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2.01.10 15:38

오늘은 살구나무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을 맞는 날이다. 조금 더 비장하게 말하면 이제 이 집에서 살아야 할 정해진 시간이 있다면 그 중에서 1년을 까먹은 셈이 되기도 한다. 어제 늦은 밤 아내와 함께 마당에 나서서 살구나무집에서의 지난 1년이 참 빠르게 지난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누었으니 우리 내외도 객관적으로 나이가 들었다고도 하겠다.

지난 1년은 빠르게 지나기도 하였지만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고,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식구들 모두가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서는 여간 다행이고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혹한의 겨울 한복판에 새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행여 관리비가 감당하지 못할까 염려되어 아래위층을 오가며 난방 밸브를 줄이고 전등 끄기를 일삼았던 기억부터 따뜻한 봄날 양재동과 과천, 모란시장을 풀방구리처럼 오가면서 야생화와 자잘한 묘목을 심던 일, 만개한 살구꽃 아래서 꽃비를 맞으며 즐거워했던 날들, 퍽퍽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살구를 먹으며 여름을 즐긴 일 그리고 맞이한 낙엽과 단풍의 계절과 다시 맞은 추운 겨울.

조금은 긴장했던 이웃들과의 만남과 이제는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위아랫집과 옆집의 따뜻한 이웃들. 우리집 오시기를 늘 고대하시는 여든 다섯 잡수신 노모의 편안한 볕쬐기 풍경 등은 그저 고즈넉한 한 폭의 그림으로 가슴에 남아 있으며, 집 안팎을 뛰는 강아지의 모습에서 ‘잘했다’ 싶은 생각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하였다.

살구나무집을 다녀간 지인들의 부러움과 시샘에 즐거워했고, 살구나무집을 찾겠다는 분들의 성화도 마음을 들뜨게 했던 지난 1년이었다. 지난 1년 동안의 여러 가지 일들을 묶은 책이 <아파트와 바꾼 집>이라는 이름의 책자로 세상에 나왔을 때에는 이 일이 단순히 바람직한 집짓기의 일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운동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 또한 적지 않았다. 건축가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살구나무집을 설계한 건축가 조남호 선생에게 진지한 건축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겠다는 심정에서 여러 불편을 무릅쓰고 집을 찾는 분들의 인터뷰나 기사 작성에 도움을 주려고 했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대중 앞에 나서서 건강한 집짓기의 교훈이나 경험을 전파하느라 나름 애를 쓴 시간이었다. 마침 살구나무집 1년을 맞는 오늘 동녘출판사는 <아파트와 바꾼 집> 2쇄 인쇄를 결정하였다는 소식이다.

무엇보다 새 집 생활 1년을 맞으며 이렇다 할 문제 하나 없이 아파트 생활에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연착륙하도록 도움을 준 모든 분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무엇보다도 억눌렸던 욕망을 끄집어내게 하고 집터 고르기에서부터 더불어 살기에 이르는 모든 어려움을 도와주고 삶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 박인석 교수, 자금 마련에 곤혹스러움을 느낄 때 흔쾌히 집을 내어주신 동료 교수님, 살구나무집의 설계자인 건축가 조남호 선생과 솔토건축의 식구들, 시공자인 (주)에스화이브 김봉섭 사장과 집짓기의 모든 공정에 열과 성을 다 하신 많은 현장의 작업자들, 공사 현장의 온갖 불편함을 감내한 지금의 이웃은 모두 내게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한 조력자들이다. 살구나무집 생활 1년을 맞은 감상이라면 모든 것이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평온의 일상을 만든 아내와 아이들이 오늘처럼 언제나 곁에서 빙그레 웃으며 행복한 자유인으로 생활하는 날들이 지속되었으면 싶다. 살구나무집 1년의 생활에 대한 감상이 자못 감상적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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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5.30 18:13

저녁식사 시간을 기다리며 소설책을 잡고 있을 즈음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현장에 들를 예정이라고 들었던 죽전 방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떡집을 운영하는 친구가 오늘 시간이 난다면서 집 구경을 원해 함께 다녀오는 길이라면서 몸이 뿌듯하여 찜질방에 들러 집으로 갈 것이니 그리 알라는 것이었다. 걱정과 궁금증이 더해 현장이 어떤 상태냐고 묻자 저녁나절에 일하는 사람들이 달라붙어 마지막 준공청소를 하는 상황인데 전체적으로 깨끗하더라는 전언이었다.

건축을 전공한 처지라 행여 아내가 불편해 하는 것이라도 생길 것이 염려된 상황에서 특별한 불만족을 표출하지 않으니 내심 고맙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기도 하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동료 교수 연구실에서 차를 나누는 도중에 이번에는 휴대폰 문자가 도착하였다. 내용은 LG전자에서 보내온 것으로 새로 구입하기로 주문한 가전제품을 납품할 예정인데 통화버튼을 누르면 음성 가이드가 나오고 그에 따라 대응해 달라는 것이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내일 오전 배달 설치 예정인데 날짜 변경이 필요하면 그에 따라 패드 숫자를 눌러 배송 일자를 조정하라는 것이었다. 전화기 속의 음성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한 뒤 가전제품 배송 일자를 1월 6일로 조정하고 확인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가전제품의 배송일자 조정을 마쳤다. 아내와 약속하고, P 교수에게 알려드렸던 날짜로 가전제품 납품 일자를 조정한 것이다.

동료 교수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후 학교 연구실에서 책을 보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이번에는 솔토건축사사무소가 발신인으로 된 문자가 도착했다. 내용은 죽전주택의 1차 펀치리스트를 작성해서 이메일로 보냈으니 확인하고, 추가적으로 고려할 사항이 있는가를 검토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난주부터 솔토건축의 이상목 실장이 현장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공사내용을 꼼꼼히 둘러보더니 일부 미비점과 보완사항을 전반적으로 정리한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보낸 사람 솔토건축 soltos@unitel.co.kr
받는 사람 cspark@uos.ac.kr
받은 날짜 2011년 01월 04일 20시 03분
제 목 [GIGA]죽전주택_펀치리스트

두 분 교수님께.
교수님. 새해, 새 집에서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말씀 드렸던 바와 같이 입주 전 공사내용에 대한 수정사항들을 정리한 펀치리스트를 작성하여 보내드립니다. 1차 체크사항이며, 미처 기록 못한 사항들은 공종별 수정작업이 진행되는 중간 미비점들을 보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금일, 현장에서 감리자와 시공자가 논의한 바를 아래와 같이 요약하여 말씀드립니다.

첫째,
펀치리스트의 내용을 실행함에 있어, 3단계의 공정을 둔다.
1단계: 입주전 (펀치 리스트상의 모든 실내공사 및 일부 실외공사)
2단계: 입주후 1월 말까지 (입주 후 시급한 보수사항 및 건축주 요청사항)
3단계: 4월경 (펀치 리스트상의 일부 실외공사 및 건축주 요청사항)

둘째,
금주 말(1월8일 토요일)에 건축주와 시공자, 감리자가 참석하여 시공자가 작성한 잔여공사의 단계별 실행목록을 논의한다.(시공자가 펀치리스트를 검토하고 예를 들어 NO.28번은 3단계, NO. 15번은 1단계 등으로 구분하여 작성)

셋째,
사용승인 후 공사사항(화강석 평석 깔기, 주차장 지붕설치, 7번지 서재 앞 목재계단 설치, 1번지와 7번지 사이의 담장 설치) 등 미비 공정은 금주 내 마무리 한다.
이상입니다. 계속되는 영하의 기온으로 인하여 일부 외부공사를 4월경으로 미루고 불편함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날씨가 이유가 되지만, 봄이 되면 겨울 내 생겨난 건물 외부의 문제들이 드러나게 되어 함께 보수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을 듯하여 가족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주로 외부 콘크리트 면에 대한 하드너 작업, 발수제 도포, 우수처리 문제, 콘크리트 보수 문제 등이며, 정확한 구분은 토요일 회의에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내드리는 펀치리스트를 검토해 보시고, 의견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메일로 보내온 내용과 달리 첨부된 압축파일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애써 열려고 컴퓨터의 다른 프로그램을 작동시키자 경고문과 함께 지원하지 않는 파일이라는 경고문만 뜨는 상태여서 할 수 없이 다시 솔토건축의 이상목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 해결을 요청하였고, 솔토건축이 운영하는 웹하드를 통해 펀치리스트 파일을 받을 수 있었다.

