를 열기도 하였고, 일요일인 오늘은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이집 저집을 오가며 상춘(賞春)의 덕담을 나누기에 동네가 바쁜 모습이었다.

 

 

옹기종기 붙은 집들에서는 아침부터 모종삽으로 흙을 떠내거나 잡초를 뽑느리 아픈 허리를 펴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고, 몇 집에 불과한 조무래기들이 딸린 집에서는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대문 여닫는 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대학생인 큰 아이들은 또 또래끼리 모여 문자를 주고 받더니 해가 뉘엿해질 즈음 살구나무 언덕에 올라 카메라 놀이와 끝없는 얘기꽃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점심식사 후 겨우내 닫아두었던 차고를 활짝 열고 비질과 물청소를 하니 마음마저 상쾌한 느낌이었고, 아이들을 위해 아내가 마련한 간식 시간에는 마침 열어두었던 대문을 통해 살구나무 아랫집을 찾은 이웃들과 더불어 가벼운 참을 나누며 유쾌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올해도 어김없이 살구꽃은 풍성함과 화려함을 잃지 않았다. 사흘 전만 하더라고 연분홍빛을 띠던 꽃망울이 채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백색의 꽃잎을 모두 열어 온 동네를 환하게 비추었고, 난데없이 환한 풍경 때문에 놀란 이웃 동네의 아파트 주민들도 집 앞을 지나며 눈길을 잠시 쉬어가게 하기도 했다. 마침 온도도 높고 날이 맑아 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였으니 불곡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과 집 앞에 잠시 서서 땀을 식히며 휴대폰 카메라로 살구나무 꽃이 만개한 풍경을 사진에 담아가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꽃이 하늘을 덮자 이번에는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이름 모를 산새들이 앞을 다투면서 살구나무 줄기를 찾아 꽤나 소란을 떨었고 그 탓에 꽃잎들이 살구나무 아랫집 서재마당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살구나무 아래에 서서 안타깝게 지켜보기도 했다. 이웃집 강아지들도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이집 저집을 드나들며 재롱을 부렸고, 봄의 나른함을 잊은 이웃들은 차고 청소와 마당 잔디 손보기, 야생화 분 나누기, 안팎 마당에 물대기 등으로 분주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었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내가 특별히 부탁한 일을 아이와 함께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알루미늄 테잎을 구입해 빨래 삶은 통을 기우는 일, 며칠 전 구입한 2층 데크의 파라솔 기둥을 조금 잘라 높이를 맞추는 일, 차고를 열러 물청소를 하는 일, 그리고 마당의 마른 잔디를 긁어모아 처리하는 일 등이 아내의 부탁이었다. 점심을 마친 후 동네 상점에 들러 몇 가지 물건을 구입한 뒤 하나씩 일을 마무리했고, 마지막으로는 재미 삼아 ‘살구나무 아랫집 식물도감’을 만들기로 작정하였다.

 

 

 

 

 

사실 이 일을 작당하게 된 까닭은 따로 있었다. 살구나무집에 입주해 처음 봄을 맞던 작년 봄 휑하니 비어있는 안마당과 경사마당, 서재마당 등을 쳐다보며 주말이면 양재동과 과천의 꽃시장을 제법 찾았고, 5일장으로 열리는 모란시장도 몇 번 다녀오며 곳곳에 야생화를 심었는데 두 해째 봄을 맞아 이곳저곳에서 새 순이며 싹이 새로 돋는데 도무지 기억도 나지 않고 이름도 모를 것들이어서 내년부터는 이런 민망함에서 벗어나자는 뜻에서 큰아이와 전격 합의한 일이었다.

 

일단 솔토건축에서 보내준 최종 도면을 열어 간략한 도면으로 만든 뒤 A4 용지 크기로 도면을 인쇄한 뒤 눈대중으로 나무며 화초의 위치를 도면 위에 표기하기도 했다. 안마당은 오히려 수월한 편이었으나 대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는 서측에 마련된 경사마당은 작년에 심었던 각종 화초들이 쑷쑥 올라오면서 밟은 곳도 마땅치 않을 지경이었다. 큰아이와 함께 꼼꼼하게 도면에 표기를 하고, 이름을 서로 확인하느라 어느 새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식사 후에는 본격적인 수작업이 계속되었고 밤 10시 가까이 돼서야 비로소 ‘살구나무 아랫집 식물도감’이 완성되었다.

 

옆에서 혀를 차며 왜 애써 일을 만드느냐 핀잔을 주던 아내도 곁에 와 도면을 슬며시 보더니 몇 가지만 더하면 나무나 초화류가 거의 100종에 이르게 생겼다면서 제법 관심을 보였고, 큰아이와 내가 아래 위층을 오가면서 스캔을 하고 식물이름을 확인하면서 드디어 작심과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몇 가지의 위치가 바뀌거나 관심 부족으로 말라버릴 것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오늘 작업으로 내년은 기대와 기쁨으로 봄을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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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2.04.05 19:50

