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_을 펴내며2017.06.23 19:45

출판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원고지를 채워나가던 2016년 봄 서울역사편찬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울이천년사] 35권과 40권에 원고를 보태 감사를 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서울역사편찬원에서 별도로 기획, 발간중인 서울문화마당 시리즈 단행본 가운데 하나인 [근현대 서울의 집] 원고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서울이천년사] 원고만 하더라도 시간에 쫓겨 꾸역꾸역 원고를 썼던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새로운 원고, 그것도 단행본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니 일단 어렵다고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판단하고, 사정이 딱하지만 힘들다고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그런데 다시 청을 해 와 하는 수 없이 덜컥 그러마고 했고, 결국 원고마감을 가까스로 지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채운 원고지가 600여 장 정도. 물론 그림도 꽤 많아 내심 원고량을 걱정하였지만 서울역사편찬원에서 잘 마무리 해 주신 덕택에 자그마하고 단정한 책으로 만들어졌다. 2017년 6월 23일이 출간일이니 책이 나온 날 바로 받은 셈이 되었다. 이 책은 비교적 잘 읽히도록 만든다는 것이 의도였지만 그렇다고 쉽게 써야 할 것은 아니었으니 결국 글솜씨가 문제인 셈이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다시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미 책은 나왔으니. 이제 모든 잘못은 필자에게 있음이다.

 

여는 글 /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인 천만 서울시민의 삶의 기억

 

<서울연구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2015년 말을 기준으로 서울에는 모두 천만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데 한 세대는 평균 2.39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대략 420만 정도의 세대로 구성되어 대도시 서울에서의 삶을 꾸리고 있다. 역사도시이자 첨단도시, 국제도시로서 한 나라의 수도라는 특별한 지위를 갖는 서울을 움직이는 천만이 넘는 시민은 280만 채에 이르는 에서 하루를 열고 닫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천만의 시민들이 이어가는 일상은 매우 독립적일뿐만 아니라 서울이라는 지리적 공간의 범주를 넘나들며 서로 다른 장소와 공간에서 다채로운 삶의 양태를 드러냄으로써 현대도시 서울의 거주풍경을 만들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천만 서울시민의 다양한 삶이 지속되도록 지지하고 지탱하는 최소의 거주단위인 의 유형은 생각과는 달리 몇 가지로 수렴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변화 정도가 가장 적고 비록 그 모습이나 내용이 일부 바뀌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 변화주기가 가장 길었던 건축 유형의 하나가 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건축사와 문화사, 생활사를 통해 확인한 바 있을 정도로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서울시민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는 오늘의 주택유형을 꼽아본다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일반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그것으로 280만 채에 달하는 집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2015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서울에 존재하는 280만 채에 달하는 [住宅]’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아파트로서 전체 주택유형 중 58.6%를 차지한다. 15년 전인 1990년에 비해 110만 채 이상이 늘어, 전체 서울의 재고주택에서 차지하는 점유비도 35%에서 가장 많이 늘었다. 그러니 서울을 아파트 도시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비약적인 증가라 아니 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높은 점유비율을 보이는 주택유형은 다세대주택이다. 다세대주택이 654천 채를 넘는 수치를 보임으로써 서울의 재고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아파트에 이어 23.4%를 차지한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한 다른 주택유형을 내림차순으로 살펴보면 누구나 쉬 짐작하듯 일반 단독주택연립주택이 뒤를 있는다. 그 가운데 단독주택은 12.7%를 점하고 있으며, 연립주택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4.2%를 기록하고 있다. 단독주택은 대략 355천 호, 연립주택이 117천 호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서울시민이라면 짐작할 수 있듯 서울의 주택유형 가운데 끊임없이 늘고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점점 줄어드는 유형도 당연히 존재한다. 이미 서울의 비약적 인구 증가는 거의 그쳤고, 해마다 다르지만 일부 줄어드는 경우도 나타난다.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은 예외 없이 늘어나는 주택유형에 속하지만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유형에 속한다. 근래 서울의 행정구역 확장이나 축소 등의 변화가 없었고, 인구 역시 급격하게 늘거나 줄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이는 곧 오래된 것의 소멸과 새로운 유형의 등장의 반복되며 그 모습을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줄어들며 그 자리를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가 빠르게 채워나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주거유형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거주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달리 말하면 소위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통해 도시의 공간구조나 풍경이 바뀌었다는 사실로도 설명할 수도 있다. 결국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라는 주택유형으로 서울의 집이 수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공유주택이니 타운하우스니 하는 새로운 호칭을 가진 집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법률적, 제도적으로 이들의 대부분이 다세대주택이거나 연립주택인 것처럼 오늘날 서울의 집은 유형학적으로 본다면 결코 다양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서울의 집가운데 아주 미미한 숫자에 불과한 비주거용 건물 내 주택을 제외하고 유형학적으로 살피자면 아파트, 다세대주택, 단독주택, 연립주택의 네 가지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근현대 서울의 집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지난 100년 동안 이들이 서울의 집을 대표하게 된 연원을 계통적으로 살피고 그 궤적을 따라 걷는다. 일례로 도시한옥처럼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커다란 반향을 보이며 대중적 유행을 누렸으나 그 명맥을 잇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그 가치와 의미가 새롭게 평가되어 70여 년 만에 다시 서울의 집을 대표하는 유형으로 새롭게 자리매김을 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승만 정권 때 도시미화의 방편으로 별안간 궁리된 상가주택이나 허허벌판이던 도시 주변부를 새로운 교외주택지로 만들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고안한 점포주택이 서울의 고밀화 과정을 통해 단지형 아파트주상복합아파트로 변태를 거듭했던 사실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흐름을 산책하듯 따라 걷자는 취지로 쓰였다.

 

책 제목 끄트머리에 주택이 아니라 을 택한 이유는 단순히 주택의 형태와 형식에만 주목하는 건축역사와 양식사의 시선에서 벗어나 서울시민들의 보편적, 규범적 생활문화사를 폭넓게 다루어보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울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집의 변화 혹은 변이의 과정과 경로를 일정한 궤적에 따라 살핀 뒤 다시 오늘의 모습에 이르게 된 과정을 담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 책은 서울이라는 지리적, 공간적 영역에 주목하되 행정구역의 확장이나 그에 따른 도시계획의 변화 등과 같은 입장에서 조금 비켜선 채 서울 주거문화 흐름과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기원을 찾아보고, 변화의 동인이 무엇인가를 살핀 것이다. 책에 담긴 내용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공감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근현대 100년 동안 서울 사람들이 살아온 풍경이며 기거문화를 소설과 신문 등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대중매체와 각종 문헌자료에 의지해 담아보았다. 물론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이는 모두 필자의 책임으로, 나태함이 빚은 과오다.

 

책을 이루는 글의 덩어리는 모두 네 가지로 구성되었다. 1장은 일제강점기의 단독주택을 대표하는 관사와 사택, 도시한옥과 문화주택으로부터 영단주택을 거쳐 한국전쟁 복구과정에 등장한 다양한 유형의 주택을 살핀 뒤 개발경제기에 등장하게 된 민영주택과 이후 오늘의 보편적 서울의 집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게 된 다세대주택에 이르기까지의 경로와 과정을 살펴보았다. 특히 1960년대 중반 민영주택의 등장과 확산과정을 생활문화사 차원에서 살핌으로써 단독주택의 갈래를 살폈고, 단독주택이 1980년대를 거치며 여러 가지 색다른 유형으로 바뀌게 된 과정을 훑었다.

