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_을 펴내며2017.06.23 19:45

출판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원고지를 채워나가던 2016년 봄 서울역사편찬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울이천년사] 35권과 40권에 원고를 보태 감사를 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서울역사편찬원에서 별도로 기획, 발간중인 서울문화마당 시리즈 단행본 가운데 하나인 [근현대 서울의 집] 원고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서울이천년사] 원고만 하더라도 시간에 쫓겨 꾸역꾸역 원고를 썼던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새로운 원고, 그것도 단행본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니 일단 어렵다고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판단하고, 사정이 딱하지만 힘들다고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그런데 다시 청을 해 와 하는 수 없이 덜컥 그러마고 했고, 결국 원고마감을 가까스로 지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채운 원고지가 600여 장 정도. 물론 그림도 꽤 많아 내심 원고량을 걱정하였지만 서울역사편찬원에서 잘 마무리 해 주신 덕택에 자그마하고 단정한 책으로 만들어졌다. 2017년 6월 23일이 출간일이니 책이 나온 날 바로 받은 셈이 되었다. 이 책은 비교적 잘 읽히도록 만든다는 것이 의도였지만 그렇다고 쉽게 써야 할 것은 아니었으니 결국 글솜씨가 문제인 셈이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다시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미 책은 나왔으니. 이제 모든 잘못은 필자에게 있음이다.

 

여는 글 /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인 천만 서울시민의 삶의 기억

 

<서울연구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2015년 말을 기준으로 서울에는 모두 천만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데 한 세대는 평균 2.39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대략 420만 정도의 세대로 구성되어 대도시 서울에서의 삶을 꾸리고 있다. 역사도시이자 첨단도시, 국제도시로서 한 나라의 수도라는 특별한 지위를 갖는 서울을 움직이는 천만이 넘는 시민은 280만 채에 이르는 에서 하루를 열고 닫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천만의 시민들이 이어가는 일상은 매우 독립적일뿐만 아니라 서울이라는 지리적 공간의 범주를 넘나들며 서로 다른 장소와 공간에서 다채로운 삶의 양태를 드러냄으로써 현대도시 서울의 거주풍경을 만들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천만 서울시민의 다양한 삶이 지속되도록 지지하고 지탱하는 최소의 거주단위인 의 유형은 생각과는 달리 몇 가지로 수렴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변화 정도가 가장 적고 비록 그 모습이나 내용이 일부 바뀌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 변화주기가 가장 길었던 건축 유형의 하나가 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건축사와 문화사, 생활사를 통해 확인한 바 있을 정도로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서울시민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는 오늘의 주택유형을 꼽아본다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일반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그것으로 280만 채에 달하는 집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2015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서울에 존재하는 280만 채에 달하는 [住宅]’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아파트로서 전체 주택유형 중 58.6%를 차지한다. 15년 전인 1990년에 비해 110만 채 이상이 늘어, 전체 서울의 재고주택에서 차지하는 점유비도 35%에서 가장 많이 늘었다. 그러니 서울을 아파트 도시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비약적인 증가라 아니 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높은 점유비율을 보이는 주택유형은 다세대주택이다. 다세대주택이 654천 채를 넘는 수치를 보임으로써 서울의 재고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아파트에 이어 23.4%를 차지한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한 다른 주택유형을 내림차순으로 살펴보면 누구나 쉬 짐작하듯 일반 단독주택연립주택이 뒤를 있는다. 그 가운데 단독주택은 12.7%를 점하고 있으며, 연립주택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4.2%를 기록하고 있다. 단독주택은 대략 355천 호, 연립주택이 117천 호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서울시민이라면 짐작할 수 있듯 서울의 주택유형 가운데 끊임없이 늘고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점점 줄어드는 유형도 당연히 존재한다. 이미 서울의 비약적 인구 증가는 거의 그쳤고, 해마다 다르지만 일부 줄어드는 경우도 나타난다.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은 예외 없이 늘어나는 주택유형에 속하지만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유형에 속한다. 근래 서울의 행정구역 확장이나 축소 등의 변화가 없었고, 인구 역시 급격하게 늘거나 줄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이는 곧 오래된 것의 소멸과 새로운 유형의 등장의 반복되며 그 모습을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줄어들며 그 자리를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가 빠르게 채워나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주거유형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거주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달리 말하면 소위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통해 도시의 공간구조나 풍경이 바뀌었다는 사실로도 설명할 수도 있다. 결국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라는 주택유형으로 서울의 집이 수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공유주택이니 타운하우스니 하는 새로운 호칭을 가진 집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법률적, 제도적으로 이들의 대부분이 다세대주택이거나 연립주택인 것처럼 오늘날 서울의 집은 유형학적으로 본다면 결코 다양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서울의 집가운데 아주 미미한 숫자에 불과한 비주거용 건물 내 주택을 제외하고 유형학적으로 살피자면 아파트, 다세대주택, 단독주택, 연립주택의 네 가지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근현대 서울의 집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지난 100년 동안 이들이 서울의 집을 대표하게 된 연원을 계통적으로 살피고 그 궤적을 따라 걷는다. 일례로 도시한옥처럼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커다란 반향을 보이며 대중적 유행을 누렸으나 그 명맥을 잇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그 가치와 의미가 새롭게 평가되어 70여 년 만에 다시 서울의 집을 대표하는 유형으로 새롭게 자리매김을 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승만 정권 때 도시미화의 방편으로 별안간 궁리된 상가주택이나 허허벌판이던 도시 주변부를 새로운 교외주택지로 만들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고안한 점포주택이 서울의 고밀화 과정을 통해 단지형 아파트주상복합아파트로 변태를 거듭했던 사실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흐름을 산책하듯 따라 걷자는 취지로 쓰였다.