하루 종일 학교에서 밀린 책 읽기를 하던 중에 건축가 조남호선생으로로부터 메일이 도착되었다. 프랑스 건축사 자격을 갖추고 현지의 인터넷 건축저널에 도움을 주며 일하고 있는 배은숙이라는 분이 얼마 전 살구나무집 관련 자료 제공을 요청해 기꺼이 응했더니 현지시간으로 4월 4일 밤 9시 경에 관련 기사가 Le courrier de l'architecte("건축가의 편지" 정도로 번역이 가능할 듯) 국제판에 실렸다고 알려왔으며, 해당 웹사이트를 하이퍼 링크로 보내주었다는 소식이다. 조남호 선생에게 잘 된 일이라고 글을 써 보냈고, 더불어 기쁜 마음이라고 성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Le courrier de l'architecte 바로 가기 : http://www.lecourrierdelarchitecte.com/article_3030

조남호 선생은 반은 농담으로 ‘첫 해외 나들이^^’ 라면서 즐거운 마음이라고 전해왔다. 좋은 일이고 건축가에게는 잘 된 일이다. 마당이 있는 집, 보통 수준의 공사비로 건축가와 더불어 실용과 품격을 두루 갖춘 집을 짓는 일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가벼운 기대 정도를 가지고 <아파트와 바꾼 집>을 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갈증을 해소하는데 조금은 보탬이 된듯하여 더불어 즐거운 심정이다. 이 일을 계기로 이 땅의 많은 건축가들이 진지하게 자신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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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2012.01.10 15:38

오늘은 살구나무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을 맞는 날이다. 조금 더 비장하게 말하면 이제 이 집에서 살아야 할 정해진 시간이 있다면 그 중에서 1년을 까먹은 셈이 되기도 한다. 어제 늦은 밤 아내와 함께 마당에 나서서 살구나무집에서의 지난 1년이 참 빠르게 지난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누었으니 우리 내외도 객관적으로 나이가 들었다고도 하겠다.

지난 1년은 빠르게 지나기도 하였지만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고,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식구들 모두가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서는 여간 다행이고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혹한의 겨울 한복판에 새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행여 관리비가 감당하지 못할까 염려되어 아래위층을 오가며 난방 밸브를 줄이고 전등 끄기를 일삼았던 기억부터 따뜻한 봄날 양재동과 과천, 모란시장을 풀방구리처럼 오가면서 야생화와 자잘한 묘목을 심던 일, 만개한 살구꽃 아래서 꽃비를 맞으며 즐거워했던 날들, 퍽퍽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살구를 먹으며 여름을 즐긴 일 그리고 맞이한 낙엽과 단풍의 계절과 다시 맞은 추운 겨울.

조금은 긴장했던 이웃들과의 만남과 이제는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위아랫집과 옆집의 따뜻한 이웃들. 우리집 오시기를 늘 고대하시는 여든 다섯 잡수신 노모의 편안한 볕쬐기 풍경 등은 그저 고즈넉한 한 폭의 그림으로 가슴에 남아 있으며, 집 안팎을 뛰는 강아지의 모습에서 ‘잘했다’ 싶은 생각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하였다.

살구나무집을 다녀간 지인들의 부러움과 시샘에 즐거워했고, 살구나무집을 찾겠다는 분들의 성화도 마음을 들뜨게 했던 지난 1년이었다. 지난 1년 동안의 여러 가지 일들을 묶은 책이 <아파트와 바꾼 집>이라는 이름의 책자로 세상에 나왔을 때에는 이 일이 단순히 바람직한 집짓기의 일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운동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 또한 적지 않았다. 건축가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살구나무집을 설계한 건축가 조남호 선생에게 진지한 건축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겠다는 심정에서 여러 불편을 무릅쓰고 집을 찾는 분들의 인터뷰나 기사 작성에 도움을 주려고 했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대중 앞에 나서서 건강한 집짓기의 교훈이나 경험을 전파하느라 나름 애를 쓴 시간이었다. 마침 살구나무집 1년을 맞는 오늘 동녘출판사는 <아파트와 바꾼 집> 2쇄 인쇄를 결정하였다는 소식이다.

무엇보다 새 집 생활 1년을 맞으며 이렇다 할 문제 하나 없이 아파트 생활에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연착륙하도록 도움을 준 모든 분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무엇보다도 억눌렸던 욕망을 끄집어내게 하고 집터 고르기에서부터 더불어 살기에 이르는 모든 어려움을 도와주고 삶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 박인석 교수, 자금 마련에 곤혹스러움을 느낄 때 흔쾌히 집을 내어주신 동료 교수님, 살구나무집의 설계자인 건축가 조남호 선생과 솔토건축의 식구들, 시공자인 (주)에스화이브 김봉섭 사장과 집짓기의 모든 공정에 열과 성을 다 하신 많은 현장의 작업자들, 공사 현장의 온갖 불편함을 감내한 지금의 이웃은 모두 내게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한 조력자들이다. 살구나무집 생활 1년을 맞은 감상이라면 모든 것이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평온의 일상을 만든 아내와 아이들이 오늘처럼 언제나 곁에서 빙그레 웃으며 행복한 자유인으로 생활하는 날들이 지속되었으면 싶다. 살구나무집 1년의 생활에 대한 감상이 자못 감상적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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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2.01.09 20:11