 

2장은 아파트의 등장과 변화의 흐름을 주로 기술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 최초의 아파트와 초기 사례부터 1960년대를 관통하는 정부와 서울시의 아파트 공급 전략을 통해 국민주택의 대표적 유형이었던 아파트를 새삼 확인한 뒤 대한주택공사와 서울시의 아파트 건설 내용을 경향적으로 살폈다. 이를 통해 단지형 아파트와 좌절된 서울시민아파트 등이 도시중간층의 급신장으로 인해 중산층용 맨션아파트로 변모하는 과정을 기술했다. 그리고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아파트가 서울의 다수를 차지하는 대단위 단지형 아파트로 변모하는 과정을 바라보았다.

 

3장은 연립주택의 기원과 전망을 다루었다. 일제강점기에도 노동자주택이나 합숙소의 형태로 일부 등장한 바 있는 연립주택이 한국전쟁 이후 부흥주택 등으로 대표되는 복구와 재건의 시기에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주거유형으로 주목받았던 내용을 먼저 다루었다. 그 뒤를 이어 연립형 주택이 개발경제기를 거치며 여러 가지 실험과 시도를 통해 새로운 보편적 도시주택 유형인 오늘날의 연립주택으로 자리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또한 급격하게 신장된 새로운 도시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아파트와의 시장주택 경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아파트의 하위 주택상품으로 전락하는 과정과 함께 저밀도라는 환경의 질적 조건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강남 개발과 함께 고급 연립주택을 일컫는 빌라와 맨션으로 분화하는 과정도 더불어 다루었다.

 

4장은 전후 복구와 수도 서울의 위신 세우기 수단으로 궁리되었던 상가주택과 교외주거지 개발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만들어졌던 점포병용주택이 1960년대를 관통하며 도시미화와 정비의 효과적인 방편으로 활용된 상가아파트로 변신하는 과정을 살폈다. 특히, 1970년대에 본격화된 강남 개발에 따른 노선상가 아파트 확대와 일부 중산층 아파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아케이드형 맨션아파트를 거쳐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 이르게 된 과정을 눈여겨보았다. 이 과정에서 단독주택이 주를 이루었던 상당수의 교외 점포주택지는 이미 서울의 보편적 주거유형이자 지배적 유형인 대단위 단지형 아파트에 편입되거나 여전히 오래 전의 풍경을 간직한 채 서울의 주거지로 남았음을 확인하고 그 내용을 간추렸다.

 

일정한 시기 혹은 사회변화의 기제이자 가치라고도 할 수 있는 의미어로서의 근대 혹은 현대는 대도시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구한말의 개화에서부터 일제강점기의 수탈적 식민지 근대화, 건국과 분단, 산업화과정과 주택시장의 급신장 과정에서 빚어진 인간 소외와 불구적 이미지화를 거쳐 때론 천박한 자본주의의 극한적 양태라고도 불리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지난 백여 년 동안 기거양식의 일정한 질서라 할 수 있는 주거문화는 혼돈과 충돌 그리고 갈등과 수용의 연속이었다. 근현대 서울의 집은 주마간산 격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담아내려고 애쓴 결과물이다.

 

이 책을 통해 서울시민들이 근현대의 시간을 함께 산책하며 어렴풋한 기억을 길어 올려 복원하거나 반추한다면 어떤 이에게는 편리와 풍요, 성장과 발전이라는 양지로 회상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뿌리 뽑힘과 난민 정서로 대표되는 응달의 상흔을 남기기도 할 것이다.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그리고 연립주택과 단독주택은 오늘날 서울의 대표적 주거유형이자 시민들의 삶을 의탁하는 보편적인 장소이자 사회적 공간이다. 이들이 어떻게 서울의 대표적 주거유형으로 정착하게 되었는가를 따라 천천히 걷는 근현대 서울의 집을 통해 서울 시민 모두가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인 삶의 기억을 반추하는 한편 역사도시 서울이 맞닥뜨릴 새로운 시대의 문화풍경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한국주택백과2014.03.06 16:58

같은 말이지만 다른 뜻을 가진 국민주택

2002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씨는 200211월 대통령 후보들의 부인을 취재한 <여성동아> 인터뷰에서 적은 판사 월급 때문에 신혼시절이 많이 어려웠는데 다달이 돈을 쪼개 모아도 내 집 마련이 힘들었다면서 15년 동안 상환하는 융자를 받아 불광동 쪽에 국민주택을 샀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런데 어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결국은 매달 갚아야 하는 불입금을 갚지 못해 집에 빨간딱지가 붙고, 어쩔 수 없이 그 집을 팔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아픈 경험을 언급하면서 그 후에도 겨울이면 수도가 얼어 물이 나오지 않아 고생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아련하다고 밝힌 바 있다.

 

1943년생인 황석영 작가는 자신의 사춘기 시절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방황을 엮은 장편소설 [개밥바라기별]을 통해 이회창 후보가 살았다는 불광동 국민주택을 묘사한 바 있다. “그때는 아현고개 넘어 신촌만 나가도 벌건 흙길에 솔밭뿐이었는데 불광동까지 가면 사방이 개구리 우는 논밭이었다. 그곳에 이른바 국민주택이라고 집장사 집들이 줄지어 생기기 시작했다.” 단정하고 깨끗한 입성으로 등굣길에 나선 친구 정수가 살던 국민주택 밀집지역의 동네 묘사이다.

 

1959630일 준공된 불광동 국민주택 전경 대한주택공사

 

작가의 성장기 소설이나 대통령 후보 부부의 신혼시절 회상을 꼼꼼히 살피면 불광동 국민주택이 19594월에 착공하여 같은 해 6월 말에 준공하였다는 대한주택영단의 국민주택 건설기록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의 국민주택(國民住宅)’과 요즘 우리들이 알고 있는 국민주택이 같은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단어가 의미하는 뜻을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흥미진진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국민주택국민주택기금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건설되거나 개량되는 주택으로서 1세대 당 주거전용면적이 85이하인 주택을 말한다. 다시 말해 국민주택으로 분류되려면 국민주택기금 지원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주거전용면적도 85이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국민주택 가운데 민간건설 중형국민주택이란 것도 있다. 이는 민간에서 짓는 60초과 국민주택을 말한다. ‘국민주택등()’이라는 용어도 있는데 이는 앞서 설명한 국민주택과 국가, 지자체, LH, 지방공사가 건설하는 주택으로 임대를 목적으로 하는 주거전용면적 85이하의 공공건설 임대주택을 말한다. 그럼 국민주택등에 속하지 않는 주택을 어떻게 불릴까. 야릇하게도 모두 민영주택으로 분류된다. 민영주택(民營住宅)이 아니라면 쉽게 공영주택(公營住宅)을 떠올릴 수 있지만 어쨌든 그 상대어는 국민주택등이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대한주택영단(현재의 LH로 통합되기 전의 대한주택공사)의 세밀한 기록에 의하면 단기 429241일 보건사회부 주관하에 대한주택영단에서는 귀재적립금(歸財積立金)을 재원으로 하여 4292년도 제1차 국민주택건설사업에 돌입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서기 년도로 표기하면 195941일 귀속재산적립금을 재원으로 하는 국민주택 건설을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 기록이 전하는 사업지구가 바로 서울 불광동이고, 작가 황석영의 소설에 등장하는 동네이자 이회창 후보 내외가 신혼시절을 지낸 곳이다.