 

책 제목 끄트머리에 주택이 아니라 을 택한 이유는 단순히 주택의 형태와 형식에만 주목하는 건축역사와 양식사의 시선에서 벗어나 서울시민들의 보편적, 규범적 생활문화사를 폭넓게 다루어보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울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집의 변화 혹은 변이의 과정과 경로를 일정한 궤적에 따라 살핀 뒤 다시 오늘의 모습에 이르게 된 과정을 담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 책은 서울이라는 지리적, 공간적 영역에 주목하되 행정구역의 확장이나 그에 따른 도시계획의 변화 등과 같은 입장에서 조금 비켜선 채 서울 주거문화 흐름과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기원을 찾아보고, 변화의 동인이 무엇인가를 살핀 것이다. 책에 담긴 내용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공감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근현대 100년 동안 서울 사람들이 살아온 풍경이며 기거문화를 소설과 신문 등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대중매체와 각종 문헌자료에 의지해 담아보았다. 물론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이는 모두 필자의 책임으로, 나태함이 빚은 과오다.

 

책을 이루는 글의 덩어리는 모두 네 가지로 구성되었다. 1장은 일제강점기의 단독주택을 대표하는 관사와 사택, 도시한옥과 문화주택으로부터 영단주택을 거쳐 한국전쟁 복구과정에 등장한 다양한 유형의 주택을 살핀 뒤 개발경제기에 등장하게 된 민영주택과 이후 오늘의 보편적 서울의 집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게 된 다세대주택에 이르기까지의 경로와 과정을 살펴보았다. 특히 1960년대 중반 민영주택의 등장과 확산과정을 생활문화사 차원에서 살핌으로써 단독주택의 갈래를 살폈고, 단독주택이 1980년대를 거치며 여러 가지 색다른 유형으로 바뀌게 된 과정을 훑었다.

 

2장은 아파트의 등장과 변화의 흐름을 주로 기술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 최초의 아파트와 초기 사례부터 1960년대를 관통하는 정부와 서울시의 아파트 공급 전략을 통해 국민주택의 대표적 유형이었던 아파트를 새삼 확인한 뒤 대한주택공사와 서울시의 아파트 건설 내용을 경향적으로 살폈다. 이를 통해 단지형 아파트와 좌절된 서울시민아파트 등이 도시중간층의 급신장으로 인해 중산층용 맨션아파트로 변모하는 과정을 기술했다. 그리고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아파트가 서울의 다수를 차지하는 대단위 단지형 아파트로 변모하는 과정을 바라보았다.

 

3장은 연립주택의 기원과 전망을 다루었다. 일제강점기에도 노동자주택이나 합숙소의 형태로 일부 등장한 바 있는 연립주택이 한국전쟁 이후 부흥주택 등으로 대표되는 복구와 재건의 시기에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주거유형으로 주목받았던 내용을 먼저 다루었다. 그 뒤를 이어 연립형 주택이 개발경제기를 거치며 여러 가지 실험과 시도를 통해 새로운 보편적 도시주택 유형인 오늘날의 연립주택으로 자리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또한 급격하게 신장된 새로운 도시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아파트와의 시장주택 경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아파트의 하위 주택상품으로 전락하는 과정과 함께 저밀도라는 환경의 질적 조건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강남 개발과 함께 고급 연립주택을 일컫는 빌라와 맨션으로 분화하는 과정도 더불어 다루었다.