문건은 모두 54가지에 해당하는 미비점과 추가 보수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고, 건축주가 알기 쉽도록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는데 그동안 나와 아내가 보았던 것들에 비해 상당히 많은 지적사항들이 명기되어 있었다. 윗집 박인서 교수의 집은 숫자상으로는 우리집에 비해 10가지가 적은 44개 정도의 미비점과 보완사항이 언급되어 있었다. 새집으로 들어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사하기 전까지 모든 내용을 다 정리해 달라 억지를 부릴 수도 있겠지만 이상목 실장이 이미 메일을 통해 언급한 것처럼 각각의 문제 부위에 대해서는 이사하기 전 마지막 며칠 동안에 처리할 일과 입주 후 1월 말까지 조금의 시간을 가지고 대응해야 할 일, 그리고 해동기를 지난 뒤 다가올 봄철에 각각 보완해야 할 사항들로 나누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어서 이에 대한 정리는 솔토건축의 제안대로 토요일 미팅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할 일로 남겨두었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정리된 문건이었다.

아무튼 건축주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야 하는 일이 많지만 실제 건축설계를 담담하고 설계 감리를 하는 조남호 선생이나 이상목 실장뿐만 아니라 현장소장과 각 파트의 시공책임자와 담당자들, 작업에 동원된 기술자들 모든 분들의 여러 가지 노력이 적지 않게 소용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집을 짓는다는 일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까닭에 많은 분들이 입으로는 단독주택 짓기를 희망하면서도 선뜻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차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런 일로 어제 가볍게 생각했던 명판 작업에 대해 좀 더 분명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솔토건축에서 보내온 펀치리스트의 제목이 ‘1차’인 것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2차 혹은 3차 등의 제목을 단 펀치리스트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고, 먼저 집을 지은 경험을 가진 주변의 많은 분들이 조언한 것처럼 적어도 1년은 살아봐야 그 사이에 문제들이 드러나고 손을 보아가면서 비로소 집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서둘러 눈에 보이는 문제를 화장술로 덮어두는 우를 범하는 것 보다는 살아가면서 차분하게 집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나은 방법이라고 서둘러 생각을 정리하였다.

찜질방에 들러 자정 무렵에 귀가하겠다는 아내와 밤샘 의논을 하고 꿈을 카워야 할 일이 남았다는 생각에서 집에 가져갈 이동식 하드디스크에 솔토건축에서 보내온 펀치리스트 파일을 저장하였다.

늦은 밤 귀가하고 보니 등기우편물이 배달되었으나 집에 사람이 없어 보안관리실에 맡겨두었다는 스티커가 현관에 붙어 있었다. 내게 배달된 등기를 보니 용인시 수지구에서 보내온 것으로 ‘건축물 사용승인’과 더불어 ‘개발행위 준공’도 의제처리 되었다는 통지문이었다.

즉, 건축주가 신청한 건축물 사용승인 신청은 건축법 제22조 제2항 규정에 따라 2010년 12월 30일자로 승인되었으므로 사용승인서를 수령하라는 것과, 건축물 사용승인일과 실제 사용일 가운데 빠른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취득세를 자진납부 하고, 개발행위 준공검사 역시 건축물 사용승인에 따라 준공된 것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이다. 소위 법이 정한 건축행위의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었고, 이제는 그에 따른 세금 등을 내라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이와 더불어 면적이 300평(990㎡) 이상일 경우는 개발부담금 부과대상이므로 이에 해당할 경우에는 개발비용 산출 내역서를 작성,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내용은 우리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므로 무시해도 좋을 일이고, 이제는 취득세 신고절차가 남은 셈이다. 건축물 사용승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용승인 내용 [2010-도시건축과-신축허가-24호]
가. 대지위치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1393-7번지
나. 사용승인 건축물 현황
1) 종 별 : 신축
2) 대지면적 : 337.50㎡
3) 건축면적/연면적 : 134.26㎡ / 263.29㎡
4) 건폐율/용적률 : 39.78% / 59.11%
5) 용 도 : 단독주택
6) 구 조 : 철근콘크리트구조
7) 층수/동수 : 지하 1층, 지상 2층 / 1동
8) 허가일자/착공일자 : 2010.03.03 / 2010.05.04
다. 의제처리사항 : 개발행위준공검사[면적 337.50㎡(대), 목적 : 단독주택 부지조성]

수지구청에서 보내온 내용을 아내에게 설명한 뒤 학교에서 담아 온 펀치리스트를 노트북에 올려 하나씩 설명해 주었다. 큰아이와 작은 아이도 사뭇 관심을 가지는 태도였고, 그동안 현장을 자주 방문하지 않았던 작은 아이는 부위별로 촬영된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어느 곳을 설명하는지를 잘 모르는 상황이어서 자세하게 설명하자 귀찮은 듯 건성으로 내 얘기를 듣는 모습이었다. 솔토건축에서 보낸 메일의 첨부 파일과 그동안 나와 아내가 함께 걱정한 내용을 비교하자 두 가지 정도만이 언급되지 않았는데 하나는 주소지 판넬 부착위치와 세콤 표시판 부착위치에 대한 조언이므로 굳이 문제라 할 수 없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충망 설치라 할 수 있다. 방충망 설치 문제는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서 이상목 실장에게 간단하게 문자를 넣어 알려주었더니 그렇지 않아도 내일 중에 방충망 설치작업과 필로브 창호 마감 수정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답이 도착하였다. 나머지 구체적인 의논은 토요일 현장에서 모두 모여 의논하는 것으로 아내와 의견교환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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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5.19 23:58

아직도 새벽이라 생각하던 시간에 머리맡에 두었던 휴대전화가 요동을 친다. 받아보니 죽전현장의 김봉섭 사장이었다. 치렛말을 모두 생략한 채 ‘이른 아침에 전화 드려 미안하다’고 하면서 ‘현장에 부여에서 올라온 짐차가 나무 한 그루를 싣고 대기 중인데 이 나무를 어디에 심어야 하는가’를 물어왔다. 자다가 불현 듯 깨어난 처지이고 여전히 잠결이어서 현장소장이 하는 얘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잠깐 어리둥절하였다.

생각해 보니 부여에서 왔다는 나무는 이틀 전 현장에 나무를 심을 일로 찾은 분이 보아 둔 배롱나무가 논산에 있다는 말이 떠올라 그 나무가 배롱나무이고, 마당의 동남측 구석에, 지난 번 현장에서 나무를 주시겠다는 어르신과 건축가 조남호 선생이 더불어 의논한 위치에 자리에 심으면 될 것이며 아마도 현장에서 직접 나무를 심을 작업자들이 따로 현장에 도착할 것이니 그 사람과 의논하여 위치를 잡으면 될 것이라고 엉겁결에 답해 주었다.