 

결국 주거전용면적의 한계와 국민주택기금 지원 여부에 따라 분류되는 요즘의 국민주택과 달리 당시의 국민주택이란 귀속재산적립금을 조성해 이를 융자함으로써 건설한 주택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때의 국민주택은 상가주택(商街住宅)과 더불어 귀속재산적립금을 재원으로 지어진 주택을 말하는 것이니 요즘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당시에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융자금을 변통해 주는 주택을 통틀어 원조주택(援助住宅) 혹은 후생주택(厚生住宅)이라고 불렀으므로 불광동 국민주택도 여기에 해당한다.

 

평화촌(平和村)에서 벌어진 전쟁 같은 삶

19596월 준공된 불광동 국민주택은 그 전의 것을 대폭 새롭게 개량한 것이었다는 것이 여러 문헌과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그런 때문인지 불광동 주택은 짓는 이들이나 현장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동네를 일컫기를 온화한 환경과 평화로운 분위기라며 입을 모았고 급기야는 이곳에서 살면 신선한 공기 때문에 도심지에서의 피로가 자연스레 풀릴 것이라 해서 평화촌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를 기화로 불광동 국민주택지로 들어가는 다리를 평화교라 이름 붙였다. 경사지를 따라 102채의 문화주택이 들어섰고, 주택지에는 어린이놀이터와 분수까지 갖추었으니 당시로서는 가히 문화촌이라 부를만했으리라.

 

     

                   불광동 국민주택의 전형적인 모습 대한주택공사                                                불광동 국민주택지구 배치도 대한주택공사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이곳에서 가장 넓은 18평 주택의 경우에는 잠자는 곳과 식사를 하는 곳을 나누어 이른 바 식침분리(食寢分離)를 꾀하였다. 식사공간을 별도로 설치하였던 것이다. 변소 역시 수세식은 아니지만 악취를 가급적 줄이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특허를 얻은 뒤 이곳에 적용하였다. 상수도가 보급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대가 낮은 곳에 큰 우물을 설치해 지하수를 모은 뒤 펌프를 이용해 이를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물탱크로 올린 뒤 집집마다 공급하는 방식을 택해 물 사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불광동 국민주택의 102채 주택은 규모별로 10, 13, 15, 16평 그리고 18평의 주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민주택은 무주택자를 위한 정책자금이 지원되는 주택인 까닭에 분양신청서와 함께 동장이 발행하는 무주택증명서를 준비해 분양을 신청하도록 되어 있었다. 분양가는 물론 시세보다 저렴하게 책정하였다고는 하나 돈이 넉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입주금(164만환~305만환) 뿐만 아니라 잔액(원리금 상환기간은 10, 연리 8%)을 매달 할부금으로 갚아야 해 여간 부담이 큰 것이 아니었다. 평균적으로 보면 매달 납부해야 하는 할부금이 최저 1만환(10)에서 최고 18천환(18) 정도였다. 대부분의 입주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어서 편법이 성행했고 뒷거래가 난무했다. 입주금을 내서 입주했다 하더라도 다달이 부어야 할 할부금이 부담이 된 까닭에 A에게 분양했는데 B가 입주해 살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들어갈 살 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절 궁여지책으로 불법적인 전대(轉貸)가 벌어진 것이었다. 평화촌에서 벌어진 전쟁 같은 삶의 단편적인 모습이었다.

 

단독주택 시대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국민주택

불광동 국민주택의 뒤를 이어 서울에서는 우이동 국민주택이 건설되었다. 1961년의 일이었다. 작가 이규희는 <우이동 골짜기>라는 글을 통해 당시 우이동 국민주택을 묘사한 바 있다. “70년대 초반, 나는 시내에서 전세를 얻을 수 있을까 말까한 돈을 들고 우이동 골짜기로 들어갔다. 대지 39평에 건평 14.5(전용면적)짜리 국화빵집 십여 호가 옹기종기 혼기를 놓친 처녀들처럼 암담하니 엎드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의 상징인 문명의 줄기라고는 겨우 절기 하나가 연결되어 있을 뿐 주택의 기반 시설이 아예 되어 있질 않았으니 입주가 더딜 수밖에 없었을 터.”라고. 그곳에서 식수는 곡괭이로 땅을 파 펌프를 묻어 해결했으며, 조라한 구멍가게에서 시든 야채를 구입하고 30분 간격의 시내버스로 나들이를 했다는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파트는 인기가 전혀 없었다. 1970년이 되어도 우리나라의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0.77%33,372호에 불과했고, 단독주택은 전체 주택의 95.3%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국민주택이 만들어지던 당시 어떠했는지는 가히 짐작이 된다. 아파트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어도 직접 보았거나 들어가 본 사람 역시 미미했을 것이다. 게다가 내 소유의 땅과 마당이 없는 집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누구에게나 찜찜한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대한주택공사는 1960년대 초에 수유동 국민주택 옆에 연립주택을 공급하기로 한다. , 사람들이 아파트의 쾌적함에 대해 인정하는 바가 없진 않으나 인기가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단독주택보다는 낮은 공사비로 아파트 생활과 유사한 쾌적감을 주는 동시에 정원을 두어 단독주택의 소유의식을 고양하자는 것이었다. 서서히 공동주택의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었다.

 

                                                                        국민주택이 지어지던 당시 건설된 도화아파트 대한주택공사

 

                                                                       1966년 화곡 10만 단지에 건설된 국민주택 대한주택공사

 

수유동의 연립주택은 196312월에 준공되었는데 주택공사측이 예상한 것처럼 큰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분양을 마쳤다. 입주자들의 입을 통해 단독주택에 비해 생활이 편리하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여전히 독립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 사람들의 꿈이어서 당시 연립주택은 제법 규모가 있는 공장의 종업원 숙소 등으로 건설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건설이 부진하였다. 그러는 사이 아파트가 서서히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의 아파트는 그저 제한적인 땅에 어떻게 하면 많은 집을 넣을 수 있을까 정도를 고민한 주택이었기에 지금과는 많이 다른 것이었다. 결국 단독주택인 국민주택과 공동주택인 연립주택이 잠깐이나마 경합을 벌였지만 아파트 중심으로 주택공급의 방향이 급격하게 전환되었다. 단독주택 시대의 끄트머리에 바로 국민주택이 후줄근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은 주택(여원사, 1964), 대한주택공사 20년사(대한주택공사, 1991), 주택(대한주택공사, 1959), 한국공동주택계획의 역사(세진사, 1999) 등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생각2012.08.09 20:47

‘백약이 무효’라는 말은 요즘 부동산 정책 입안자들이 자조하는 말이다. 냉담한 시장은 자신도 그 효능을 자신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진통제를 원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그나마 지닌 몸의 면역력을 아주 상실할 것이 염려되는 까닭에 정책입안자들은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도리가 없는 형국이다.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잘 알려진 처방을 반복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어렵사리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를 내놓으니 빚 늘려 은행이자 갚으라는 얘기냐는 비난에 직면하고,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한다는 뜻에서 몇 가지 생각했던 감세 조치 등을 발표했더니 그렇게 할 일이 없어 골프장 사업자 걱정이냐는 핀잔이 돌아온다. 은행은 그 끝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계속되는 집 값 하락으로 인해 담보가치인정비율(LTV)이 높아지자 이자는커녕 원금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며 내심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정부는 가계대출에 대한 은행간 CD금리 담합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이유가 은행의 높은 이자율 때문이라면서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대책 없는 책임전가가 진흙탕 싸움과 다를 것이 없다.