 

4장은 전후 복구와 수도 서울의 위신 세우기 수단으로 궁리되었던 상가주택과 교외주거지 개발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만들어졌던 점포병용주택이 1960년대를 관통하며 도시미화와 정비의 효과적인 방편으로 활용된 상가아파트로 변신하는 과정을 살폈다. 특히, 1970년대에 본격화된 강남 개발에 따른 노선상가 아파트 확대와 일부 중산층 아파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아케이드형 맨션아파트를 거쳐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 이르게 된 과정을 눈여겨보았다. 이 과정에서 단독주택이 주를 이루었던 상당수의 교외 점포주택지는 이미 서울의 보편적 주거유형이자 지배적 유형인 대단위 단지형 아파트에 편입되거나 여전히 오래 전의 풍경을 간직한 채 서울의 주거지로 남았음을 확인하고 그 내용을 간추렸다.

 

일정한 시기 혹은 사회변화의 기제이자 가치라고도 할 수 있는 의미어로서의 근대 혹은 현대는 대도시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구한말의 개화에서부터 일제강점기의 수탈적 식민지 근대화, 건국과 분단, 산업화과정과 주택시장의 급신장 과정에서 빚어진 인간 소외와 불구적 이미지화를 거쳐 때론 천박한 자본주의의 극한적 양태라고도 불리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지난 백여 년 동안 기거양식의 일정한 질서라 할 수 있는 주거문화는 혼돈과 충돌 그리고 갈등과 수용의 연속이었다. 근현대 서울의 집은 주마간산 격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담아내려고 애쓴 결과물이다.

 

이 책을 통해 서울시민들이 근현대의 시간을 함께 산책하며 어렴풋한 기억을 길어 올려 복원하거나 반추한다면 어떤 이에게는 편리와 풍요, 성장과 발전이라는 양지로 회상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뿌리 뽑힘과 난민 정서로 대표되는 응달의 상흔을 남기기도 할 것이다.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그리고 연립주택과 단독주택은 오늘날 서울의 대표적 주거유형이자 시민들의 삶을 의탁하는 보편적인 장소이자 사회적 공간이다. 이들이 어떻게 서울의 대표적 주거유형으로 정착하게 되었는가를 따라 천천히 걷는 근현대 서울의 집을 통해 서울 시민 모두가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인 삶의 기억을 반추하는 한편 역사도시 서울이 맞닥뜨릴 새로운 시대의 문화풍경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
'거취와 기억'2016.11.22 11:33
한국주택백과2014.02.24 15:20

행복주택을 낳은 재건주택-희망주택-부흥주택

지금부터 1년 전인 2013225일 박근혜 당선인이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우리 모두가 꿈꾸는 국민 행복의 새 시대를 반드시 만들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함으로써 소위 국민행복 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바 있다. 주택공급에 관한 모든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새 정부의 공공임대주택을 재빨리 행복주택이라 칭하고, 오류, 가좌, 공릉, 고잔, 목동, 잠실, 송파 등 수도권의 도심 7곳에 1만호의 행복주택을 공급하기로 했다. ‘행복주택이 세상에 등장한 배경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주택 앞에 붙여지는 고유한 명칭이 늘 우리 사회의 상황과 과제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행복주택이란 그동안 별로 행복하지 않았던 사회였다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으니 이제부터는 젊은이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어르신이나 장애인에게는 편하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정부는 행복주택의 전체 공급 물량 중 80%를 신혼부부, 사회 초년생, 대학생, 주거 취약계층에 우선 공급하고 나머지 20%는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으로 공급할 계획을 밝힌 것이다.

 

한국주거사를 살피자면 이런 식의 작명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954년부터 196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대한주택공사의 전신인 대한주택영단이 공급한 주택을 살펴보면, 아파트와 더불어 국민주택, 부흥주택, 시험주택, 재건주택, 희망주택, 시범주택, 개량주택, 외인주택, 상가주택, 난민주택, 자조주택, ICA주택 등이 등장한다. 이들 역시 행복주택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문제인 주거문제를 해결하고 구체적인 기대를 밝히기 위해 주택 앞에 다양한 명칭을 붙인 것이다. 이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재건주택, 희망주택, 부흥주택이다. 6.25 전쟁의 참화를 딛고 다시 일어서자면 재건이 필요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희망을 싹틔워 부흥의 기치를 드높이자는 취지라고 한다면 각각의 주택이 공급된 시기는 1954, 1955, 그리고 1957년이라는 점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1953년에 조성된 안암동 재건주택  대한주택공사                                 1960년대 초에 건설된 장위동 국민주택 대한주택공사