역시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 아내는 다시 누울 생각이 없어졌는지 소리 없이 방을 나서서 아침을 준비하였고, 강아지는 평소와 달리 깨어난 주인 덕에 새벽부터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장난에 여념이 없었다. 신문을 들고 식탁에 앉아 이른 아침을 기다리는데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에는 조남호 선생이었다. 조남호 선생은 어딘지 약간 불편한 심기를 보이는 태도였는데, 전화기를 통해 내게 건넨 일성은 ‘마당이 숲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생각했던 것보다 식재를 기증한 분이 보내준 나무가 커서, 결코 넓다고는 할 수 없는 마당에 제법 큰 나무 두 그루가 자리를 꽉 자치하고 서게 된 셈’이라는 것이다. 내가 우려의 뜻으로 그럴 정도로 어울리지 않느냐고 내처 묻자 ‘꼭 그렇게 말하는 것 보다는 마당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있고, 거실 남동측의 담장 아래로 관목이 조금 있는 것으로 조경을 마무리하는 기분으로 생각하면 또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이어서 남동측 마당 귀퉁이에 심긴 배롱나무는 길에서 보기에 아주 적절한 풍경을 만들어낸다면서 ‘현장의 식재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면서 자신은 식재의 정확한 위치를 설정하고 식재에 적절한 깊이로 땅을 판 뒤 마사토 등을 채워 옮겨 심는 상황만을 보았기 때문에 나머지 작업은 쉽게 진행될 것으로 판단하여 이제 사무실로 출근한다는 것이었다. 그저 고생했다는 말 이외에는 별다른 언급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현장에서 감을 잡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전화내용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그렇다면 한식담장 옆에 심기로 한 공작단풍은 다른 곳에 심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해서 아내의 말을 조남호 소장에게 전했더니 ‘다른 적절한 위치 설정이 어렵고, 서측의 바깥마당은 아직 나무를 심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한 것보다 공작단풍이 큰 것이 현장에 들어왔다’는 말을 남겼다. 불안한 마음이 크게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무를 선물로 보내준 분의 입장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은 현재의 자리에 나무를 심어놓은 뒤 내년 봄 쯤에 가서도 우리 식구들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면 결국 적절한 위치로 이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때 가서 다시 한 번 지혜를 모아보자는 뜻을 조남호 선생에게 전화로 전하고, 아내에게도 그렇게 일러두었다. 식사를 마치고 출근준비 차 침대 머리맡에 두었던 전화기를 들자 조남호 선생이 보내온 전송사진이 들어 있었다. 대청초등학교 후문 도로에서 찍은 배롱나무와 담장이 더불어 담긴 모습인데, 그럭저럭 괜찮은 풍경으로 보였다. 조남호 선생도 배롱나무의 크기나 식재 위치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내게 전송을 하였다는 점이 건축가의 내심을 읽을 수 있는 단초가 된 것이라 하겠다. 결국 오늘 아침의 문제는 배롱나무가 아니라 한식담장 남측에 이식한 공작단풍의 문제인 것이다.


마침 오늘 오후에 수납장 문제로 현장을 찾을 ‘가온’의 전문가들과 솔토건축의 이상목 실장이 만날 때 자신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의견을 건네기로 하였다는 아내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건네면서 매일 현장에 건축주들이 드나드는 것이 현장 작업의 진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니 이번 주에는 오늘 아내가 현장에 다녀오는 것으로 마무리하자고 했었고, 이미 그런 약속 때문에 자신이 현장에 다녀와 사진을 찍어 보여주겠다는 것이 아내의 의견이어서 디지털 카메라를 전하며 나를 대신해 오늘 현장의 여러 풍경을 담아올 것을 청하고 학교로 나섰다.


오늘 현장은 내게 여러 가지로 궁금증을 주었다. 하나는 우수관 문제 때문에 죽전택지개발지구의 토목공사를 담당했던 현대산업개발의 관계자가 현장을 방문해 우수관 분기 문제에 대해 현장소장과 의논을 하기로 했다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아침 댓바람부터 부산을 떨었던 안마당의 식재 문제인 것이다. 금요일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수업, 저녁식사 후 양재동의 HAU Lecture 주관... 모든 일을 마치고 귀가하면 언제나 새벽 1시. 결국 금요일에는 1년 중 하루도 빠짐없이 다른 시간을 낼 수 없는 처지가 못내 아쉬웠다.

오후 대학원 강의를 마치고 나오니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었다는 내용이 휴대폰에 떴다. 나도 현장 사정이 궁금하던 차에 전화를 하니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첫째, 죽전주택의 마당에 심겨진 배롱나무와 공작단풍은 우리들의 예상과는 달리 꽤나 큰 나무여서 더 이상의 수목식재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이고, 마당이 조금 좁아 보이는 느낌이지만 전체적으로 눈에 거슬릴 정도의 내용은 아니더라는 것이다. 배롱나무나 공작단풍 모두 수형이 좋아 보였고, 크기도 커서 볼륨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둘째, 우수관 문제는 아내가 현장이 도착했을 때 한국토지주택공사 관계자와 시공을 맡았던 현대산업개발의 담당자 그리고 현장소장이 회의를 하는 중이었는데 자세한 사항은 확인할 수 없으나 다음 주 중에 추가로 굴착작업 등을 벌이고 그에 따른 비용은 현대산업개발이 부담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아가는 것으로 판단되었고, 문득 그 자리에 참석한 아내더러 현장소장이 ‘사모님, 잘 들으셨죠?’라고 말을 건네는 것으로 보아 아내의 짐작이 대충 맞는 방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대문에 설치될 비디오폰이나 시큐리티 시설 등과 관련해서는 보안 성능을 높일 수 있도록 디지털 기기 등이 추가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한다면 다시 공사비 총액에서 일정한 금액이 추가된다는 점에서 신속하게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아내는 가급적이면 보안성능을 높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컬러화면, 카메라 2대 설치, 건전지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전기를 이용하는 방식인 경우 200만 원 정도가 소요), 추후 현장소장이나 건축가 등과 상의해서 지혜롭게 일을 처리할 것을 요청하였다.

넷째, 현장 풍경은 한식담장이 낮아지고 길이도 줄어 그저 미루어 생각하던 모양대로의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마당의 데크 공사를 위한 준비작업으로 판단되는 데크 프레임 작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이며, 윗집의 경우는 데크가 놓였고 마무리 작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 아랫집의 경우도 하루나 이틀이면 마무리 작업이 완료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다섯째, 실내에 설치될 건가구 업체인 ‘가온’의 담당자와 만난 결과 이상목 실장의 설명보다 질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더 좋아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였으며, 안방 화장대 설치 부분도 의자를 사용하기에도 좁은 감이 없지 않아 의자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디자인 변경을 요청하였고 그 부분에 서랍장을 설치하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변경하였다는 것이다.

여섯째, 뒤꼍의 공간과 윗집 작업실의 앞마당은 단차가 생기지만 모서리 부분을 평평하게 한다는 것이 사전에 의논된 내용이어서인지 윗집과 만나는 모서리 부분에서 뒤꼍으로 4단 정도의 계단을 콘크리트 타설할 준비 작업이 진행된 것을 확인하였고, 아울러 아랫집 현관 마당에서 수평레벨을 잡고 다시 3단 정도를 오르게 되어 있는 설계내용대로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거푸집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와 함께 건축가 조남호 선생이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언급한 바 있는 거실측 담장 귀퉁이의 짧은 담장 설치를 위한 콘크리트 작업도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내의 말로는 자신이 사진을 곳곳에서 많이 찍어 왔으니 이번 주 토요일은 현장을 방문하지 말고,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여러 차원에서 좋을 것으로 판단하며, 다음 주말쯤에는 많이 바뀐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더불어 솔토건축의 조남호 소장과 이상목 실장이 우리집을 짓는 과정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는 것 같아 무엇보다도 미안한 마음이며, 감사한 일이라는 것이다.

아내의 얘기를 듣고는 바로 나무를 심어주신 어른께 전화를 넣어 감사의 말과 더불어 많은 비용을 쓰셔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렸더니 배롱나무는 오래 전에 보아둔 것이어서 잘 아는 것이지만 공작단풍은 지난 수요일 현장에서 바로 결정한 일이고 금요일에 식재를 할 것을 먼저 정해 둔 까닭에 어제 퇴근하자마자 양재동 나무시장으로 가서 밤 10시까지 여러 곳을 다니시면서 고른 것이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집에 잘 어울릴만한 나무를 잘 심고 가꾸는 것이 중요한 만큼 나무를 죽이는 일 없이 앞으로 잘 가꿔서 아늑한 정원을 꾸미라는 당부를 하셨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보내주신 나무를 잘 가꿔서 내년 봄쯤에 구경 오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내친 김에 오늘 현장에서 아내가 찍어 왔다는 사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집으로 전화를 거니 마침 큰아이가 집에서 저녁을 먹는 중이라는 대답이어서 카메라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긴 다음 압축파일로 저장해서 내 이메일로 보낼 것을 부탁하였다. 내일은 오랜만에 맛보는 현장 방문이 없는 토요일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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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5.17 15:16

아침 출근 후 메일을 보니 솔토건축에 지난 월요일 요청한 조명기구 샘플 및 최종 공사비 증액 내용 등에 대한 답변이 이메일로 도착되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매우 겸손한 투로 작성된 메일과 여러 가지 첨부 파일이 함께 담긴 것이었다. 보낸 시간이 어제 늦은 밤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보낸 사람  솔토건축 soltos@unitel.co.kr
받는 사람  cspark@uos.ac.kr P교수님
받은 날짜  2010년 11월 16일 23시 03분
제       목  죽전주택 _솔토건축1116

교수님. 안녕하셨습니까?
이상목 실장입니다. 지난 주말에 현장을 비워 여러 가지 현장 상황을 설명 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질문하셨던 내용 답변 드리겠습니다.