 

소위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하우스 푸어’ 중에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고 고집하면서 집값 앙등을 노리고 자금을 끌어다 댄 투기꾼이 없지 않겠지만 열심히 주어진 일과 세상을 살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듣도 보도 못했던 ‘하우스 푸어’에 속하고 만 경우도 적지 않다. 약삭빠르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오늘도 빚 걱정에 한숨이 턱에 차오른다. 열심히 일터에 나가 월급 받아 알뜰살뜰 모아 집을 장만하려고 한 것이 죄가 되었을 뿐이라는 점에서 세상을 탓하지만 약삭빠르지 못했다는 주위의 핀잔 때문에 그 궁극은 자기 모멸감으로 되돌아온다. 좁은 집에서 살다 조금 넓은 집으로 늘려가려던 애틋한 소망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을 ‘하우스 푸어’라 싸잡아 비난하는 일에는 세상이 야속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까지 모리배나 투기꾼으로 뭉뚱그려 낙인을 찍고 비난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하우스 푸어’에 대한 일방적 편견을 잠시 거두고 상황을 살펴보며 대안을 찾는 일이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될 터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공공정책이다. 집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주거권의 토대이고,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보장되는 나라라면 공공정책이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가능하게 만들어야 하며, 그래야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결국 지혜를 모아 민심을 거스르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그동안의 처방이 효과가 없었다면 다른 대안 찾기에 나서야 한다. 그저 소나기만 피하자는 식의 임시방편이거나 자본과 시장 분위기에 눌려 좌지우지되는 남의 다리 긁는 식의 종합 처방이 아니라 병증(病症)의 원인을 제대로 짚고 구조적이며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의 안전망과 건전성, 나아가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한 부동산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기금이나 국민주택기금 등과 같은 목적형 정책기금, 혹은 공공기관의 매입임대 사업 예산 등을 이용해 문제가 되고 있는 거래 정체 현상의 물꼬를 트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다. 공무원연금이나 재건축 사업 대상이 되는 공무원임대아파트 등 공공임대주택의 매각 기금의 일부와 국민주택기금 등 부동산 관련 기금 그리고 공공기관의 매임 임대주택 관련 예산을 종자돈으로 하고 시중에 차고 넘친다는 유휴 민간 자금을 활용해 정체 현상을 빚고 있는 시장의 매매 대기 주택을 매집하여 공적 목적으로 비축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이를 전문으로 하는 제3섹터의 조직이나 특수목적법인을 새로 설립할 수 있다.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우선 비축대상 주택으로 삼되 향후 정책적 효과를 보아가며 확대할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즉시 사용(입주) 가능한 국민주택규모 이하를 1순위로, 그렇지 않은 경우를 2순위로 삼는다면 서민과 중간층을 위한 정책이라는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당연히 민간건설업체의 미분양 아파트 등은 비축대상에서 제외한다. 비축대상 주택의 우선순위와 매수대상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급증하고 있는 ‘베이비부머’들이 소유하고 있는 주택을 전세나 월세 등으로 전환하기 위한 주택매집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비축 대상주택의 매입가격은 재산세 부과의 기본이 되는 공시가격을 최저가로 하고 비축대상 주택의 부동산 거래 신고서를 통해 세무당국에 신고한 가격을 최고가로 하는 범위 안에서 공정한 감정평가사의 평가 결과를 참고하는 협의 매수방식을 택한다. 결국 주택소유자의 입장에서는 손절매(損折賣)라는 탈출구를 갖게 되는 셈인데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적어도 당분간은 공시가격 이하로 집값이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시그널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정책적 신뢰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투기꾼과 실제 ‘하우스 푸어’를 구분하는 실효성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전국에서 매집된 비축 주택은 전세가격 안정 등을 위한 공공 및 민간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신규 주택구입 희망자에게 매도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소유권 이전이 완료되는 매도 시기는 임차계약이 완료되는 시점에 맞추면 세입자와 소유자 사이의 분쟁이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으며, 공공이 비축한 주택을 매입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서는 중개수수료 면제와 더불어 일정 비율의 취등록세 감면 조치를 통해 거래활성화를 제도적으로 지원한다. 소유주택을 전세 등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경우에는 임대차보호법에서 정한 범위 안에서 거주자의 계속 거주권을 보장하는 방법도 동원할 수 있다. 비축주택 매입 가격 대비 매도 가격이 높을 경우 발생하는 차익에 대해서는 주택 비축에 종자돈이 된 공공기금이나 민간 유휴자금의 투자 이익으로 계상하거나 배당하고 이익에 대한 일정한 세금 감면조치를 더불어 취하면 될 터이다.

 

이 방법은 그동안 반복을 거듭했던 규제 완화나 감세 조치와는 아주 다른 방법일 수 있으며 정책적 목표 이외의 다양한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우선은 거래 정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서민과 중산층의 주택거래 활성화에 기여해 자금 흐름의 차단 현상을 상당부분 해소함으로써 높은 이자 부담으로 고통 받고 있는 ‘하우스 푸어’들의 걱정거리를 줄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연기금의 공적 활용이라는 대의와 명분을 얻을 수 있는 동시에 시중의 부동자금을 건전한 투자처로 유인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주택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의 일정 부분을 완화하거나 해소함으로써 경제계층의 자연스런 이동 효과를 도모할 수 있다. 또한 불안정한 전세가격의 안정에 기여함은 물론 전국적으로 다양한 규모의 공공 임대주택을 비축함으로써 노령화와 가구구성 변화에 공공의 정책적 대응력을 높이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분양주택의 판매와 신축 아파트의 입주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효과를 나타냄으로써 건설경기 활성화에 긍정적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실수요자와 투기꾼을 자연스럽게 구분함으로써 정책적 수혜 대상자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으며, 이는 공공정책의 순기능에 부합하는 일이다. 물론 부동산 거래 활성화로 조세 수입 증가가 기대될 뿐만 아니라 안정적 주거공급을 통한 내수시장 활성화에도 적지 않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다리 걷어차기로 인식되고 있는 현재의 ‘하우스 푸어’에 대한 오해 혹은 편견이 해소됨으로써 경제계층 상승을 위한 안정적인 사다리를 제공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나아가 조기 퇴역하는 ‘베이비부머’들의 소유주택을 임대주택으로 전화함으로써 그들의 경제활동 유인력을 제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같은 아이디어는 현재의 집값이 미약하게나마 상승하거나 적어도 보합세가 유지되거나 한다는 점을 가정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 하락이 지속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 마련 역시 준비되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는 가정은 단순히 부동산 정책의 문제뿐만 아니라 세수(稅收)의 대폭 감축과 함께 중간층의 급격한 붕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어차피 준비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다른 정책과의 연계를 통해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하며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공적 연기금의 손실 보전방안이나 투자자금의 손해 발생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 대책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미리 준비되어야 할 정책적 틀은 부동산 가격의 단기 폭락보다는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가격 하락을 정책적으로 유인해야 한다는 상황에 대한 공감이며 이를 위해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방안도 매뉴얼 형식으로 마련해두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원론적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그 간극을 줄이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구체적인 상황의 해소 방안을 가지고 논쟁하고 토론하고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원론적 주장의 대립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많은 ‘하우스 푸어’에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주장을 들이대면서 정치적 선명성을 구분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아직 정쟁의 대상으로 심기에 이른 감이 없지 않다.