“작년 말에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교수 두 명이 책을 냈다. <아파트와 바꾼 집>(동녘)을 쓴 박인석(명지대) 박철수(서울시립대) 교수는 책 제목처럼 경기 성남시 분당과 서울 중계동의 아파트를 판 돈으로 경기 용인시 죽전에 아파트보다 1.5배는 큰 평수의 집을 함께 지었다. 각각 살구나무 윗집과 아랫집(이하 살구나무집)으로 이름붙인 이 집을 짓기까지 과정과 짓는데 들어간 세세한 비용과 고민, 완성된 후 1년간 살면서 들어간 관리비까지 밝힘으로써 건축가에게 맡겨 제대로 집을 짓기만 하면 아파트 값으로 아파트보다 관리 난방비는 훨씬 덜 드는 단독주택을 가질 수 있다는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건축을 전공한 교수들이 직접 집을 짓지 않고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겼다는 점, 그리하여 평당 500만원으로 '냉난방비 걱정 없이 따뜻한 겨울과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는 집, 솜씨 있고 진지한 건축가가 설계한 품격 있는 집'이 탄생했다는 점이다. 살구나무집을 설계 감리한 건축가 조남호(50 솔토건축 대표)씨는 지난해 건축을 결산하는 2011대한민국건축문화제에서 서울시립대 강촌수련원이 '올해 최고의 건축 7선'(베스트7)에 뽑힌 중견. 그는 살구나무집 이후 평당 500만 원 이하로 건축가가 짓는 집을 널리 확산시키는 운동에 나서고 있다. 그가 '보편적인 집짓기'로 이름붙인, 제대로 된 단독주택 짓기를 들어본다.”

[한국일보] <서화숙의 만남>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society/201201/h2012010821413221950.htm&ver=v002


[한국일보] 2012년 1월 9일자 “서화숙의 만남”은 ‘단독주택 쉽게 짓기’ 알리는 건축가 조남호‘라는 제목을 두고 위의 인용문과 더불어 다양한 주제와 대중적 관심을 건축가에게 묻고 답하는 기사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할 보편적인 집 짓기, 평당 500만 원인 건축비의 적정성, 집장사 집과 건축가 집, 건축주와 시공자 사이에서 건축가의 역할 등을 짧은 질문과 상대적으로 긴 답변으로 이어가고 있다.

마침 오늘이 살구나무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지 정확하게 일 년이 되는 날인데, 이런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니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대단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오늘은 오후 1시부터 <여성동아>, <우먼센스>, <전원주택 라이프>의 기자들이 집을 찾아 집짓기 과정에 대한 진솔한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하기로 약속한 날이기도 하니 우연한 일이 거푸 벌어진 셈이다. 기왕 취재에 응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어서 건축가 조남호 선생도 함께 자리해달라 부탁을 한 날이다.

정확하게 오후 1시에 건축가 조남호 선생이 도착하였고, 곧 이어 <여성동아>의 취재 기자와 사진 작가, <전원주택 라이프>의 취재 기자와 촬영 작가가 차례로 집을 찾았다. 그리고 오후 2시쯤에는 <우먼센스>의 기자와 사진 작가들이 살구나무집에 도착했고, 두 명의 건축주와 건축가를 상대로 잡지 독자들이 궁금해 할만한 질문과 응답이 이어졌다. 사진작가들은 아래위층을 오가면서 서로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서로가 필요로 하는 그림을 만들어갔고, 건축가를 포함한 우리 셋은 마치 기자회견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러 잡지사에서 오신 기자들을 상대로 '살구나무집 짓기' 얘기를 굳이 <아파트와 바꾼 집>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펴낸 이유를 힘주어 설명하는 것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오늘 집을 찾은 잡지사는 대부분 여성을 독자로 상정하거나 혹은 아파트를 떠나 전원에서의 생활을 갈구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들 잡지의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점들을 중심으로 꽤나 많은 시간동안 자유로운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으며, 우리 두 사람과 건축가는 감추거나 과장 혹은 왜곡하는 일 없이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응답함으로써 오래 전 약속했던 취재를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한 동안 여러 건축잡지사와 <행복이 가득한 집>의 취재로 어수선했다가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 집 분위기가 <아파트와 바꾼 집>의 출간으로 비롯된 잡지사들의 취재 요청과 응대로 모처럼 다시 북적거린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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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1.10.09 22:54

지난 7월 초 장마가 시작되기 전부터 몇 차례 취재 관계로 통화를 이어 오던 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의 취재진이 집을 찾았다. 일은 6월 말부터 얘기되던 것이었다. 당시 계속되던 비와 6월 말부터 7월 20일까지 계획된 20여 일 동안의 동유럽 출장 때문에 서로 시간을 맞추지 못하다가 며칠 전 금요일 오전에 두 집 남자들이 모두 집에 있겠다고 약속한 뒤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잡지사측의 방문이었고 윗집 친구와 나는 건축가 조남호 선생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응했던 취재였다.

약속한 오전 10시에 사진작가 두 분과 취재기자 한 분이 집에 당도하였고, 차 한 잔을 나누면서 얘기를 시작하였는데 잡지사측의 바람은 가족들이 촬영에 응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문제에 관한 한 사전에 전화로 의논을 한 것처럼 가족구성원 개개인의 의사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는데 우연히 식구 모두가 자리에 있었지만 사진촬영에 응하겠다는 경우는 없었다. 당연히 잡지사측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엇지만 두 집 남자는 불가피하다면 둘 만이라도 촬영에 응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윗집과 아랫집을 둘러보면서 사진작가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갖기로 하고 아랫집을 먼저 둘러본 뒤 윗집을 살피는 도중에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였다. 그동안 몸이 편찮으셨던 윗집 친구의 빙부께서 방금 전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었다. 일단 모두 아랫집으로 내려왔고, 윗집 친구는 몇 가지 일을 내게 부탁한 채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고, 남아있던 우리집 식구들과 건축가 조남호 선생도 망연자실. 잡지사측 사람들도 아마도 처음 당하는 일이어서인지 난감한 표정이었다.