첫째, 조명기구 선정에 관한 사항입니다.
알토에서 제안하는 조명기구 대안을 타입별로 2~3개 정도씩 준비하고, 견적을 한 이후, 빠른 시일 내에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공사비 증액 관련사항입니다. 이 사항은 네 번째 사항(한샘가구 계약)을 포함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설치 시점을 12월초로 보고 있어 더 이상 발주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 계약과 함께 계약금 1000만원(두 세대 합계)을 시공사에서 지급하였습니다. 사전에 말씀드리지 못한 점 이해주셨으면 합니다. 계약된 금액과 내용은 문서로 첨부하였으니, 참조해주십시오. (한샘계약서의 세부내역은 예상가로 되어 있습니다. 항목별로 86%를 적용하시면, 추가공사비 내역서에 작성된 실제 지불금액이 됩니다. 예전에 말씀 드린 것과 같이 본 주방가구는 85%, 기타가구는 90%의 가격으로 공급되었으며, 일괄 86%로 최종 조정하여 계약되었습니다.) 아울러 확정된 추가공사비 내역서도 첨부해 드립니다.

셋째, 공사 진행 일정에 관한 사항입니다.
금일 김봉섭 사장에게 잔여공사 일정표를 요청했습니다. 금주 중에 솔토와 1차 논의를 하고, 적어도 토요일에는 교수님들께 말씀드리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며칠 전 P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창호 주위의 목재 창호틀 설치 문제는 4개소가 교체되어 시공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조속한 입주와 성실한 시공을 함께 고민하도록 하겠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두 가지 말씀 더 드립니다.

1. 내일(11/16)은 가온가구에서 현장실측을 할 예정이고, 아랫집 사모님께서 말씀하신 무늬목 샘플을 테스트 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2. 한샘가구에서 부엌가구 설치 전에 최종 디자인을 설명하기 위해 토요일에 현장에 오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점검하신다고 생각하시고, 들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듯합니다.

이메일로 보내준 내용을 모두 정리해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의 최종공사비 증감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살구나무 아랫집(1393-7번지) / 10월 20일(계약서 날인 시점) 대비 금액 변동사항

A. 총계(B+C)= 80만원 증가
B. 부엌가구 증감 사항 내역 : 총 70만 원 증가
   1. 인조석: 인디언오션에서 라토나로 등급 조정 및 면적축소 : 약 35만원 증가.
   2. 노블화이트 면적 감소
(냉장고 부분) : 약 30만원 감소
   3. C채널 수량증가
(아일랜드 상판주변) : 20만원 증가
   4.
보조주방 가구 증가
       1/ 김치냉장고 위치에 가구장 설치
: 약 20만원증가
       2/ 인조석 상판증가
: 약 20만원
       3/ 빨래용 수전으로 변경
: 약 9만원 증가
C. 2층 가족실 화장대 증감 사항 내역 : 총 10만 원 증가
       화장대를 높낮이 없는 일정한 높이의 형태로 조정 후 서랍장 면적 증가 : 약 10만원 증가

메일의 내용을 확인하니 일단 건축주가 요청한 내용에 대해서는 모든 답변이 다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첨부파일들을 보니 너무 많은 내용이어서 좀 더 시간을 두고 보면서 꼼꼼하게 살펴야 할 일이 다시 건축주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파악하였다. 가장 중요한 내용 가운데 하나는 공사비 증액분이 한 달 전인 10월 20일에 비해 약 80만 원이 증가되었다는 것이며, 그 결과 순수한 공사비 증액분은 모두 1,270만 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현장소장이 언급한 제세 공과금을 더한 금액이 11월 20일 전에 에스화이브 김봉섭 사장에게 보내주어야 할 비용이 되는 것이다. 전체 메일의 윤곽을 파악한 뒤 이상목 실장에게 감사의 메일을 보내고 한샘의 주방부분 최종 정리 도면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공사 일정과 부엌설비 최종 점검 문제, 수납가구의 무늬목 테스트 결과, 조명기구 및 조경 식재 등에 관해서는 이번 주말에 현장에서 자세한 설명이 있을 것이라니 이번 주말에는 이른 시간에 현장에 가서 최종적인 검토를 해야 할 일이었다. 메일과 함께 보내 온 문서를 대상 훑어본 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공사비 증액분이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 크지 않은 범위에서 조정이 되었노라 전하고 제세공과금이 얼마나 되는지에 알아보려고 현장에 전화를 넣어 김봉섭 사장과 의논을 하였더니 500만 원 내외가 될 것이고, 영수증이 발급될 것이니 최종적으로 정리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언급이 있었다. 아울러 내일이면 마당의 한식 담장 설치가 마무리될 것이니 배롱나무 식재 일정을 조정해서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다른 지인들로부터 여러 선물을 받는다는 것이 마음의 불편이 생긴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고 나무를 보내주겠다는 분들과 의논을 하여 식재 일정을 알려줄 것이라 답하고 전화를 마친 뒤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넣어 1,270만 원(공사비 총 증액분)+500만 원(제세공과금)=1,770만 원을 금요일까지 김봉섭 사장에게 보내줄 것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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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5.15 23:32

평소에 학교에서는 결코 낮 시간대에 졸음에 쫓긴 적이 없는데 오늘은 점심시간 이후 쌀쌀한 날씨의 캠퍼스를 걸었던 때문이지 따뜻한 연구실에 들어와 잠깐 까무룩 하였는데, 한낮의 졸음도 비켜갈 겸 손에 잡아든 박범신의 장편소설 [은교]에서 아주 흥미로운 글을 발견하였다. 다름 아니라 죽전 주택의 서재 분위기와 흡사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라도 다시 떠올리고자 여기에 글을 남긴다.

“..... 이적요 시인의 서재는 창이 넓었다. 죽음으로 흐르는 한밤에도 그는 바깥세상을 바라보고 싶었을까. 창은 그가 앉은 자리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였을 터였다. 한지로 바른 덧문을 열어두었던 모양이다. 늙은 소나무의 그림자가 성에로 덮인 희끄무레한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이적요 시인의 눈빛이 되어 소파에 반쯤 누운 자세로 창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어른거리는 소나무 그림자는 캄캄하지도 밝지도 않은 검푸른 그늘이었을 것이다. 온갖 병으로 침몰된 일흔 살의 노인이다. 바짝 말라 원래의 골상이 말쑥이 드러나고 검버섯이 잔뜩 핀 이적요 시인의 합족한 볼과 성긴 백발, 우물처럼 깊은 눈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시인은 죽은 육신의 거적을 덮고 유일하게 살아 존재하는 밝은 눈빛을 창유리에 꽂고 있었다. 소나무 검푸른 그림자가, 바람 따라, 성에 낀 유리창의 흰 살肉을 부르럽고 난폭하게 쓰다듬고 있는 .....”