 

※ 이 글은 2010년 8월 20일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글 “하우스 푸어, 조금은 생뚱맞은 생각”을 보완, 발전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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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공간산책2011.05.09 23:03

어린 시절,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강보에 싸여 사과상자에 담긴 채 고아원 앞에 버려진 뒤 다 자라서는 다니던 우유 가공회사를 그만두고 뒤늦게 대학에 들어간 소설속의 화자 ‘나’는 학교에서 만난 동갑내기 강선배의 유학에 따른 배려로 그녀가 살던 연립주택을 맡아주게 된다. 그리고 그 집을 부탁한 강선배로부터 연립주택의 작은 방을 세주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세든 이가 사라진 뒤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듣는다.

세들어 살던 '은오'가 벗어놓은 베란다의 스웨터를 입고, 은오가 살던 집에서, 은오가 하던대로 운전학원 쪽을 바라다보는 나는 이웃집 여자와 편의점 종업원 그리고 전화를 걸어 온 남자에게 진짜 은오인지를 확인받는다. 그러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여자로부터 까닭없이 머리채를 움켜 잡힌다. 그리고 은오의 화장대에 앉아 서랍속의 수첩을 꺼내 자신과 같은 혈액형 A인 은오의 성(姓)은 은이요, 이름(名)은 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윤성희의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에 담긴 소설 <이 방에 살던 여자는 누구였을까?>는 같은 책에 담긴 다른 아홉 편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도시 속의 작고도 외로운 존재들에 대한 하염없는 묘사로 일관된다. 그리고 소설 속의 화자와 그 소설 속의 다른 등장인물과의 일체화를 기억의 끈과 상실의 동의어로 그려낸다. 이에 대해 평론가 방민호는 ‘윤성희의 소품들은 그늘에서 자라는 작은 꽃들같은 인상을 남기며, 깊은 밤 스탠드를 켜든 사람들에게 먼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평한 바 있다. 이렇듯 윤성희의 소설 대부분은 절망 속의 인간에 대한 자기확인 과정이며, 끊임없는 자기복제의 상징으로 읽힌다. 그녀의 글은 그래서 상징을 의미로 읽어내는 수완이 필요하며, 피로와 상심과 가난 그리고 기억과 희망 등의 단어가 그녀의 글을 읽어내는 키워드이다.

"그림자를 삼켜버린 또 다른 그림자를 만난 다음에야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구겨진 도화지로 만든 집처럼 볼 품 없이 서 있는 연립주택의 그림자였다. 과자 따위를 담아두었던 상자들을 겹겹이 쌓아놓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연립주택은 흠씬 비라도 내리면 물에 젖어 녹아 내려갈 듯 위태로웠다. 쳐다만 보아도 눈 안으로 하늘이 옮겨올 것 같은 맑은 날이었다. 이런 날은 내 마음의 티끌 하나가, 그것이 정말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곤 했다. 그래서, 너무 파래서 저게 과연 하늘일까, 의문이 드는 오늘 같은 날 나는 나를 잊으려 한다. 이름이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인지. 그 비워진 공간만큼 나는 행복해지곤 했다. 텅 빈 마음속으로, 긴 세월을 살아 잔뜩 주름이 지고 만 연립주택이 무심히 끼여들었다.
강선배가 일러준 408호 앞에서 나는 숨을 한 번 가다듬었다. 초인종은 없었다. 약간 낡긴 했지만 사는 덴 별 지장이 없는 곳이라고 그녀가 말했을 때 나는 종달새 울음소리가 나는 초인종을 떠올렸었다. 어쩌면 나는 초인종 소리에 맞춰 누구세요, 라고 노래부르듯 말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는지 모른다. 방문하는 사람마다 이 집에는 초인종 같은 여자가 살고 있군, 하고 중얼거리면 나는 조금 비껴서서 집안에 풍기는 따스한 온기를 그들에게 조금 전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집은 15평이 채 안 돼 보였다. 방은 두 개였다. 작은 방은 현관을 들어서면서 왼편에 위치해있고, 큰 방은 부엌을 마주보고 있다. 딱히 거실이라 부를 공간은 없었으나, 큰 방의 미닫이문을 열어두면 부엌까지 한 공간으로 이어져 거실이 되었다. 강 선배는 집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했다. 뜨거운 물이 잘 안나오니까 될 수 있으면 목욕은 목욕탕에 가서 해. 머리를 감거나 설거지 할 정도의 온수는 나오니까 너무 걱정말고. 아, 그리고 물고기 밥 주는 거 잊지 마. 식탁 위에 놓여있는 어항 속에 엄지손가락만한 물고기 두 마리가 내 쪽을 향해 헤엄을 치다 방향을 바꾼다. 물이 출렁인다."

from 윤성희, <이 방에 살던 여자는 누구였을까?>, [
레고로 만든 집], 민음사, 2001년 9월, 3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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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한국주거사2011.03.02 13:50

『문학들』 2007년 봄호에 발표되었던 백가흠의 <매일 기다려>는 작가의 작품에 언제나 표현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가학과 엽기가 그대로 그려지고 있다. 백가흠의 새 소설집에 해설을 단 차미령은 해설의 첫 문장으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이 날마다 중계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결코 아무도 완전히 알기를 원치 않는 불쾌한 경험과 불편한 진실을 백가흠의 소설이 집요하게 파고든다.”고 풀이하고 있다. 차미령의 해설이 아니더라도 백가흠의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이라면 이러한 류의 백가흠식 작풍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 한가운데에 바로 <매일 기다려>가 자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매일 기다려>는 작가가 먼저 발표한 작품 <광어>의 연작으로도 볼 수 있다, 즉, '연주'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른 바 불량 청소년들이 가난하고 순박한 노인을 등쳐먹고 튀는 것이 소설의 표면적인 내용이지만 그 안에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가학과 엽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혼은 꿈도 꿔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할 수 없었던 노인에게 보편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기나 패악질이나 강탈이나 무시 등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러운 노인에게 길거리에서 만나 ‘가족’을 이룬 연주는 행복이고 가족이며, 인생의 즐거움인 동시에 자신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노인의 소망과는 달리 연주는 다시 두 번이나 가출을 감행하고는 '현숙'이라는 이름의 패거리를 데리고 들어오거나 다시 남자 친구들과 짝을 이루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들은 노인에 대해 학대라고 하기에도 모자라는 패악을 거침없이 일삼고는 결국 재개발로 헐리게 된 뒤 연주와 새롭게 얻어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노인이 감추어 두었던 돈을 모조리 강탈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추운 겨울이라도 전철역과 지하도가 있음을 고마워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난다. 노인의 헐벗은 삶 역시 세상은 우리에게 매일 중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먹먹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소설이다.