사진작가와 취재기자의 심각한 구수회의가 이어졌는데 일단은 다른 곳을 찾아 기사를 채우려는 노력으로 판단되었고, 나 역시 잡지사측의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판단에서 살구나무집 기사는 이번 달에 실리지 않아도 그만이니 잡지사측에서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을 찾을 것을 권고하였다. 중요한 것은 윗집의 경우 실내 촬영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아랫집만을 대상으로 기사를 채우겠다면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건축가 조남호 선생 역시 잡지사측의 결정이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 결정을 존중해 따르겠다는 것이었다.

10여 분 동안의 숙의가 이어지더니 윗집의 경우는 기왕에 건축가가 보유한 사진이 있으면 그것 일부를 다시 사용하는 방법으로 꾀를 내고 아랫집은 사진 촬영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식구들이 인물사진 촬영에 응하지 않은 까닭에 ‘행복이 가득한 집’의 여러 꼭지 가운데 건축가를 주목하는 ‘건축가의 집’으로 꼭지도 변경하겠다는 것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최초 잡지사측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것이 혹시라도 건축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뜻에서 그리 한 것이기에 나로서는 상황이 급반전을 이룬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랫집 2층에서 건축가 인물 촬영이 있었고, 마당에서 건축가와 건축주를 상대로 하는 인터뷰가 꽤 오랜 시간동안 진행되었다. 날씨는 딱 좋은 가을 낮이어서 여유롭게 차 한 잔을 나누는 그런 시간이었다. 건축주가 건축학과 교수여서 어려운 점이 무엇이었는지, 친구가 어울려 산다는 것이 생각처럼 즐겁고 유쾌한 일만 그득한지, 이웃 사람들과의 공감은 아파트와 어떻게 다른지 등등의 여러 가지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고, 기자의 질문 대부분이 11월 말이면 동녘출판사에서 출간될 책 <아파트와 바꾼 집>에 모두 담겼노라 답하면서 골자 몇 가지를 답하는 정도에서 인터뷰는 잘 진행되었다.

언제 책이 나오는지 묻자 이번 달 ‘행복이 가득한 집’은 10월 23일 배포될 것이라 알려주었다. 시간적으로도 다른 취재 대상을 찾거나 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기에 잡지사측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딛고 취재와 인터뷰를 강행한 것이었다. 가벼운 마음에서 잡지 제목인 '행복이 가득한 집'에 대한 서로의 느낌과 편견 혹은 오해일 수도 있는 생각들을 나누면서 얘기를 마친 시간은 오후 1시 정도. 아내는 인터뷰와 촬영이 길어지자 내일로 예정된 어머님의 생신상 차리기를 위해 큰아이와 더불어 수원의 재래시장으로 향하고, 나는 친구 빙부의 부음을 가까운 지인들에게 전하는 것으로 계획된 용무를 마쳤다.

얼떨결에 익숙한 건축잡지가 아닌 월간지에 살구나무집 기사와 사진이 실리게 된 것이다. 어떤 사진과 글자로 살구나무집이 채워질 것인지 자못 궁금하기까지 하다. 또한 그 기사가 좋은 집 짓기 운동과 건축가의 지혜 빌리기에 자그마한 주춧돌이라도 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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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1.06.26 00:02

며칠 전 <한겨레 21>의 김기태 기자 청으로 급히 써 보냈던 원고가 활자로 만들어져 시중에 배포되었다. 그런데 원래 제목으로 정해 보낸 ‘나는 왜 집을 지었는가?’라는 제목 대신에 ‘기억의 우물을 담는 집으로’라는 제목에 덧붙여 ‘아파트 전문가 박철수 교수의 단독주택 이주기... 스스로 짓고 가족의 사연이 담기는, 시장이 제공하지 않는 집 만들기’라는 길고도 긴 부제목까지 붙어 두 쪽(34~35쪽)에 걸쳐 세상에 나왔다. 아마도 살구나무집에 대한 생각이나 사진이 처음 인쇄물로 활자화되어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전화로 내가 보내준 이미지에 대해 ‘건축가 조남호가 설계한 살구나무 아랫집’으로 설명을 달아 줄 것을 청했지만 인쇄가 된 잡지에는 그저 ‘박철수 교수 제공’으로 꼬리말만 붙은 탓에 조남호 선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남호 선생에게 이 내용을 전해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아 이메일로 기사 게재 소식과 더불어 글이 들어간 쪽을 이미지로 스캔하여 솔토건축으로 보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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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1.06.20 01:20

오후 3시에 평촌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회의가 예정되어 있는 터라 늦은 아침을 먹고 어제까지 아내와 큰 아이가 심어놓은 마당의 잔디깔기 마무리 작업에 나섰다. 마침 현장의 보완공사도 속도를 내고 있어 현장의 여러 가지 보완 내용도 확인할 겸 마당 잔디깔기 작업의 마무리도 할 겸 아침 일찍부터 마당으로 나섰다.