                                                                            * 박범신, [은교], 파주, (주)문학동네, 2010년 5월(1판 3쇄), 19~20쪽

창이 넓고 한지로 바른 덧문이 있고, 그 자리에서 창을 마주하는 풍경이 마치 죽전 주택의 서재와 닮은꼴이다. 늙은 소나무 대신 늙은 살구나무라면 딱 그 풍경일 것이며, 말라 골상이 드러나고 검버섯이 핀 합족한 볼과 성긴 백발 그리고 우물처럼 깊은 눈이라면 지금부터 죽전의 집과 함께 20년 쯤 지난다면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내 모습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며 우울의 고배를 마신 것처럼 소설 속에 언급된 죽음이나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를 상상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작가 박범신의 펜에서 풀린 글이 마치 죽전 살구나무집의 서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흠칫하는 놀라움으로 이 글을 옮긴 것에 불과하다. 한 달 쯤 뒤 집이 다 지어져 들어가 살게 되면 다시 이 글을 떠올리고 문장을 이미지로 한 번 옮겨야겠다고 생각한다.

저녁 시간에 현장의 김봉섭 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오전에 아랫집 마당의 한식 담장 위치에 버림 콘크리트를 타설했으므로 정확하게 나무를 심을 위치를 잡을 수 있게 되었기에 금요일쯤에 식재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자그마한 묘목을 심는 것도 아니고 나무를 보내는 측에서의 준비작업도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일단은 알겠다고 한 뒤 주변의 사정을 보아서 다시 정확한 일정을 통보해주겠다는 것으로 전화를 마쳤다.

저녁 식사 후에는 P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난 주말에 묘목을 사러 간다고 했던 일이 생각나 어찌 되었느냐고 묻자, 묘목시장에서 메타세콰이어를 구입하려 하자 묘목을 파는 분들이 그것은 낙엽수라면서 상록수면서 짧은 시간에 잘 자라는 것으로는 스트로브 잣나무가 좋다고 해 세 주를 구입해서 현장에 가져와 보니 대지 서측의 공원부지에 심겨진 것과 같은 것이어서 놀랐다는 것이다. 그저 소나무로만 알고 있었던 대지 서측의 열식된 나무가 스트로브 잣나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결국은 기존의 것들과 같은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묘목을 심는 과정에서 칡에 둘러싸여 성장이 저조한 나무의 칡 줄기도 거둬내는 등 주말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얘기를 전해 주었고, 나는 학교의 인증준비회의 때문에 오늘 공부모임에 참석할 수 없음을 친구들에게 전해달라 하고는 전화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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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5.09 17:11

오랜만에 늦은 아침을 아내와 함께 하는 도중에 솔토건축의 이상목 실장으로부터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내용인즉, 오늘 오전 11시 정도에 죽전 현장에 한샘의 실무자와 함께 가서 실제 현장을 보여주면서 싱크대와 수납장 그리고 가족실 카운터 등에 대한 실측작업을 할 예정인데 시간이 괜찮다면 현장으로 와서 의논하는 자리에 함께 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마침 어제 밤 늦게 2층 가족실의 카운터 위 세면대를 솔토측에서 제안한 타원형보다는 원형이 좀 더 나을 것으로 판단한다는 의견을 아내로부터 들은 까닭에 아내더러 ‘당신이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더니 ‘오늘 아침에 어머님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여 점심시간 이전에 어머님 댁에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올 생각이었다’면서 황망해 하는 눈치였다.

할 수 없이 ‘내가 어머님을 모시고 우리집으로 오고, 당신은 죽전에 다녀오면 얼추 시간이 맞을 터이니 죽전에 다녀온 뒤 어머님을 모시고 우리집 근처의 병원에 다녀온 뒤 우리집에서 하루 이틀을 더 머물러 계시다가 조금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모셔다 드리자’고 해서 서로 역할 분담을 해서 각자의 일을 위해 분주하게 아침시간을 보냈다.

어머님을 모셔온 뒤 늦게 학교로 갈 작은 아이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둘러앉아 조금 이른 점심식사를 한 뒤 아내와 통화를 하고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온 뒤 아내가 분명 이상목 실장에게 얘기를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재삼 확인한다는 뜻에서 솔토건축의 이상목 실장에게 대림요업의 두 가지 선호모델 이미지를 이메일로 보낸 뒤 확인할 것을 요청하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냈다.

이메일을 보낸 뒤 아내에게 전화를 하자 아직도 현장이라면서 보조주방의 양측 수납장을 실측하고 보니 통로폭이 매우 좁아 이를 조정하는 논의를 하느라 오후 1시 30분이 돼서야 2층으로 올라와 실무자들과 논의중이라는 대답이었다. 이상목 실장에게 이미지가 첨부된 메일을 보냈으니 이를 확인하라 이르고 전화를 마쳤다. 아마도 오늘 귀가 후에는 현장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한 아내의 투정이나 불만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통해 대강의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층 가족실의 경우, 아무래도 의자를 놓고 생활해야 편안한 것으로 보여 탑볼이 올라갈 부분을 낮게 하는 대신에 수납장의 상판 높이를 조금 키워서 아이들이 작은 의자를 두고 생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는 것이며, 다른 내용에 대해서는 그저 치수 확인과 재료 확인 등을 거쳐 그동안 선정된 재료와 색채가 실제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다만, 부러움이 섞인 투정 비슷한 말로 윗집의 경우에는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은 재료를 선택해서인지 고급스러워 보이는 재료를 많이 사용했다는 말을 전했다.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 말이 생각나 ‘바쁜데 고생했다’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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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3.16 14:25

오늘 새벽 시간까지 아내와 의논한 주방의 배치와 각종 가전제품의 크기와 보조주방의 배치 위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주방부분 상세도를 새롭게 그림 파일로 만들고 별도의 참고사항을 함께 적어 별도의 파일로 만들어 이를 P 교수와 솔토건축의 이상목 실장에게 이메일로 전달하고 휴대폰 문자메일을 통해 이메일 확인을 요청하였더니 이상목 실장으로부터 이메일 체크 확인 문자가 도착하였다. P 교수 역시 어제 비록 늦은 시간이었지만 부부가 다양한 아이디어와 논의를 했을 터.


주방의 레이아웃을 그렸으므로 내친 김에 인터넷을 이용하여 솔토건축에서 주방의 싱크대 선택 브랜드로 추천한 한샘 부엌가구를 살펴보기로 하였다. 기본적으로 ‘유로’ 브랜드 이하의 것을 선정할 것을 권장 받은 바 있으니 그 이하의 것은 살피지 않기로 하고 유로 제품에서 선택이 가능한 것을 살피기로 하였는데 전체적으로는 3가지 정도의 디자인 유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며, 선택한 품목에서는 결국 상판의 컬러와 상판과 수납공간 사이의 채널의 빛깔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정도에서 대안을 선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녁 식사를 한 뒤 연구실은 별안간 어둑해지는 느낌이다. 어제 밤 늦은 뉴스에서 태풍 곤파스(Kompass)가 일본의 오키나와 인근 해상에서 만들어져 대형 태풍으로 새력을 확대하면서 제주도를 거쳐 서해안의 군산 일대로 진입한 뒤 한반도의 중부지방을 관통하면서 강원도의 속초로 빠져 나갈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현장에도 별다른 피해나 사고가 없이 준비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유로 브랜드를 살펴보았다.