"오래 된 연립주택 반지하는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눅눅한 습기를 가득 안고 있었다. 재개발지구에 속해 있는 연립은 철거될 날이 이제 서너 달밖에는 남지 않은 아주 오래된 구닥다리 집이었다. 노인이 이곳으로 이사온 지는 일년이 조금 넘었다. 철거일이 확정되고 보상문제와 전매권 이전도 이미 이루어진 상태여서 동네는 텅 비었다. 삼백여 가구가 넘게 살던 동네엔 이제 노인을 포함해서 이십여 가구도 남지 않았다. 이제 동네엔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젠 정말이지 갈 곳 없는 지친 인생들만이 쓸쓸히 철거일을 기다리며 겨울을 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집을 버리고 동네를 떠나갈 때 노인은 간단한 짐을 가지고 텅 빈 동네로 들어왔다. 비탈진 산동네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은 건너편 아파트단지에서 보면 훌륭한 전경을 만들어냈다. 집집마다 밝히는 백열등, 현광등, 가로등 불빛은 아름다운 야경을 자아내 건너편 아파트단지는 주위의 다른 곳보다도 월등히 시세가 높았다."

from 백가흠, <매일 기다려>,
[조대리의 트렁크], 파주, (주)창비, 2007년 7월(초판 1쇄),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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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한국주거사2011.02.24 01:48

1996년 9월에 [오래 전 집을 떠날 때]라는 이름의 소설집을 [감자먹는 사람들]로 바꾸어 2005년 8월에 새롭게 펴낸 소설집에 여전히 무겁고 중후한 필체로 자리한 <오래 전 집을 떠날 때>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졸리면 자고 깨어나 쓰고 배 고프면 뭘 좀 먹고 또 이어서 쓰고 화장실에 다녀와서 또 쓰고’해서 ‘작품이 끝날 때까지 그러기만 하여’ 완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 스스로가 페루로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 썼다고 밝혔듯이 이 소설은 1996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발표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요리책을 만드는 월간지의 프리랜서 사진기자인 서른 넷의 소설 속 화자는 바로 작가 신경숙이며, 자신의 내면을 일상으로 풀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작가 스스로가 경험한 것,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스스로가 그럴 것이라고 여겨지는 인간 개인의 깊은 내면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이 점이 작가를 대중적인 작가로 구분하면서도 사회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스스로의 지적 호기심과 내면의 충만감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로 분류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에 대한 세인의 평은 ‘인간과 세계의 융합’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다. 새롭게 고쳐서 펴낸 [감자먹는 사람들]에 대한 임규찬의 평이 그렇다. 즉, 무언가 은밀하고 내밀한 인간의 세계를 그려내고는 있지만 그것이 결코 지적인 유희에 머물지 않고 존재하는 것에 대한 희망을 그린다는 것이다.

새롭게 펴낸 소설집에 담긴 다른 작품들과 유사하게 <오래 전 집을 떠날 때> 역시 소설 속의 인물은 혼자이다. 그래서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관조적인 느낌으로 철저하게 은폐된 개인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이는 다시 들여다보면 현대인의 공통적인 현상이자 심성이며, 굳이 그것이 부정적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음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또 다른 특징은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사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고독함과 절연의 주된 개체라 할 수 있는 개인의 사회에 대한 거리감을 개인의 내면적인 몽환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심성의 보편성을 낚아냄과 동시에 그것이 그대로 허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면적 힘을 가지면서 실존의 에너지가 된다는 점을 직시함으로써 문학의 긍정적인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작가 신경숙의 최근 작품들이다. <오래 전 집을 떠날 때>나 같은 작품집에 실린 <빈 집> 등이 이러한 부류에 편입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페루 여행에서 동료들과 달리 하루 먼저 자신의 빈 집으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는 작중의 사진작가는 결코 타협적이라 할 수 없는 이러한 돌발적이고 비타협적인 행위를 통해 세계와의 타협 혹은 개인의 환경에 대한 타협이라는 커다란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소설 속의 풍광인 빈 집과 페루의 마추픽추에서 만난 빈 집은 모두 새로움 세계와의 관계 재설정을 향한 인간의 무대인 것이다. 신경숙의 작품 <오래 전 집을 떠날 때>에 등장하는 화자가 연립주택을 찾아 집을 세줄 것을 요청하는 대목에서는 작금의 재건축, 재개발 세태를 잘 묘사하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안 팔 거라고 했습니다. 곧 재개발이 될 거라서 가지고 있으면 돈이 되거든요. 집 평수는 그저 그래도 이렇게 터가 넓어서 지분이 많습니다. 서울 시내에 이런 집 없어요. 옛날에 지어서 그렇지 지금은 이렇게 터를 널찍하게 잡아 지을 땅도 없거니와 지었다 하면 고층이지요. 이렇게 집과 집 사이가 멀고 더구나 단출하게 이층만 올렸으니 지분이 세죠.
재개발? 그러면 그토록 오래된 집인가?
지은 지가 얼마나 되었는데요?
이십년 되어갑니다.
겨우 이십년 만에 재개발을 한다구요?
겨우라니요 아파트들도 십오년 지나면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는 세상인데요.
십오년, 이십년 만에 재개발을? 어쩌다가 집의 수명이 이렇게 짧아졌을까. 하긴 시멘트의 수명이 길어야 삼십년이라지. 시멘트로 지은 집이니 그럴 테지. 그래도 집이란 모름지기 한 생애가 태어나 머물고 갈 동안만큼은 되어야 집인 거지. 어쩌면 이 도시엔 이제 집은 없는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from 신경숙, <오래 전 집을 떠날 때>,
[감자먹는 사람들], 서울 창비, 개정판 1쇄, 2005년 8월, 158~159쪽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1.02.20 18:32

어린 시절,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강보에 싸여 사과 상자에 담긴 채 고아원 앞에 버려진 뒤 자라서 다니던 우유가공회사를 그만두고 뒤늦게 대학에 들어간 소설속의 화자 ‘나’는 학교에서 만난 동갑내기 '강선배'의 유학에 따른 배려로 그녀가 살던 연립주택을 맡아주게 된다. 그리고 그 집을 부탁한 강선배로부터 연립주택의 작은 방을 세주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세든 이가 사라진 뒤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듣는다.

세들어 살던 '은오'가 벗어놓은 베란다의 스웨터를 입고, 은오가 살던 집에서, 은오가 하던대로 운전학원 쪽을 바라다보는 나는 이웃집 여자와 편의점 종업원 그리고 전화를 걸어 온 남자에게 진짜 은오인지를 확인받는다. 그러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여자로부터 까닭없이 머리채를 움켜 잡힌다. 그리고 은오의 화장대에 앉아 서랍속의 수첩을 꺼내 자신과 같은 혈액형 A인 은오의 성(姓)은 은이요, 이름(名)은 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윤성희의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에 담긴 소설 <이 방에 살던 여자는 누구였을까>는 같은 책에 담긴 다른 아홉 편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도시속의 작고도 외로운 존재들에 대한 하염없는 묘사로 일관된다. 그리고 소설 속의 화자와 그 소설속의 다른 등장 인물과의 일체화를 기억의 끈과 상실의 동의어로 그려낸다. 이에 대해 평론가 방민호는 ‘윤성희의 소품들은 그늘에서 자라는 작은 꽃들같은 인상을 남기며, 깊은 밤 스탠드를 켜든 사람들에게 먼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평한 바 있다. 이렇듯 윤성희의 소설 대부분은 절망속의 인간에 대한 자기확인 과정이며, 끊임없는 자기복제의 상징으로 읽힌다. 그녀의 글은 그래서 상징을 의미로 읽어내는 수완이 필요하며, 피로와 상심과 가난 그리고 기억과 희망 등의 단어가 그녀의 글을 읽어내는 키워드이다.