3월 4일붙터 본격적인 공사보완이 시작된 죽전 살구나무집은 솔토건축의 이상목 실장과 조남호 선생이 지적한 내용들이 하나씩 현장소장의 지휘 아래 보완되는 모습이었고, 아침부터 작업반장을 포함한 에스화이브의 손길이 무척 바쁘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일러실에서 나온 연도의 재시공 문제였는데 그 공사가 가장 크고 보완공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어서인지 연도공사는 준비만 되어 있는 상태이고, 오늘까지는 자질구레한 외부공간의 마무리 작업으로 판단되었다. 대문을 열면 만나게 되는 평평한 콘크리트 바닥판의 주변에 U자형의 측구를 설치해 구릉지로부터 혹시 내려올 지 모를 우수 등을 대비하고, 현관 앞 서측 외부공간의 구배를 새롭게 잡고는 포장면과 흙이 직접 만나는 부분의 경계에는 쇄석을 채워 넣는 등의 일이 계속되었으며, 아랫집과 윗집을 연결하는 목재계단 후면부에 흙을 채워넣기 위한 목책작업도 마무리되었다.


작업에 참여한 인력과는 별개로 나는 안마당과 바깥마당을 번갈아 오가면서 몇 가지 완전치 않아 보이는 잔디깔기 작업의 마무리를 위해 공력을 보탰고, 작업반장의 조언에 따라 어느 곳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물어가면서 작업에 열중하였다
.


거칠게 본다면 외부공간의 자질구레한 공정의 대부분은 며칠 사이에 거의 마무리가 된 기분이었다. 보일러실 연도 재시공을 제외한다면 이제부터는 살면서 가족들이 하나씩 덧붙이고 고쳐가며 만들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잔디를 심고 가꾸는 일 뿐만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서 계절별 초화류도 오가면서 심고 감상해야 할 것이며, 마당을 쓸고 닦는 일, 대문에 문패를 설치하는 일부터 대문 옆 공지에 적절한 상록수종을 골라 식재하는 일 등이 여기에 해당될 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밖에도 아직도 손을 보아야 할 일이 더러 남아 있기는 하다. 지난 겨울 지하수로 인한 동파 때문인지 외부공간 콘크리트 바닥 일부의 크랙 부분에 대한 적절한 보완, 2층 아이들 공용화장실의 수전설비 보완, 외벽 스토커 탈락부분의 보완, 대문 안쪽 서측 외부공간의 경사 구배잡기와 조경적 차원의 보완 마무리, 주차장의 스토퍼 설치와 콘크리트 강화제 도포, 실내 페인트 하자 부분 보완과 못질 흔적 지우기 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들 공사는 전문가와 인력이 배치되면 단 하루만이라도 처리 가능한 일들로 판단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보일러실 연도 재시공이라 할 수 있다.


오전을 마무리하기 조금 전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도착하였다. 정기용 선생님 별세!!! 아, 그렇게 편찮으시더니 당신의 애창곡 봄날은 간다와 어울리게 올 들어 가장 따뜻한 날이라는 시각을 택해 세상을 버리신 것이다. 서둘러 외출준비를 마치고 평촌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 들렀다가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의 빈소를 찾았다. 빈소에는 아직 영정도 준비되지 못했고, 건축가 조성룡 선생님과 김영섭 선생님께서 먼저 가신 정기용 선생님을 안타까워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계셨다. 슬픈 마음과 안타까움을 점점 짙어지고, 늦은 밤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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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1.06.12 23:26

모처럼 봄 기운이 완연한 일요일. 어제 느닷없이 손위 처남이 전화를 걸어 와 당신이 다니는 교회 친구분들과 새로 지은 집에 방문을 해도 좋으냐 해 그러라 했더니 저녁이 가까울 무렵 모두 스무 명에 가까운 손님들이 한꺼번에 집으로 들이닥쳤고, 식사를 대접한 것은 아니지만 낯 모르는 분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이런 저런 질문에 답을 해 준 것이 피로해서인지 늦게 자리에서 일어난 식구들은 저마다 일요일 스케줄을 느긋하게 즐긴다. 늦은 아침을 마친 아내는 설거지도 하지 않은 채 강아지와 함께 불곡산 등산에 나섰고, 방학이지만 주말을 이용해 2박 3일 동안 친구들과 부산으로 맛 기행 여행을 다녀온 작은 아이는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집의 편안함에 취해 기척도 없다.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부지런한 큰 아이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고 이른 아침에 종로로 길을 나섰고, 별다른 일 없이 느지막한 아침을 먹은 나는 한가함이 오히려 권태와 무료함으로 바뀌는 일요일이다.

마당의 흙 속에 다져졌던 눈까지 질펀하게 녹아 따스한 느낌이 더욱 강해져 마당에 나서자 윗집 P 교수도 늦은 아침을 마친 표정으로 발코니에 나섰다가 서로 마주하게 되었다. 윗집은 오늘이 어머님과 형님 그리고 동생 내외가 모두 저녁식사를 하러 오기로 약속한 날이어서 아내가 음식만들기에 분주하다는 등의 소소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오후 2시 경, 등산에서 돌아온 아내가 전화를 받으며 무엇인가 요리 방법을 일러주는 모습이었다. 나는 나대로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이 생각나 윗집의 P 교수에게 휴대폰을 걸고 있었고, 전화를 마치고 나서려 하자 아내가 마치 컬링에서 쓰이는 듯 한 형상의 요리 기구를 건네면서 윗집에 가져다주라는 것이었다.
얘기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윗집의 큰 아이가 집안 어른들의 새 집 방문을 맞아 닭요리를 준비 중인데 지난 번 우리집에서 함께 먹었던 오븐을 이용한 요리를 준비하면서 레시피를 아내에게 물어 논 것이라면서 레시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요리기구가 중요하다고 대답해 주었다면서 그 기구를 윗집에 빌려준다는 것이었다. 마침 솔토건축에서 보내준 모형과 액자 가운데 모형은 제 자리를 찾았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액자를 그동안 서재 책꽂이에 비스듬히 기대놓았는데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에 석고보드용 피스 몇 개를 얻으려는 요량으로 윗집으로 가 요리기구를 건네며 P 교수에게 피스 2개와 전동 드라이버세트를 빌려 왔다.