어제 솔토건축에서의 논의과정에서 가볍게 살피면서 오간 얘기 가운데 조남호 소장의 견해를 떠올리면 로맨틱 버찌의 경우는 규모가 꽤 있는 주방의 경우가 아니라면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 한 것이 기억나는데 새로 보아도 그같은 평가가 어울리는 듯 하다. 특히, 원목 느낌의 주방은 아주 세련되게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펜션의 분위기가 날 것 같은 우려가 있어 제일 먼저 선호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유로 4000 아덴 화이트의 경우는 조금 더 깔끔한 느낌이긴 하지만 카운터 상부의 수납장 부분이 반투명이고 수납장 문짝의 요철 부분 디자인이 시간이 지나면서 먼지가 낄 우려가 있기도 하지만 여닫이 철물이 상당 기간 지나면 헐거워지는 경험이 있는 터라 썩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이 가운데 선택한다면 유로 5000 노블블랙 & 화이트 채널이 나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우선은 전체적으로 그리 크지 않은 집에 간결한 디자인이 어울릴 듯하고 건축가 조남호의 건축이 갖는 검박함과도 어느 정도 개념적으로 합치하는 디자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특히, 문짝 손잡이가 상판 밑에 감추어진 까닭에 철물 교체의 우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채널의 컬러만 잘 선정한다면 점잖고도 무리가 없는 선택이 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다만 상판과 수납장 사이의 채널을 어떤 컬러로 선정하는가가 문제가 될 터인데 모두 4가지의 조합방식이 홈 페이지에 조합되는 방식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그저 느낌만으로는 화이트 도어+초코렛 채널이 가장 무난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아내가 원하는 주방의 전반적인 컬러는 백색이므로 이에 맞추어 수납장의 기본컬러를 맞추되 상판의 경우는 인조대리석과 같은 잔무늬의 밝은 색으로 하면 결국 이들 재료 둘 사이의 강조점이 반대색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가장 무난하고도 센스가 돋보이는 선택이라 판단하였다. 물론 이같은 판단 역시 아내와 가족들의 동의와 공감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내일 분당 LH공사에의 회의 이후거나 아니면 주말 나들이 삼아 가족들과 더불어 잠실의 한샘 전시장에서 살펴야 할 일이다.

연구실에서의 늦은 밤, 이메일은 언제나 위안이 된다. 오늘이 특히 그렇다. 다름 아니라 집짓는 얘기를 책으로 출간하기를 원한다는 출판사 대표의 이메일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보낸 사람 마티 matibook@naver.com
받는 사람 cspark@uos.ac.kr
받은 날짜 2010년 08월 31일 21시 09분
제 목 도서출판 마티, 정희경입니다

박철수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도서출판 마티에서 일하는 정희경입니다 (더 쉽게는, 박정현의 아내입니다).
먼저 찾아뵙고 인사 여쭙지 못해 죄송합니다. 인사를 드리러 찾아가겠다고 해도, 자꾸 말리는 통에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메일로 먼저 인사를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오늘 우연히 교수님께서 죽전에 집을 지으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한순간에,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빨리 연락 드려야 한다'라고 반응했습니다. '집짓기' 시장에 관해 6개월 정도 시장조사를 하고 탐문을 했습니다. 사연은, "한겨레" 구본준 기자와 "광장" 이현욱 소장이 짓고 있는 집에 대한 책을 마티에서 출판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 지으시는 "집에 관한 책"은 그저 한 채의 단독주택의 개념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 모로, 새로운 주거문화를 제시하고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부동산 문화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의미와 질문이 담긴 책이 될 것입니다. 혹시, 아직 다른 출판사와 계약 전이시라면 제가 꼭 한번 찾아뵙고 자세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전화를 드리려고 하다가, 실례가 아닐까 싶어서 이렇게 메일로 인사와 말씀을 올립니다. 저는 새벽 1, 2시 전에 잠들지 않습니다. 전화가 여유로우시면 연락 주셔도 좋습니다. 내일이든 모레든, 교수님께서 잠시 강의 없으신 시간에 연구실로 찾아뵙겠습니다.
이렇게 첫 인사를 드리게 되어 죄송스럽지만, '집짓기'에 관해서만은 제가 다른 어떤 편집자보다 잘 만들 자신이 있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메일 드립니다.

도서출판 마티 정희경 올림

기왕에 저지른 일이고 그 끝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일단 달려야 할 일이라고 판단하여 메일을 읽는 즉시 P 교수에게 전화를 넣어 함께 집 만들기에 대한 책을 쓸 것을 제안하였고 흔쾌히 응낙을 받았다. 일은 늘 이렇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며, 그래야 스스로를 옥죄는 족쇄에 힘들어 하면서 무언가 일을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마티의 정대표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넣어 메일 확인을 요청하는 동시에 내일 오후 4시 정도에 연구실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는 마티에서 보내온 메일을 P 교수에게 전달하였다.

보낸 사람 박철수 cspark@uos.ac.kr
받는 사람 마티 matibook@naver.com
받은 날짜 2010년 08월 31일 21시 43분
제 목 Re: 도서출판 마티, 정희경입니다

정희경 대표님께(?)_박정현 씨로부터 아내가 대표라 들어 점잖게 호칭을 붙였습니다.
반갑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박철수입니다. 메일 고맙고 흥겨운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물론 두 번 정도 읽었구요. 오늘 우연히 박정현씨를 연구실에서 만나 박사논문을 언제 쓸 것이냐며 핀잔을 주다가 집 짓는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사건이 보내주신 메일로 번진 모양입니다.
구본준 기자가 쓰는 책을 만든다구요? 별안간 경쟁심도 발동되는군요. 허허. 농이구요.
마침 반가운 이름이기에 이리 반응합니다. 며칠 전 제게 덕수궁에서 열리는 아시아 전시회 공짜표 4장을 보내주었기에 고맙다고 구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낸 지 며칠 되지 않은 상황인데 정대표께서 다시 그 이름을 올려 반가워서 그럽니다.
제가 지금 짓고 있는 집은 저와 제 친구인 P 교수가 위아래로 붙은 땅을 함께(물론 사연과 비용은 다르게) 구입해서 어렵사리 비용을 꾸려 가면서 이어 짓는 집입니다. 한 때는 여러 가지 생각에서 블로그 연재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자칫 블로그 꾸미기에 정신을 팔릴 것이 염려되어 언젠가는 책이라는 형식과 형태로 생각을 담으리라는 어렴풋한 생각으로 집 짓기 과정을 일기처럼(그런데 사실은 누군가 볼 것을 생각하며 쓰는 일기처럼) 기록한 것입니다.
허니 집 짓기 과정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과 쌓아가는 기억의 기록이기도 하며 때론 세상에 대해, 건축가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거나 감사를 전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기획이 부실한 채 무작정 쓰다 보니 아직 건축공정이 65% 정도인데 쓰인 원고지 매수는 2,000장을 넘어서고 있으며, 장난삼아 건축가인 조남호 선생에게도 책을 낼 것에 동의하라고 윽박질러 자료를 서로 공유하는 등의 협력작업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불쑥 책을 내겠노라 하시니 제대로 된 질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게 과연 책이 되는가의 문제지요.
해서 별안간 친구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정대표께서 보내주신 메일을 읽어주고는(그 친구도 분명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에) 함께 책을 내면 어떻겠느냐, 어차피 이번 늦가을에 이사를 하면 붙어 살텐데 긴 겨울밤 위아랫집을 서로 오가면서 책이나 한 권 만들자고 청하니... 좋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감 잡으셨을 겁니다. 책은 냅니다. 그리고 정대표처럼 열성을 가진 분과 함께라면 필자로서도 더 없이 고마운 마음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어느 출판사와 계약 등을 한 적은 없습니다만, 도서출판 동녘에서 제가 그곳에서 출간한 책의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뜻을 잊지 않도록 가끔씩 책을 보내주시기에 감사의 뜻을 이상희 부장에게 전하면서 집짓기 책 한 권 낼 생각이 없느냐고 했더니 늦은 휴가를 다녀온 뒤 학교에 한 번 들르겠노라 하는 대답을 들은 정도 입니다.
말이 많아졌습니다. 한 번 뵙지요.
내일은 집을 같이 짓는 친구와 함께 오전 10시부터 분당의 LH공사에서 자문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다시 늦은 밤에 다른 회의에 역시 같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허니 가능한 시간이라면 내일 오후 시간이 될 수 있겠습니다. 분당에 다녀온 뒤 늦은 밤 회의시간 까지는 학교 연구실에 있을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먼저 정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후 4시 정도가 어떨까요? 박정현씨도 동석하면 좋겠지요.
박철수 드림