"그림자를 삼켜버린 또 다른 그림자를 만난 다음에야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구겨진 도화지로 만든 집처럼 볼 품 없이 서 있는 연립주택의 그림자였다. 과자 따위를 담아두었던 상자들을 겹겹이 쌓아놓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연립주택은 흠씬 비라도 내리면 물에 젖어 녹아 내려갈 듯 위태로웠다. 쳐다만 보아도 눈 안으로 하늘이 옮겨올 것 같은 맑은 날이었다. 이런 날은 내 마음의 티끌 하나가, 그것이 정말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곤 했다. 그래서, 너무 파래서 저게 과연 하늘일까, 의문이 드는 오늘 같은 날 나는 나를 잊으려 한다. 이름이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인지. 그 비워진 공간만큼 나는 행복해지곤 했다. 텅 빈 마음속으로, 긴 세월을 살아 잔뜩 주름이 지고 만 연립주택이 무심히 끼여들었다.
강선배가 일러준 408호 앞에서 나는 숨을 한 번 가다듬었다. 초인종은 없었다. 약간 낡긴 했지만 사는 덴 별 지장이 없는 곳이라고 그녀가 말했을 때 나는 종달새 울음소리가 나는 초인종을 떠올렸었다. 어쩌면 나는 초인종 소리에 맞춰 누구세요, 라고 노래부르듯 말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는지 모른다. 방문하는 사람마다 이 집에는 초인종 같은 여자가 살고 있군, 하고 중얼거리면 나는 조금 비껴서서 집안에 풍기는 따스한 온기를 그들에게 조금 전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집은 15평이 채 안 돼 보였다. 방은 두 개였다. 작은 방은 현관을 들어서면서 왼편에 위치해있고, 큰 방은 부엌을 마주보고 있다. 딱히 거실이라 부를 공간은 없었으나, 큰 방의 미닫이문을 열어두면 부엌까지 한 공간으로 이어져 거실이 되었다. 강 선배는 집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했다. 뜨거운 물이 잘 안나오니까 될 수 있으면 목욕은 목욕탕에 가서 해. 머리를 감거나 설거지할 정도의 온수는 나오니까 너무 걱정말고. 아, 그리고 물고기 밥주는 거 잊지 마. 식탁 위에 놓여있는 어항 속에 엄지손가락만한 물고기 두 마리가 내 쪽을 향해 헤엄을 치다 방향을 바꾼다. 물이 출렁인다."

from 윤성희, <이 방에 살던 여자는 누구인가>, [
레고로 만든 집], 민음사, 2001년 9월, 3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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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한국주거사2011.02.20 18:26

생활력이 강하지만 낙천적이며 다소는 감상적인 나이 드신 엄마와 서로 배가 다르거나 씨가 다른 세 남매가 그들의 엄마를 찾아와 동거를 시작하는 풍경으로 그려진 천명관의 장편 [고령화 가족]은 한 마디로 막장가족 드라마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 따뜻한 가족소설이기도 하다.

인생의 다양한 역경을 거치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저 잘 먹는 것과 식구들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서로 어울려 사는 것이 어려운 현실적 조건으로 빚어진 고난과 역경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자 대안이라고 믿는 엄마와 한껏 긴장을 하지만 엄마가 마련한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믿는 식구들, 길거리에서 담배 피다가 들킨 조카의 용돈을 갈취하는 삼촌, 조카의 분홍팬티를 들고 수음하는 큰삼촌과 그 사건으로 인해 가출하는 조카, 두 번의 이혼 후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세 번째의 결혼을 감행하는 딸. 그리고 늘그막에 한 때 자신의 연인이었던 불륜의 대상인 노인을 집 안으로 들여 인생의 조용한 마지막을 살아가는 엄마와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녹아있는 흐믓한 가족애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우리 모두의 가족이 보이는 풍경이며 우리들의 새상 형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들은 그들에 비해 조금 약은 척, 혹은 가진 척 행동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한 동안 웃지만 그 웃음 뒤에 쓰린 기억이 있다.

"엄마가 살고 있는 집은 신도시 외곽, 기찻길을 따라 나란히 들어선 연립주택들 가운데 하나였다. 가구 수는 모두 스물 네 가구나 됐지만 마당은 자동차 다섯 대만 들어와도 사람이 지나다니기 어려울 만큼 옹색했고 빗물 자국으로 얼룩진 건물 벽은 군데군데 금이 가 있어 집 안의 궁색한 살림살이가 훤히 들여다보일 것만 같았다.
건물 뒤편은 더 심각했다. 마치 밀린 임금을 못 받은 인부들이 버려두고 달아난 건물처럼 마감이 엉망이어서 울퉁불퉁한 벽에 녹슨 철근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었다. 게다가 수십 개의 가스통이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어 빌라 건물은 마치 폭발물 벨트를 온몸에 휘감고 있는 알카에다 조직원처럼 위험하고 비장해 보였다. 그렇게 지은 지 이십 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건물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궁기와 절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from
천명관, [고령화 가족], 파주, (주)문학동네, 2010년 3월(초판 2쇄), 1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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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한국주거사2011.02.20 14:40