서재 책상 위 벽면에 수평으로 설치된 액자는 방 분위기를 아주 근사하게 바꿔주었다. 액자에 담긴 그림이 마침 살구나무 윗집과 아랫집이 모두 들어간 스케치업 이미지인데다가 액자의 오른편에는 우리집에 적용된 복잡한 단면 디테일이 담긴 것이어서 이 방 주인이 건축학과 교수라는 점을 그대로 알려주는 직유의 수단이 되었으며, 동시에 흔히 주택의 벽면을 장식하는 복제 명화나 속내를 알 수 없는 추상화보다 훨씬 더 정감을 주는 나은 느낌이었다.

며칠 전 일찍 귀가한 날 마침 현장소장이 다녀갔다는 말에 서둘러 전화를 해 건축물 명패와 용인시가 배포한 새로운 주소지 안내판 등을 일괄해서 붙이려고 도움을 청하자 3월 3일에 깔끔하게 정리할 요량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석고보드용 피스를 아직 현장소장으로부터 얻지 못했는데 마침 P 교수가 몇 개 여유가 있다는 말이 생각나 무료한 일요일 오후 자그마한 일이라도 하고자 의도한 성과가 있었던 날이기도 하다.

솔토건축에서 보내온 액자를 벽에 걸고 트위터를 통해 건축가께서 새로 지은 집의 스케치업 도면과 외벽 단면상세가 담긴 액자를 보내와 서재 책상 위에 걸었다고 알리자 몇 분이 그 내용을 리트윗하면서 격려와 더불어 의견을 보내오기도 하였다.

뉴욕에서 일하고 있는 건축가 지정우 선생은 “@jungwooji 문화 전파 RT @salguajc: 살구나무집 설계를 하신 건축가 조남호 선생님으로부터 외벽 단면상세와 스케치업 파일이 담긴 근사한 액자를 선물로 받아 오늘 서재 책상 위 벽면에 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를 그대로 리트윗한 뒤 다시 아이폰을 이용해 “@jungwooji @salguajc 정말로 좋은 문화(건축문화, 주거문화)를, 관계(건축가와의 관계, 집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시는 모습, 존경스럽습니다.” 는 글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건축가 황두진 선생 역시 “@ttattun @salguajc 아 훌륭 훌륭,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조남호 선생님 멋지십니다.” 라는 글을 남기며 액자 선물을 주신 조남호 선생님을 추켜세워 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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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1.06.12 00:34

오전 10시 출근길에 집 앞에서 한샘 작업차량을 발견하였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오늘 화장실 일부를 손을 보러 왔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목요일이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루 먼저 작업을 하러 온 것이다. 마침 나를 배웅하던 아내는 한샘 작업인부를 보더니 화색이 돌았다. 지금까지 제일 불만이었던 곳이 안방 화장실이었기 때문이다. 세면대의 높이가 다른 곳에 비해 10cm가 높아 손을 씻으려면 팔꿈치 부분으로 물이 흘러내려 불편하고, 욕조의 배수도 용량이 작아서인지 시원스럽게 내려가지 않으며 환기팬은 용량이 작아 샤워를 끝낸 뒤에도 한동안 수증기가 욕실에 가득 찬다는 것이 불만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일을 한샘이 해결해야 할 것은 아니지만 사소한 부분이라도 불만의 내용을 줄이거나 완전하게 해결되었으면 하는 것이 내 생각이기에 차를 출발시키면서 안방 화장실 욕조의 일 처리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마침 오늘은 솔토건축의 이상목 실장이 강아지 집과 주택모형 그리고 조남호 선생이 특별하게 생각해서 제작하였다는 두 집의 스케치업 도면과 디테일 등이 포함된 패널을 배달한다고 연락을 해 온 날이기도 하다.

건축물 명패와 관련해서는 P 교수의 이메일이 도착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좋다는 평과 함께 건축 착공일이 사용승인서에 의하면 2010년 5월 4일로 명기되어 있는데 명패에는 5월 1일로 되어 있으니 사소한 것이지만 바로 잡아 만들자는 것이었고, 살펴본 뒤 최종 결정을 하겠다고 연락을 주었다.

다시 하나디자인의 이승주 실장에게 전화를 넣어 건축시공 일자를 5월 4일부터로 바로 잡아 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동시에 알루미늄의 두께가 너무 두꺼우니 1cm 내외로 줄여 명패의 무게도 줄이고 비용도 아끼자고 말했고, 도금은 하지 않아도 되며 콘크리트 벽체에 부착할 것을 고려해 무게가 어느 정도 나가면 명패의 상단 좌우측에 적절하게 구멍을 뚫어 못이나 피스 혹은 다른 철물 등으로 고정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한 뒤 이들 문제가 정리되는 즉시 명패를 제작할 수 있도록 주문을 부탁하였다.