메일을 보낸 뒤 휴대폰에 도서출판 마티 정희경 대표의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한 후 직접 전화를 걸어 이메일 확인을 요청하였고 곧 이어 내일 미리 약속한 시간이 괜찮은가를 물어 호의적인 답을 얻었다. 정대표는 내일 만남을 가질 때 구본준 기자가 쓰고 있는 책에 대한 내용과 전체 기획과 일정 등도 참고로 일러주겠다는 얘기도 더불어 들을 수 있었다. 내일 오전에 P 교수와는 분당의 LH공사에서 자문회의에 함께 참석해야 하니 P 교수와 의논을 한 뒤 P 교수의 강의가 없거나 여분이 시간이 허락된다면 같이 내 연구실로 와 더불어 마티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늦은 밤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한샘 부엌가구의 팸프릿을 보여주면서 낮 시간에 친구와 더불어 잠실의 전시장을 둘러보았는데 매장 직원이 묻는 말에 친절하게 답해 주더라면서 내게 들은대로 ‘키친바흐’는 너무 고가의 설비이고 ‘유로’급에서 살펴보니 ‘유로 5000 노블’이 좋겠다면서 다만 몇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해서 내가 준비해간 2장의 A4 용지를 펴놓고 의논을 하였는데 아주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서로 일치를 본 내용은 ‘유로 5000 노블’로 하되 상판은 거의 백색으로 하고 아일랜드형 싱크는 하단부 수직판(거실방향으로 향하는 수납공간이 없는 면)이 초코릿색이고 수납공간은 모두 백색 무광처리의 문짝이며 다만 수납공간 문짝과 상판 사이의 체널은 초코릿색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별다른 이견이 없는 최적의 대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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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집_생각2011.02.04 00:26
2011년 1월 10일, 8개월 이상의 공사를 마치고 드디어 죽전의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 집을 지으려고 맘을 먹고 설계를 의뢰하고 공사를 진척시키는 도중에 지인들로부터 크고 작은 질문이 쇄도하곤 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가운데 하나가 건축주인 내가 직접 설계를 했으리라는 단정에 가까운 치레성 질문이었다. 건축학과 교수이므로 당연히 설계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게다가 자기 집을 짓는다고 하니 당연히 스스로 설계를 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그저 다시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건축계의 많은 지인들은 다르게 물어왔다. 설계는 어디에 의뢰했느냐,는 것이었다.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건축가에게 의뢰했다. 물론 건축설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고, 나는 법적으로 정한 자격과 기준을 갖추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애초부터 그럴 생각조차도 갖지 않았다. 그러니 건축가에게 의뢰를 할 수 밖에...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옛 말 그대로 나를 단독주택으로 이끌고, 더불어 옆 필지에 같이 집을 지은 친구 역시 건축학과 교수임에도 나와 같은 생각에서 내 집의 설계를 의뢰한 건축가에게 건축설계를 의뢰했다.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이나 행동이 당연할 뿐만 아니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건축설계를 건축학과 교수인 우리가 스스로 했을 것이라 믿는 주변 사람들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다보기까지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서로 붙은 두 개의 필지에 같은 건축가가 설계를 했는데 설계비를 각각 따로 지불했냐는 것이 꼬리를 문 질문이었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우리는 판단했다. 

집을 짓는 도중에 소위 '안중근기념관 준공식 사건'이 신문을 통해 활자화 되었다. 애정을 가지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건축물의 준공식 자리에 초대받지 못한 건축가의 얘기가 대중들에 회자되면서 건축계가 들끓었고, 급기야 새건축사협의회를 중심으로 기자회견이 열리고 크고 작은 사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건축가의 자리찾기 운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될 동력을 얻기도 하였다.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617288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49241.html

아무튼 집의 준공이 가까워질 무렵, 우연히 우리들이 지은 집을 위해 시간과 노력 그리고 공을 들인 분들이 적지 않을 터이니 앞으로 새 집에서 살아가면서 그 분들의 품이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친구와 함께 소위 '준공석'을 대신할만한 건축명패를 하나 소박하게 제작해서 담벼락이나 대문 주위의 적당한 곳에 하나쯤 걸어놓자는데 공감하였다. 내친 김에 건축시공을 책임졌던 시공사 대표에게 청을 넣어 두 집의 신축과정에 힘을 보탠 모든 분들의 성함이나 알자고 했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의 이름과 협력업체의 법인명이 일의 구분과 내용에 따라 정리된 문건으로 돌아왔다.

명패 디자인 역시 전문가에게 의뢰하였다. 하나디자인의 이승주 실장이 여러 차례 디자인 대안을 만들어주었고, 매번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오탈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여러 번 애를 먹였고, 드디어 최종 디자인 대안을 확정하였는데, 아뿔사!!! 이번에는 아내가 은근한 얘기를 건네온 것이다. 다름 아니라 큰 아이가 캘리그라피를 배우러 다니더니 며칠 전부터 이른 새벽까지 건축명패의 머릿글을 몇 번씩 쓰고 있더라면서 한 번 봐서 괜찮으면 그 아이가 쓴 손글씨로 명패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단독주택으로의 이사가 비록 성인이 되었지만 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크고 작은 일상이 쌓여 기억으로 누적되는 장소를 만들어 주고 더불어 공유하자는 취지도 목적의 하나였으므로 좋은 아이디어가 되겠다는 생각에서 아이에게 공식적으로 손글씨를 쓸 기회를 주었고, 아이는 여러 시간과 공을 들여 몇 가지 시안을 보여주었다. 온 가족이 모여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의견을 나눈 뒤 결국 내가 선택한 대안을 명패 제작에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다시 하나디자인의 이승주 실장의 손을 빌려 마지막 정리를 끝낸 후 알루미늄 계통의 금속에 음각을 하는 것으로 디자인이 최종 정리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축명패는 지금 '최가철물'에서 가공중이며, 아마도 설 명절이 지나면 집으로 배송될 것이다. 아직까지 건축설계를 책임맡았던 건축가 조남호 선생 등과 집 짓는 8개월 이상의 시간을 현장에서 거의 기거하다시피 에스화이브의 김봉섭 사장을 비롯한 많은 분들을 공식적으로 초청하지 않았다. 그 분들의 노고를 잊어서가 아니라 적당한 예우와 감사의 뜻을 멋지게 전해드리기 위함이다. 그 분들과 더불어 비록 소박하지만 멋진 건축명패 제막식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고자 의도한 명패는 2011년 2월 10일, 드디어 물건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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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2.03 21:14

이미 이틀 전 약속한 것처럼 친구인 P교수와 죽전 현장에서 만났다. P교수는 작은 아이를 데리고 왔으며, 나는 아내와 함께 다시 현장을 찾은 것이다. 비교적 많은 비가 내린 탓인지 현장은 어수선한 분위기였으며, 일요일이어서 작업은 중지된 채 현장사무소를 지키는 직원 한 명이 반갑게 일행을 맞아 주었다.

지난 번 현장에 왔을 때 김봉섭 사장이 설명한 것처럼 이제 아랫집의 1층과 윗집의 1층 부위에 대한 벽체 거푸집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이었는데 1층부터 본격적으로 단열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인지 현장 곳곳에는 단열재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으며, 기초와 지하층 바닥 콘크리트 타설 후 되메우기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이어서 흙더미가 곳곳에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현장 직원의 설명으로는 밤새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새벽부터 배수작업을 위해 분주했으며, 계속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인지 많은 비가 밤새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를 제외한다면 수해예방을 위한 기본적인 작업은 모두 이루어진 모습이었다.


아내가 마음에 두었던 계단 부위는 지난 번 방문했을 때보다는 조금 더 구배가 낮아진 느낌이었는데, 경사면의 콘크리트 일부를 조금 까낸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곳곳에 있어 아내의 걱정에 대한 현장의 움직임이 있었음을 직감하게 하였다. 현장을 둘러보는 아내는 이렇게 건축이 된다는 것이 새삼스럽고 걱정이 되는지 연신 곳곳을 둘러보면서 크고 작은 질문을 놓지 않았다.


특히, 대지 서측의 공원인접지 마당이 생각했던 것보다 사뭇 크다는 점에서 정온한 안마당과는 다른 느낌이라면서 이곳에도 수도관이 매설되느냐고 물었는데 도면에서 확인된 것이 없어 현장 소장에게 구체적으로 물어본 뒤 필요하다면 수도를 하나 두는 것이 좋겠다고 응답해 주었다. 물론 지난 번 현장에서 조남호 소장과 의논한 것처럼 대지의 북측 언저리에서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지하수를 이용해 적당한 크기의 샘이 만들어지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느낌이었지만 아내에게 이를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였다.