소심하고 소극적이며 순응주의적인 도시의 가장이 겪는 현대사회의 위협적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인간이 느끼게 되는 보편적인 두려움을 삶의 조건으로 묘사한 편혜영의 소설 <사육장 쪽으로>는 어찌 보면 서사의 흐름으로써가 아니라 소설 속에 묘사되는 풍경과 사물의 내면적 작동원리 내지는 이미지를 읽어야 하는 다소 까탈스러운 소설일수도 있다. 문체는 매우 건조하고 평면적이며 삶의 파행을 알리는 붉은 글씨의 경고장이나 대형 트럭에서 여과 없이 발산되는 소음이나 경적, 공산품들이 갖는 표준성과 반복성 등을 음미할 때 비로소 글의 행간에 흐르는 의미를 파악하게 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을 통해 발생한 문제의 해결방식 역시 구체적인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재현하는 이미지의 신호를 따라야 하는 것이며, 그 결과 사육장의 개에게 물린 아이의 치료를 위해 달리는 방향이 사육장 방향이라는 것이나 아이를 데리고 차를 몰아갈 때 주변의 풍경을 이루는 트럭과 트레일러 등은 곧 기계중심의 사회에서 공격적이지 못한 소시민이 위로받을 수 없는 불안과 분노를 자각하게 된다. 따라서 편혜영의 작품 <사육장 쪽으로>는 현대사회의 환경적 모순 속에서 힘없이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부박하고 위험한 것이며 또 그들의 일상 탈출 소망 역시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에게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닥친 얄팍한 희망으로서의 전원주택이 잘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며, 그 내용이 또한 얼마나 기계적이며 이미지 중심적인 것인가를 그리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도시에서 그의 집은 강의 북쪽 끝에 있었다. 북쪽 끝이라고는 해도 미세먼지 측정도나 소음 측정도, 인구 밀집도에 있어서는 행정구역 안에서 손꼽히는 곳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먼지가 들끓고 소음이 끊이질 않으며, 거리를 지나다니면 모르는 사람의 어깨에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인 도시다운 곳에서 살아왔다. 그중에서도 그의 집은 연립주택이 밀집한 주택가였다. 그는 융자를 얻어 삼 층짜리 연립주택을 샀다. 지하까지 몇 세대의 세입자를 들였어도 융자는 만 원짜리를 깔아 바닥 장판을 해도 될 만큼 많았다. 아이를 키워 대학에 보내려면 정년이 되도록 갚아도 다 못 갚을지도 몰랐다. 이자는 갈수록 늘어났고, 융자는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집채만큼이나 커다란 융자에 허덕였지만, 집을 산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에게 전원주택 단지를 권한 것은 Y씨였다. 그는 원래 삼층 연립주택의 융자 때문에 이사는 엄두도 못 냈고, 전원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전원주택은 연립주택 매입자에게 기존의 융자를 넘기고, 집값의 절반도 넘는 융자를 다시 받아야 살 수 있을만한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이사를 결심한 것은 Y씨가 전원주택이야말로 진정한 도시인의 꿈이 아니겠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도시인이라면 선뜻 그렇다고 대꾸했을 거라 생각했고, 그 때문에 나야말로 굴뚝이 달린 경사진 지붕의 새하얀 단층집이 꿈이었다고 가슴을 탕탕 내려치면 대꾸했다. 그러자 정말로 전원에 사는 것이 자신의 오랜 꿈인 양 여겨지기 시작했다. Y씨가 낮은 목소리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원주택이라는 게 왜 죄다 그 모양이냐고 중얼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리에 파란 하늘을 가벼이 떠돌고 있는 흰 구름이 피어올랐다. 흰 자갈이 깔린 정원의 화단에는 계절마다 다른 꽃을 심을 것이다. 집 뒤 텃밭에서 푸른 상추와 붉은 고추를 거둘 수도 있으리라. 이사를 결심한 그는 회사 동료들에게 전원주택이야말로 진정한 도시인의 꿈이 아니겠냐며 큰소리쳤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객쩍음을 느낄 새도 없이 그는 자신의 집이 산을 배경으로 한, 경사진 지붕의 새하얀 단층집이라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from 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2007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 서울, (주)현대문학, 2006.12(초판 1쇄), 226~227쪽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소설_한국주거사2011.02.17 20:45

1974년생인 작가 김종은이 모든 지나간 시대를 과거형으로 이야기한 연작소설 <첫사랑>은 개별적인 사건들에 대해 각각 의미를 부여한 채 늘지어 이야기를 꾸민 소설이다. ‘정은’이라는 남성을 등장시켜 그가 살아온 모든 시간을 기볍게, 혹은 진지하게 그린 이 소설은 현재의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 모든 것들이 첫사랑이며, 그래서 첫사랑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소설 <첫사랑>은 평등소설인 동시에 진부한 이야기이며, 익숙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객관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이야기에는 때로는 개별 사건이 일어났던 시간을 기록해두었다는 점이다. 이는 곧 1974년생이 주로 특별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1974년에 태어나 2000년대에는 이미 30대에 접어든 사람들의 객관성과 평등성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낡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되뇌이는 소설이라는 것이다. 즉, 1974년생들이 어떻게 1980년대를 보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며, 그래서 그들 집단세대의 자기 고백이기도 한 것이다. 어머니건 친구건 혹은 다른 무엇이건 간에 그들이 현재할 수 있도록 하게 한 모든 것들에 대한 그들의 슬픔을 그린 것이 바로 <첫사랑>인 셈이다.

"학교 후문 건너편으로는 연립주택이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작은 평수였다. 그곳에 살고 있는 같은 반 녀석의 말을 빌리자면 그곳 사람들은 주로 맞벌이를 한다 했다. 그래서인지 늦은 오후의 그곳은 언제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광야처럼 황량한 느낌이 났다. 좀처럼 볕이 들지 않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지나치는 사람도 없는 까닭에서였다. 사람이 없어서, 혹은 서로 관심을 두지 않아서, 이른 바 삶이 빠듯한 곳. 그곳이 내 하굣길이었다."

from 김종은, [
첫사랑], 서울, 민음사, 2006년 11월(1판 1쇄), 206~207쪽

"집들에는 하나같이 지붕이 없어 슬래브 옥상으로만 덮여 있었는데 집마다 틈은 5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까 우리 집으로 치자면 용태네로 가고 싶다 할 경우 마음만 먹으면 대문을 나설 필요도 없이 옥상으로 올라가 옥상의 나지막한 벽을 여섯 개만 뛰어넘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떨 때는 갈라진 그 옥상들 하나하나 시멘트 바닥이 때로 길처럼 아니 때로 우리 마을처럼 느껴지곤 한 것이었다.
실제로 우리 골목 사람들은 깜빡 열쇠를 잊고 나오거나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옆집 초인종을 눌러 이것 참 죄송합니다 옆집인데요 했고 그럼 그 누구라도 손쉽게 대문을 열어 줬으니 쭈뼛쭈뼛 옥상에 올라 으엿차 담을 넘어 역시 이것 참 해가면서 그 기묘한 느낌으로 자신의 집을 향할 수도 있었다. 집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하나같이 그 옛날 쓰레기를 덮고 주택지획을 지어진 이른 바 공동주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태생의 비밀에 관한 아버지의 설명이었지만 당시 나는 솔직히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은 사실이어서 집들은 겉 생김뿐 아니라 속 구조마저도 거의 같았고 이를테면 용태네 화장실도 종호네 화장실도 우리 집과 꼭 같은 구석에 붙어 있었다. 그렇다고 참말 꼭 같은 것은 아니었는데 어떤 집은 담에 쇠창살을 어떤 집은 담에 잘게 부순 유리병 조각을 또 어떤 집은 담에 둘둘 말린 철조망을 걸어두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고 개성이라면 개성이었다. 옥상이 그리 붙어 있음에도 저마다 담을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쳐놓았던 것은 아마도 그 시절 모두가 무언가 숨겨두었거나 반대로 그 무엇으로부터 숨고 싶었거나 했던 마음에서 아니었을까. 이를테면 내 곁의 너는 믿을 수 있지만 반대편 넘어오는 누구라면 결코 믿을 수 없겠다는 식의. 지금에야 그런 생각이 든다지만 그때 난 벽에 카메라를 달아둔 때때로 지잉 소리를 내면 움직이기도 했던 그것이 신기해 4차로 건너편 골목사는 유동이네만 대체 유동이네 집 안에 무엇이 있는 줄도 몰랐으면서 마냥 부러워했을 뿐이었다."

from 김종은, [
첫사랑], 서울, 민음사, 2006년 11월(1판 1쇄), 249~250쪽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