오후에 확인을 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또 문제가 생겨 한샘의 작업자들이 준비한 물건과 현장의 수정 사항이 맞지 않는다고 해 설날 이전에 다시 와서 고치거나 아니면 설 연휴를 지난 뒤 전체적으로 손을 보는 일정으로 작업이 수정되었다는 것이다. 늘 그러하듯 현장의 상황과 조건에 대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겨 시간과 비용의 손실을 가져오는 것이 현장의 통상적인 습속이라는 점에서 좀 더 체계적인 작업내용 이해와 공종간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늦은 저녁에는 다시 건축물 명패 수정안이 도착되었다. 다른 사항은 이미 지적한 것처럼 모두 반영되었는데 이번에는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주소지 표기에 의문이 들었다. 즉,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1393-7번지로 디자인이 마련되어 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1393-7로 표기해서 ‘번지’라는 단어를 빼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저 관행적 방법으로 읽자면 1393번지 7호로 읽어야 하므로 호수 뒤에 번지를 붙이는 것이 뭔가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승주 실장에게 메일을 보내 의견을 전한 뒤 나머지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주문해 줄 것을 청하였고, 그 내용을 P 교수에게도 전달하였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오니 솔토건축의 이상목 실장과 안종진씨가 들고 왔다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조남호 선생이 지난 주 얘기한 것처럼 자작나무 합판을 이용한 살구나무 아랫집 모형과 위아랫집의 입면과 아랫집 투시도 그리고 거실과 아이들 방의 종단면 디테일이 그려진 1,200×400mm 크기의 장방형 패널이 유리가 끼워진 상태에서 거실에 놓여 있었다. 이밖에도 우리집 강아지인 ‘마루’의 집도 자작나무 합판을 재료로 해 깜찍한 형상으로 만들어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와 큰 아이는 좋아라 환호했지만 아내와 작은 아이는 조금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우선 아내는 모형의 크기가 거실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커서 이미 거실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작은 모형이 있던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으로 보여 어디에 놓아야 좋을지 선뜻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이며, 패널은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마땅히 붙일 자리를 찾아보았으나 여의치 않다는 것이었다. 강아지 집은 기존의 강아지 집을 대신해 거실 소파 옆에 앙증맞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오늘 물건을 들고 왔던 이상목 실장과 안종진씨 모두 적당한 위치를 추천하지 못한 채 돌아간 것으로 파악되었다. 아내 말로는 모형과 패널을 들고 집 안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패널을 벽에 대보는 등의 일을 여러 차례 하다가 마지막에는 그냥 바닥에 두는 것도 괜찮은 느낌이라면서 두고 갔다는 것이었다.
마치 전시를 앞두고 그림과 모형을 둔 것처럼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었다. 비록 밤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일부러 아내에게 의논을 청하고,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의견을 들어 솔토건축에서 보낸 모형은 적당한 깊이를 갖는 2층 가족실의 카운터에 올려놓기로 결정했는데, 마침 그 자리가 건축을 전공하는 큰 아이 방의 입구인지라 느낌도 괜찮고 건축을 공부하는 큰 아이가 오가면서 여러 가지로 공부가 될 것으로 보여 좋은 자리로 판단하였다. 도면이 그려진 채 유리 액자로 제작된 패널은 가로가 길고 세로가 상대적으로 짧은 형태여서 약간 올려다보는 기분으로 걸어놓고 보면 좋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런데 이미 모형전문가인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만들어준 작은 스케일의 아기자기한 기분의 모형이 거실 귀퉁이에 놓여 있고, 2층의 가족실 카운터에도 건축모형이 놓여있으므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패널을 이들과 같은 공간 영역에 두는 것은 조금 어설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 어느 벽면에 부착하건 액자가 위치할 곳은 서재였다. 아내 역시 이 의견에 동의를 하면서 지난 주말에 함께 구입한 SEDEC의 책상이 금요일 경에 배송될 것이라 했고, 그 책상은 서재의 한쪽 벽에 붙여 사용하게 될 것이므로 의자를 이용해 책상에 앉아 올려다보는 벽의 적당한 높이에 패널의 자리를 잡아 그림을 거는 것이 좋겠다고 해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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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일기2011.06.11 23:08