다음 질문은 지하실의 창고공간의 창호 서측(현관으로 오르는 계단과의 접점)의 처리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과 다시 현관으로 오르는 계단의 서측 경사면 처리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묻기에 도면에 그려진 것처럼 창문의 서측에는 적당한 크기의 플랜트 박스가 들어가거나 혹은 무언가를 둘 수 있는 평평한 콘크리트 단이 설치될 것이며, 계단 서측은 공원으로부터의 경사를 그대로 받아내는 자연스러운 외부공간이 될 것으로 안다고 설명하였다.

아직은 이렇다 할 정도로 건축물이나 배치 등이 형태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구채적인 집의 꼴이 그려지지 않는 지 아내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도면에서 보던 치수와는 달리 실제공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느낌을 전해주었고, 특히 서재와 안방 사이의 연속된 화장실을 보면서 너무 작은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하였다. 나는 조남호 선생이나 김봉섭 사장에게 들었던 바 그대로 아직은 현장이 정리되지 않아 그렇게 보일 뿐 모든 것이 제대로 정리된다면 지금과는 달리 넉넉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답해 주었다.


1393-1번지의 공사는 높고 긴 옹벽의 거푸집을 거의 제거한 채 1층 벽체의 거푸집 공정이 계속되는 모습이었다. 처음의 예상은 7번지의 1층 공사시 1번지의 지하가, 7번지의 2층 공사시 1번지의 1층이 동시 공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는데 7번지의 1층 바닥공사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7번지 1층과 1번지 1층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다. 어쨌건 두 개의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기 위한 효율성의 문제에서 콘크리트 타설 등을 같이 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1393-1번지 역시 아직 지하층의 거푸집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탓에 성토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당의 크기와 집의 배치 등이 확실하게 인지되지는 않는 상황이어서 1393-7번지의 아랫집과 대동소이한 상황이다.


일요일의 급작스런 방문에 자칫 수방대책에 분주한 현장에 누를 끼칠 것이 염려되어 서둘러 현장을 떠나기로 하고, 집에 들러 교회에 갈 예정이라는 P교수와 헤어져 아내와 나는 집이 지어지는 동안 서너 달 거주하게 될 잠실의 아파트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잠실 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한 파크 리오 아파트는 지어진 지 2년 이상이 경과한 까닭인지 외부공간은 잘 정리되어 있었으며 비교적 안정적인 주거지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33층이나 되는 228동을 찾아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2803호를 열자 썰렁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기대와는 달리 잘 짜인 평면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내집이 아니고, 오랜 기간 동안 살 집이 아니어서인지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었고, 허필이면 내가 외국 출장 중에 이사를 책임져야 하는 아내는 집에 들어가자 마자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살림살이 둘 곳들을 챙기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지금 사는 아파트와 달리 남측으로만 개구부를 가지는 곳이어서 시원한 느낌은 적었으며, 28층이라는 느낌도 이전의 생각과는 달리 별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내는 안방과 욕실, 2개의 다른 방과 주방 그리고 김치냉장고 등을 둘 다용도실 등을 둘러본 뒤 주방의 빌트인 가구들을 둘러보더니 식탁을 둘 공간이 마땅치 않다면서 큰아이에게 줄 방과 작은 아이 방을 정해 집에 있는 가구들을 눈대중으로 배치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지금 사는 아파트의 시스템수납장을 가져온다면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안방의 깊이가 4미터 정도의 깊이가 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집안 곳곳을 둘러본 아내는 나가는 길에 지하층 대신 1층으로 가보자면서 1층 현관으로 나서더니 경비실을 겸한 키오스크에 들러 입주 준비사항에 대해 묻자 직원인 듯 보이는 분은 입주하시는 당일 여러 가지 절차를 밟아도 된다는 설명이었다. 다시 지하주차장으로 돌아오면서 이삿짐 차가 온다면 어떻게 이사를 하는 것인지 등을 꼼꼼히 살핀 아내는 이제 되었다는 표정으로 집으로 가자고 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렴풋하게 작정이 된 모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죽전의 서측 바깥마당에 수도가 설치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라내는 내게 전했고 나는 조남호 선생이나 김봉섭 사장과 의논하겠노라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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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살구나무집_일기2011.02.01 23:27

오후 4시 30분 경, 조남호 선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지난 토요일 의문시 하였던 대문에서 집의 현관으로 이르는 계단에 대한 의논이었다. 현재의 설계내용에 따르면 대문을 연 뒤 1층 현관의 바닥까지는 30센티미터의 바닥 깊이를 가지는 계단이 모두 17개(맨 위의 경우를 포함하면 모두 18개)가 설치되는 것이어서 길이 방향으로의 거리를 모두 5.1미터를 이동하는 것인데 중간참이 없이 오르게 되어 있는 까닭에 시각적으로 약간 부담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단 하나의 높이는 현재 163.9mm(164mm)로서 세종문화회관과 같은 다수 이용시설에 적용하는 15cm보다 1.5cm 정도 더 높지만 주택의 계단으로는 오히려 낮거나 통상적인 것이어서 문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단면도를 통해 확인한 결과 대청초등학교측 도로에서 대문을 열고 대지 내부로 들어온 뒤 점토벽돌로 마감된 아주 자그마한 공간에 다다르면 그곳에서 163.9mm 높이의 계단을 18개 올라 레벨차 2.95m를 극복하는 계단이 시작되며 계단의 갯수는 모두 18개가 설치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남호 선생의 설명대로 계단 하나의 높이는 163.9 밀리에 불과하므로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별다른 불편이 초래되지 않을 정도의 높이라는 점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평면을 보아 확인해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것이었다.

따라서 문제는 두 가지 사안으로 귀결된다 하겠다. 하나는 착시(錯視)에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인데 중간에 쉬어가는 계단참이 없기 때문에 대문에 들어서서 바로 3미터에 이르는 높이를 바라보면서 가지게 되는 심리적인 높이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현장에서 도면대로 정확하게 구조체를 시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다. 나 역시 도면을 확인한 결과 설계상의 문제에는 별다른 잘못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지만 현장에서 느낀 압밀감과 1층을 오르는 과정에서 올려다보게 되는 계단 구조물의 구배가 상당한 심적 부담이 되었다는 느낌으로만 보자면 도면에 표기한 내용이 과연 현장에 그대로 적용되어 있는지가 궁금하다는 말을 조소장에게 건넸으며, 조소장 역시 그 사항은 현장 실측을 통해 도면과 일치하도록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동의하였다.

그리곤 조소장 본인이 현장에 연락을 넣어 현장 실측 내용과 도면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도록 요청을 하겠노라 답하였다. 물론 중간에 계단참을 한 번 둬서 심리적으로, 시각적으로 안정을 꾀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좋은 방법이겠으나 부지가 가지는 여러 가지 조건과 순수한 입방체와 직선을 선호하는 건축가의 의지 표현을 위한 과정에서 그리 되지 않았음은 충분히 동의할 수 있었고, 아내의 말대로 조남호라는 건축가의 건축적 주관 역시 상당 부분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실제 치수가 현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한다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기에 다시 한 번 현장 확인을 당부하였다.

또한 내친 김에 현장의 김봉섭 소장께 1층 바닥의 콘크리트 타설에 있어서도 주의에 주의를 거듭해서 한 치의 오차도 생기지 않도록 면밀하게 검토한 후 타설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청을 함께 넣었다. 아울러 조소장에게 부탁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보아가면서 콘크리트 마감으로 끝나는 계단 구조물에 적당한 치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더불어 하게 되었다. 특히, 아내는 자신이 결혼하기 전에 살았던 중곡동의 2층 단독주택을 떠올리면서 대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오르는 돌계단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노라 현장에서 내게 건넸던 말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조소장이나 김사장에게 별도의 부탁을 드려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별도의 마감에 대해 조언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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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