 

청량리 부흥주택

이들 주택 가운데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 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주변의 고층 건축물에 눌려 마치 분지처럼 잔뜩 웅크리고 앉은 주택지가 있으니 바로 청량리 부흥주택이다. 그런데 앞서 장황하게 의미니 뭐니 따져 물은 것과 달리 부흥주택이란 산업부흥국채를 재원으로 추진된 주택건설 사업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 이해하자면 조금 복잡한 내용을 먼저 알아야 한다. , 우리 정부는 휴전 이후 6.25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했고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였는데, 이 돈이 곧 부흥자금이다.

 

당시 산업은행이 발행한 국채는 한국은행이 전액 인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다시 말해, 산업부흥국채를 발행하기 위한 산업부흥국채법을 먼저 제정하여 국회의 의결로 19529월 시행하였고, 이를 근거로 1918년 일제강점기에 만들었던 식산은행을 19544월에 해산하고 장기산업은행의 역할을 맡는 한국산업은행을 대체 기관으로 설립한 것이다.

 

산업은행이 발행하는 산업부흥국채는 수리자금, 기간산업건설자급, 중소광업자금, 주택건설자금 등과 같은 정책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은행이 이를 모두 인수했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는 것이므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으나 미국원조에 의한 대충자금이 산업은행의 주요자금원이 되면서 이런 우려는 점차로 줄어들었다. 여러 차례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산업부흥국채는 여러 차례 발행되었고, 7회와 8회의 산업부흥국채를 재원으로 공급한 주택이 바로 부흥주택인 것이다.

 

1955년 청량리 홍릉 일대의 풍치지구가 해제된 뒤 1957년에 조성된 부흥주택 정기황

 

부흥주택이 공급되기 시작한 1957년은 부흥부’(부흥부는 1961년 건설부로 변경)에 의해 경제부흥5개년계획도 수립되었던 것처럼 부흥이 강조되던 해였고, 이 때 청량리와 홍제동 일대에 부흥주택이 건설된 것이다. 7회와 8회 채권발행으로 얻어진 자금은 산업은행을 통해 융자되었는데 연 이율은 융자금의 11%에 달했고 상황기간도 6년에 불과해 일반입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주택분양은 저조한 실정이었다. 홍제동 부흥주택의 경우는 여기에 화장터 인근이라는 이유가 더해져 대학교수와 신문기자, 연예인들이 나서서 흉흉한 동네 소문은 미신에 불과하다는 등의 설득을 벌여 입주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청량리 부흥주택은 서울시가 건설한 시영주택 204호와 주택공사의 전신인 주택영단이 공급하는 영단주택 283호로 이루어진 곳인데 한 층에 두 가구가 들어가는 방식으로 2층에 모두 4가구가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곳이다. 이 일대는 이미 일제강점기에 풍치지구로 지정되어 어떠한 개발행위도 허용하지 않던 곳이었는데 1955년에 주택공급을 위한 용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풍치지구가 해제되었고 부흥주택지로 변한 곳이다. 그저 양계장이나 들어섰고, 청량사(淸凉寺) 녹지로 인해 서울 도심 사람들이 나들이삼아 이용하던 한적한 곳이 부흥주택의 공급으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변한 셈이다.

 

황순원의 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는 당시 이곳 풍경에 대한 묘사가 실려 있다. “현태는 그곳(다옥동 병원)을 나와 을지로 입구 내무부 앞에서 회기동행 합승을 탔다. 청량리를 지난 회기동 종점에서 내렸다. 윤구네 양계장으로 들어가는 길 주변에는 전에 없던 후생주택(厚生住宅)과 인가가 꽤 많이 들어서 있었다. 여기저기 가게도 보였다.” 부흥주택으로 바뀐 청량리 일대의 풍경이 그랬다.

 

부흥주택 입주자들의 청원사태

부흥주택이 세인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59년 봄에 벌어진 부흥주택 입주민들의 집단 청원사태 때문이었다. 어떤 곳은 서명자 숫자가 300명에 달하는 곳도 있었는데 공통적인 청원 내용은 주택 분양가격이 비싸고, 융자금 이자가 너무 높으며 원금 상환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마침 언론도 이 문제에 주목하면서 연이어 기사를 내보냈고, 결국은 국회에 특별조사소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하였다. 대한주택영단의 기관지 [주택] 창간호(19597)에는 부흥주택입주자의 청원 사태와 그 해결책이라는 글이 실렸는데 연소득 전체를 부금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질타와 함께 서민의 등을 긁어다가 산업은행에 좋은 일이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울분이 담겨 있다. 특히 국민소득이 25배나 더 많은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벌어지지 않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언어도단일 뿐이라는 정부 비난조의 글도 실려 있다.