출근길에 아내가 전화를 하더니 내가 출근하는 도중에 상수도 검침원이 다녀갔는데 그동안 공사현장에서 사용한 상수도 요금을 하나도 납부하지 않아 연체료가 붙은 금액이 청구서로 날라 왔으며, 이번 달에 내야 할 12월 분 사용료도 함께 배달되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공사계약에 따르면 공사 중 사용한 상하수도 요금과 가스비용은 시공자 측이 부담하기로 되어 있으며, 며칠 전 납부한 가스요금의 문제만 하더라도 깔끔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내가 그 부분은 우리가 감당하자고 해 마지 못해 동의한 것인데, 상수도 요금의 문제는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라고 분명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나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윗집의 P 교수도 연루되어 있는 문제이고, 계약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즉시 P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아직 출근 전이라면 현장사무소에 가 이 문제를 정리할 것을 청하고, 나는 그 문제에 대해 감리를 책임지고 있던 이상목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의 문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런 문제를 현장소장이 좀 더 깔끔하게 처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사실 그동안 공사비와 설계비 및 감리비 등의 지불에 있어 한 번도 약속시한을 어긴 적이 없는 건축주로서는 계약에 들어 있는 다양한 조건들에 대해 질 높은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명쾌한 설명 내지는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운 구석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솔토의 이상목 실장에게 전화를 한 건 옳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면 감리자가 각종 제세공과금을 도급자가 지불하였는가를 따져 물을 것이 아니고, 오히려 건축주와 시공자의 공사도급 계약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에스화이브 김봉섭 사장과 두 명의 건축주가 논의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목 실장에게 전화를 건 까닭은 현장의 김소장과 직접 말을 나누는 것이 다소 불편하다는 개인적 판단과 함께 이번에 처음으로 두 채의 주택설계를 감리하게 된 이상목 실장에게 간접적인 경험지식을 얻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건축학과 교수로서 이상목 실장이 큰 건축가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전화를 걸어 온 아내로부터 몇 가지 일에 대해 소상하게 들었다. 하나는 2층 큰 아이 방의 바닥난방 문제가 배관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인데 2층의 두 방으로 나뉘어 들어갈 배관이 모두 작은 아이 방으로 들어가도록 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어서 이를 바로 잡았으며, 보일러 기술자로부터 온도 조절 등을 위한 기계조작 방법을 익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오늘 아침 언급한 상수도 요금과 관련한 문제인데, 우연히 현장소장을 만나 이 문제를 의논하였더니 공사도급 계약서에 명기한 것처럼 이는 자신이 담당할 문제라면서 현장소장이 고지서를 들고 갔으며, 책임지고 문제를 처리할 것이니 염려 놓으라 했다면서 그동안 수도사업소 측과 공사 진행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밀고 당기는 일이 있어 요금을 납부하지 않아 빚어진 일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는데, 아내가 앞으로도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 뒤 특히 남편이 공과금 문제의 체납 등에 무척 예민해 하는 사람이니 원만하게 일처리를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그동안 벽지 등을 임시로 붙여 창을 가렸던 것이 블라인드 설치로 모두 마무리되었으며, 블라인드가 설치되지 않는 곳 일부에 대한 시트지 접착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자 에스화이브의 김 소장이 그 역시 이른 시간에 처리한다고 했으며, 안방 화장실의 일부 보완과 수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도 조속한 처리를 요청하여 다음 주 목요일에 한샘 기술자가 방문하여 화장실내 수납장과 세면기 높이 조정 문제를 해결하도록 약속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일단 지금까지 불거진 가벼운 문제들에 대해 일괄적인 해결대안이 마련된 셈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울 무렵 조남호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에 대해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는지, 각종 공과금 고지서 처리에 대한 언급, 향후 대응해야 할 집의 여러 부분에 대한 문제점 해결 방안 등에 대해 가볍게 생각을 나누었고, 오늘 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집을 방문하였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오케이. 건축가를 아버지로 둔 아이들과 그를 남편으로 둔 아내에게 자신이 혼신의 힘을 기울인 성과물을 보여주는 것은 다른 직업인으로서는 감히 꿈꿀 수 없는 일이거니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중요한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건축가와 시공자 등을 공식적으로 초청하여 소박한 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별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방문은 비공식적인 가족나들이 쯤으로 해 서로 저녁식사를 해결한 뒤 밤 9시 경에 산보 삼아 우리집으로 와 차를 한 잔 나누면서 정담을 나눌 것을 제안하였다. 아내의 스케줄도 중요하므로 아내에게 연락을 취해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흔쾌히 좋은 일이라며 동의해 주었고, 조남호 선생에게 문자를 보내 약속 시간에 집으로 올 것을 청하였다.

퇴근을 하며 우편함을 보니 이번에는 전기요금이 청구되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전기요금은 그동안 체납한 것이 없었지만 우리가 부담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현장소장이 부담해야 하는지 구분하기 모호한 청구내용이었다. 12월 15일부터 1월 7일까지 사용한 전기 비용을 청구한 것인데, 준공 이후라면 우리집에서 7일분을, 나머지는 현장소장이 부담해야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신이 이 문제를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청구서를 자신에게 달라 하여 보조주방 어딘가에 두는 모습이었다.

저녁 9시가 조금 지나자 조남호 선생 가족이 도착했다. 이제 막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과 5학년이 되는 딸 그리고 아내를 동반한 조남호 선생 가족을 데리고 새로 지은 집의 이곳저곳을 안내했다. 큰아이에게 조근조근 집 설명을 하는 조남호 선생과 그의 아내에게 집 구경을 다 시킨 후 어른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아이들에게는 우리 집 큰 아이가 아이패드를 건네주었다. 정담은 이어졌고, 밤 11시가 되어 P 교수가 도착해 윗집으로 옮겨 다시 집 구경을 하였다.

마침 조남호 선생은 휴대폰에 언젠가 만들어 준다고 약속했던 강아지집 사진을 담아 왔다. 나와 P 교수 그리고 조남호 선생집에서 모두 강아지를 기르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집을 3개 만들어 서로 나누어 선물로 준다는 것이었고, 내친 김에 다음 주 월요일을 전후해서 조남호 선생이 직접 가지고 오거나 아니면 이상목 실장을 통해 죽전 살구나무집의 모형과 패널도 각각 하나씩 만들어 보내준다고 약속하고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살구나무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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