 

1959228일 부흥주택의 진정사건을 다룬 기사 동아일보

1956년의 청량리 부흥주택 서울특별시

 

분양가격이 높게 책정된 이면에는 화재보험료가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었는데 화재가 일어날 확률은 1/2,000에 불과하지만 분양가의 1/100에 해당하는 비용을 매년 보험료로 내게 한 것 역시 산업은행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험사의 배를 불리는 것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많은 입주자들이 분양받은 주택을 전매(轉賣)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물론 오래 전의 일이기는 하다.

 

지우기에 익숙한 문화적 후진성

이제 부흥주택이라 붙여진 이름의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 , 산업은행이 발행한 산업부흥국채를 한국은행이 인수한 뒤 현금화 된 주택건설자금이 정책자금으로 지원되어 지어진 주택이라는 의미인 것을. 그런데 이 자금에 미국의 원조자금이 보태지면서 195795일 보건사회부는 부흥주택 관리요령이라는 이름의 법령을 공포했다. 이것은 제7차 산업부흥국채주택자금으로 당시 민간건설회사인 중앙산업주식회사. 남북건설자재주식회사, 한국건자재주식회사, 대한건설주택회사 등이 건설하여 준공한 주택에 대해 가격을 결정한 뒤 대한주택영단이 이를 인수하여 입주희망자들에게 분양, 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해방 이후 한국 최초의 아파트로 불리는 종암아파트(1957), 개명아파트(1959) 등은 대한주택영단이 부흥주택관리요령에 따라 인수한 것이기 때문에 민간건설업체가 이미 건설한 것을 대한주택공사가 인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955년부터 현재 LH공사의 할아버지격인 대한주택영단(조선주택영단대한주택영단대한주택공사LH공사)1954년에 설립된 한국산업은행 그리고 서울특별시를 비롯하여 여러 공공단체, 금융기관, 외국원조단체 (한미재단 등)에서도 이미 주택을 지어 공급하기 시작했고, 이들 주택들을 일괄하여 공영주택(公營住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속내를 샅샅이 살펴보면 주택의 형태, 자금의 출처, 주택건설의 목적에 따라 부흥(復興)주택, 재건(再建)주택, 도시(都市) A, 도시 B, 도시 C. 난민(難民)주택, 자조(自助)주택, 시범(示範)주택, 국민(國民)주택, 수재민(水災民)주택, 공영(公營)주택, 간이(簡易)주택, ICA주택, 희망(希望)주택, 인수(引受)주택, 아파트, 개량(改良)주택, 외인(外人)주택, 실험(實驗)주택, 상가(商街)주택, 자재공급(資材供給)주택 등등 그 종류와 명칭이 매우 다양했다. 부흥주택이란 이런 여러 가지 주택유형 가운데 하나로 부흥국채 발행으로 얻어진 자금을 융자 방식에 따라 지원하여 건설한 주택의 하나인 것이다.

 

도시란 인간이 고안한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말이 있다. 당연히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거기에 집에 대한 기억을 누적하는 곳이 곧 도시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가 하늘에서 별안간 떨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도시 역시 당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기억의 농축장인 도시에서 앞선 사람들의 일상과 삶을 반추하는 것은 그들이 남긴 집을 통해 가능하다고 하겠다.

역사를 지우는 행위는 문화적 후진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다. 적어도 지난 100년 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반추하는 일은 미래를 향한 윤리적 태도라는 점에서 싹쓸이식 재개발과 기억을 허무는 재건축에 앞서 우리가 살아온 흔적을 지우는 일을 곰곰 되새김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체념하기에 앞서 비록 작은 것이지만 도심 곳곳의 그 자리에 원래의 모습 그대로를 몇 개씩 남겨 자그마한 주택박물관을 남기는 일은 또 어떤가.

 

이 글은 주택(대한주택영단, 1959), 대한주택공사 20년사(대한주택공사, 1991), 청량리(서울역사박물관, 2012), 한국건축개념사전(동녘, 2013) 등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Posted by 살구아저씨 살구아저씨